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살해된 아이, 남은 4명의 친구들의 ‘속죄’ -『왕복서간』
십 년 만에 결혼식에 만난 고교 동창생이 주고받는 편지「십 년 뒤의 졸업문집」, 20여 년 전 가르친 여섯 학생들의 근황을 듣고 싶다는 퇴직선생과 한 제자의 편지「이십 년 뒤의 숙제」, 중학교 시절 만나 연인이 된 남녀의 연애편지「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 세 개의 중편으로 이루어진『왕복서간』은 모두 편지를 주고받으며 진행된다. 편지를 통해서 질문을 던지면 답하고, 다시 질문과 답이 반복되면서 진행되는 사건들.
201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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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을 읽는 일은, 늘 피곤했다. 각 장마다 다른 화자가 등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일관되게 달려가는 보통의 소설들과는 달리 미나토 가나에는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다른 이야기로 갈팡질팡한다. 그것이 매력이었다. 하나의 사건에는, 단지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사건에는 수많은 관련된 사람이 있고, 때로는 그들의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수도 있다. 때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미야베 미유키는 『이유』에서 다성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인터뷰 형식을 통해서, 그 사건에 얽힌, 혹은 바라보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미나토 가나에는 그런 형식을 아예 자신의 고유한 개성으로 만들어버렸다. 인터뷰가 아니라 각각의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데뷔작인 『고백』은 선생의 말로 시작한다.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아이도 포함된, 자신의 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말. 그리고 각 장마다 반장의 이야기, 살인자의 고백 등이 진행된다. 『이유』는 과거의 사건을 반추하며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고백』은 시간의 진행에 따라 화자가 바뀌면서 다층적으로 상황이 제시된다. 처음에는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슬퍼하다가, 다시 반장의 이야기를 듣고 가해자에게 연민도 갖게 된다. 그 모든 것들은 일종의 트릭이다. 미나토 가나에는 말, 대화, 이야기의 진행을 통해서 사건의 전체 모습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나간다. 어떻게 보면 형식을 통해서 이야기가 완결되는 것이다.
『속죄』는 초등학교 때 친구가 살해되고, 남은 4명의 친구들이 성장하며 ‘속죄’하는 과정을 그린다. 물론 말 그대로의 속죄는 아니다. 분명한 것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 때문에 그들의 미래가 아주 조금씩이라도 뒤틀렸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한 명씩, 한 명씩 자신의 ‘속죄를 고백하며 과거의 사건의 범인도 드러난다. 그러니까 미나토 가나에의 목적은 과거의 재구성이 아니라, 현재의 재구성이라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하나의 사건을 풀어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발전해 가는지를 들여다보는 것.
미나토 가나에의 신작 『왕복서간』도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메일과 메신저가 등장하면서 이제는 거의 쓰이지 않는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십 년 만에 결혼식에 만난 고교 동창생이 주고받는 편지 「십 년 뒤의 졸업문집」, 20여 년 전 가르친 여섯 학생들의 근황을 듣고 싶다는 퇴직선생과 한 제자의 편지 「이십 년 뒤의 숙제」, 중학교 시절 만나 연인이 된 남녀의 연애편지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 세 개의 중편으로 이루어진 『왕복서간』은 모두 편지를 주고받으며 진행된다. 편지를 통해서 질문을 던지면 답하고, 다시 질문과 답이 반복되면서 진행되는 사건들.
