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대책] “외계인이 보낸 신호가 내 PC에 잡힌다면?”
이번 대담회에서는 그가 직접 쓴 과학 소설인 『콘택트』와 논픽션 작가 윌리엄 파운드스톤이 쓴 전기 『칼 세이건』을 통해 칼 세이건이란 인물을 탐구해 보았습니다.
201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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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역사에서 이정표가 되었거나 과학 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책을 중심으로 인물 대 인물, 이론 대 이론, 명강의 대 명강의 등 두 권의 책을 비교 분석하는 <책 대 책>. 그 네 번째 대담회가 APCTP(아태이론물리센터)와 사이언스북스, 채널예스 공동 기획?주관으로 지난 1월 17일(화) 저녁 7시 비룡소 대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대담회에서는 그가 직접 쓴 과학 소설인 『콘택트』와 논픽션 작가 윌리엄 파운드스톤이 쓴 전기 『칼 세이건』을 통해 칼 세이건이란 인물을 탐구해 보았습니다. 전 세계 60개국에서 6억 명의 시청자가 지켜본 과학 다큐멘터리의 제작자이면서 또한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과학 대중서의 저자라는 불멸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칼 세이건이지만, ‘이미지와 행운에 기반한 공명심에 빠진 뻔뻔한 사람이자 부랑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가 붙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런 모순적인 요소 뒤에 감추어진 진정한 그의 모습을 알아보기 위해 2010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받은 배명훈 과학 소설 작가가 『콘택트』 SETI 코리아 조직위원회 사무국장인 이명현 박사님이 『칼 세이건』으로 1월 2일 각기 서평을 쓰고 대담자로 나섰으며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가 사회를 맡았습니다.
세 분에 대한 간단한 소개 후, 본격적인 대담이 시작되었습니다.
박상준(사회자): 자리를 꽉 채워 주실 정도로 뜨거우신 여러분의 열정에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책 대 책” 행사가 대개 과학자 두 명의 저작으로 배틀을 붙이는 식이었던 걸로 아는데요. 이번에는 독특하게 칼 세이건이라는 한 과학자를 다룬 두 책이 주제입니다.
제 또래 세대를 흔히 ‘코스모스 키드’ 라고 하는데요. 저도 그랬습니다. 『콘택트』가 정식 한국어판 소설로는 최초이지만 1980년대에 제가 알기에는 최소한 세 종의 한국어판이 나왔습니다. 저는 물론 그걸 다 읽었고요. 비록 과학자의 길을 걷지는 못했지만 『코스모스』를 같이 보면서 천문학의 꿈을 키웠던 친구 중에는 훌륭한 천체물리학자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저희 세대에게 칼 세이건이라는 사람이 주는 의미는 굉장합니다.
두 분께서는 『코스모스』를 각각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이명현(칼 세이건):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예전에 《학생 과학》이라고 하는 잡지가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읽을거리도 많고 인터넷도 있지만 제가 중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읽을 게 별로 없었어요. 《학생 과학》하고 좀 지나서 나온 《라디오와 모형》이라는 잡지가 정보를 얻는 전부였는데 거기 세이건이란 이름이 자주 나왔죠. 바이킹호가 1976년 화성에 내릴 때도 등장했고요. 그렇게 막연하게 관심이 있었는데 『코스모스』가 결정타였어요. 텔레비전 시리즈로는 만족을 못 해서, 부모님을 졸라 비디오테이프를 사서 매일 틀어놓고 보았습니다.
배명훈(콘택트): 과학 소설을 쓰다 보면 그런 질문을 종종 받아요. “과학책 많이 읽으세요?” 돌아보면 저는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 백과사전을 찾아보는 아이여서 한 권을 딱 집어 말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코스모스』를 이야기하기 시작했거든요. 물론 저는 두 분보다는 약간…… 파도가 한 차례 지나가고 난 후라고 해야 할까요? 『코스모스』가 중학교 필독서처럼 되어서 엄마들이 집에다 한 권씩 사 놓던 시절이었거든요. 다 가지고 있긴 한데 읽은 사람은 없는. 저는 그걸 읽었던 기억이 나요.
사실 구체적으로 뭘 읽었는지는 기억이 결락되어 있었는데 요번에 다시 읽다 보니까 핵겨울을 여기서 본 거더라고요. 다른 행성에 관한 이야기는 그동안 어디서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 보니 그게 『코스모스』의 내용이 잠재되어 있다가 나온 것 같아요. 책을 보면 세이건이 여러 영역을 넘나들면서 정리해 놨잖아요? 생물학과 물리학과 천문학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정리한 책을 읽고 나니 학교 수업 내용이 다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과학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과학을 굉장히 재미있게 공부했습니다. 그런 경험으로 “우리 아이에게 어떤 책을 추천해 줄까요?”란 질문을 받으면 항상 “코스모스요.”라고 대답한 기억이 납니다.
박상준(사회자): 세이건은 『코스모스』로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누리던 상황에서 『콘택트』를 집필하면서 웬만한 작가 이상의 엄청난 선인세를 받았는데 과학 소설이라고 하는 장르의 애호가로서 보기에 『콘택트』에는 조금 흥미로운 점이 있어요. 단적으로 말해서 과학 소설에서 최고로 치는 작품하고 동급에 오를 정도로 훌륭하냐고 하면 냉정하게 그 정도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의의는 한 과학자가 자신이 평생을 통해 추구했던 ‘지적인 외계 고등 문명과의 접촉’이 일어날 수 있는 개연적인 시나리오를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가장 그럴듯하게 서술했다는 데 있는 듯한데요. 작가로서 배명훈 작가님은 『콘택트』를 읽고 어떤 점을 느끼셨는지 질문 드립니다.
일상에 가까운 미학
배명훈(콘택트): 소설가로서는 분명히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약에 제가 이 원고를 출판사에 내밀었다면 삭제하라는 소리를 들었을 부분이 굉장히 많이 보입니다. 뭐랄까요, 소설가가 생각하는 미학적인 초반부 전개하고는 굉장히 다른 재미를 가지고 가는 것 같아요. 어떤 게 재미있느냐면 세이건이 젊었을 때 주장한 틀린 가설들 있죠. 화성의 어두운 부분을 해석하는 그런 것들을 정확한 데이터가 없는데 설명하려고 몇 년간 주장하다가 나중에 전혀 아니라 해서 폐기되는. 사실은 그런 과정 하나하나가 재밌거든요. 소설가들이 사용하는 장치가 아니라 진짜로 과학을 해본 사람만이 던질 수 있는 일상에 가까운 그런 미학들.
그러면서도 마지막에서는 과학 소설 작가들이 언제나 신경 쓰는 ‘경이감’에 접근하려고 하거든요. 일반인은 과학 소설이 상상력의 장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아요. 그렇게 알려졌는데 막상 실제 창작에서는 상상력만 가지고는 결론을 낼 수가 없거든요. 『콘택트』에서는 앞부분에 있는 굉장히 매력적인 재료를 착착 쌓아 나가면서 마지막에 경외감이 들도록 배치해요. 신호를 받았을 때 이게 진짜 외계에서 온 신호라는 것을 확신하는 과정 같은 게 굉장히 재미있는데 이게 진짜로 해 본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가 느끼기에 재미있었던 대목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아마 플롯을 더 복잡하게 하는 식으로 갔을 거예요. 그래서 다른 방식, 다른 작법으로 가도 훌륭한 글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상준(사회자): 이명현 박사님께서는 과학자로 외계 생명을 직접 연구하시는 입장에서 『콘택트』를 어떻게 읽으셨나요?
이명현(칼 세이건): 저는 책을 읽으면서 마치 제가 강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배명훈 작가님이 말씀하시기를 소소한 장치들이 들어갔다고 하셨는데, 그게 이런 거죠.
