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상이 스스로 자처하며 10회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당시, (그러니까 그때는, ‘방귀남’으로 지금처럼 인기몰이할 때도 아니었음에도, 10회는 의미 있는 회라며 출연을 자처하였다.) 아내 홍은희는 그와 살면서, 이런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끈기 있을 수 있을까?” 노력하기로는 챔피언, 노력왕. 그게 유준상의 별명이다.
2012년. 유준상에게는 결실의 해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시청률 고공 행진에 돌입하면서, 배우 유준상의 인기와 관심도 높아졌다. 밖에서는 하얀 가운을 날리며 지적인 포스를 내뿜는 그 의사 남편 방귀남은 시댁에서도 아내 편을 들어줄 만큼, 아내밖에 모르는 다정한 남편이다.
그뿐이랴. 그가 출연한 <다른 나라에서>도 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돌아왔고, 그의 책 『행복의 발명』이 출간되었으며, 곧 막을 올릴 뮤지컬 <잭더리퍼>도 관심을 얻고 있다. 이 부지런한 남자의 이력을 살펴보면, 데뷔 이후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 끊임없이 작품을 해왔다.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여우와 솜사탕> 때처럼 인기가 쏟아지든 그렇지 않든, 한결같이 자기 자리에서 ‘버텨왔다’.
서대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준상은 ‘방귀남’의 댄디함과 천진함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빨을 훤히 드러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그는 드라마 속 ‘방귀남’이었다. 『행복의 발명』에서 보이는 특유의 엉뚱함은 배우 유준상뿐 아니라 인간 유준상의 매력을 한껏 느끼게 했다. ‘창조적인 꾸준함’으로 ‘행복하게 버티는’ 배우. 그가 배우로 살면서 발명한 행복 이야기, 조금 엉뚱해서 좀 더 행복하게 사는 그의 삶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응원과 위로를 주는 20년 어치 연기 노트
“대학교 1학년 시절. ‘기초 연기’ 수업 시간이 생각납니다. 안민수 교수님의 첫 수업 시간. 참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제 귀에 쏘옥 들어온 말이 있었습니다. “배우는 일지를 써야 돼.” 그날의 몸 상태를 적어보고, 어떨 땐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교수님의 가르침대로 매년 한 권의 일기를 써 내려갔습니다.” (『행복의 발명』 p.4) | ||
20년도 더 이전의 얘기다. (그러니까 ‘노력하기로는 세계챔피언, 노력왕’) 유준상은 그날로부터 20여 권의 일기장을 남겼다. 그 책을 묶은 게 『행복의 발명』이다. “오늘은 다리 스트레칭을 했는데 왜 내 다리는 안 찢어질까? 친구들은 다 잘 찢던데.” 그런 내용부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걸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아이나 가까운 사람들. 그러니까 이 책도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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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노트’에 꽤 만은 기록이 축적된 셈인데요. 그 기록들은 준상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들여다보면 힘도 되고 위로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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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쓰면서 다시 보게 되거든요. 예전에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나. 지금은 왜 여기까지 밖에 생각을 못하지? 그때 공연을 할 땐 이런 고민을 했는데, 지금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네? 예전하고 지금 달라진 게 뭔지 돌아보게 하고, 반성하게 해요. 여기 보면 ‘힘내 준상아!’란 얘기도 많이 나오잖아요. 위로가 점점 없어지는 세상에서, 딴 사람한테 위로해달라고 하기보다는 나 스스로 위로하고 기쁨을 얻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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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동안의 많은 시간을 정리한 건데요. 1년 전의 나, 5년 전의 내 모습을 다시 만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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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일부러 연도를 안 적었어요. 독자들이 어느 한 대목에서 자기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보거든요. 근데 그걸 몇 년도의 일이라고 적어버리면, ‘이건 유준상의 십 년전 여름의 기억이지. 나랑은 상관없을 거야.’라고 생각하실까 봐요. 그냥 제 일기를 읽다 어떤 비슷한 상황이 나왔을 때, ‘나는 이때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런 건 놓치고 갔구나.’ 그렇게 봐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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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칸에 다녀오셨잖아요. 칸에서는 어떤 기록을 남겨 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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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노트를 꺼내 보여주며) “제가 그린 거예요. 제목은 ‘내가 달을 그리면 여긴 달빛이 보인다.’ 낮에 그린 항구의 풍경인데요. 제가 그 위에 달을 하나 그려봤어요. 이러면 낮에 그린 그림이지만 밤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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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 그림이 많네요. 술 많이 드셨나 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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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전 그림만 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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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그림 그리고 있으면 주변에서 뭐라고 얘기 안 하나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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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원래 그러려니 하기 때문에 특별히…. 저 아는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둬요. 하하하.”
