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랬다. 서울이 바뀌고 있다. 누군가에겐 아주 크게, 누군가에겐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편차는 있겠지만, 내가 체감하는 서울, 종전과 다르다. 물론 그것이 시장 한 사람의 힘만은 아닐 것이다. 서울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과 염원이 ‘시장’이라는 형태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장, 상대적으로 좀 더 시민친화적으로 다가서기 때문일 것이다. ‘디자인 서울’이랍시고, 시민과 괴리된 토건과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점철된 행태와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니까, 과거 서울의 강박관념이라는 것이 이랬다.
“서울이 갖는 강박관념은 도시의 약점들을 건축 행위, 혹은 디자인 행위로 풀려고 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건축 및 디자인들은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의 의지와 상급 공무원 및 여러 세력들의 촌스러운 안목, 시스템의 부재라는 조합의 의해 종종 낯 뜨거운 결과물들을 양산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p.218) | ||
서울 마을공동체도 바뀌고 있는 서울의 또 다른 풍경이다. 메트로폴리탄 서울에서 웬 마을(공동체)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들, 지쳤다. 얼굴 없는 이웃 아닌 인간의 얼굴을 한 삶을 함께 나눌 이웃이 필요하다. 혼자서 꾸역꾸역 버티는 것도 어렵고, 혼자 잘 사는 것도 재미가 없다. 작은 단위에서 관계망 복원을 통해 상호부조하고 지지고 볶고 싶은 열망이 마을공동체라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얼마 전, 오랫동안 성수동에서 어린이를 위한 지역 활동을 하고 있던 한 여성,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10년 이상 활동하면서 힘들고, 토건과 (재)개발ㆍ디자인 때문에 지역이 망가져서 지쳐있었단다. 그러나 마을공동체가 꿈틀대면서 다시 불씨를 지피고 있다고 했다. 그녀, 말했다. “서울에서 마을만들기가 지금의 제겐 혁명 같아요. 다시 힘을 내보려고요.”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당신의 서울은 안녕하신가? 천만 시민의 서울이니, 천만 빛깔의 서울, 천만 서울의 이야기가 있겠다. 그럼에도 서울은 천만의 총합이다. 공간이 사람을 닮듯, 도시도 사람을 닮는다.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도시는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닮는다. 서울은 욕심쟁이 도시가 됐다. 욕심쟁이보다 소박하고 서로를 지켜주고 배제하지 않는 좋은 도시가 되면 좋겠다.”
건축가 오영욱(오기사)에게 서울이 좋은지, 싫은지 묻는다면, 이런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그는 같은 제목으로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오영욱 글ㆍ그림ㆍ사진|페이퍼스토리 펴냄)를 펴냈다. 독자들과 만났다. 지난 5월7일, 서울 홍대 부근의 상상마당, 향긋한 북살롱. 오기사의 건축학개론(혹은 서울학개론)이 펼쳐졌다. 첫사랑을 떠올리는 애틋한 기억은 없지만, 오기사의 서울사랑이 듬뿍 묻어난 자리로 안내한다.
“도시는 흔적과 장소, 집합, 기호, 상징, 미학, 기억 그리고 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모습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의 지난 추억을 닮았다.”(p.4) | ||
오기사가 말하는 건축과 도시
오기사가 건축과 도시에 대해 내린 정의는, 시간을 담는 그릇이다. 그것들, 한 순간에 짓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하나씩 생긴다. 그는 건축과 도시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지도를 택한다. 그는 지도가 여행지 정보뿐 아니라 건축과 도시의 흔적이 있다고 여긴다. 지도를 그래서 ‘시간의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듯 도시 역시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렇지만 시각적인 경험 역시 중요한 부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각기 다른 시간성과 양식을 지닌 여러 건물들이 모여 있는 도시적 풍경을 의도적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p.95) | ||
오기사, 바르셀로나의 파빌리온을 보여준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볼 만한 건축물을 추천하라면, 그가 반드시 추천하는 건물. 과도한 장식으로 둘러싸인 옛 건축물과 달리, 파빌리온은 철기둥만으로 건물을 세웠다. 유리창, 벽 등은 건물을 지지하는 용도가 아니다. 중세 건물에선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었다. 벽은, 건물을 지지하는 용도였으나, 근대로 오면서 그런 것들이 건물을 지지하지 않고 다양한 의미를 가졌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근대 건축의 거장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만국박람회를 위한 독일전시관이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새로운 시대의 주거와 공간에 대한 건축적 대다비었다. 근대 이전의 육중하고 대치적이며 외부와 내부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된 건축의 시대는 갔다고 선언했다.”(p.98) | ||
이어서 종묘. 오기사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물이다. 긴 게 섹시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는 길다는 것에 명확한 이유가 있을 때 더 좋다고 생각한다. 종묘는 왕의 위패를 모시던 공간으로, 조선 건국 초기엔 짧았다. 그러다 모셔야 할 자리(왕)가 많아지면서 계속 길어졌다. 그는 종묘의 길이가 서울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다고 말한다.