이게 텔레비전 드라마라면 어떤 신호가 발견되었을 때 그 신호의 경이로움으로 사람들이 뛰어 다닌다든가 그것으로부터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에 초점을 맞출 텐데 『콘택트』에서는 과연 그들은 신호를 어떻게 보냈으며 그걸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해독하려면 우주 보편적인 언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무엇인지, 수학이라면 수학 중에서도 뭔지 이런 것들을, 현장에서 과학자들이 늘 생각하는 그런 것들을 100여 페이지에 걸쳐서 차분하게 잘 풀어놓았어요. 이게 굉장히 리듬감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이러다가 또 큰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대답을 소소하게 해 나가고. 그래서 과학자들의 생생한 모습, 과학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가장 사실적으로 그려 주는 그런 작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상준(사회자): 『콘택트』가 과학자가 좋아하는 과학 소설일 수는 있는데 작가 칼 세이건을 과학자들이 과연 좋아했을까? 이게 또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칼 세이건도 피력한 바가 있지만, 처음에 일반 대중에게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하려고 했을 때 많은 동료가 손가락질했다는 거예요. 그 이면에는 학문적이고 뭐랄까 이쪽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만이 알고 있는 지식을 하나의 기득권으로 생각해서 이걸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거죠. 그런 것에 반기를 들고 과학을 널리 계몽하는, 계몽이란 표현을 이때는 써도 될 것 같은데 알리고 쉽게 전달하는 이런 프로그램을 했던 것이 칼 세이건의 큰 공적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점을 지금까지도 어떤 과학자들은 쇼 비즈니스라면서 낮춰 보는 게 있단 말이죠.
이명현 선생님은 과학 공부를 박사과정까지 하셨고 지금도 과학계에서 활동하시니까 과학자 칼 세이건에 대해서 부정적인 증언도 접해 보신 적은 있는지 한번 말씀을 들었으면 하네요.
세이건은 훌륭한 과학자였다
이명현(칼 세이건): 그가 물론 쇼 비즈니스의 달인이기는 했지요. 한 예로 『코스모스』 텔레비전 시리즈를 만들기 위해서 코넬 대학교를 2년간 휴직해요. 캘리포니아로 가서 할리우드에 아예 상주하면서 1년을 더 연장해서 3년 동안 그 작업만 해요. 연구를 안 하고. 칼 세이건 프로덕션이라는 회사도 차리고요. 그 과정에서 여러 건의 소송에도 휘말리기도 하고 하여간 굉장히 이문에 밝았던 사람입니다. 뇌과학에 대한 책을 써서 퓰리처상도 받아요. 과학책으로서는 에드워드 윌슨보다 먼저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시기를 받지요. 그쪽 분야 사람들에게서.
그런데 우리가 그에 대해서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굉장히 훌륭한 과학자라는 거예요.
칼 세이건이라는 사람이 가졌던 학문적인 소질이 굉장히 뛰어났고요. 이 사람의 박사학위 논문이 네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목이 ‘행성 과학의 연구’에요. 하나는 달에서의 유기화학 물질. 달에 생명체가 있느냐 그런 거고. 금성 대기에 관한 게 있어요. 흔히 우리가 온난화 이야기하잖아요. 온실효과. 이런 단어가 생겨난 것도 금성의 대기를 연구한 칼 세이건의 연구결과로부터 나온 것이거든요. 그게 나중에 핵겨울하고도 연결됩니다. 또 하나는 달의 오염 문제. 그러니까 로켓을 쏘면 여기에 박테리아 같은 것이 묻어가서 달에 도착하는 순간 달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우리가 찾고자 하는 생명체를 놓친다는 거죠. 그런 것도 내용에 있고요. 우주 생물학에서 쟁점이 되는 모든 분야가 이 사람의 박사 논문에 다 들어 있어요. 사실은 현대 우주 생물학의 기반을 아주 정량적으로, 특히 행성 과학 쪽에서 다져 간 사람이구요. 모든 현장에 있었어요.
이 사람이 20대 중반부터 외계 생명체에 관련한 중요 사건마다 현장에 항상 있어요. 박사학위 논문이 안 끝났는데도 유전학자의 연구실에서 공부를 해요. 천문학 전공을 하면서도. 해럴드 유리와 스탠리 밀러라고 생명 발생 실험을 한 팀에서도 연구하고요. 나중에는 소행성 134340(명왕성) 근처에 여러 소행성이 밀집한 영역을 카이퍼 벨트라고 제안한 당시 미국의 유일한 행성 과학자 제러드 카이퍼하고 작업을 해요. 조금 지나서는 또 자기가 천문학자이면서 프린스턴 의과 대학교에 연구하러 가요. 이 정도로 모든 분야에 손을 대면서도 인도 출신 천문학자 찬드라세카르하고도 교류하고. 레더버그라고 하는 굉장히 유명한 생물학자의 대변인을 맡아서 그가 NASA에 우주 생물학 분과를 만들 때 세이건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거든요. 그때가 20대 후반이에요. 아주 중요한 사람들을 다 만나고 다녀요. 협력을 굉장히 잘했던 것 같아요. 천문학자지만 생물학에 굉장히 조예가 깊어서 생물학과 천문학을 연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그야말로 융합적인 거죠. 학제간의 그런 팀을 조직을 했었고.
반면에 또 여러 사람이 증언하는 것을 보면 굉장히 고집이 세고 가부장적이고 무책임하고 약속을 해 놓고서 안 나타난다든지 하는 일이 많았대요. 인간적으로는 굉장히 가부장적이었던 사람이고 자기 성취 욕구가 굉장히 강했던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를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대중의 인기를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 되었던 것 같고요.
박상준(사회자): 칼 세이건이 문제적 인간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말만 페미니스트고 진보주의자였지 실제 생활은 전혀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칼 세이건이 개인사가 좀 파란만장하잖아요. 결혼도 한 번만 한 게 아니었고. 이런 증언은 와이프 중 한 사람의 입에서도 나온 이야기였기 때문에 우리가 완전히 무시할 수가 없죠. 제가 어렸던 시절에도 국내에 아직 번역 안 된 원서를 보다 보면 ‘어? 『코스모스』에서 분명히 헌사가 얜 드루얀에게였는데 1970년대에 나온 책을 보니까 린다 살츠먼 세이건에게라고 있다. 이 여자는 또 누구지?’ 이런 기억이 있었어요. 코스모스 키드들에게는 앤 드루얀에게 바치는 헌사의 문구가 아마 아시는 분들은 알 겁니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당신과 함께 살아 있는 것을 기뻐하면서.” 아주 감동적인. 저도 어릴 적에 많이 써먹었습니다.
이렇게 그 사람의 업적뿐만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파란만장한 개인사들이 배명훈 작가님처럼 이야기를 창작하시는 입장에서는 그 자체로 좋은 재료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전기를 읽기 전에는 크게 관심을 덜 두시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저는 드는데 전기를 읽고 나서 칼 세이건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시면서 그것이 과학 소설을 쓰면서 거기에서 묘사해 왔던 과학자상이라던가 또는 이를테면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던가 이런 식의 약간은 상투적인 과학자상에 변화를 줄 여지가 개인적으로 있었는지 질문 드립니다.
천문학자, 제일 지구인에 가까운 직업
배명훈(콘택트): 저도 과학자들의 실제 모습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다가 몇 년 전에야 천문대에 가서 선생님들이 하시는 것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아 여기 되게 재밌는 데네?’라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그전에는 사실 잘 모르는 상황이었죠.
칼 세이건의 개인사는 사실 제가 그 밑에 학생으로 들어갔으면 조금 힘들 것 같기는 해요. 잘해 주다가 실수 하나 딱 걸리면 파문하기도 하는 일화들도 책에서 봤는데 그렇게 가깝게 지내기보단 좀 불신했을 것 같기도 한데.
