밀실 안에서 자살한 조카, 혹시 타살일까? - 『자물쇠가 잠긴 방』
『자물쇠가 잠긴 방』에 실린 4편의 연작 단편은 모두 밀실살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변호사인 아오토 준코와 방범 컨설턴트인 에모노토 케이. 『유리망치』에서 고층빌딩의 밀실살인을 풀어낸 콤비는 『도깨비불의 집』에 이어 『자물쇠가 잠긴 방』에서도 범인이 만들어놓은 밀실의 비밀들을 깨끗하게 풀어낸다.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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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추리소설의 매력 중 하나는 밀실살인이다. 문과 창문 등 출입할 통로가 완벽하게 잠겨 있고, 방안에는 오로지 피해자 한 사람만이 죽어 있다. 때로는 다수의 피해자가 있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그 누구도 살인을 저지른 후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작가는 밀실살인을 만들어놓은 후 독자에게 도전장을 던진다. 전체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사건을 풀 수 있는 단서들을 하나씩 던지면서 독자와 두뇌싸움을 벌인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깨는 것과 함께 밀실살인은 그야말로 본격 미스터리의 영원한 테마라고 할 수 있다. 『검은 집』의 기시 유스케 역시 그런 ‘본격 추리’에 매력을 느꼈다.
본격 미스터리를 쓰고 싶었다. 본격 미스터리는 수수께끼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로, 불가능 범죄가 대상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불가능 범죄를 밀실을 통해 구현한다면 아무리 복잡한 트릭이라도 밀실의 침입, 탈출 여부에 초점이 모이게 된다. 단순한 형태로 독자에게 수수께끼를 제시할 수 있으니 가장 좋지 않은가!
『자물쇠가 잠긴 방』에 실린 4편의 연작 단편은 모두 밀실살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변호사인 아오토 준코와 방범 컨설턴트인 에모노토 케이. 『유리망치』에서 고층빌딩의 밀실살인을 풀어낸 콤비는 『도깨비불의 집』에 이어 『자물쇠가 잠긴 방』에서도 범인이 만들어놓은 밀실의 비밀들을 깨끗하게 풀어낸다. 기시 유스케는 사이코패스의 마음을 파고든 『검은 집』과 『악의 교전』, 가상세계의 계급 갈등을 그린 SF 『신세계에서』, 기생충의 공포를 그린 『천사의 속삭임』, 다중인격을 그린 『13번째 인격』 등 매 작품마다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던 작가다. 그 중에서 시리즈를 이어가는 것은 에노모토와 아오토 콤비가 유일하다.
에노모토는 방범 컨설턴트다. 그런 직업이 있던가? 방범상점인 시큐리티 숍을 운영하는 에노모토가 주로 하는 일은 집이나 회사의 방범에 대해, 그러니까 누군가 침입할 수 없게 하는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에노모토를 보고 있으면 과연 주 업무가 그것일까 의심이 간다. 경찰의 의뢰를 받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해자가 변호사인 아오토에게 자문을 구하면 에노모토를 불러 진상을 파헤친다. 그러다보니 아오토도 ‘밀실살인’ 전문으로 유명해져 그런 일들이 자꾸만 들어온다. 그 때마다 아오토는 에노모토를 부르는데, 이 남자는 뭔가가 수상하다. 혹시 에노모토의 주 업무는 막는 일보다 침입하는 일이 아닐까, 란 의심이 드는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과거에 그랬든지.
『자물쇠가 잠긴 방』의 표제작에는 한때 빈집털이의 달인이며 ‘섬턴의 마술사’라 불렸던 아이다가 등장한다. 5년 만에 감옥에서 나와 그리운 조카들을 찾아갔지만, 바로 그 날 조카인 히로키가 자살한 현장을 보고 만다. 하지만 뭔가 위화감을 느낀 아이다는 한때 알고 지냈던 에노모토를 찾아가, 아오토와 함께 현장을 다시 찾아간다. 과연 아이다와 에노모토는 어떻게 아는 사이였을까? 단순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한때 동료였던 것이 아닐까? 아오토는 그렇게 의심한다. 물증도, 확증도 없기는 하지만.
에노모토와 아오토 콤비가 나오는 작품은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등 꽤 인기를 끌었다. 밀실 살인이라는 소재를 천착하는 점도 흥미롭지만, 에노모토와 아오토는 꽤나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콤비다. ‘버디 무비’라고 하면, 서로 성격이 다른 두 명의 주인공이 어울려 다니며 늘 티격태격하다가 서로를 인정하게 되는 이야기를 말한다. <리썰 웨폰> <맨 인 블랙>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주인공. 그들이 주고받는 화학작용이 ‘버디 무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그런 설정은 어떤 장르에서나 통용된다. 스크루볼 코미디라는 장르는, 남자와 여자가 아웅다웅하다가 연인으로 골인하는 이야기다. 그게 발전하여 로맨틱 코미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같은 영화가 나온다.