“나는 긴 건물이 좋다. 종묘 정전의 길이는 총 101미터라고 하는데 그 수치가 주는 느낌보다 실제의 경험은 더욱 장대하다. 무엇보다도 그 길이가 내재되어 있는 시간의 흔적은 어떤 현대 구축물도 따라올 수 없는 묵직한 경지다.”(p.235) | ||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이 직접 설계했다. 유학자는 검소해야 한다는 철학으로 세 칸짜리로 만들었다. 오기사, 이런 이야기가 담긴 건축물이 좋다. 그런 면에서 에펠탑도 예쁘다. 20세기 초, 건축사에서 변혁의 시기, 돌과 벽돌을 넘어 콘크리트와 철골로 건물을 짓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어떻게 새로운 시대를 구현할 것인가, 하는 고민의 흔적이 담겨 있다.
“건축가들은 에펠탑 이후 감성과 의미, 변주 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다. 콘크리트로 정말 자유롭게 만들어보자. 그 중 하나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이다. 뉴욕 JFK공항의 TWA건물은 1960년대의 이례적인 공간이다. 비행기를 타러갈 때 설렘이 있고, 콘크리트로 흥분과 감성을 살릴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만들었다.”
서울이 좋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오기사는 거듭 고백한다. 나는 서울이 좋다. 그리고 그는 지도를 본다. 서울에서 재밌는 요소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그는 소도시 여행도 많이 갔는데, 재밌는 비밀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간다.
“론리 플래닛의 각 나라 편을 사서 되게 작은 도시의 지도 형상을 보고 거기로 가곤 했다. 책에 쓴 내용인데, 서울 지도를 보면 신기한 것이 있다. 광화문 사거리, 서울시청까지 일본 사람들이 뚫었다. 서울은 격자 도시다. 한성으로 옮길 때부터 계획 도시였고, 일제 강점기에 도시를 연장해 길을 만들었다. 인사동 길은 대각선인데, 그게 왜 그럴까 생각을 하면서 옛 지도를 찾았다. 서울지도엔 어떤 비밀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가 발견한 것. 서울의 구도심에는 끊긴 곳이 많다. 왜 그럴까, 생각했다. 그가 내린 결론. 조선 시대는 신분제 사회였다. 양반들은 자기 집 앞에 천한 것들이 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기만 오려고 외길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서울에서 막힌 길을 보면, 아흔 아홉 칸 양반집이었겠거니 상상한다. 도시를 더욱 풍요롭게 느낄 수 있는 방법.
“나는 강남에도 관심이 많다. 격자형 도시에서 강남 쪽은 왜 이리 휘었을까. 책에는 60~70년대 서울을 개발하던 시대, 어떤 권력과 뒷돈을 위해 강남이 만들어졌는지 쓰여 있다. 당시 건축가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사람이 계획해서 만들면 대개 직선인데, 돌아가는 길이 있는 건 이유가 있다. 이유 중 하나가 기찻길이다. 홍대 주차장 길이 휜 것은 기찻길의 흔적 때문이다. 그 기찻길은 당인리 발전소에 석탄을 나르기 위해서였다.”
오기사, 다섯 권의 책을 냈다. 그 중 한 번도 자신이 쓴 제목이 채택되지 못했다. 이번 책도 그가 처음 내놓은 제목은 ‘서울이야기’였다. 편집자의 태클이 들어왔다. 그래서야 어떻게 팔리겠어요? 다음으로 내놓은 회심의 의견은 ‘양배추 도시’. 편집자 표정이 굳었다. 결국 제목 결정권을 넘겼다. 지금의 제목이 나왔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개인적인 감성으로 자세히 들여다본 서울은 마치 양배추를 반으로 자른 절단면과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균질한 겹들로 이루어진 양파와는 다른, 서로 다르게 생긴 것들이 기묘하게 얽힌 상태로 단단하고 맛있는 형체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p.293) | ||
그리곤 오기사, 책에 넣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그림과 사진을 보여준다. 2003년 청계천 고가가 남아있던 시절의 것. 그리고선 차에 대한 사진과 함께 이야기를 꺼냈다.
“유럽에 살 때 작은 차들이 무척 좋았다. 서울도 그런 작은 차들이 있어야 잘 굴러갈 수 있는 도시라고 봤다. 그래서 조그만 스마트카를 탄다. 일반적인 사이즈의 절반인데, 서울이 여유로운 공간이 되려면 차들이 작아야 한다. 그래야 그 공간을 사람들이 차지할 수 있다.”
