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총각 결혼보다 더 어려운 막걸리!” - 성석제 작가와의 취중토크 『칼과 황홀』: 해학으로 우려낸 곡주에 취하다
술은 편을 가르지 않는다. 좋은 일에도 슬픈 일에도 함께하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나누지 않는다. 또한, 술은 인생의 압축판이니 마시다 보면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술은 신의가 있는 친구가 아니니 너무 믿어서는 곤란하다.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가 금세 후회와 낙심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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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편을 가르지 않는다. 좋은 일에도 슬픈 일에도 함께하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나누지 않는다. 또한, 술은 인생의 압축판이니 마시다 보면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술은 신의가 있는 친구가 아니니 너무 믿어서는 곤란하다.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가 금세 후회와 낙심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칼과 황홀』



이 시대의 이야기꾼. 해학과 풍자로 삶을 담아내는 성석제 작가와의 만남이 마포에 있는 막걸릿집에서 있었다. 막걸리는 성석제 작가가 직접 제안한 술이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올 수 있다는 이번 행사에 당첨된 10명의 독자가 모두 모이자, 막걸리에 돼지수육 그리고 파전이 차례로 나왔다. 그리고 가장 좋은 안주 하나가 남았다. 모두 성석제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기대하며 의자를 바짝 끌어당겼다.

“주량은 막걸리를 기준으로 2리터짜리 두 주전자 정도 돼요. 도수가 낮은 술을 좋아하는데, 가장 좋아하는 건 막걸리와 맥주입니다.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술이기도 하죠.”



“막걸리가 되는 것은 처녀와 총각이 만나서
결혼하기보다 어렵습니다”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 12도짜리 원주와 6도짜리 일반 막걸리가 있었는데 우리는 원주로 시작했다. 한두 잔 술이 들어가자 금세 분위기기 무르익었다. 성석제 작가는 막걸리에 대한 추억부터 풀어놓았다.


성석제 작가는 경상북도 상주에서 나고 자랐다. 성석제 작가의 할머니는 농번기의 일꾼들에게 주기 위해서 막걸리를 빚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맛본 막걸리 덕에 성석제 작가는 대학 시절부터 주선(酒仙)들 사이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할머니께서 막걸리를 잘 담그셨어요. 저는 열 살 정도부터 할머니가 막걸리 담그시는 걸 도와드렸죠. 그래서 막걸리 제조 과정을 꿰뚫고 있어요. 막걸리는 제조 과정이 원만하게 이뤄지는 술이 아니에요. 막걸리가 되는 것은 처녀와 총각이 만나서 결혼하기보다 어렵습니다. 제조 과정 중에 상하는 경우도 많고,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메틸알코올이 나오기도 합니다. 메틸알코올은 숙취와 장염을 일으키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안 좋은 성분이죠. 메틸알코올을 중화시키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오래 묵히는 겁니다. 묵히면 효모가 작용해서 메틸알코올의 해로운 성분을 없애주거든요. 하지만 막걸리를 오래 묵힐 수는 없으니 동네에서 정평이 난 맛이 좋은 막걸리를 얻어 와서 숙성시킬 때 함께 넣습니다. 좋은 술에 담겨 있는 효모는 마치 종갓집의 불씨처럼 계속해서 내려오는 거지요.”

성석제 작가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인후염으로 고생한 후에 담배를 끊었다 한다. 대신 종종 마시는 술이 삶의 위로가 되었다. 성석제 작가의 단편소설 <술 마시는 인간>에서는 술을 마시고 의식이 흐려지는 과정을 ‘해방’이라 표현했다.

“술과 문학은 둘 다 사람의 마음을 뜨게 하죠. 어려운 말로는 고양시킨다고도 하고요. 사람을 반쯤 죽이기도 하지만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현실로부터 해방시키는 열쇠가 되죠.”



“한 끼 식사가 예술 이상의 감동을 주기도 하죠”

술은 가성(假性) 죽음이다. 술은 꿈의 유사품이다. 고금의 재사(才士) 대부분이 술과 친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칼과 황홀』 p.272)



성석제 작가를 이 시대의 이야기꾼이라 한다. 그의 책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익숙하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활기찬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건 우울함이 아니라, 유머라는 것을 그의 소설은 보여준다.

“웃음과 슬픔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 아닐까요. 실제 삶에선 슬픔이 훨씬 더 많죠. 그러나 문학에 슬픔이 지나치게 들어가면 과장되기 쉬워요. 해학이 비극을 더욱 비극답게 만들어 줍니다.”