에노모토와 아오토도 전형적인 캐릭터다. 아오토는 미인이고 늘씬한, 그리고 정의로운 변호사다. 그 정의감이 때로 지나친 경우도 있다. ‘준코는 불쌍한 배우들을 진심으로 동정했다. 변호사로서 박해당하는 쪽에 감정이입하는 버릇이 몸에 배어버렸다.’ 그건 아오토가 대단히 직선적이고 단순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밀실 살인을 조사하면서 아오토는 간혹 의견을 내놓는다. 그런데 그게 정말, 정말 터무니없는 경우가 많다. 아오토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변호사이지만, 상상력을 발휘하여 밀실을 만들어내는 범인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에는 영 서툴다. 반면에 에노모토는 어수룩해 보이지만 언제나 냉철하게 상대의 허점을 파고든다. 범인이 밀실을 만들어낼 때의 마음을 상상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밀실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것이다. 그건 마치 『덱스터』의 사이코패스 덱스터가 직감적으로 범인의 행동을 유추해내는 것과도 같다. ‘마치 범인이 다른 해답을 뭉개기 위해 백막을 쳐놓은 것만 같아요……그러니까 가능성을 제거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기가 바라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겁니다.’ 아오토가 의심하는 것처럼 어쩌면 에노모토는 ‘범죄자’로서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노모토가 심각하게 범죄에 발을 디디고 있는 느낌 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아오토가 에노모토를 의심하는 것은 일종의 유머 코드로 쓰인다. ‘이렇게 감정이 없는 냉혈동물 같은 인간까지 짜증나게 할 정도니까 자신이 때때로 에노모토에게 짜증을 부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준코는 묘하게 자기 합리화를 했다.’ 아오토가 늘 에노모토의 거동을 조금씩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에노모토와 아오토 콤비에게 유머러스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때로는 폭소까지 가능한 웃음 코드. 『자물쇠가 잠긴 방』은 에노모토와 아오토 콤비의 매력 그리고 밀실 살인의 수수께끼 풀이의 즐거움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덤으로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을 읽었다면 표제작인 ‘자물쇠가 잠긴 방’에서 그 원류를 짐작할 수 있다. 밀실에서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아이다의 조카 히로키는, 의붓 아버지인 고등학교 화학교사 타카자와에게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히로키의 동생인 미키는 이렇게 말한다.
‘그 녀석은 파충류, 냉혈동물이에요. 먹이가 충분해서 기분이 좋을 때는 조용히 지낼지도 모르죠. 하지만 배가 고파지면 태연하게 곁에 있는 인간을 잡아먹어버릴걸요.’
이 진술은 『악의 교전』에서 사이코패스인 하스미를 대부분의 교사와 학생들은 다정하고 능숙한 열혈교사로 보지만, 오직 하나 그에게 위화감을 느끼는 가타기리란 여학생의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미키는 직감적으로 타카자와의 기묘한 부분을 알아차린다. ‘자물쇠가 잠긴 방’에서 타카자와의 행동과 말을 보고 있으면, 하스미란 인물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가 보인다. 한 작가의 작품을 하나씩 읽어가며 이런 부분을 찾아내는 것도 묘한 재미가 있다.
본격 미스터리를 쓰고 싶었다. 본격 미스터리는 수수께끼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로, 불가능 범죄가 대상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불가능 범죄를 밀실을 통해 구현한다면 아무리 복잡한 트릭이라도 밀실의 침입, 탈출 여부에 초점이 모이게 된다. 단순한 형태로 독자에게 수수께끼를 제시할 수 있으니 가장 좋지 않은가!
에노모토는 방범 컨설턴트다. 그런 직업이 있던가? 방범상점인 시큐리티 숍을 운영하는 에노모토가 주로 하는 일은 집이나 회사의 방범에 대해, 그러니까 누군가 침입할 수 없게 하는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에노모토를 보고 있으면 과연 주 업무가 그것일까 의심이 간다. 경찰의 의뢰를 받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해자가 변호사인 아오토에게 자문을 구하면 에노모토를 불러 진상을 파헤친다. 그러다보니 아오토도 ‘밀실살인’ 전문으로 유명해져 그런 일들이 자꾸만 들어온다. 그 때마다 아오토는 에노모토를 부르는데, 이 남자는 뭔가가 수상하다. 혹시 에노모토의 주 업무는 막는 일보다 침입하는 일이 아닐까, 란 의심이 드는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과거에 그랬든지.
『자물쇠가 잠긴 방』의 표제작에는 한때 빈집털이의 달인이며 ‘섬턴의 마술사’라 불렸던 아이다가 등장한다. 5년 만에 감옥에서 나와 그리운 조카들을 찾아갔지만, 바로 그 날 조카인 히로키가 자살한 현장을 보고 만다. 하지만 뭔가 위화감을 느낀 아이다는 한때 알고 지냈던 에노모토를 찾아가, 아오토와 함께 현장을 다시 찾아간다. 과연 아이다와 에노모토는 어떻게 아는 사이였을까? 단순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한때 동료였던 것이 아닐까? 아오토는 그렇게 의심한다. 물증도, 확증도 없기는 하지만.