지금은 허물어진 종로 피맛골 모습도 나온다. 한옥을 허물 때 찍은 사진들. 그는 서울이 흔적을 지워버린 도시라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 한옥이 허물어질 때, 마음이 뭉클했다. 세종대왕상을 보여주면서는, 북한 같아서 무섭단다. 그리곤 덧붙인다. 왜 저런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하긴, 나도 위정자들의 그 취향이, 둔탁한 미적 감수성이 참 불만이다.
여러 테라스도 보여준다. “테라스라는 공간이 도시에서 꽤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테라스를 그냥 못 놔둔다. 새시를 설치해서 내부 공간을 넓히고 그런다. 발코니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 도시에 보다 많은 테라스와 옥상이 적극적으로 생겨나 건물 내부의 사람들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군가 서울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옥상의 도시’나 ‘테라스의 도시’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점점 삭막해져가는 도시에서 건물 내부와 외부의 경계인 옥상이나 테라스는 소통 가능한 도시를 위한 공간적 해결책일 수 있는 것이다.”(p.67) | ||
오기사가 서울을 잘 보기 위해 택하는 곳은 남산이다. 격자도시 서울에서 길 하나를 삐딱하게 해 놓은 지점이 명동의 신세계백화점 부근이다. 그래서 남산에서 서울 야경을 보면, 도시가 얽혀 있는데, 그게 입체적으로 보여서 좋단다. 허나, 그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은 결국엔 사람. 오기사가 서울과 도시에서 가장 주목하는 것도 사람(의 이야기)이다.
“자기네들끼리 아는 이야기를 만들고, 지지고 볶고 그런 게 우리 도시를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건축디자인을 하지만, 어떤 건축디자인을 하고 싶은지 물으면 답하기 애매하다. 세상에 많은 사람이 사는 것처럼, 다양한 건축이 존재할 수 있고, 어떤 게 옳다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지금 지어지고 있는 건물이, 22세기 사람들에게 21세기 초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구나 하는 흔적이 됐으면 좋겠다. 즉, 시간의 흔적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울을 알아야 할 필요는 당연히 없다. 단지 각자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나 마을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만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생각보다는 즐거운 곳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p.6) | ||
오기사에게 묻고, 오기사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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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선생님은 건축가를 문화를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오기사가 생각하는 건축과 건축가는 어떤가? 청소년들이 건축가와 건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알았으면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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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강의도 하는데, 첫 수업에서 강조하는 건, 건축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생각을 하고 정리해서 나를 설득시키면, 그것이 정답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좋은 건축을 정의하는 말은 많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수천만 명이 있으면 수천만 개의 건축이 있다고 생각한다. 수천만 명의 인생은 각각 의미가 있다. 이중에서 괜찮게 사네, 닮고 싶네, 하는 것들이 있을 텐데, 그런 건축들이 좋은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웃긴 건축물을 해보고 싶다. 모든 사람들이 보고 와~하고 웃는. 야한 건축물? 긴 건축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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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살롱을 갖고 싶은 꿈이 있다. 장소의 중요성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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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는 북쪽을 바라보고 있으면 좋다. 땅의 북쪽에 길이 있는 땅이 좋다. 공간에 어떤 사람들이 모이길 원하느냐에 따라 다를 텐데. 홍대처럼 어중이떠중이 올 공간이 아니라면, 그 장소를 어떻게 꾸밀지는 몰라도, 개인의 기억이 있거나 그러면 좋다. 그러면 번화가라고 하더라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단, 길이 너무 좁으면 공사하기에 힘들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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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여서 즐거운 점이 있다면? 가우디가 서울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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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무실을 낸지 4년이 됐다. 작은 집을 지어도 최소 1년 이상은 지나간다. 고민하는데 몇 달 이상 가고, 시공을 하면 큰돈이 드는데,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않고 긴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인테리어는 많이 했는데, 건물은 4년 동안 4개 지었다. 지금 짓고 있는 것이 3개, 공사 들어갈 것이 몇 개 있다. 현란한 건축물은 아직 못했다. 내 취향도 아니고.
건축가의 즐거움은 이런 것이다. 어떤 건물이 완성됐다. 다른 것 때문에 바쁘게 살다가 어느 날 그곳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먹는다. 구상하고 시공할 때 지지고 볶으면서 지었던 공간이 누군가에 의해 정리돼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있음을 경험할 때, 그럴 때가 즐겁다.