저는 그런 개인적인 면 말고. 그러니까 지구인으로서 저는 천문대 가서 천문학자 선생님들이 하시는 걸 보면서 ‘어 이 사람들은 진짜 제일 지구인에 가까운 직업이 이거구나.’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왜냐면 우리 생각에는 천문대에 간다는 게 뭔가 특이한 곳에 가서 상상력이 가득한 뭔가를 만날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는 천문대가 이상한 곳에 있거든요. 빛이 많이 안 드는 오지에 도시에서도 멀고 높이도 되게 높은 데에 있어요. 소백산 천문대는 심지어 공기도 희박해서 올라가면 되게 멍해지거든요. 그런 데 가서 또 우주를 보는 거니까 되게 신기하고 신나는 무언가를 하러 간다는 생각인데 실제로 하시는 것을 보면 그게 그래요. 천문학자들이 다루는 연구 대상이라는 게 똑같잖아요. 세계 어느 나라에 있던 똑같은 것을 딱 내놓고 관찰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조작하고 뭐 그런 것 없잖아요. 다 보이니까. 내가 뭘 발견했다면, 그게 확정이 되려면 지구 반대편에서도 발견하면 그냥 끝이잖아요. 그런 게 있어요. 제가 듣기로는 천문학자들의 연맹은 세계적으로도 하나로 묶여 있는데 그런 조직은 천문학계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당연한 것이 다루는 대상 자체가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콘택트』를 읽으니까 재미있었어요. 신호를 이게 외계 신호라는 것을 확인하고 추적하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게 국경을 넘어서 이걸 확인하는 거잖아요. 전기를 보시면 냉전 때인데도 실제로 소련 학자하고 교류했어요. 게다가 냉전의 장벽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건 제가 서평에서도 쓴 건데. 외계인이라면,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외계인이라면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신호를 보냈을까를 계속 추론해 가는 과정에서 그럼 우리는 누굴까를 묻게 되거든요. 외계의 생명체를 찾는 과정 자체가 그런 것 같아요. 저 행성에 생명체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를 찾아가다 보면 우리 지구에서 생명체가 발생한 과정이 어떻게 되나 그것을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외계인을 만나기 전에 지구인 자체가 외계인이 되어야 하는 과정이에요. 그래야 외계인이 하는 말을 한마디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세이건은 그 과정을 계속 실제로 진행했고 『콘택트』에 그게 담겨 있어요. 전 그게 굉장히 감동적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의 결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에 이르기까지 칼 세이건이 밟아가는 과정. 그래서 수학이라는 우주 보편적인 도구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접근 방식들? 그걸 보면 인간으로서 인류로서의 칼 세이건이란 사람이 굉장히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인종 문제라든지 성차별 문제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던 사람이고.
박상준(사회자): 저도 인류의 눈을 외계로 향하게 하는 차원까지 올려놓은 이 업적이 아마 우리 역사에서도 굉장히 의미심장한 조명을 받을 때가 오지 않겠슴가.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칼 세이건이 SETI 프로그램을 처음 연구하던 시절이 1960년대잖아요. 그때는 외계 문명을 학술적으로 진지하게 접근해서 연구하겠다고 하면 미치광이 소리를 들었던 시대에요. 그랬는데 세월이 흘러 칼 세이건이 작고한 1990년대 후반이 되면 SETI라는 영역이 훌륭하게 과학의 한 분야로 대접을 받고 많은 정부 예산을 들여서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와 연구 인프라를 가지고 진지하게 연구하는 분야가 되었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옛날이나 그 이후나 SETI와 관련해서 하나라도 확증이 나온 것은 아직도 없다는 거예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혀 객관적인 우주 바깥의 배경 데이터는 변한 게 없는데 그동안에 외계 문명을 탐사하는 어떤 입장, 태도가 완전히 변한 거죠. 한마디로 이단이 정통으로 됐다는 건데 여기서 사실상 1인 밴드나 다름없는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칼 세이건입니다.
그래서 칼 세이건이 SETI 연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라던가 아니면 가장 최근 SETI가 이루어 낸 어떤 성과, 그리고 외계인과 만날 날이 정말 가까워졌다고 생각을 해도 되는지 이런 것들을 간단하게 이명현 선생님에게 여쭙겠습니다.
이명현(칼 세이건): 칼 세이건은 1950년대 말에 외계 생명체 연구를 시작합니다. 외계 생명체를 찾는 분야를 지금은 우주생물학이라고 하는데 그게 막 꽃피는 시절이죠. 지구, 태양계 바깥에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있겠느냐 행성이 있어야 거기 생명체가 살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요즘에는 그런 것들이 많은 숫자가 발견이 되고요. 인터넷 치기만 하면 지구와 거의 질량과 크기가 똑같은 행성도 나오고 심지어는 굉장히 괴상한 애들도 막 나오고 그래서 세이건이 생각했던 그런 것들이 실현되고 있는 상황이죠. 외계 지적 생명체와 관련해서도 굉장히 막연했는데 이제는 지구와 거의 닮은 행성들이 발견되니까 거기다가 초점을 맞춰서 그 행성만 집중적으로 관측하는 연구들이 버클리 대학교라든지 SETI 연구소에서 시작되어서 데이터는 나오고 있어요. 발견된 것은 없지만. 또 얼마 전에는 큐리오시티라고 하는 화성 탐사선이 출발했거든요. 이번 여름쯤에 화성에 도착할 예정인데 1.9미터짜리 로봇 팔을 가지고 가요. 그래서 땅을 팔 예정이거든요. 혹시 그 속에서 물이나 미생물이 발견될지도 모르죠. 그래서 당시에는 관측할 수 없고 결론을 내릴 수 없었던 것들이 칼 세이건의 사후 15년이 흐른 지금 우리에게 몇 년 내로 임박해 있는 그런 시점인 것 같아요. 그런 혜안, 비전, 칼 세이건과 동시대의 분들이 만들어 놓았던 것이 이제야 꽃핀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상준(사회자): 이명현 박사님이 SETI 코리아에서 지금 책임자를 맡고 계시죠?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 잠깐 PC가 비는 시간에 외계인 생명체를 찾는 데 일조하는 그런 프로젝트의 한국 총 책임자를 이명현 박사님이 하고 계시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SETI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관심을 두고 좀 보시면 어느 날 소설이 현실에 나타날 수 있는 거예요. 20XX년 모월 모일 서울. 김 아무개 씨 집 PC에서 갑자기 이상한 신호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콘택트』 2 속편의 첫 문장이 그렇게 시작할 수 있는 겁니다.
이명현(칼 세이건): SETI에서 S가 search거든요. ET는 E. T.라고 영화도 있잖아요. extra terrestrial. 지구 밖이란 뜻이고 I가 intelligence여서 외계 지적 생명체. 처음에는 사실 communication의 C로 CETI라고 썼어요. communication with extra terrestrial intelligence.
그런데 금방 깨달았어요. 우주가 너무 멀어서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다는 걸. 그래서 S로 바꾼 겁니다. search, 탐색하는 거죠. 콘택트 속편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신호를 우리가 포착해서 정말 99.9% 유의한 수준에서 외계 지적 생명체가 보낸 인공 신호임을 확신한다면 그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SETI 커뮤니티에 한 반 정도는 천문학자들이고요. 나머지는 인류학자, 사회학자, 기호논리학자, 이런 분들이 많이 있고 과학 소설작가들도 많고요. 돌고래 전문가도 계십니다. 그분들이 사회에 미칠 충격에 대한 것들을 회의도 많이 하고 책도 내고요. 그런 걸 발견했을 때 우리는 무조건 오픈이에요. 기자 간담회 열어서 바로 오픈하고 다른 관측선들이 동시에 관측해서 확증하는 식으로 되고. 그다음에는 뭐 사실 너무 멀리 있으니까 발견해도 별일 없을 것 아니에요? 걱정은 안 해도 되고요. 일단 보고 체계는 그렇게 되어 있고. 그다음에는 대표성의 문제가 대단히 커요. 누가 대표해서 그것들과 접촉할 것인가가 아직도 결정되어 있지 않아요. UN에다가 그런 대사를 두어야 한다는 말도 있어서 후보자를 각축도 하고 그랬는데 아직 합의가 없고요. 우리가 보내는 콘텐츠가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느냐 과연 누가 그걸 해야 하느냐 이런 논란은 계속 있었서요. 2010년 5월에 회의를 해서 워킹 그룹을 만들었어요. 누가 대표가 될 것이냐는 이야기 중이죠.
박상준(사회자): 국적, 인종, 나이, 성별 모든 걸 초월해서 밤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바라보면서 저 외계의 별에는 어떤 외계인이 살고 있을까 우리가 그들하고 만날 기회는 있을까 그걸 평생을 다 해서 연구하고 추구하는. 그런 학문을 하시는 분들은 정말 제가 볼 때는 시인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과학 소설 번역하시는 분을 만났는데 어떤 공부를 하셨는지 여쭈었더니 “저 문과출신입니다.” 이러세요. 그래서 학과를 물었더니 “천문학 했습니다.” 하시더라고요. 반은 우스갯소리였지만 다시 생각하니 멋있는 대답 같아요.
지금 여기도 그런 멋있는 천문학을 하시는 분이 계신데 이명현 선생님은 세이건처럼 직접 소설을 쓰실 생각은 하신 적 없으신지요?
