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에 걸리고 친구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나는 브루스가 다른 것보다는 친구들을 돌이켜보길 바랐다. 그래서 그의 친구 40명에게 브루스가 그들의 삶에 어떤 존재였는지 알려주는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글ㆍ사진 레지너 브릿
201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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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이 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검은색 풍선으로 집 안을 장식하고 대머리와 주름진 얼굴, 처진 가슴, 튀어나온 배가 그려진 카드를 보내며 그날을 축하한다. 마흔 살을 탄생과 죽음의 중간 지점, 삶의 끝을 시작하는 지점으로 여기는 것 같다.

나는 그걸 염두에 두고 내 인생의 남자가 맞이할 40번째 생일에 무슨 선물을 줄지 고민했다. 브루스는 마치 예순 살 노인처럼 지금껏 얼마나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았는지 자문하면서, 자신이 이룬 것들을 되짚어보고 있었다. 아버지로서, 사업가로서, 시민으로서의 자신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지난 40년 동안 그의 곁에 머물러준 친구들뿐이었다.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보다는 그의 친구들이 브루스의 삶을 평가하는 더 좋은 척도 같았다.


영화 <멋진 인생>에 등장하는 조지 베일리의 모습이 계속 생각났기 때문이다. 한 번도 스스로를 성공한 사람으로 여기지 못한 조지 베일리는 그가 없는 세상이 어떨지 알아볼 기회를 얻었다. 이 영화의 교훈은 친구가 있는 사람은 결코 실패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브루스가 다른 것보다는 친구들을 돌이켜보길 바랐다. 그래서 그의 친구 40명에게 브루스가 그들의 삶에 어떤 존재였는지 알려주는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

그들이 편지를 보내오면 전부 한데 넣어 선물로 주기로 했다. 이 계획이 처음에는 쉬워 보였다. 연락 받은 40명이 편지 한 통씩만 쓰면 되니까. 하지만 글쓰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평소에 글을 써 버릇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다. 한 친구는 편지를 쓰다가 이렇게 투덜거렸다.

“이건 마치 뇌를 쪼개는 기분이야.”

다들 골머리를 썩였다. 커닝이라도 할 것처럼 서로 전화해서 ‘뭐라고 쓸 거야?’라고 물어본 사람들도 있었다. 쓰는 사람의 진심이 드러나야 하는 까다로운 편지였다. 어떤 사람은 마흔 살이 되는 것에 대한 농담을 쓰기로 했고, 어떤 사람은 장난스럽게 애정을 표현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부분 평소에는 멋쩍어서 못 한 말, 사적으로 하기 어려운 말을 편지에 담았다.

생일이 가까워지자 편지들이 하나둘 날아들었다. 두 통은 택배로 왔고, 여섯 통은 팩스로, 한 통은 이메일로 왔다. 한 친구는 전화로 불러주었다.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할 줄 몰라서 나한테 맡긴 것이다.

나는 1954년 <라이프> 잡지에서 뜯은 종이로 튼튼한 상자를 포장하고 편지들을 안에 넣었다. 생일이 되자 우리는 외식을 하고 영화를 본 다음 친구 몇 명과 함께 디저트를 먹었다. 나중에 브루스는 이날이 잘 끝나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때 내가 상자를 건넸다.
브루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편지들을 뒤적였다. 나는 그게 무슨 편지인지 알려주었다. 브루스는 놀란 눈치였다. 그는 봉투에 적힌 발신자 이름만 볼 뿐 곧바로 뜯지는 않았다. 마침내 편지를 뜯자, 브루스의 얼굴에서 벅찬 감정이 넘실거렸다.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크게 감동받은 그는 코까지 훌쩍였다.

40명이 쓴 편지들은 브루스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었다. 닫혀 있던 그의 마음, 혹은 세월과 함께 좁아졌던 그의 마음이 친구들의 글을 보고 열린 것이다. 그 편지들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다들 머리가 굳어서 잊고 지낸 시절의 장발과 히치하이킹, 록 콘서트 등등. 친구들은 밤늦게 그와 나눈 전화 통화, 취직할 때 그가 들려준 충고, 그가 이혼의 아픔을 극복해낸 과정을 들려준 일을 언급하며 브루스에게 감사했다.