배우 유준상이 행복을 ‘발명’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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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행복의 발명이에요. 행운이 있던 없든 행복할 수 있는 힘에 관한 얘기인데요. 지금은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십니다만, 이전에도 행복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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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발명’이라는 걸 생각해보시면 좋겠어요. 사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시간이 훨씬 더 많잖아요. 365일 행복하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좀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까요? 하늘을 봤는데, ‘우와, 예쁘다!’ 그때 행복한 순간이잖아요.
바람 불 때 ‘어우, 시원해’, 선풍기 바람 쐬면서 ‘아우 살 것 같다’ 그게 행복한 순간이거든요. 누군가 ‘오늘 하루 행복한 순간이 있었나요?’라고 물으면 거창한 걸 생각하기 때문에 없었다고 말해요. 근데 따지고 보면 ‘맞아. 바람 한번 불어서 ‘아, 시원해’ 했던 순간 행복했었지’ 떠올릴 수 있으면 행복한 거죠. 이 노트는 그런 순간을 모은 거에요.
발명된 것들을 다시 한번 만들어보라고 하면 만들기 쉽지 않아요. 전화기가 발명되어 있는데, 전화기를 다시 만들기 쉽지 않잖아요. 만약, 어떤 과자를 한입 베어 물어 달을 만들었어요. 아들한테 ‘이거 과자 달이다’하고 주면, 아이는 ‘엄마가 만든 과자 달은 어디 있어요? 아빠, 과자 달 만들어주세요.” 좋아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발명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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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씨 연기를 보면, 어떤 역할을 하든 진짜 저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 나올 때는 진짜 허세 있는 겁쟁이일 것 같고, ‘방귀남’ 연기하실 때는 집에서 잘할 것 같아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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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닮아있나 아닌가, 그런 생각은 별로 안 해요. 작품에 임할 때는 그냥 하는 거죠. 쓰여 있는 대로, 연출자가 시키는 대로. 으하하하. 그 순간에 상대방이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제 연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상대방이 정말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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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주변의 것들을 포용하려는 것 같아요. 평상시뿐만 아니라 연기에 관해서도. 연출가의 디렉션, 상대 배우와의 호흡을 늘 중요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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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배려는 저의 철칙이에요. 나 혼자 얻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거든요. 뭐든 게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하는 거고. 연기할 때도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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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서 사람을 배려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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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저만 보이게 하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거든요. 더 크게 몸짓을 하거나 상대방 상관없이 혼자 연기하면 돼요. 그러면 작품이 안 보이거든요. 정말 좋은 작품은 배우보다도 작품이 보여요. 거기에 자연스럽게 배우가 얹혀지는 게 좋다고 보거든요. 그러려면 제가 상대방을 서포트하는 게 중요해요. 상대가 안 보이면 저도 안 보여요. 이렇게 생각하면 ‘저 사람이 잘 할 수 있도록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될까?’ 생각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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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들하고 있을 때 가장 시너지가 나는 사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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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특히 후배들한테 그런 얘기 자주 해요. 그런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지구에서 달로, 달에서 다섯 바퀴 반, 아빠 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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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진지하다. 엉뚱해서 지루하지 않다.’고 윤여정 씨가 추천사를 써주셨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호기심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소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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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은 항상 많았어요. 예전에 어른들이 항상 한우물 파라고 했잖아요. 그 얘기 들을 때마다 고민이 많았어요.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하고 연기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요. 그래서 표를 그려봤어요. 한우물을 파고 사는 삶과 이것저것 다 하고 사는 삶을요. 그랬더니 마지막 지점에서 두 삶이 만나더라고요! 굳이 한우물 파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면, 직선이 아니라 오래 걸릴 뿐이지 결국 그 우물에 닿게 된다는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제가 하는 일에 확신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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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어렸을 때 하고 싶은 일을 지금 다 하고 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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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꿈이 하나도 없었어요.