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고 일하다가 피자 한 조각 먹어서 해고되었다고? -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의 저자인 변호사 토머스 게이건은 흑인 전기공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했는데, 단전 사태가 발생해 끼니도 거르고 응급 복구를 하다가 피자를 먹었다는 이유로 해고된 사건은 한국 사회와 닮았다. 피자 문제가 아니라 어이없이 해고되는, 노동자가 파리 목숨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201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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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사결과를 보니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사람이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비해 삶의 만족도가 낮다고 한다. 이유는 다른 사람의 삶이 나보다 나아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게 어디 마크 주커버그 때문일까, ‘가식월드’라고 사람들이 말하던 미니홈피나 블로그 역시 ‘방문자’를 의식하는 곳이기 때문에 역시 내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 내 삶에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은 순간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저 뉴스에서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함을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드러내는 페이지, 트위터든 블로그든 포털 뉴스에서 누군가의 성형이나 감량 뉴스든 타인의 사생활을 자주 클릭하는 사람으로 고쳐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타인의 삶을 자신의 것과 비교하는 방법이 간편하면 간편할수록 우월감이나 박탈감의 발생도 자연히 신속해진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굳이 참견 잘하는 동네 수다쟁이처럼 이 집 저 집 문 일일이 열고 캐고 다니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도 자꾸만 눈앞에 봐, 봐, 이거, 하고 들이미는 정도가 세서 그렇다. 잘 안 보는 텔레비전을 켰다가 한국의 패리스 힐튼이라며 소개되는 여성을 보니 저 집 드레스룸에서 먼지를 주워 와도 우리 집 한 달 월세보다 많이 나갈 것 같았다. 나는 내 드레스룸에 불만이 없다, 사실은 드레스룸 겸 응접실 겸 작업실 겸 침실이지만 뭐 그렇다 치고, 그러나 나도 모르게 기분이 찌질해지는 것이다. 아마 저 프로그램에 밤새우며 매달린 방송작가들도 몇을 빼고는 수익이 짠 비정규직일 것이다. 직업이 뭐건 다들 너무나 열심히 산다. 열심히 살고 싶은데 안 되는 사람들은 자신을 탓하는 것도 열심히 한다.
한국 사람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지만 능률은 가장 떨어지고 삶의 만족도는 가장 낮은 편이라고 한다. 켈로그 6시간 노동제 같은 진보적인 시도가 있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업가의 마인드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에서, 어쩌면 미국은 우리나라와 상당히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커피 파는 아르바이트생이 한 시간을 일해도 그 커피를 사 마실 돈이 안 되는 것 같은 깎은 듯 아찔한 경사의 피라미드 사회 구조가 그렇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의 저자인 변호사 토머스 게이건은 흑인 전기공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했는데, 단전 사태가 발생해 끼니도 거르고 응급 복구를 하다가 피자를 먹었다는 이유로 해고된 사건은 한국 사회와 닮았다. 피자 문제가 아니라 어이없이 해고되는, 노동자가 파리 목숨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측은 그를 작업 중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분류했고, 법은 회사의 편을 들어 주었다. 변호사라면 괜찮지 않겠는가 생각하기 쉽지만 게이건의 말로는 자신 같은 중산층도 일자리를 잃으면 아무 대책이 없으니 죽도록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그는 부침이 심한 파리 목숨의 미국 스타일과 유럽식 민주주의를 조목조목 비교한다. 단순히 비교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유머가 넘치는 문장으로 자신이 경험한 독일 생활은 그 자체만으로로 여행기가 될 수 있을 만큼 흥미롭다.
굶고 일하다가 피자 한 조각 먹었다고 전기공은 해고되었지만,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로 마음 먹은 독일의 여성 은행원은 그 전에는 노동조합을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조합의 도움으로 무료로 변호사를 선임할 속셈으로 그제야 가입했다. 누가 봐도 얄미운 짓이다. 물론 속이 쓰렸던 게이건은 이용당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조합 변호사에게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쿨했다. “아, 그거야 그녀의 권리죠.” 이것만 봐도 sf 소설 같았는데, 록밴드도 사회지원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방식도 재미있는데, 시청에서 경연대회를 열어 꼴찌까지 모두 상금을 받는 방식이라고 한다. 툭하면 살아남는 사람은 단 한 명!!! 을 외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워낙 익숙해지다 보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떤 나라는 그렇게 살고도 있는 것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직장평의회 제도였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 독일은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유일한 나라인데, 토머스 게이건이 독일을 중심으로 이 책을 써내려간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서문에 밝힌다. 직장평의회 위원은 선출직인데, 평범한 근무시간부터 퇴근시간 등 직장 내의 각종 규칙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것이다. 모든 직장이 그런 것은 아니고 직원수가 1000명인 회사 이상만 해당된다. 그러나 직장평의회는 회사에 협의를 요구할 강력한 권리가 있는데, 이를테면 누구를 임원으로 뽑을지 같은 문제도 그렇다. 어느 회사는 극우적 사상을 가진 경영자를 임원으로 승진시키려고 했는데, 노동자 측에서 반대해서 무산되었다. 단지 정치적 견해 때문에 반대했느냐고 게이건이 깜짝 놀라자 담당자는 못할 것은 뭐 있냐고 태평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느 은행에서는 정원사가 노동자 이사로 선출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계획을 이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해야만 한다. 똑똑한 놈들의 논리가 안 먹히는 것이다. 물론 독일에도 모든 노동자가 이러한 권리를 누리고 있지는 않다. 독일인의 40%만이 노동조합이나 직장평의회가 있는 기업에서 일하고 있지만,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 것 아닌가? 40%라면 건너 건너 사람이 다니는 회사 사정이 어떤지는 들어 봤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적어도 옆집에서 풍기는 고기 냄새를 맡아 본 사람이면 세상에 먹을 게 많다는 건 알게 되지 않겠는가? EU 역시 독일 모델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오늘따라 더욱 더 공상과학소설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쌍용 해고노동자의 22번째 죽음 때문이다. 덧붙여, 독일의 모든 자동차 기업에는 직장평의회가 있다고 한다.