성석제 작가의 소설은 술술 읽혀나간다. 최근에 그가 발표한 에세이들은 처음부터 읽지 않더라도 어느 부분이나 재미가 있다. 성석제 작가는 어떻게 글을 쓸까.

“글 쓰는 특별한 습관이 있지는 않아요. 다만, 원고가 주어지면 끝내기 전까지는 굉장히 긴장을 해요. 어떤 식으로든 빨리 끝을 내려고 하죠. 그래야 마음이 편해요. 안 그러면 계속 마음에 걸려 있어요. 그리고 가급적이면 쓸 수 있겠다 싶은 것만 쓰겠다고 해요. 언제까지 이렇게 호기를 부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제가 잘 쓸 수 있는 것들을 골라서 쓰다 보니 쉽게 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거 같네요.”

성석제 작가는 억지로 작품을 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특히 연재는 그에게 큰 부담을 준다는 것. 하지만 최근의 에세이와 내년에 발표될 장편소설은 모두 연재를 통해서 탈고한 작품이다. 이에 대해 성석제는 “저는 억지로 작품을 써야 잘 써지나 봐요” 하며 웃는다. 성석제 작가는 최근에 펴낸 에세이집 『칼과 황홀』에서 음식에 대한 그의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무슨 연유로 음식 이야기를 쓰게 된 걸까.

“때로는 한 끼의 식사가 음악을 듣거나 미술작품을 보는 것 이상의 감동을 주기도 하죠.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해요. 그리고 책에는 제가 기행한 맛집에 대한 정보도 수록되어 있어요. 행여 드셔 보시고 맛이 없더라도 제게 전화해서 욕하는 건 자제해 주세요(웃음).”



“해장에 가장 좋은 것은 시간입니다”

8명의 여성독자와 2명의 남성독자가 모인 자리. 막걸리 원주가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탓인지, 분위기는 무르익어 이미 가족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성석제 작가님’에서 ‘성석제 오빠’로 넘어가는 분위기. “작가님 너무 미남이세요!”, “너무 동안이세요!” 칭찬 난발에 선물 공세까지. 이래저래 기분 좋아 건배! 『칼과 황홀』 출간을 기념하며 건배! 건강을 위해 건배!
성석제 작가도 술이 오르는지 술잔을 올리는 손의 속도가 많이 느려졌다. 한 여성 독자가 성석제 작가의 손에 주목한다.

“손이 투박하죠. 어릴 때 농사를… 짓지는 않았고요(웃음). 그래도 농부의 후손이다 보니까 유전자가 이렇게 짤막하고 투박한 손을 만들었네요. 그런데 막걸리가 좀 센가요?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맥이 탁 풀리네요.”

이야기가 슬슬 바로 해장으로 넘어간다. 독자들의 해장 법도 가지가지. “치킨으로 해장해요!”, “난 피자로 하는데!”, “라면이 최고지요” 만만치 않은 yes24 독자들. 그렇다면 성석제 작가의 해장법은?

“해장 음식은 맵고 국물 있는 걸 좋아해요. 수박과 감도 해장에 좋다고 하더군요. 혹시 도라지로 해장해 보셨나요? 저는 해장에 도라지도 좋더라고요.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해장에 가장 좋은 것은 시간입니다.”

막걸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노동이나 운동으로 땀을 흘린 뒤에 마시는 생활의 술이다. 생활에 중독되는 일이 없듯 순전히 막걸리 때문에 중독이 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 막걸리는 생활이다. 생이다. ( 『칼과 황홀』 p.286)



성석제 작가는 주사가 있을까? 살아오면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은? 귀신과도 술 한 잔 나눈다는 주신(酒神) 이확재 어른의 정체는? 대학 시절 문학 공모에 불만이 생겨서 심사위원을 찾아갔다던데… 『칼과 황홀』에는 성석제 작가가 들려주는 군침 도는 세상만사가 가득하다.



#칼과 황홀 #성석제
1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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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jmcp25

2011.11.28

한 끼의 식사가 예술 이상의 감동을 주기도 한다는 작가의 말이 그동안 무심코 먹었던 음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시간을 주는것 같습니다. 작가와 독자들이 막걸리를 마시며 좋은 시간을 보낸것 같아요. 작가가 자신에 대해 독자들에게 얘기해주고 술에 대한 철학을 얘기하는 재밌고도 정이 있는 시간이었던것 같습니다. 인간적이고 사람풍경이 그리워지는 칼과 황홀책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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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아자