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건 20살 이후에요. 청소년기 땐 그저 빨리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했죠. 힘들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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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정말 말 안 듣는 말썽꾸러기라고 들었어요. 사고도 많이 치고요. 그런데 어떻게 지금처럼 건강한 멘탈을 갖게 되었나요?(웃음) 말썽 피던 청소년기와 지금, 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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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썽을 많이 피웠기 때문에, 부모님께 한 번이라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어요. 가출만은 하지 말자고 다짐을 하면서 학교에 다녔고, 이제 뭔가 해 드릴 수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뭔가 해주고 싶었는데, 할 수 없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 마음을 안고 살았던 게 가장 큰 변화였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그림을 그렸어요. 지구에서 달로 가고, 달에서 다섯 바퀴 반 돌고, 아빠 별을 찾아서 가는 그림을 그린 거에요”
그게 어찌 보면 제 창작의 시작이었어요. 아버지를 찾고 싶고,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그러다 보니 엄마한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마음을 갖고 살다가 어느 순간, 계속 소년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년으로 남자. 어른이 되자. 이것을 반복하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여행을 다닌 것 같아요. 그렇게 40대 중반이 된 거죠. 오랜 시간이 축적되어 지금의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
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막상 어른이 됐을 때는 소년으로 살고자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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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배에 요런 생각을 하면, 좋겠다. 재미있겠다 싶었죠. 다들 그렇게 하고 싶을 텐데 못할 수도 있으니까 난 해봐야지! 생각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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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저씨스러움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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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하하하.”
배우, 철저하게 반복된 일상을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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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에게 마인드 컨트롤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마음을 잘 잡고 있어도, 옆에서 띄우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고. 그래서 화려해 보이기도 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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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반복된 일상을 살아가잖아요. 제 생각엔 배우만큼 반복된 삶도 없겠다 싶어요. 사람들이 보기에는 되게 화려하고, 늘 새로운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이면을 잘 보면, 배우도 역시 이게 직업이란 말이죠. 내가 관객을 계속 만나려면 저는 계속 소리 훈련, 노래 연습을 해야 해요. 정확한 딕션을 위해서 대사를 외우고, 인물과 관련된 것을 찾아보고.
계속 쳇바퀴 도는 일인 거죠. 그러면서 감각은 깨어 있어야 하고, 뒤처지지 않아야 하고… 이것만큼 철저한 반복으로 하는 일이 없구나 싶어요. 어떤 직업이든 마찬가지일 거예요. 다만, 이 반복 속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지혜롭게 해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는 거죠.” -
책에도 그런 대목이 있죠. 반복이 여유를 만들어내고, 여유가 힘을 준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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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복이 없으면 절대로 발전해 나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 반복만큼 귀찮고 따분한 게 없단 말이죠. 하지만 매일 똑같은 곡을 연습하는 피아니스트가 있기 때문에, 어느 날 한 번의 연주가 그렇게 돋보이는 거거든요. 우리는 돋보이는 것만 보지, 그걸 하기 위해서 그 피아니스트가 수천 번, 수만 번 연습한 과정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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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따분하고 귀찮은 반복, 어떻게 극복해나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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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좀 재미있게 해보려고, 이런 글도 쓰고, 노래도 불러보고, 별짓을 다하는 거죠. 스스로.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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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대세남이니 국민남편이니, 초등학생도 오빠라고 쫓아 다닌다느니. 많은 관심을 받고 계신 데요. 이럴 땐 스스로 좀 더 경계하게 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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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이 빨갛잖아요. 관객이 차야 그 빨간 객석이 보이지 않는데, 어느 날에는 관객이 세 명쯤 앉아요. “어? 오늘은 붉은 악마 응원단이 오셨네?” 이런 거죠. 그렇게 응원단 앞에서 공연을 해보고, 2,000명 관객이 기립박수 쳐주는 공연도 해봤어요. 꽉 찬 관객들이 기립박수 쳐줄 때, 그것만큼 설레고 좋을 때가 없죠. 공연이 끝나면 항상 스스로 결산을 해봐요. 내일 또 저렇게 기립박수가 나오라는 법은 없어. 그리고 기립박수가 안 나왔다고 해서, 그 공연이 절대로 좋지 않은 공연이라고도 할 수 없어.