가장 막역한 친구 중 한 명의 어머니는 아름다운 시를 써주었다. 한 여자 친구는 손수 만든 카드를 보내주었다. 한 친구는 악보에 편지를 써서 보냈다. 브루스는 그 편지들을 아들들에게 물려주기로 했다.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번 돈, 그가 벌인 사업, 그가 사랑한 여자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평생을 함께해온 친구들이라는 사실을.
브루스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대개 사람들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기회가 없어. 그런 이야기는 장례식 때나 듣게 되지.”

그게 바로 내가 이 선물 이야기를 한 까닭이다. 우리는 우리가 남에게 어떤 존재인지 들을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런 말을 들을 때쯤이면 대개 이미 죽었거나 너무 늙어 있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배구 경기를 보지 못하게 될까 봐, 달력에 적어놓은 약속들을 전부 지키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나의 첫 약물 치료를 준비해주던 간호사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진짜 중요한 게 뭔지 모르는군요.”

그녀의 말이 옳았다.
일은 뒷좌석이었다. 암도 앞좌석은 아니었다. 거긴 내 친구들 자리였다. 그들이 운전대를 잡았다.
약물 치료를 받는 동안 셰릴이 나를 도와줬다. 여러 친구들이 귀고리와 스카프, 모자를 가져다주었다. 베스는 셰릴이 내게 사다준 작은 하모니카를 집어 들고 음악을 연주해주었다. 주디는 병원에 와서 내 머리를 감겨주었다. 다른 친구들은 영화 비디오를 잔뜩 빌려다주고, 슬리퍼와 잠옷을 가져다주었다. 수많은 친구들이 격려 카드와 음식, 용기를 주는 책을 보내주었다.


일은 어떻게 됐냐고? 내가 너무 아파서 글을 쓰지 못하는 동안에도 신문은 문제없이 찍혀 나왔다. 세상은 나 없이도 계속 돌아갔다. 내 세상을 돌아가게 한 건 친구들이었다.
내 친구 마티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친구와 건강만 있으면 필요한 건 다 있는 거야.”

암은 내게 친구를 늘 우선순위 꼭대기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레지너 브릿 #삶은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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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고양이

2012.03.15

정말 좋은 글이네요. 편지 선물은 나중에 저도 나이 먹으면 한 번 시도해봐야겠어요.
하지만 현실을 알고 있는 이상 조금은 쓰린 것이 불편한 진실이라면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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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2012.03.14

인생에 있어서 친구는 참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지요. 뭐랄까. 친구간에는 직장생활이나 비즈니스에서의 딱딱함과 합리성을 추구하지 않아도 되고 때로는 서로 실없는 농담도 주고 받으면서 옛 추억거리들을 함께 거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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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너 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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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너 브릿

오하이오의 대표적 신문사 〈플레인 딜러The Plain Dealer〉의 인기 칼럼니스트. 1956년 인구 12,000명의 소도시인 오하이오 주 라베나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켄트 주립대학(Kent State University)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존 캐럴대학(John Carroll University)에서 종교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총 2000편이 넘는 칼럼을 게재했다. 그러던 그녀가 위기에 부닥친 건 지난 1998년 유방암을 선고받으면서부터였다. 브릿은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고통스런 화학요법과 지난한 회복의 이야기를 신문에 연재해 큰 호평을 받았고, 이 칼럼으로 1999년 내셔널 헤드라이너상을 수상했다. 2009년에는 '힉스 클리닉'의 불법적인 아동 거래 사건을 다룬 칼럼으로 또다시 내셔널 헤드라이너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3년에는 '오하이오 최고의 칼럼니스트'로 뽑혔으며, 2009년에는 미국법조협회가 수여하는 은망치상을 받는 한편, 오하이오 도서관 회의가 뽑는 '올해의 시민'으로 뽑히기도 했다. 2008년과 2009년, 2년 연속으로 퓰리처상 논평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크고 작은 수많은 상을 받았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10월에는 클리블랜드의 저널리즘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미국 칼럼니스트 협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 밖에도 브릿은 라디오 프로그램 〈생각의 소리The Sound of Ideas〉에 출연해 청취자들의 고민과 아픔을 함께하며 인생 멘토로 활약했다. 그녀의 명칼럼 50개를 엄선해 묶은 이 책은 영국, 중국,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 18개국에서 출간되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