이명현(칼 세이건): 제가 사실 에세이도 쓰고 서평도 쓰는데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봐 줘요. 뭐 문예중앙 같은 문예지나 문학과 지성사 거기다가도 글을 씁니다. 그게 먹히는 이유가 전업 작가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아요. 우리 쪽은 그냥 봐 주는, 비평의 대상이 아닌 거죠. 심층적으로 파헤쳐서 할 대상이 아니니까 어 저놈 저 정도는 쓰네 하면서 봐 주는 거죠. 그런데 제가 만약 소설가로 데뷔하는 순간 온갖 날카로운 공격들이 비평들이 들어올 걸요. 그러니까 그런걸 뭐 하려 합니까. 그냥 안 쓰는 게 낫죠.
배명훈(콘택트): (『콘택트』를 집어 드시며)훌륭한 예가 여기…….
저도 과학 소설 쓰면서 항상 과학 하시는 분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책이 나오면 이명현 박사님도 그렇고 다른 선생님들 만나면 선생님들이 항상 먼저 하시는 말씀이 아 책은 사긴 했는데 아직 못 읽었다. 그러면 읽지 마시라고. 읽지 마시고 추천만 해 주시라고 이야기하거든요. 과학자분들이 이걸 읽으면 뭐라고 말할까? 그걸 생각하면 진짜 뭘 쓸 수가 없어요. 부담되죠.
하지만 그게 우리한테는 사실 잠재적인 갈등 요소지 그것으로 진짜로 배틀을 하고 있지는 않거든요. 이 ‘책 대 책’을 하면서 흥행을 하려면 뭔가 싸움을 붙여야 잘 될 텐데 그 정도는 아니고요. 그런데 항상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면은 있어요. 과학자분들께 하드 SF로 좀 더 가라는 이야기를 항상 들어요. 하드 SF가 가장 많이 팔리는 장르는 아닌데도 그것을 지향하면서 뭔가 그 주변 것을 쓰고 있어야 하는. 야구에서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에 집어넣는 투수가 꼭 잘 던지는 투수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 점을 신경 쓰면서 주변으로 이렇게 던져야 하는. 그게 제 입장이고요. 우리가 보기에는 이명현 박사님 정도 되면 글 쓰는 것 자체가 어렵지도 않으시고 하면 잘 쓰실 것 같은데 절대 안 된다는 이야기만 하시는 상황이죠.
이명현(칼 세이건): 국내에서도 과학자가 쓴 과학 소설 작품들이 있어요. 하지만 솔직히 책은 다 허접해요.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아요. 일단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못 버리는 것 같아요. 마치 강박처럼. 앞에서 나왔던 현장의 과학자들만이 아는 그런 요소들이 녹아들어 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집어넣어요. 저희가 보기에는 따분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느닷없고…… 이런 요소들이 들어가는 거죠. 작품 전체와 어울리지를 못하고 그냥 그것만 떼어 내서 강의록 만들면 좋을. 이러니까 전혀 소설이 아닌 거죠.
또 한 가지는 과학자들이 기대하는 과학 소설은 사실 그전에 아이작 아시모프라던가 아서 클라크나 이런 사람들을 보면 어떤 비전을 제시했어요. 과학자들이 받아들일 만한. 그래서 그것들이 실제 과학 연구의 영역으로 넘어와서 그것들이 실현되기도 하고 거기에서 이름들을 따서 어떤 탐사 작업에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데, 요즘 과학 소설 작가들의 상상력은 과학적인 발견을 못 따라오는 것 같아요. 과학 발견을 넘어서는 과학 소설 작가의 상상력이 없는 것 같아요. 과학이 소설보다 상상력이 더 뛰어난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고나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이 자체가 소설보다 훨씬 더 과학 소설적인데 뭘 쓰라는 거냐. 그런 생각이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과학자가 소설로 넘어가기가 되게 어려운 것 같고요. 그렇게 하기보다는 배명훈 작가님처럼 이렇게 역량 있는 소설가를 잘 교육해서 최동원 투수처럼 가운데로 직구를 넣게 하는 것이 훨씬 빠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저는 배명훈 작가님을 만날 때마다 공부를 더 하라고 이야기를 해요. 처음 만날 때부터도 그랬고요. 작가님 정도 되는 역량을 갖춘 신진 과학 소설 작가라면 하드코어 SF를 써라. 그런데 요구를 하고 본전을 못 찾는 게. 대답이 하드 SF는 과학자 너희들이나 써라. 그런 식의 압력을 받아서. 그래서 배명훈 작가님이 어떤 작품을 쓰면 그 분량에 맞게 제가 해제를 쓰는 그런 형식으로 한번 해 보면 재밌지 않겠나 이런 이야기들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박상준(사회자): 결국은 우리나라 출판 시장이 참 작아서 글 쓰시는 분들이나 출판하시는 분들 다 힘들어하시는데 독자분들이 많이 좀 성원을 해 주시면 아마 두 분이 서로 이렇게 떠밀려서 쓰세요 쓰세요가 아니라 제가 쓸게요 제가 쓸게요 하고 서로 다투는 아름다운 장면이 나올지도 모르지요. 저도 보고 싶습니다. 시간상 마무리를 할 시간이 된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 두 분 혹시 오늘 꼭 하고 싶은 말씀 아직 못 하신 게 있으면 마무리 멘트를 좀 부탁을 드릴게요. 이명현 선생님부터.
이명현(칼 세이건): 인간 칼 세이건에게는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개인으로서는 그야말로 욕망의 화신이었지만 과학적인 면이나 그의 협력 구도 같은 것을 모두 보면 굉장히 멋진 사람임을 부정할 수 없죠. 저는 살아 있을 때 잡지를 통해 소식을 들으면서, 책을 읽으면서, 죽은 다음에도, 지금도 이 사람에게는 굉장히 그립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에게 굉장히 그리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사람이 가지고 있던 뭐라 할까 닿을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아련한 생각들? 그러니까 외계 생명체를 찾아 나가는 과정인데 자신은 굉장히 성공한 과학자라고 하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외계 생명체를 탐색했던 과학자로서 성공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지금에 와서야 그가 꿈꾸던 지구와 엇비슷한 행성들이 발견되기 시작하고. 화성 탐사는 처참하게, 17년 동안 다시 못 할 정도로 처참하게 실패했고요. SETI 프로젝트도 이제야 그게 피어나는 것이거든요. 그런 꿈, 실패해 가는 꿈들을 굳건히 지켜나갔던 사람이어서 늘 이런 작업을 하면서도 굉장히 그립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배명훈(콘택트): 칼 세이건은 손을 뻗어서 잡았을 때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거의…… 거의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다는 것만 계속 발견한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화성의 흙을 가져다가 실험을 계속 반복하지만 결론은 생명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판단을 못 내리겠다는 결론. 보이저 우주선에 실을 레코드에다가 음악도 선정하고 전 세계의 인사말을 UN 직원들을 통해 녹음해서 우주로 보내는 프로젝트. 그걸 누가 보겠어요. 그런데도 그 과정이 굉장히 쉽지 않고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고. 계속 발목므 잡는 외교적 행정적 문제를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면서 이혼 발표 날짜까지 조정해 가면서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해서 발사를 했어요. 그러고 나서도 사실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콘택트』에 그런 내용이 나와요. 다른 천문학자들이 전파망원경을 쓸데없는 데에다 쓰지 말고 쓸모 있는 연구 하게 시간을 다른 쪽으로 돌려 달라고 하니까 외계문명 탐구를 계속해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우주에 생명체가 없다는 것을 정말로 찾아내면 그 또한 가치있는 것 아니냐고. 그만큼 우리가 우주에서 정말 소중한 존재가 되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탁 손을 쥐었을 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도 너무 가치있는 일이라는 걸 상정하고 일한 것 같아요. 그래서 상대성 이론 같은 이론을 만든 과학자는 아니지만 계속 가설을, 질문을, 인류의 인식 한계 밖의 질문을 계속 던지고. 결국 잡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자체가 너무 훌륭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상준(사회자):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요. 오늘 이렇게 많이 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고 아무쪼록 뭔가를 얻어가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시간 뜻 깊은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칼 세이건이라는 주제와 두 대담자의 스타성을 입증하듯 2012년 첫 ‘책 대 책’ 대담회는 구정을 앞둔 시기였음에도 참석자들이 회의실 밖에 의자를 마련해 앉아야 했을 정도로 열기 있게 진행되었습니다. 내용적으로도 배명훈 작가와 박상준 SF아카이브 대표가 풀어놓은 과학 소설에 대한 입장에서 칼 세이건의 가족과도 내밀한 만남을 가진 이명현 사무국장이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을 그의 개인사까지, 칼 세이건이라는 인물의 팬뿐만 아니라 대담자분의 팬까지 모두 만족할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넘치는 자리였습니다.