그런 걸 기록하는 거예요. 거기에 흔들리지 말자.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이렇게 사랑받는 거 정말 행복하죠. 이전에도 받아본 사랑이지만 지금 사랑은 더없이 소중한 거죠. 와, 내가 마흔 중반이 넘어서도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구나. 기적적인 일이지만, 너무 행복하다. 하지만 또 내가 반복적인 일상을 살지 않으면, 이건 이 순간뿐이라는 생각을 예전부터 다짐해왔어요. 다시 보는 거죠. ‘너 항상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 좀 인기 있다고 왜 이래? 흐트러진 거야? 지친 거니?(웃음)’ 그리고 계속 반복을 하는 거죠.” -
지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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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지치려고 하는데 괜찮습니다.(웃음) 이것도 즐기는 거죠.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기록되고 남잖아요. 나중에 인터뷰 보면, 내가 나중에 이런 얘길 했었고, 이런 생각을 했네? 근데 상태는 많이 안 좋아 보이네?(웃음)”
“창조적으로 즐겁게, 버티기. 좀 더 버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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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2007년을 목표로 삼은 꿈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건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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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였어요. 막연하게 노트에다가 앞으로 난 어떤 사람이 될까? 적어봤는데, 20년 뒤네 나는 예술 학교를 세워야지.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어요. 안되더라고요. 하하하. 그땐 그냥 단어에 꽂힌 거죠. 아트 스쿨! 오, 드림 컴퍼니! 그때 만든 ‘꿈의 동반’이라는 말이 팬카페 이름이 되었어요. 팬들이 팬 카페를 만들 건데 어떤 이름으로 할까요? 물으시기에 그 이름을 드렸어요.
결국, 학교는커녕 ‘내 앞가림이나 잘해야지’로 꿈이 바뀌었다가 지금은 ‘이렇게 버티기라도 해야지.’ 점점 장황한 게 줄어들고 내 영역에서 할 수 있는 꿈을 꾸게 되더라고요. 50살 때는 오케스트라 지휘를 한번 해봐야지. 이런 식으로요.” -
지금은 어떤 꿈을 갖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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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버티자. 으하하하. 70살, 80살까지도 버텨보자. 사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이렇게 잘될 줄 몰랐잖아요. 저는 항상 버티기가 목표였기 때문에, 버틴 것 중에 너무 성과가 좋아서 깜짝 놀랄 지경이죠. 언젠가 하나 얻어걸리겠지 생각했는데 이번에 걸린 거고요. 이렇게 버티다 보면 또 이런 날이 올 수도 있겠죠. 아무도 모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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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뭐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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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아요. 늘 놀라요. 어쩜 이렇게 똑같을 수가. 하하하.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처음 느꼈던 마음을 늘 유지하려고 정말 노력하고 있어요. 연기를 처음 접하고 설레고, 부끄럽고 어떻게 하면 잘해볼까 했던 그 시절을 항상 생각하는 거죠. 내가 눈에 불이 나도록 열심히 하고, 열정적이었고, 3시 4시까지 연습해도 끄떡없었던 그 시절을 계속 되뇌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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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때보다 많이 좋아졌지. 이런 생각은 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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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졌지 하는 순간, 훅 갑니다. 아우, 나 이제 연기 잘한다. 싶은 순간 끝이에요. 어느 책에나 나오는 교훈적인 얘기 중 하나죠. 버티려면 만족하면 안 됩니다. 순간순간에만 만족하고 격려해주는 거죠. 잘했어. 그런데 이제 또 버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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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축적일까요? 끊임없는 마인드 컨트롤 덕분일까요? 글에서도 느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단단한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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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사람들하고 잘 지내고, 즐기면서 하면 좋겠죠.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저도 매번 그렇게는 정말 잘 안 돼요. 내가 싫어도 해야 하는 게 있어요. 그런 걸 다 겪어 봤기 때문에,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도 알고, 상대방 입장도 돼볼 수 있는 거죠. 별의별 일을 다 겪어봐서, 전 잘됐을 때와 잘 안됐을 시절의 경험치를 몸에 갖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때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사람하고는 어떻게 작업해야 하는지 맞출 수 있는 거죠.”
