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귀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핑크 플로이드는 시대와 역사를 가로질렀다. 록의 전성기 1960년대에 비틀스가 있었다면 황금기 1970년대는 핑크 플로이드가 우뚝 서있었다.
글ㆍ사진 이즘
201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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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 말할 수 없는 거대한 이름, 핑크 플로이드. 전 세계 2억장의 음반 판매고, 4장의 빌보드 앨범차트 1위,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최초의 싱글차트 정상 등극 등이 가리키는 수치와 그래프만으로 거룩한 게 아니다. 그들은 음악 그 자체로 위대했다.

음악은 먼저 1970년대 당시 수준에서는, 아니 지금도 ‘경이로운 사운드’가 있었다. 「Echoes」, 「Time」, 「Shine on you crazy diamond part1-7」 등이 웅변하듯 그 진보적인(Progressive) 사운드는 사실과 추상을 넘나들었다. 그것은 혁신이었다. 막연히 시대를 앞서간 사운드만을 내세운 게 아니라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 「Goodbye blue sky」, 「Welcome to the machine」, 「Money」 등을 통해 날과 촉이 선 시각으로 현대 산업사회를 투시해 들어가는 고도의 ‘주제 의식’ 또한 확립했다.

메시지와 사운드가 최적으로 동반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은 단순한 록 밴드가 아닌, 지적이며 사회적인 록 밴드의 품격을 내뿜었다. ‘음악성’과 ‘사회성’의 절묘한 융합을 꾀한 것이다. 그리하여 거대사회의 억압적 틀에 갇힌, 소외된 1970-80년대의 사람들의 뇌와 가슴에 해방공간을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그 청각적인 충격을 시각적인 미학으로 전환한 전대미문의 공연을 어찌 빼놓을 수 있겠는가. 갖가지 음향과 영상장비에다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현란하기 그지없는 환상 무대를 꾸며 관객들을 무아(無我)로 이끌었다. 음악으로 충격을 주고, 공연으로 경기(驚氣)를 일으킨 것이다.

핑크 플로이드는 시대와 역사를 가로질렀다. 록의 전성기 1960년대에 비틀스가 있었다면 황금기 1970년대는 핑크 플로이드가 우뚝 서있었다. 실제로 핑크 플로이드의 < The Dark Side Of The Moon >는 ‘1970년대의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라는 평을 받았다.


1965년 영국 런던에서 시드 바렛(Syd Barrett), 로저 워터스(Roger Waters), 닉 메이슨(Nick Mason), 릭 라이트(Rick Wright), 밥 클로스(Bob Klose)로 출발한 핑크 플로이드의 초기 음악 지향은 미국 블루스음악이었다. 흑인 블루스 뮤지션 핑크 앤더슨(Pink Anderson)과 플로이드 카운실(Floyd Council)을 존경했던 초기 리더이자 ‘미스터리 맨’ 시드 바렛은 둘의 이름을 조합해 팀을 작명하면서 블루스에 대한 열정을 실현하고자 했다.


1967년에 공개한 데뷔앨범이자 명작으로 남아 있는 <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는 암울한 블루스와 사이키델릭의 기초 위에 곡 구조를 비틀고 확장하는 프로그레시브 음악의 형식에다 록의 야수성을 결합했다. 사운드의 이러한 형식미 추구는 현실부정과 관습타파의 메시지와 조화를 빚어냈다.

1968년에는 사운드 보강을 위해 빼어난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re)를 들였고 신경쇠약 증세를 가지고 있던 시드 바렛은 결국 팀을 이탈해 2006년 7월에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은둔생활을 고집했다. 1969년도 작품 < Ummagumma >는 최초로 포 트랙(4 track)으로 녹음해 소리의 확장을 이룩했으며 이듬해에 공개한 < Atom Heart Mother >는 에이트 트랙(8 track)으로 사운드의 공간감을 넓히는 충격의 확산을 지속했다.

1973년에는 청각적 희열에 방점을 찍은 < The Dark Side Of The Moon >이 나왔다. 당시 애비 로드 스튜디오의 엔지니어로 활동하던 알란 파슨스(Alan Parsons)가 참여한 이 앨범에서는 실제 금전 출납기 소리를 담아 자본주의를 비판한 곡 「Money」와 스페이스 록을 지향한 「Time」, 딕 패리(Dick Parry)의 색소폰 연주가 처연한 비장미를 연출한 「Us and them」, 클레어 토리(Clare Torry)의 허밍 보컬이 모든 것을 정의한 「Great gig in the sky」까지 전 트랙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며 비치 보이스의 < Pet Sounds >, 비틀즈의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와 함께 ‘들리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 청취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

1969년 아폴로 11호 달 착륙으로 오만해진 인간들의 궁중심리에 영합하지 않은 ‘달의 어두운 면’이라는 타이틀 그리고 단순하지만 여러 의미를 내포한 앨범 커버를 포함, 팝 역사의 기념비적인 명작으로 길이길이 광채를 발했고 정식으로 발매된 1973년 3월부터 1988년까지 무려 15년 동안 빌보드 앨범차트 200위 안에 머물며 미증유의 신기록을 작성했다.