『칼 세이건』의 부제인 코스모스를 향한 열정에서도 알 수 있듯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단어는 ‘열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일생을 바쳤음에도 그의 열정은 결국 꿈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전 세계로 퍼져 수많은 ‘코스모스 키드’에게 미지의 세계와 생명에 대한 또 다른 열정을 심어 주었습니다. 이번 대담회는 그의 열정이 이룬 성취를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대한민국 과학계와 과학 소설계에 그 열정을 이어받은 ‘타워 키드’, ‘끼익끼익 키드’들이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대담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번 대담회에서는 그가 직접 쓴 과학 소설인 『콘택트』와 논픽션 작가 윌리엄 파운드스톤이 쓴 전기 『칼 세이건』을 통해 칼 세이건이란 인물을 탐구해 보았습니다. 전 세계 60개국에서 6억 명의 시청자가 지켜본 과학 다큐멘터리의 제작자이면서 또한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과학 대중서의 저자라는 불멸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칼 세이건이지만, ‘이미지와 행운에 기반한 공명심에 빠진 뻔뻔한 사람이자 부랑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가 붙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런 모순적인 요소 뒤에 감추어진 진정한 그의 모습을 알아보기 위해 2010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받은 배명훈 과학 소설 작가가 『콘택트』 SETI 코리아 조직위원회 사무국장인 이명현 박사님이 『칼 세이건』으로 1월 2일 각기 서평을 쓰고 대담자로 나섰으며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가 사회를 맡았습니다.
세 분에 대한 간단한 소개 후, 본격적인 대담이 시작되었습니다.
박상준(사회자): 자리를 꽉 채워 주실 정도로 뜨거우신 여러분의 열정에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책 대 책” 행사가 대개 과학자 두 명의 저작으로 배틀을 붙이는 식이었던 걸로 아는데요. 이번에는 독특하게 칼 세이건이라는 한 과학자를 다룬 두 책이 주제입니다.
제 또래 세대를 흔히 ‘코스모스 키드’ 라고 하는데요. 저도 그랬습니다. 『콘택트』가 정식 한국어판 소설로는 최초이지만 1980년대에 제가 알기에는 최소한 세 종의 한국어판이 나왔습니다. 저는 물론 그걸 다 읽었고요. 비록 과학자의 길을 걷지는 못했지만 『코스모스』를 같이 보면서 천문학의 꿈을 키웠던 친구 중에는 훌륭한 천체물리학자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저희 세대에게 칼 세이건이라는 사람이 주는 의미는 굉장합니다.
두 분께서는 『코스모스』를 각각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배명훈(콘택트): 과학 소설을 쓰다 보면 그런 질문을 종종 받아요. “과학책 많이 읽으세요?” 돌아보면 저는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 백과사전을 찾아보는 아이여서 한 권을 딱 집어 말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코스모스』를 이야기하기 시작했거든요. 물론 저는 두 분보다는 약간…… 파도가 한 차례 지나가고 난 후라고 해야 할까요? 『코스모스』가 중학교 필독서처럼 되어서 엄마들이 집에다 한 권씩 사 놓던 시절이었거든요. 다 가지고 있긴 한데 읽은 사람은 없는. 저는 그걸 읽었던 기억이 나요.
사실 구체적으로 뭘 읽었는지는 기억이 결락되어 있었는데 요번에 다시 읽다 보니까 핵겨울을 여기서 본 거더라고요. 다른 행성에 관한 이야기는 그동안 어디서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 보니 그게 『코스모스』의 내용이 잠재되어 있다가 나온 것 같아요. 책을 보면 세이건이 여러 영역을 넘나들면서 정리해 놨잖아요? 생물학과 물리학과 천문학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정리한 책을 읽고 나니 학교 수업 내용이 다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과학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과학을 굉장히 재미있게 공부했습니다. 그런 경험으로 “우리 아이에게 어떤 책을 추천해 줄까요?”란 질문을 받으면 항상 “코스모스요.”라고 대답한 기억이 납니다.
박상준(사회자): 세이건은 『코스모스』로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누리던 상황에서 『콘택트』를 집필하면서 웬만한 작가 이상의 엄청난 선인세를 받았는데 과학 소설이라고 하는 장르의 애호가로서 보기에 『콘택트』에는 조금 흥미로운 점이 있어요. 단적으로 말해서 과학 소설에서 최고로 치는 작품하고 동급에 오를 정도로 훌륭하냐고 하면 냉정하게 그 정도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의의는 한 과학자가 자신이 평생을 통해 추구했던 ‘지적인 외계 고등 문명과의 접촉’이 일어날 수 있는 개연적인 시나리오를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가장 그럴듯하게 서술했다는 데 있는 듯한데요. 작가로서 배명훈 작가님은 『콘택트』를 읽고 어떤 점을 느끼셨는지 질문 드립니다.
일상에 가까운 미학
배명훈(콘택트): 소설가로서는 분명히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약에 제가 이 원고를 출판사에 내밀었다면 삭제하라는 소리를 들었을 부분이 굉장히 많이 보입니다. 뭐랄까요, 소설가가 생각하는 미학적인 초반부 전개하고는 굉장히 다른 재미를 가지고 가는 것 같아요. 어떤 게 재미있느냐면 세이건이 젊었을 때 주장한 틀린 가설들 있죠. 화성의 어두운 부분을 해석하는 그런 것들을 정확한 데이터가 없는데 설명하려고 몇 년간 주장하다가 나중에 전혀 아니라 해서 폐기되는. 사실은 그런 과정 하나하나가 재밌거든요. 소설가들이 사용하는 장치가 아니라 진짜로 과학을 해본 사람만이 던질 수 있는 일상에 가까운 그런 미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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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마지막에서는 과학 소설 작가들이 언제나 신경 쓰는 ‘경이감’에 접근하려고 하거든요. 일반인은 과학 소설이 상상력의 장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아요. 그렇게 알려졌는데 막상 실제 창작에서는 상상력만 가지고는 결론을 낼 수가 없거든요. 『콘택트』에서는 앞부분에 있는 굉장히 매력적인 재료를 착착 쌓아 나가면서 마지막에 경외감이 들도록 배치해요. 신호를 받았을 때 이게 진짜 외계에서 온 신호라는 것을 확신하는 과정 같은 게 굉장히 재미있는데 이게 진짜로 해 본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가 느끼기에 재미있었던 대목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아마 플롯을 더 복잡하게 하는 식으로 갔을 거예요. 그래서 다른 방식, 다른 작법으로 가도 훌륭한 글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상준(사회자): 이명현 박사님께서는 과학자로 외계 생명을 직접 연구하시는 입장에서 『콘택트』를 어떻게 읽으셨나요?
이명현(칼 세이건): 저는 책을 읽으면서 마치 제가 강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배명훈 작가님이 말씀하시기를 소소한 장치들이 들어갔다고 하셨는데, 그게 이런 거죠.
이게 텔레비전 드라마라면 어떤 신호가 발견되었을 때 그 신호의 경이로움으로 사람들이 뛰어 다닌다든가 그것으로부터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에 초점을 맞출 텐데 『콘택트』에서는 과연 그들은 신호를 어떻게 보냈으며 그걸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해독하려면 우주 보편적인 언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무엇인지, 수학이라면 수학 중에서도 뭔지 이런 것들을, 현장에서 과학자들이 늘 생각하는 그런 것들을 100여 페이지에 걸쳐서 차분하게 잘 풀어놓았어요. 이게 굉장히 리듬감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이러다가 또 큰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대답을 소소하게 해 나가고. 그래서 과학자들의 생생한 모습, 과학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가장 사실적으로 그려 주는 그런 작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상준(사회자): 『콘택트』가 과학자가 좋아하는 과학 소설일 수는 있는데 작가 칼 세이건을 과학자들이 과연 좋아했을까? 이게 또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칼 세이건도 피력한 바가 있지만, 처음에 일반 대중에게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하려고 했을 때 많은 동료가 손가락질했다는 거예요. 그 이면에는 학문적이고 뭐랄까 이쪽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만이 알고 있는 지식을 하나의 기득권으로 생각해서 이걸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거죠. 그런 것에 반기를 들고 과학을 널리 계몽하는, 계몽이란 표현을 이때는 써도 될 것 같은데 알리고 쉽게 전달하는 이런 프로그램을 했던 것이 칼 세이건의 큰 공적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점을 지금까지도 어떤 과학자들은 쇼 비즈니스라면서 낮춰 보는 게 있단 말이죠.