타인의 삶을 자신의 것과 비교하는 방법이 간편하면 간편할수록 우월감이나 박탈감의 발생도 자연히 신속해진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굳이 참견 잘하는 동네 수다쟁이처럼 이 집 저 집 문 일일이 열고 캐고 다니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도 자꾸만 눈앞에 봐, 봐, 이거, 하고 들이미는 정도가 세서 그렇다. 잘 안 보는 텔레비전을 켰다가 한국의 패리스 힐튼이라며 소개되는 여성을 보니 저 집 드레스룸에서 먼지를 주워 와도 우리 집 한 달 월세보다 많이 나갈 것 같았다. 나는 내 드레스룸에 불만이 없다, 사실은 드레스룸 겸 응접실 겸 작업실 겸 침실이지만 뭐 그렇다 치고, 그러나 나도 모르게 기분이 찌질해지는 것이다. 아마 저 프로그램에 밤새우며 매달린 방송작가들도 몇을 빼고는 수익이 짠 비정규직일 것이다. 직업이 뭐건 다들 너무나 열심히 산다. 열심히 살고 싶은데 안 되는 사람들은 자신을 탓하는 것도 열심히 한다.
사측은 그를 작업 중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분류했고, 법은 회사의 편을 들어 주었다. 변호사라면 괜찮지 않겠는가 생각하기 쉽지만 게이건의 말로는 자신 같은 중산층도 일자리를 잃으면 아무 대책이 없으니 죽도록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그는 부침이 심한 파리 목숨의 미국 스타일과 유럽식 민주주의를 조목조목 비교한다. 단순히 비교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유머가 넘치는 문장으로 자신이 경험한 독일 생활은 그 자체만으로로 여행기가 될 수 있을 만큼 흥미롭다.
굶고 일하다가 피자 한 조각 먹었다고 전기공은 해고되었지만,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로 마음 먹은 독일의 여성 은행원은 그 전에는 노동조합을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조합의 도움으로 무료로 변호사를 선임할 속셈으로 그제야 가입했다. 누가 봐도 얄미운 짓이다. 물론 속이 쓰렸던 게이건은 이용당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조합 변호사에게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쿨했다. “아, 그거야 그녀의 권리죠.” 이것만 봐도 sf 소설 같았는데, 록밴드도 사회지원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방식도 재미있는데, 시청에서 경연대회를 열어 꼴찌까지 모두 상금을 받는 방식이라고 한다. 툭하면 살아남는 사람은 단 한 명!!! 을 외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워낙 익숙해지다 보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떤 나라는 그렇게 살고도 있는 것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직장평의회 제도였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 독일은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유일한 나라인데, 토머스 게이건이 독일을 중심으로 이 책을 써내려간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서문에 밝힌다. 직장평의회 위원은 선출직인데, 평범한 근무시간부터 퇴근시간 등 직장 내의 각종 규칙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것이다. 모든 직장이 그런 것은 아니고 직원수가 1000명인 회사 이상만 해당된다. 그러나 직장평의회는 회사에 협의를 요구할 강력한 권리가 있는데, 이를테면 누구를 임원으로 뽑을지 같은 문제도 그렇다. 어느 회사는 극우적 사상을 가진 경영자를 임원으로 승진시키려고 했는데, 노동자 측에서 반대해서 무산되었다. 단지 정치적 견해 때문에 반대했느냐고 게이건이 깜짝 놀라자 담당자는 못할 것은 뭐 있냐고 태평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느 은행에서는 정원사가 노동자 이사로 선출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계획을 이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해야만 한다. 똑똑한 놈들의 논리가 안 먹히는 것이다. 물론 독일에도 모든 노동자가 이러한 권리를 누리고 있지는 않다. 독일인의 40%만이 노동조합이나 직장평의회가 있는 기업에서 일하고 있지만,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 것 아닌가? 40%라면 건너 건너 사람이 다니는 회사 사정이 어떤지는 들어 봤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적어도 옆집에서 풍기는 고기 냄새를 맡아 본 사람이면 세상에 먹을 게 많다는 건 알게 되지 않겠는가? EU 역시 독일 모델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오늘따라 더욱 더 공상과학소설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쌍용 해고노동자의 22번째 죽음 때문이다. 덧붙여, 독일의 모든 자동차 기업에는 직장평의회가 있다고 한다.
-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토머스 게이건 저/한상연 역 | 부키
세계 최강의 선진국으로 대접받는 미국이 사실은 사회 안전망이 허술하기 그지없는 무한 경쟁 사회이며, 설사 중산층이라도 일자리를 잃는 순간 대책이 없는 미국인의 상황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한편, 1년에 6주의 휴가가 보장되고 국가에서 보육과 교육을 모두 지원하는 등 사회 안전망이 튼튼해서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가는 독일인의 상황을 생생하게 비교하여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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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현진(칼럼니스트)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에세이스트. 『네 멋대로 해라』, 『뜨겁게 안녕』,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그래도 언니는 간다』, 『불량 소녀 백서』 등을 썼다.
jere^ve
2012.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