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고독할 때는 누구라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 외롭게 홀로 앉아
그곳엔 불쌍하신 우리 어머님, 가엽게 죽은 우리 무남이 방실방실 웃고 있을까. 나는 죽어 백조가 되어 훨훨 날아갈 수만 있다면 이별 없는 그곳에 내리고 싶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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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또 올게
홍영녀,황안나 공저
우리는 왜 그렇게 자식 노릇에 서툴렀을까.
'엄마'를 소재로 각종 출판물과 공연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어느 것 하나 식상하다거나 지겹다거나 하지 않는 걸 보면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각별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책 역시 남다른 '엄마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엄마, 할머니, 외할머니의 이야기인 듯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1
그 먼 곳, 그곳은 어딘가.
그곳엔 불쌍하신 우리 어머님
근심걱정 잊고 계실까.
가엽게 죽은 우리 무남이
방실방실 웃고 있을까.
나는 죽어 백조가 되어
훨훨 날아갈 수만 있다면
이별 없는 그곳에 내리고 싶다.

2
이별의 끝은 어딘가요.
어떻게 지난날을 살아왔는지 나도 몰라.
그 외롭고 거센 바람을 헤치고, 눈보라 가시덤불을 헤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도 몰라, 몰라, 너무 허무해.
아기는 잠들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에 곤한 아기 잠 깨울까 두려웠다.
겨울, 얼어붙은 달빛 강, 쓸쓸한 겨울 강.

3
이 길로 가면 너무너무 지루하다.
이제는 좀 다른 길로 가련다.
지루한 생활을 바꾸고 싶다.
평소의 답답한 길 되돌아본다.

이 길은 쓸쓸한 길, 외롭고 허망하였다.
언제나 허전함을 못 이겨 남몰래 눈물지으며 걸어온 길.
아무도 모른다.
여러 남매들은 하노라 하여도
나는 언제나 줄에 앉은 새의 몸 같다.

4
나는 바깥세상을 모르고 산다.
젊어서는 일에 휘말려서 그랬고,
칠십 고개, 팔십 고개 되니,
늙고 병들어 바깥세상을 모르고 산다.
일생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숨이 막히게 살았다.
헐벗고 주접에 싸여 사람 구실을 못하였다.
새는 둥지를 벗어나야 훨훨 날아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물고기는 물이 있어야 헤엄을 친다.
나의 이 답답한 신세 한탄만 는다.
그 누구를 원망 하겠나, 다 내 운명인 것을 어쩌겠나.
이렇게 사는 날까지 사는 거다.

5
인간은 외롭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도,
좋아하는 이들이 옆에 있어도,
그것은 영원하지 못한 한순간의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외롭기 마련이다.

6
갈대꽃 마른가지 서그럭 서그럭 부딪치는 소리는
내 가슴에 외로움이 서그럭 서그럭 부딪치는 소리.

7
외롭고 고독할 때는
누구라도 아무라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땅을 기어 다니는 개미도 반갑고
나뭇가지에 앉은 새도 반갑다.
구름도 바람도 꽃도 나무도 모두 내 친구다.

8
오늘은 전화 한 통도 없고 찾아오는 이도 없었다.
외딴섬에 혼자 버려진 것 같다.

9
내 생활은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오늘 같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
어디 갈 곳도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하는 일도 매일 똑같다.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사는 것이 안타깝다.
소중한 하루하루를 이렇게 허비하니까
괜히 초조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다.

10
아름다운 꽃은
인간들의 오욕을 모두 버렸기에 아름답다.
외롭게 홀로 앉은 수행자,
외롭다는 생각마저 버렸기에 자유로웠다.





#엄마 나 또 올게
9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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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

2011.10.13

시에서 쓸쓸하면서 한편으로 담담한 노년의 외로움이 느껴지네요. 노년의 외로움은 그것에 공감해줄 누군가가 그 전보다 더 필요할것 같은데 자연과 더불어 자식들이 좋은 친구가 되어주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치 않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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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비

2011.10.12

사진이 시선을 사로 잡네요.
모종삽을 들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떠오르네요.
보고 싶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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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글이

2011.10.12

한 줄 한 줄 마음이 담겨진 시에서 그리움이 많이 묻어나 보이네요. 이승에서의 괴롭고 힘든 일들 다 잊으시고 가신 그곳에서 먼저 가서 기다린 아들 무남이와 행복한 생활을 하고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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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또 올게

<홍영녀>,<황안나> 공저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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