이명현 선생님은 과학 공부를 박사과정까지 하셨고 지금도 과학계에서 활동하시니까 과학자 칼 세이건에 대해서 부정적인 증언도 접해 보신 적은 있는지 한번 말씀을 들었으면 하네요.
세이건은 훌륭한 과학자였다
이명현(칼 세이건): 그가 물론 쇼 비즈니스의 달인이기는 했지요. 한 예로 『코스모스』 텔레비전 시리즈를 만들기 위해서 코넬 대학교를 2년간 휴직해요. 캘리포니아로 가서 할리우드에 아예 상주하면서 1년을 더 연장해서 3년 동안 그 작업만 해요. 연구를 안 하고. 칼 세이건 프로덕션이라는 회사도 차리고요. 그 과정에서 여러 건의 소송에도 휘말리기도 하고 하여간 굉장히 이문에 밝았던 사람입니다. 뇌과학에 대한 책을 써서 퓰리처상도 받아요. 과학책으로서는 에드워드 윌슨보다 먼저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시기를 받지요. 그쪽 분야 사람들에게서.
그런데 우리가 그에 대해서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굉장히 훌륭한 과학자라는 거예요.
칼 세이건이라는 사람이 가졌던 학문적인 소질이 굉장히 뛰어났고요. 이 사람의 박사학위 논문이 네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목이 ‘행성 과학의 연구’에요. 하나는 달에서의 유기화학 물질. 달에 생명체가 있느냐 그런 거고. 금성 대기에 관한 게 있어요. 흔히 우리가 온난화 이야기하잖아요. 온실효과. 이런 단어가 생겨난 것도 금성의 대기를 연구한 칼 세이건의 연구결과로부터 나온 것이거든요. 그게 나중에 핵겨울하고도 연결됩니다. 또 하나는 달의 오염 문제. 그러니까 로켓을 쏘면 여기에 박테리아 같은 것이 묻어가서 달에 도착하는 순간 달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우리가 찾고자 하는 생명체를 놓친다는 거죠. 그런 것도 내용에 있고요. 우주 생물학에서 쟁점이 되는 모든 분야가 이 사람의 박사 논문에 다 들어 있어요. 사실은 현대 우주 생물학의 기반을 아주 정량적으로, 특히 행성 과학 쪽에서 다져 간 사람이구요. 모든 현장에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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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20대 중반부터 외계 생명체에 관련한 중요 사건마다 현장에 항상 있어요. 박사학위 논문이 안 끝났는데도 유전학자의 연구실에서 공부를 해요. 천문학 전공을 하면서도. 해럴드 유리와 스탠리 밀러라고 생명 발생 실험을 한 팀에서도 연구하고요. 나중에는 소행성 134340(명왕성) 근처에 여러 소행성이 밀집한 영역을 카이퍼 벨트라고 제안한 당시 미국의 유일한 행성 과학자 제러드 카이퍼하고 작업을 해요. 조금 지나서는 또 자기가 천문학자이면서 프린스턴 의과 대학교에 연구하러 가요. 이 정도로 모든 분야에 손을 대면서도 인도 출신 천문학자 찬드라세카르하고도 교류하고. 레더버그라고 하는 굉장히 유명한 생물학자의 대변인을 맡아서 그가 NASA에 우주 생물학 분과를 만들 때 세이건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거든요. 그때가 20대 후반이에요. 아주 중요한 사람들을 다 만나고 다녀요. 협력을 굉장히 잘했던 것 같아요. 천문학자지만 생물학에 굉장히 조예가 깊어서 생물학과 천문학을 연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그야말로 융합적인 거죠. 학제간의 그런 팀을 조직을 했었고.
반면에 또 여러 사람이 증언하는 것을 보면 굉장히 고집이 세고 가부장적이고 무책임하고 약속을 해 놓고서 안 나타난다든지 하는 일이 많았대요. 인간적으로는 굉장히 가부장적이었던 사람이고 자기 성취 욕구가 굉장히 강했던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를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대중의 인기를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 되었던 것 같고요.
박상준(사회자): 칼 세이건이 문제적 인간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말만 페미니스트고 진보주의자였지 실제 생활은 전혀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칼 세이건이 개인사가 좀 파란만장하잖아요. 결혼도 한 번만 한 게 아니었고. 이런 증언은 와이프 중 한 사람의 입에서도 나온 이야기였기 때문에 우리가 완전히 무시할 수가 없죠. 제가 어렸던 시절에도 국내에 아직 번역 안 된 원서를 보다 보면 ‘어? 『코스모스』에서 분명히 헌사가 얜 드루얀에게였는데 1970년대에 나온 책을 보니까 린다 살츠먼 세이건에게라고 있다. 이 여자는 또 누구지?’ 이런 기억이 있었어요. 코스모스 키드들에게는 앤 드루얀에게 바치는 헌사의 문구가 아마 아시는 분들은 알 겁니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당신과 함께 살아 있는 것을 기뻐하면서.” 아주 감동적인. 저도 어릴 적에 많이 써먹었습니다.
이렇게 그 사람의 업적뿐만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파란만장한 개인사들이 배명훈 작가님처럼 이야기를 창작하시는 입장에서는 그 자체로 좋은 재료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전기를 읽기 전에는 크게 관심을 덜 두시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저는 드는데 전기를 읽고 나서 칼 세이건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시면서 그것이 과학 소설을 쓰면서 거기에서 묘사해 왔던 과학자상이라던가 또는 이를테면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던가 이런 식의 약간은 상투적인 과학자상에 변화를 줄 여지가 개인적으로 있었는지 질문 드립니다.
천문학자, 제일 지구인에 가까운 직업
배명훈(콘택트): 저도 과학자들의 실제 모습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다가 몇 년 전에야 천문대에 가서 선생님들이 하시는 것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아 여기 되게 재밌는 데네?’라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그전에는 사실 잘 모르는 상황이었죠.
칼 세이건의 개인사는 사실 제가 그 밑에 학생으로 들어갔으면 조금 힘들 것 같기는 해요. 잘해 주다가 실수 하나 딱 걸리면 파문하기도 하는 일화들도 책에서 봤는데 그렇게 가깝게 지내기보단 좀 불신했을 것 같기도 한데.
저는 그런 개인적인 면 말고. 그러니까 지구인으로서 저는 천문대 가서 천문학자 선생님들이 하시는 걸 보면서 ‘어 이 사람들은 진짜 제일 지구인에 가까운 직업이 이거구나.’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왜냐면 우리 생각에는 천문대에 간다는 게 뭔가 특이한 곳에 가서 상상력이 가득한 뭔가를 만날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는 천문대가 이상한 곳에 있거든요. 빛이 많이 안 드는 오지에 도시에서도 멀고 높이도 되게 높은 데에 있어요. 소백산 천문대는 심지어 공기도 희박해서 올라가면 되게 멍해지거든요. 그런 데 가서 또 우주를 보는 거니까 되게 신기하고 신나는 무언가를 하러 간다는 생각인데 실제로 하시는 것을 보면 그게 그래요. 천문학자들이 다루는 연구 대상이라는 게 똑같잖아요. 세계 어느 나라에 있던 똑같은 것을 딱 내놓고 관찰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조작하고 뭐 그런 것 없잖아요. 다 보이니까. 내가 뭘 발견했다면, 그게 확정이 되려면 지구 반대편에서도 발견하면 그냥 끝이잖아요. 그런 게 있어요. 제가 듣기로는 천문학자들의 연맹은 세계적으로도 하나로 묶여 있는데 그런 조직은 천문학계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당연한 것이 다루는 대상 자체가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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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면서 『콘택트』를 읽으니까 재미있었어요. 신호를 이게 외계 신호라는 것을 확인하고 추적하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게 국경을 넘어서 이걸 확인하는 거잖아요. 전기를 보시면 냉전 때인데도 실제로 소련 학자하고 교류했어요. 게다가 냉전의 장벽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건 제가 서평에서도 쓴 건데. 외계인이라면,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외계인이라면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신호를 보냈을까를 계속 추론해 가는 과정에서 그럼 우리는 누굴까를 묻게 되거든요. 외계의 생명체를 찾는 과정 자체가 그런 것 같아요. 저 행성에 생명체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를 찾아가다 보면 우리 지구에서 생명체가 발생한 과정이 어떻게 되나 그것을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외계인을 만나기 전에 지구인 자체가 외계인이 되어야 하는 과정이에요. 그래야 외계인이 하는 말을 한마디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세이건은 그 과정을 계속 실제로 진행했고 『콘택트』에 그게 담겨 있어요. 전 그게 굉장히 감동적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의 결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에 이르기까지 칼 세이건이 밟아가는 과정. 그래서 수학이라는 우주 보편적인 도구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접근 방식들? 그걸 보면 인간으로서 인류로서의 칼 세이건이란 사람이 굉장히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인종 문제라든지 성차별 문제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던 사람이고.