“책 읽기, 책을 무겁지 않게 생각하는 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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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되는 상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유준상 씨는 어떤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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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을 아예 안 해요. 아무 생각 안 하고. 되도록 할 수 있으면 다 하자. 안되면? 야야, 다 접어. 여행 갔다 올게. 하하하.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그게 제일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단순하게 사는 게 제 목표에요. 연기도 보는 사람이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단순하고 명확하게 하려고 하고요. 그런 점에서는 아이들한테 많이 배워요. 정확하고, 단순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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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두 가지 고민이 있는데 하나는 창조적인 고민,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했어요. 요즘에는 어떤 고민 하세요? 어떻게 버틸까, 하는 근본적인 고민 말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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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 다 중요한 고민이에요. 저는 사서 고민하는 스타일이긴 한데, 고민이 나쁘다고 보지 않아요. 저는 생각들을 다 긍정적으로 바꿔버리니까 괜찮고요. 최근에 고민이라면, 내가 만든 이 노래를 어떻게 하면 앨범으로 만들 수 있을까? 으하하하. 요거 해서 좀 콘서트 해야 하는데? 이런 거죠.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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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책 읽기는 어떻게 하세요? Yes24 독자들에게 좋은 책, 추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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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죠. 그런데 얘기해보라고 하면 잘 못해요. 가물가물해요. 무조건 좋은 책을 사는 게 아니라, 무심코 넘긴 한 페이지의 대목이 좋거나, 표지가 예쁘거나 뭔가 하나 끌리는 데가 있어서 책을 산다고 봐요. 그리고 그런 끌리는 한 대목이 남는 거죠. 저는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보면, 책 내용보다 ‘나는 과연 불멸할 수 있을까?’ 읽으면서 했던 생각이 더 많이 남아요. 그래서 제 책을 보실 때, 여백에 메모를 많이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나중에 내가 그 글을 어디다 썼지? 하고 책을 다시 들춰볼 수도 있고요. 그런 식으로 책의 의미는 만들어나가는 거라고 봐요.
책을 무겁지 않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이 책의 143쪽 두 번째 문장을 외워두고서. 요즈음 이 책을 읽었다고, 저는 그 143페이지 둘째 줄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라고 얘기해보는 거예요. 다 읽은 사람보다 구체적일 수 있죠. 그런 마음으로 책 읽기를 시작하시면 좋겠어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또 많은 글을 남겨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글 찾아보는 게 정말 재미있거든요. 다음번엔 더 즐거운 일로 뵙겠습니다.”
네. 창조적인 버티기가 앞으로도 잘 진행되길 바랍니다.(웃음)
- 행복의 발명 유준상 저 | 열림원
영화, 뮤지컬, 드라마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폭넓게 활동 중인 유준상은 연예계에서도 다재다능한 것으로 유명하다. 연기와 노래 이외에도 작사, 작곡, 피아노?기타 연주, 재즈 댄스 등에 능하다. 그의 일기에서도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해둔 노랫말과 시(詩) 등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눈여겨볼 것은 펜 하나로 스케치하듯 그려낸 그의 그림들이다. 유준상은 하나의 캐릭터로 삼아도 좋을 만한 아기자기한 그림들을 비롯해 찰나의 순간을 개성 있는 감각으로 캐치해낸 수많은 그림들을 그렸다…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찻잎미경
2018.02.26
집짓는사람
2013.01.06
초코
201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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