「십 년 뒤의 졸업문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 놀러왔다가 얼굴을 다치고 행방불명이 된 친구의 소식을 캐내는 이야기다. 누가 누구를 좋아했고, 어쩌면 그게 사고가 아니라 범죄일 수도 있고,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이고 등등. 미나코 가나에는 고백이나 대화 같은 형식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는 작가다. 라디오 작가의 이력 덕분인지, 오로지 ‘말’만으로 독자를 솔깃하게 하는 힘이 있다. 「십 년 뒤의 졸업문집」은 갖가지 에피소드와 트릭을 곁들이면서 ‘진상’을 궁금하게 한다. 다만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왕복서간』에서도 미나토 가나에의 필력은 대단하다. 어떻게 매번 이런 형식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까, 란 의문마저 들 정도다. 그런 의문은 『야행관람차』에서도 있었다. 미나토 가나에의 개성이 독특한 형식이긴 하지만, 이것을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왕복서간』은 그런 점에서 미나토 가나에의 형식적 실험이 다양한 방식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왕복서간』에서 미나토 가나에의 시선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작품들을 보면 미나토 가나에는 지나칠 정도로 비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중학생 정도의 청소년에 대해서도, 그들이 가진 무한대의 악의를 끝까지 파고들었다. 『속죄』에서도 ‘세상’의 모든 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비난한다. 『야행관람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인간의 세상은 그야말로 축생도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왕복서간』은 다르다. 「이십 년 뒤의 숙제」에서 그들이 공통으로 가진 과거는, 선생 부부와 여섯 명의 학생이 야유회를 갔을 때의 기억이다. 물놀이를 하다가 학생이 빠졌고, 구하러 들어간 선생의 남편만 죽었다. 이제는 어른이 된 그 때의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시각으로 그 사건을 보고 있었다. 누구는 선생을 여전히 존경하고, 누구는 관심 없다고도 말한다. 아예 도망치고 싶어 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화자를 통해서 미나토 가나에는 이렇게 말해준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현재를 살아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미래로 이어나가야 할까?
『속죄』의 아이들은 ‘속죄’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세상의 악과 조우하면서, 그 악을 응징하거나 혹은 자신이 저지르는 것으로 ‘속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왕복서간』의 주제는 이런 거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 현재를 살아가자. 그러나 과거를 잊지는 말자.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의 남녀는 과거의 사건에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편지를 나누면서 그들은 기억하지 못했던 것,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들을 직면한다. 하지만 그 과거가, 그들의 현재를 바꾸지는 못 한다. 오히려 그들은 과거를 정확하게 기억함으로써, 그들의 현재를 재규정한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과거를 통해서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미나토 가나에는 변화했다. 형식만이 아니라 세계관 자체가. 사실 『고백』 『속죄』의 세계관은 다소 위태로웠다. 비관적인 세계관은 좋지만, 미나토가 그려내는 ‘악인’의 형상이 어딘가 생기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것 같은, 어딘가 ‘이미지’만으로 만들어낸 것만 같은 세상의 악. 하지만 『왕복서간』에서 미나토 가나에는 과거의 죄를 응시하면서도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그건 분명히 긍정적인 현상이다. 미나토 가나에의 다음 작품들이 어떤 지평으로 나아갈지 기대된다. 형식 역시도.
미나토 가나에는 그런 형식을 아예 자신의 고유한 개성으로 만들어버렸다. 인터뷰가 아니라 각각의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데뷔작인 『고백』은 선생의 말로 시작한다.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아이도 포함된, 자신의 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말. 그리고 각 장마다 반장의 이야기, 살인자의 고백 등이 진행된다. 『이유』는 과거의 사건을 반추하며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고백』은 시간의 진행에 따라 화자가 바뀌면서 다층적으로 상황이 제시된다. 처음에는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슬퍼하다가, 다시 반장의 이야기를 듣고 가해자에게 연민도 갖게 된다. 그 모든 것들은 일종의 트릭이다. 미나토 가나에는 말, 대화, 이야기의 진행을 통해서 사건의 전체 모습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나간다. 어떻게 보면 형식을 통해서 이야기가 완결되는 것이다.