박상준(사회자): 저도 인류의 눈을 외계로 향하게 하는 차원까지 올려놓은 이 업적이 아마 우리 역사에서도 굉장히 의미심장한 조명을 받을 때가 오지 않겠슴가.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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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이 SETI 프로그램을 처음 연구하던 시절이 1960년대잖아요. 그때는 외계 문명을 학술적으로 진지하게 접근해서 연구하겠다고 하면 미치광이 소리를 들었던 시대에요. 그랬는데 세월이 흘러 칼 세이건이 작고한 1990년대 후반이 되면 SETI라는 영역이 훌륭하게 과학의 한 분야로 대접을 받고 많은 정부 예산을 들여서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와 연구 인프라를 가지고 진지하게 연구하는 분야가 되었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옛날이나 그 이후나 SETI와 관련해서 하나라도 확증이 나온 것은 아직도 없다는 거예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혀 객관적인 우주 바깥의 배경 데이터는 변한 게 없는데 그동안에 외계 문명을 탐사하는 어떤 입장, 태도가 완전히 변한 거죠. 한마디로 이단이 정통으로 됐다는 건데 여기서 사실상 1인 밴드나 다름없는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칼 세이건입니다.
그래서 칼 세이건이 SETI 연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라던가 아니면 가장 최근 SETI가 이루어 낸 어떤 성과, 그리고 외계인과 만날 날이 정말 가까워졌다고 생각을 해도 되는지 이런 것들을 간단하게 이명현 선생님에게 여쭙겠습니다.
이명현(칼 세이건): 칼 세이건은 1950년대 말에 외계 생명체 연구를 시작합니다. 외계 생명체를 찾는 분야를 지금은 우주생물학이라고 하는데 그게 막 꽃피는 시절이죠. 지구, 태양계 바깥에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있겠느냐 행성이 있어야 거기 생명체가 살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요즘에는 그런 것들이 많은 숫자가 발견이 되고요. 인터넷 치기만 하면 지구와 거의 질량과 크기가 똑같은 행성도 나오고 심지어는 굉장히 괴상한 애들도 막 나오고 그래서 세이건이 생각했던 그런 것들이 실현되고 있는 상황이죠. 외계 지적 생명체와 관련해서도 굉장히 막연했는데 이제는 지구와 거의 닮은 행성들이 발견되니까 거기다가 초점을 맞춰서 그 행성만 집중적으로 관측하는 연구들이 버클리 대학교라든지 SETI 연구소에서 시작되어서 데이터는 나오고 있어요. 발견된 것은 없지만. 또 얼마 전에는 큐리오시티라고 하는 화성 탐사선이 출발했거든요. 이번 여름쯤에 화성에 도착할 예정인데 1.9미터짜리 로봇 팔을 가지고 가요. 그래서 땅을 팔 예정이거든요. 혹시 그 속에서 물이나 미생물이 발견될지도 모르죠. 그래서 당시에는 관측할 수 없고 결론을 내릴 수 없었던 것들이 칼 세이건의 사후 15년이 흐른 지금 우리에게 몇 년 내로 임박해 있는 그런 시점인 것 같아요. 그런 혜안, 비전, 칼 세이건과 동시대의 분들이 만들어 놓았던 것이 이제야 꽃핀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상준(사회자): 이명현 박사님이 SETI 코리아에서 지금 책임자를 맡고 계시죠?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 잠깐 PC가 비는 시간에 외계인 생명체를 찾는 데 일조하는 그런 프로젝트의 한국 총 책임자를 이명현 박사님이 하고 계시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SETI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관심을 두고 좀 보시면 어느 날 소설이 현실에 나타날 수 있는 거예요. 20XX년 모월 모일 서울. 김 아무개 씨 집 PC에서 갑자기 이상한 신호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콘택트』 2 속편의 첫 문장이 그렇게 시작할 수 있는 겁니다.
이명현(칼 세이건): SETI에서 S가 search거든요. ET는 E. T.라고 영화도 있잖아요. extra terrestrial. 지구 밖이란 뜻이고 I가 intelligence여서 외계 지적 생명체. 처음에는 사실 communication의 C로 CETI라고 썼어요. communication with extra terrestrial intellig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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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금방 깨달았어요. 우주가 너무 멀어서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다는 걸. 그래서 S로 바꾼 겁니다. search, 탐색하는 거죠. 콘택트 속편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신호를 우리가 포착해서 정말 99.9% 유의한 수준에서 외계 지적 생명체가 보낸 인공 신호임을 확신한다면 그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SETI 커뮤니티에 한 반 정도는 천문학자들이고요. 나머지는 인류학자, 사회학자, 기호논리학자, 이런 분들이 많이 있고 과학 소설작가들도 많고요. 돌고래 전문가도 계십니다. 그분들이 사회에 미칠 충격에 대한 것들을 회의도 많이 하고 책도 내고요. 그런 걸 발견했을 때 우리는 무조건 오픈이에요. 기자 간담회 열어서 바로 오픈하고 다른 관측선들이 동시에 관측해서 확증하는 식으로 되고. 그다음에는 뭐 사실 너무 멀리 있으니까 발견해도 별일 없을 것 아니에요? 걱정은 안 해도 되고요. 일단 보고 체계는 그렇게 되어 있고. 그다음에는 대표성의 문제가 대단히 커요. 누가 대표해서 그것들과 접촉할 것인가가 아직도 결정되어 있지 않아요. UN에다가 그런 대사를 두어야 한다는 말도 있어서 후보자를 각축도 하고 그랬는데 아직 합의가 없고요. 우리가 보내는 콘텐츠가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느냐 과연 누가 그걸 해야 하느냐 이런 논란은 계속 있었서요. 2010년 5월에 회의를 해서 워킹 그룹을 만들었어요. 누가 대표가 될 것이냐는 이야기 중이죠.
박상준(사회자): 국적, 인종, 나이, 성별 모든 걸 초월해서 밤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바라보면서 저 외계의 별에는 어떤 외계인이 살고 있을까 우리가 그들하고 만날 기회는 있을까 그걸 평생을 다 해서 연구하고 추구하는. 그런 학문을 하시는 분들은 정말 제가 볼 때는 시인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과학 소설 번역하시는 분을 만났는데 어떤 공부를 하셨는지 여쭈었더니 “저 문과출신입니다.” 이러세요. 그래서 학과를 물었더니 “천문학 했습니다.” 하시더라고요. 반은 우스갯소리였지만 다시 생각하니 멋있는 대답 같아요.
지금 여기도 그런 멋있는 천문학을 하시는 분이 계신데 이명현 선생님은 세이건처럼 직접 소설을 쓰실 생각은 하신 적 없으신지요?
이명현(칼 세이건): 제가 사실 에세이도 쓰고 서평도 쓰는데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봐 줘요. 뭐 문예중앙 같은 문예지나 문학과 지성사 거기다가도 글을 씁니다. 그게 먹히는 이유가 전업 작가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아요. 우리 쪽은 그냥 봐 주는, 비평의 대상이 아닌 거죠. 심층적으로 파헤쳐서 할 대상이 아니니까 어 저놈 저 정도는 쓰네 하면서 봐 주는 거죠. 그런데 제가 만약 소설가로 데뷔하는 순간 온갖 날카로운 공격들이 비평들이 들어올 걸요. 그러니까 그런걸 뭐 하려 합니까. 그냥 안 쓰는 게 낫죠.
배명훈(콘택트): (『콘택트』를 집어 드시며)훌륭한 예가 여기…….
저도 과학 소설 쓰면서 항상 과학 하시는 분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책이 나오면 이명현 박사님도 그렇고 다른 선생님들 만나면 선생님들이 항상 먼저 하시는 말씀이 아 책은 사긴 했는데 아직 못 읽었다. 그러면 읽지 마시라고. 읽지 마시고 추천만 해 주시라고 이야기하거든요. 과학자분들이 이걸 읽으면 뭐라고 말할까? 그걸 생각하면 진짜 뭘 쓸 수가 없어요. 부담되죠.