내 친구 중에서도, 미친 건축과 학생이 몇 명 있었다. 치과의사로 전향한 친구도 있고. 가우디가 살던 그 시대, 가우디만이 천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현란한 형태를 좋아하는 트렌드가 있어서 그런 형태를 추구하는 많은 건축가 중에 가우디가 선택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 사회, 그 세계에서도 누군가 승리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가우디 급이 아니어서 가우디가 서울에 태어났으면 어땠을지는 모르겠다. (웃음) -
서울의 한 곳을 다시 설계할 수 있다면, 어디를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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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할 곳이 없다. (웃음) 다시 지어질 것이 아니라, 책에 보면 외국인 여행객들이나 외국인 친구에게 서울을 소개하는 부분이 있는데, 허름함과 음습함을 보여주고 싶다. 지금 사대문 안에 재개발하는 것들, 조선시대부터 생긴 골목, 장소들이 그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재개발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것을 어떻게 기억을 남길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부서지고 있는 게 가장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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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이 부럽다. 자유로운 삶이 불안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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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안 자유롭다. 한때 자유로웠지만. 여기 있는 분들 가운데, 불안하지 않은 분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루하루 생존하기 힘든 분들이 겪는 고통이야 감히 말할 수 없지만, 재벌 회장이나 월세를 당장 걱정해야 할 사람이 겪는 고통은 비슷할 것 같다. 나는 불안할 때 더 논다. 그러면 불안을 잊는다. 사람들이 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잖나. 며칠 전, 월말을 간신히 넘겼는데, 그런 월말이 가끔 있다. 돈 스트레스를 받을 때, 뭣이든 하나 산다. 그러면서 잊는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 더 좋은 일이 생기는 것처럼, 뭔가를 사면 일이 들어오더라. (웃음) 가장 최근에 산 건, 며칠 전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새 휴대폰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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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가장 편안한 곳은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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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옥탑방. 스스로 감동하는 혹은 좋아할 수 있는 건축(물)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게 집만 한 곳이 없다고 본다. 다른 건축가들에게 어떻게 하면 멋있고 쿨 하게 보일까, 고민도 하지만 내 자신이 편안하게 생각하는 공간이자 자유가 있는 곳이 집이다. 집보다 더 편한 곳이 호텔이다. 청소를 안 하잖나. (웃음) 최근 430만원을 들여서 옥탑방을 고쳤다. 나름 공간을 만드는 사람인데, 내 스타일을 찾고 싶어서, 옥탑방에 마당이 있다. 벽과 천장과 바닥의 경계 없이 몰딩 없이 새하얗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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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연애를 비교했을 때 공통점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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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의 순간이 괴롭고 10%의 환희가 있다. (일동 우와~) 연애의 가장 큰 속성 중에 예측할 수 없다는 것도 있는데, 건축도 정말 예측할 수가 없다. 어제까지 열심히 공구리 치던 분이 부도가 나서 사라진다거나, 그렇게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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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다니며 글 쓰는 것과 건축을 하는 것 중에 뭐가 더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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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다니며 글 쓰는 게 더 재밌는 것 같다. 그런 게 일생에서 한 번이라도 있으면 행복할 것 같은데, 나는 운 좋게도 두 번을 했다.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 살았던 적이 있었지, 하면서 되돌릴 수 있다는 게, 참 좋은 시간의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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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그림을 사랑한다고 처음 느꼈을 때는 언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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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드래곤 볼』이 나왔다. 그걸 보면서 만화의 신기원이 열렸다. 서사가 탄탄하고 이전의 만화와 달랐다. 건축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비가 오면 개미집 만들기를 좋아했다. 고3때 시점에서 보면 시험을 잘 봤다. 건축가를 택하기로 했다. 건축, 도시, 미학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다 싫었다. 건축학과에 갔고, 삶의 신조가 한 번 선택한 것은 후회하지 말자, 책임을 지자, 여서 건축을 재밌고, 신나게 해야 했고, 잘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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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곳을 다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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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서 2년 반을 살았다. 바르셀로나가 좋아서 살았던 게 아니고, 살아서 좋아한 거다. 자기가 애착을 갖고 오래 머물면서 애정도 머물 때 더 좋아진다. 좋아하는 곳은 오래 있었던 순서다. 가장 오래 있었던 곳, 서울이 가장 좋고, 그 다음 바르셀로나. 그런 식으로 장소의 절대적인 매력도 중요하지만 그 장소에서 알아갔던 매력이 나를 사로잡은 것 같다.
-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오영욱 저 | 페이퍼스토리
이 책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섬세한 지문을 오기사 특유의 감성과 시선을 담아 8가지 키워드로 읽어 낸다. 자신의 건축 설계 사무실이 있는 신사동 가로수 길과 시끌벅적한 종로 거리에서부터 청와대, 국회의사당, 서울 광장, 한강의 다리들, 고궁과 미술관, 일상적인 공간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 사는 이들의 터전을 '건축'과 '도시'라는 프레임 속에서 새롭게 그려냈다. 서울에 관한 다소 불편한 진실에서부터…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jehovah511
2012.07.20
이 책을 통해서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넓어지고 싶네요!
forsooyoon
2012.07.19
샨티샨티
201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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