2011.11.27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로 처음 접했고 그 담에 인간적이다를 읽었는데...첫 느낌이 좋았는지 여전히 황만근에 남아요.
그후 신간이 이리도 많이 나왔군요.
저는 술도 못하지만(안하고싶은 맘이 더 많아요)...시골의 친정아버지께서 젊은날은 안 그러시더니 칠순이 지난주에 넘으셨는데, 실수를 많이 하시네요. 제가 보건대 알콜성 치매증상이 나타나시는게 아닌가 싶게 폭음을 하시면 기억을 못하시고...오로지 막걸리만 드신답니다. 술의 ㅅ자도 싫은 이유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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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1.11.25

성작가님과 막걸리 한잔~ 훈훈한 만남이였네요. 성작가님 앞으로 고운글 자주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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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으며,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에 [문학사상]에 시 「유리닦는 사람」을, 1995년 [문학동네] 여름호에 단편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소설가로서의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평론가 우찬제는 그를 거짓과 참, 상상과 실제, 농담과 진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경계선을 미묘하게 넘나드는 개성적인 이야기꾼이며, 현실의 온갖 고통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올바로 성찰하면서도 그것을 웃으며 즐길 줄 아는 작가라 평했다. 또한 평론가 문혜원은 “성석제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농담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막힘없이 풀어놓으며 "마치 무협지의 고수들처럼"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입담을 펼친다.”라고 전한다. 이런 평론가들의 말처럼 성석제는 미묘한 경계선을 거닐면서 재미난 입담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 『소풍』은 흥겨운 입담과 날렵한 필치가 빛나는 산문집이다. 저자는 음식을 만들고 먹고 나누고 기억하는 행위가 곧 일상을 떠나 마음의 고삐를 풀어놓고 한가로운 순간을 음미하는 소풍과 같다고 말한다. 음식은 “추억의 예술이며 오감이 총동원되는 총체예술”이며, “필연코 한 개인의 본질적인 조건에까지 뿌리가 닿아 있다”는 지론은 곧 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사람살이의 다양한 세목을 되살려온 성석제 소설세계와 상통한다. 십수년간 각종 매체에 연재하며 갖가지 음식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낸 작업이 ‘음식의 맛, 사람의 맛, 세상의 맛’을 함께 음미하게 한다. 단편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모든 면에서 평균치에 못 미치는 농부 황만근의 일생을 묘비명의 형식을 삽입해 서술한 표제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포함하여, 한 친목계 모임에서 우연히 벌어진 조직폭력배들과의 한판 싸움을 그린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 돈많은 과부와 결혼해 잘살아보려던 한 입주과외 대학생이 차례로 유복한 집안의 여성들을 만나 겪는 일을 그린 「욕탕의 여인들」, 세상의 경계선상을 떠도는 괴이한 인물들의 모습을 담은 「책」, 「천애윤락」,「천하제일 남가이」등 2년여 동안 발표한 일곱 편의 중 · 단편을 한 권으로 엮었다. 이번 작품집도 예외없이 세상의 통념과 질서를 향해 작가 특유의 유쾌한 펀치를 날리는데, 비극과 희극, 해학과 풍자 사이를 종횡무진한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이후 성석제가 3년간 발표한 단편들을 모았다. 혼기에 이른 맏딸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이야기와 딸이 어머니에게 읽어드리는 옛이야기를 교차 시키며 유려하게 텍스트를 직조해낸 표제작을 비롯, 제49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내 고운 벗님' 등 총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기성의 통념과 가치를 뒤집는 화려한 수사와 “웃음의 모든 차원을 자유자재로 열어놓는 말의 부림”으로 우리 주변에 있음직한 각양각색 인물들의 삶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표면에 드러나는 유쾌한 재미와 해학, 풍자 밑에는 세상을 보는 날카로운 통찰이 번뜩이기도 하고 그리움이나 인간을 향한 건강하고 따뜻한 시선이 은근히 깔려 있다. 이외의 소설집으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새가 되었네』 『재미나는 인생』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 『호랑이를 봤다』 『홀림』 『지금 행복해』 『첫사랑』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참말로 좋은 날』 『이 인간이 정말』 『믜리도 괴리도 업시』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 등과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궁전의 새』 『순정』 『인간의 힘』 『도망자 이치도』 『위풍당당』 『투명인간』 『왕은 안녕하시다』(전2권) 등, 산문집 『소풍』 『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칼과 황홀』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근데 사실 조금은 굉장하고 영원할 이야기』 등이 있으며, 명문장들을 가려 뽑아 묶은 『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이 있다. 1997년 단편 「유랑」으로 제30회 한국일보문학상을, 2000년 「홀림」으로 제13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고, 2001년 단편「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제2회 이효석문학상, 같은 작품으로 2002년 제33회 동인문학상을 받았으며, 2004년 「내 고운 벗님」으로 제49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