『속죄』는 초등학교 때 친구가 살해되고, 남은 4명의 친구들이 성장하며 ‘속죄’하는 과정을 그린다. 물론 말 그대로의 속죄는 아니다. 분명한 것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 때문에 그들의 미래가 아주 조금씩이라도 뒤틀렸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한 명씩, 한 명씩 자신의 ‘속죄를 고백하며 과거의 사건의 범인도 드러난다. 그러니까 미나토 가나에의 목적은 과거의 재구성이 아니라, 현재의 재구성이라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하나의 사건을 풀어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발전해 가는지를 들여다보는 것.
「십 년 뒤의 졸업문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 놀러왔다가 얼굴을 다치고 행방불명이 된 친구의 소식을 캐내는 이야기다. 누가 누구를 좋아했고, 어쩌면 그게 사고가 아니라 범죄일 수도 있고,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이고 등등. 미나코 가나에는 고백이나 대화 같은 형식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는 작가다. 라디오 작가의 이력 덕분인지, 오로지 ‘말’만으로 독자를 솔깃하게 하는 힘이 있다. 「십 년 뒤의 졸업문집」은 갖가지 에피소드와 트릭을 곁들이면서 ‘진상’을 궁금하게 한다. 다만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왕복서간』에서 미나토 가나에의 시선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작품들을 보면 미나토 가나에는 지나칠 정도로 비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중학생 정도의 청소년에 대해서도, 그들이 가진 무한대의 악의를 끝까지 파고들었다. 『속죄』에서도 ‘세상’의 모든 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비난한다. 『야행관람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인간의 세상은 그야말로 축생도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왕복서간』은 다르다. 「이십 년 뒤의 숙제」에서 그들이 공통으로 가진 과거는, 선생 부부와 여섯 명의 학생이 야유회를 갔을 때의 기억이다. 물놀이를 하다가 학생이 빠졌고, 구하러 들어간 선생의 남편만 죽었다. 이제는 어른이 된 그 때의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시각으로 그 사건을 보고 있었다. 누구는 선생을 여전히 존경하고, 누구는 관심 없다고도 말한다. 아예 도망치고 싶어 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화자를 통해서 미나토 가나에는 이렇게 말해준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현재를 살아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미래로 이어나가야 할까?
『속죄』의 아이들은 ‘속죄’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세상의 악과 조우하면서, 그 악을 응징하거나 혹은 자신이 저지르는 것으로 ‘속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왕복서간』의 주제는 이런 거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 현재를 살아가자. 그러나 과거를 잊지는 말자.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의 남녀는 과거의 사건에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편지를 나누면서 그들은 기억하지 못했던 것,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들을 직면한다. 하지만 그 과거가, 그들의 현재를 바꾸지는 못 한다. 오히려 그들은 과거를 정확하게 기억함으로써, 그들의 현재를 재규정한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과거를 통해서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미나토 가나에는 변화했다. 형식만이 아니라 세계관 자체가. 사실 『고백』 『속죄』의 세계관은 다소 위태로웠다. 비관적인 세계관은 좋지만, 미나토가 그려내는 ‘악인’의 형상이 어딘가 생기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것 같은, 어딘가 ‘이미지’만으로 만들어낸 것만 같은 세상의 악. 하지만 『왕복서간』에서 미나토 가나에는 과거의 죄를 응시하면서도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그건 분명히 긍정적인 현상이다. 미나토 가나에의 다음 작품들이 어떤 지평으로 나아갈지 기대된다. 형식 역시도.
- 왕복서간 미나토 가나에 저/김선영 역 | 비채
'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작가' '인간의 마음을 해부하는 예리한 관찰력의 소유자' 등 화려한 찬사와 함께 데뷔와 동시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일본 현대문학의 기수로 우뚝 선 미나토 가나에! 그가 초특급 베스트셀러 『고백』의 신드롬을 이어갈 『왕복서간』으로 돌아왔다. 제목 그대로 편지 형식으로만 전개되는 연작 미스터리로, 손글씨로 주고받는 편지가 서간문 고유의 독특한 호흡과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빚어내며 전작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설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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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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