하지만 그게 우리한테는 사실 잠재적인 갈등 요소지 그것으로 진짜로 배틀을 하고 있지는 않거든요. 이 ‘책 대 책’을 하면서 흥행을 하려면 뭔가 싸움을 붙여야 잘 될 텐데 그 정도는 아니고요. 그런데 항상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면은 있어요. 과학자분들께 하드 SF로 좀 더 가라는 이야기를 항상 들어요. 하드 SF가 가장 많이 팔리는 장르는 아닌데도 그것을 지향하면서 뭔가 그 주변 것을 쓰고 있어야 하는. 야구에서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에 집어넣는 투수가 꼭 잘 던지는 투수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 점을 신경 쓰면서 주변으로 이렇게 던져야 하는. 그게 제 입장이고요. 우리가 보기에는 이명현 박사님 정도 되면 글 쓰는 것 자체가 어렵지도 않으시고 하면 잘 쓰실 것 같은데 절대 안 된다는 이야기만 하시는 상황이죠.
이명현(칼 세이건): 국내에서도 과학자가 쓴 과학 소설 작품들이 있어요. 하지만 솔직히 책은 다 허접해요.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아요. 일단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못 버리는 것 같아요. 마치 강박처럼. 앞에서 나왔던 현장의 과학자들만이 아는 그런 요소들이 녹아들어 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집어넣어요. 저희가 보기에는 따분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느닷없고…… 이런 요소들이 들어가는 거죠. 작품 전체와 어울리지를 못하고 그냥 그것만 떼어 내서 강의록 만들면 좋을. 이러니까 전혀 소설이 아닌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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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는 과학자들이 기대하는 과학 소설은 사실 그전에 아이작 아시모프라던가 아서 클라크나 이런 사람들을 보면 어떤 비전을 제시했어요. 과학자들이 받아들일 만한. 그래서 그것들이 실제 과학 연구의 영역으로 넘어와서 그것들이 실현되기도 하고 거기에서 이름들을 따서 어떤 탐사 작업에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데, 요즘 과학 소설 작가들의 상상력은 과학적인 발견을 못 따라오는 것 같아요. 과학 발견을 넘어서는 과학 소설 작가의 상상력이 없는 것 같아요. 과학이 소설보다 상상력이 더 뛰어난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고나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이 자체가 소설보다 훨씬 더 과학 소설적인데 뭘 쓰라는 거냐. 그런 생각이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과학자가 소설로 넘어가기가 되게 어려운 것 같고요. 그렇게 하기보다는 배명훈 작가님처럼 이렇게 역량 있는 소설가를 잘 교육해서 최동원 투수처럼 가운데로 직구를 넣게 하는 것이 훨씬 빠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저는 배명훈 작가님을 만날 때마다 공부를 더 하라고 이야기를 해요. 처음 만날 때부터도 그랬고요. 작가님 정도 되는 역량을 갖춘 신진 과학 소설 작가라면 하드코어 SF를 써라. 그런데 요구를 하고 본전을 못 찾는 게. 대답이 하드 SF는 과학자 너희들이나 써라. 그런 식의 압력을 받아서. 그래서 배명훈 작가님이 어떤 작품을 쓰면 그 분량에 맞게 제가 해제를 쓰는 그런 형식으로 한번 해 보면 재밌지 않겠나 이런 이야기들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박상준(사회자): 결국은 우리나라 출판 시장이 참 작아서 글 쓰시는 분들이나 출판하시는 분들 다 힘들어하시는데 독자분들이 많이 좀 성원을 해 주시면 아마 두 분이 서로 이렇게 떠밀려서 쓰세요 쓰세요가 아니라 제가 쓸게요 제가 쓸게요 하고 서로 다투는 아름다운 장면이 나올지도 모르지요. 저도 보고 싶습니다. 시간상 마무리를 할 시간이 된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 두 분 혹시 오늘 꼭 하고 싶은 말씀 아직 못 하신 게 있으면 마무리 멘트를 좀 부탁을 드릴게요. 이명현 선생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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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현(칼 세이건): 인간 칼 세이건에게는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개인으로서는 그야말로 욕망의 화신이었지만 과학적인 면이나 그의 협력 구도 같은 것을 모두 보면 굉장히 멋진 사람임을 부정할 수 없죠. 저는 살아 있을 때 잡지를 통해 소식을 들으면서, 책을 읽으면서, 죽은 다음에도, 지금도 이 사람에게는 굉장히 그립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에게 굉장히 그리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사람이 가지고 있던 뭐라 할까 닿을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아련한 생각들? 그러니까 외계 생명체를 찾아 나가는 과정인데 자신은 굉장히 성공한 과학자라고 하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외계 생명체를 탐색했던 과학자로서 성공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지금에 와서야 그가 꿈꾸던 지구와 엇비슷한 행성들이 발견되기 시작하고. 화성 탐사는 처참하게, 17년 동안 다시 못 할 정도로 처참하게 실패했고요. SETI 프로젝트도 이제야 그게 피어나는 것이거든요. 그런 꿈, 실패해 가는 꿈들을 굳건히 지켜나갔던 사람이어서 늘 이런 작업을 하면서도 굉장히 그립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배명훈(콘택트): 칼 세이건은 손을 뻗어서 잡았을 때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거의…… 거의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다는 것만 계속 발견한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화성의 흙을 가져다가 실험을 계속 반복하지만 결론은 생명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판단을 못 내리겠다는 결론. 보이저 우주선에 실을 레코드에다가 음악도 선정하고 전 세계의 인사말을 UN 직원들을 통해 녹음해서 우주로 보내는 프로젝트. 그걸 누가 보겠어요. 그런데도 그 과정이 굉장히 쉽지 않고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고. 계속 발목므 잡는 외교적 행정적 문제를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면서 이혼 발표 날짜까지 조정해 가면서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해서 발사를 했어요. 그러고 나서도 사실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콘택트』에 그런 내용이 나와요. 다른 천문학자들이 전파망원경을 쓸데없는 데에다 쓰지 말고 쓸모 있는 연구 하게 시간을 다른 쪽으로 돌려 달라고 하니까 외계문명 탐구를 계속해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우주에 생명체가 없다는 것을 정말로 찾아내면 그 또한 가치있는 것 아니냐고. 그만큼 우리가 우주에서 정말 소중한 존재가 되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탁 손을 쥐었을 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도 너무 가치있는 일이라는 걸 상정하고 일한 것 같아요. 그래서 상대성 이론 같은 이론을 만든 과학자는 아니지만 계속 가설을, 질문을, 인류의 인식 한계 밖의 질문을 계속 던지고. 결국 잡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자체가 너무 훌륭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상준(사회자):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요. 오늘 이렇게 많이 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고 아무쪼록 뭔가를 얻어가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시간 뜻 깊은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칼 세이건이라는 주제와 두 대담자의 스타성을 입증하듯 2012년 첫 ‘책 대 책’ 대담회는 구정을 앞둔 시기였음에도 참석자들이 회의실 밖에 의자를 마련해 앉아야 했을 정도로 열기 있게 진행되었습니다. 내용적으로도 배명훈 작가와 박상준 SF아카이브 대표가 풀어놓은 과학 소설에 대한 입장에서 칼 세이건의 가족과도 내밀한 만남을 가진 이명현 사무국장이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을 그의 개인사까지, 칼 세이건이라는 인물의 팬뿐만 아니라 대담자분의 팬까지 모두 만족할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넘치는 자리였습니다.
『칼 세이건』의 부제인 코스모스를 향한 열정에서도 알 수 있듯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단어는 ‘열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일생을 바쳤음에도 그의 열정은 결국 꿈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전 세계로 퍼져 수많은 ‘코스모스 키드’에게 미지의 세계와 생명에 대한 또 다른 열정을 심어 주었습니다. 이번 대담회는 그의 열정이 이룬 성취를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대한민국 과학계와 과학 소설계에 그 열정을 이어받은 ‘타워 키드’, ‘끼익끼익 키드’들이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대담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습니다.
6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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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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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5
오해받고 이해받지 못한 부분들은 그게 평범한 행보를 선택하지 않은 순간부터 예정되었던 것일테구요.
천사
201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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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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