에노모토와 아오토 콤비가 나오는 작품은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등 꽤 인기를 끌었다. 밀실 살인이라는 소재를 천착하는 점도 흥미롭지만, 에노모토와 아오토는 꽤나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콤비다. ‘버디 무비’라고 하면, 서로 성격이 다른 두 명의 주인공이 어울려 다니며 늘 티격태격하다가 서로를 인정하게 되는 이야기를 말한다. <리썰 웨폰> <맨 인 블랙>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주인공. 그들이 주고받는 화학작용이 ‘버디 무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그런 설정은 어떤 장르에서나 통용된다. 스크루볼 코미디라는 장르는, 남자와 여자가 아웅다웅하다가 연인으로 골인하는 이야기다. 그게 발전하여 로맨틱 코미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같은 영화가 나온다.
에노모토와 아오토도 전형적인 캐릭터다. 아오토는 미인이고 늘씬한, 그리고 정의로운 변호사다. 그 정의감이 때로 지나친 경우도 있다. ‘준코는 불쌍한 배우들을 진심으로 동정했다. 변호사로서 박해당하는 쪽에 감정이입하는 버릇이 몸에 배어버렸다.’ 그건 아오토가 대단히 직선적이고 단순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밀실 살인을 조사하면서 아오토는 간혹 의견을 내놓는다. 그런데 그게 정말, 정말 터무니없는 경우가 많다. 아오토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변호사이지만, 상상력을 발휘하여 밀실을 만들어내는 범인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에는 영 서툴다. 반면에 에노모토는 어수룩해 보이지만 언제나 냉철하게 상대의 허점을 파고든다. 범인이 밀실을 만들어낼 때의 마음을 상상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밀실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것이다. 그건 마치 『덱스터』의 사이코패스 덱스터가 직감적으로 범인의 행동을 유추해내는 것과도 같다. ‘마치 범인이 다른 해답을 뭉개기 위해 백막을 쳐놓은 것만 같아요……그러니까 가능성을 제거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기가 바라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겁니다.’ 아오토가 의심하는 것처럼 어쩌면 에노모토는 ‘범죄자’로서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노모토가 심각하게 범죄에 발을 디디고 있는 느낌 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아오토가 에노모토를 의심하는 것은 일종의 유머 코드로 쓰인다. ‘이렇게 감정이 없는 냉혈동물 같은 인간까지 짜증나게 할 정도니까 자신이 때때로 에노모토에게 짜증을 부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준코는 묘하게 자기 합리화를 했다.’ 아오토가 늘 에노모토의 거동을 조금씩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에노모토와 아오토 콤비에게 유머러스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때로는 폭소까지 가능한 웃음 코드. 『자물쇠가 잠긴 방』은 에노모토와 아오토 콤비의 매력 그리고 밀실 살인의 수수께끼 풀이의 즐거움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덤으로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을 읽었다면 표제작인 ‘자물쇠가 잠긴 방’에서 그 원류를 짐작할 수 있다. 밀실에서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아이다의 조카 히로키는, 의붓 아버지인 고등학교 화학교사 타카자와에게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히로키의 동생인 미키는 이렇게 말한다.
‘그 녀석은 파충류, 냉혈동물이에요. 먹이가 충분해서 기분이 좋을 때는 조용히 지낼지도 모르죠. 하지만 배가 고파지면 태연하게 곁에 있는 인간을 잡아먹어버릴걸요.’
이 진술은 『악의 교전』에서 사이코패스인 하스미를 대부분의 교사와 학생들은 다정하고 능숙한 열혈교사로 보지만, 오직 하나 그에게 위화감을 느끼는 가타기리란 여학생의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미키는 직감적으로 타카자와의 기묘한 부분을 알아차린다. ‘자물쇠가 잠긴 방’에서 타카자와의 행동과 말을 보고 있으면, 하스미란 인물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가 보인다. 한 작가의 작품을 하나씩 읽어가며 이런 부분을 찾아내는 것도 묘한 재미가 있다.
- 자물쇠가 잠긴 방 기시 유스케 저/김은모 역 | 북홀릭
본격 밀실 미스터리를 펼치는 『자물쇠가 잠긴 방』에서 그는 네 개의 단편을 통해 군더더기 없이 오직 밀실 트릭만으로 독자에게 정면 승부를 던진다. 오롯이 밀실의 재미를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는 밀실의 발견 후 사건 해결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분량 낭비를 하지 않는다. 담백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은 그림, 도면과 함께 제시되는 사건의 단서들을 토대로 해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중에서 탐정(작가)과 공평한 대결을 펼칠 수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5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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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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