처음으로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에 오른 1975년도 음반 < Wish You Were Here >는 로저 워터스와 릭 라이트, 데이비드 길모어가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로저 워터스는 2002년 내한공연에서 이 앨범의 수록곡을 모두 연주했다) 원년 멤버 시드 바렛에게 바치는 「Shine on you crazy diamond」와 「Wish you were here」, 영국의 싱어 송라이터 로이 하퍼(Roy Harper)가 보컬로 참여한 「Have a cigar」 등 음악 팬들은 다시 한 번 핑크 플로이드의 쉽진 않지만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지적 미학의 세계에 홀렸다.

미국의 음악 전문지 <롤링스톤>이 발표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장’에서 209위를 차지한 이 앨범을 녹음할 때 시드 바렛이 녹음실을 방문했지만 불어난 몸집과 변한 얼굴 때문에 정작 자신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옛 친구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시드 바렛에 대한 헌정인 「Shine on you crazy diamond」와 「Wish you were here」의 메시지가 무색하게도…

1977년, 영국의 경제 불황으로 태어난 펑크 진영의 주요 공격 대상(섹스 피스톨스는 ‘난 핑크 플로이드를 증오해(I hate floyd!)’라고 했다)이 된 핑크 플로이드는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영감을 받은 앨범 < Animals >로 핏대를 세운 젊은이들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린다. 이 앨범의 월드 투어 타이틀은 「In The Flesh」, 이는 곧 탄생하는 1980년대를 앞두고 1979년 말에 발표한 또 하나의 걸작 < The Wall >로 연결된다.


더블 앨범으로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에 오른 < The Wall >은 타인과 사회에 의해 자기 자신이 버려지면서 발생하는 인간 소외와 단절을 치밀한 계산과 완벽한 구성으로 완성해냈다. 싱글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는 4주 동안 인기차트 1위를 수성했고 1982년에는 알란 파커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다. 여기서 주연을 맡은 사람이 바로 영국의 록 밴드 붐타운 랫츠(Boomtown Rats)의 리더로 1984년에 자선 싱글 「Do they know it's Christmas?」와 1985년의 아프리카 자선 공연 <라이브 에이드(Live Aid)>를 기획한 밥 겔도프(Bob Geldof)였다.

앨범의 유례없는 성공은 아이러니하게도 핑크 플로이드에게 ‘달의 어두운 면’이 되어 돌아왔다. < Animals >부터 시작된 로저 워터스의 독재적 지휘는 < The Wall >에서 끝을 달렸고 누적된 불화로 마침내 릭 라이트가 팀을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1983년 아르헨티나와의 영토 분쟁으로 촉발된 포클랜드 전쟁을 고발한 < Final Cut >을 마지막으로 로저 워터스마저 떠나면서 ‘거대 전함’ 핑크 플로이드는 와해로 치달려갔다.

4년 후인 1987년 데이비드 길모어는 릭 라이트, 닉 메이슨과 함께 밴드를 재건하고 < A Momentary Lapse Of Reason >을 발표, 앨범차트 정상에 빛나는, 영광의 탈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로저 워터스는 “음악은 형편없고 가사는 3류”라고 힐난했고 동시에 옛 동료들과 ‘핑크 플로이드’의 이름 사용권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 볼썽사납게 법정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로저 워터스 패소).

로저 워터스는 하지만 ?료와의 갈등을 뒤로 하고 1990년 7월,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스콜피온스, 신디 로퍼, 필 콜린스, 시네이드 오코너, 더 밴드, 조니 미첼, 밴 모리슨 등과 함께 베를린에서 대규모 공연 ‘더 월’을 개최해 20만 인파를 끌어들이며 다시 한 번 역사의 중심에 섰다. 이 공연으로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남과 북이 통일하면 같은 형식의 판문점 공연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1994년에는 < Division Bell >의 수록곡 「Marooned」로 그래미 최우수 록 연주 부문을 수상했고 <라이브 에이드> 20년을 기념한 2005년의 <라이브 에이트(Live 8)> 공연에서는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이 20년간의 반목을 뒤로 하고 ‘외로운 천재’ 로저 워터스와 뭉쳐 합동무대를 갖는, 잊을 것 같지 않은 장면을 실현하며 록 팬들에게 감격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6년 7월7일, 시드 바렛이 60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2008년 9월15일에는 릭 라이트 역시 65세에 눈을 감았다. 세월에 의해 남은 멤버들 간의 앙금은 완전 마모된 것인지 올해 2011년 5월, 런던 O2 아레나에게 개최된 로저 워터스의 <더 월 투어>에서 데이비드 길모어가 나와 「Comfortably numb」를 합주했고 이어 닉 메이슨도 합류해 「Outside the wall」을 들려줬다.


올해 1월 핑크 플로이드는 다운로딩 시대를 맞아 낱개 곡이냐 앨범 단위냐의 법정 공방을 끝내고 EMI사와 5년 계약을 맺었다. 낱 곡 아닌 앨범으로 판매한다는 기존의 노선을 다시 한 번 고수했다. 하기야 언제나 앨범을 한 덩어리로 풀어낸 그들의 음악을 싱글로 듣는다는 것은 아티스트 입장에선 저작권 침해에 가까운 일이다.

정규 앨범 14장 모두를 리마스터해 박스세트로 엮은 < Why Pink Floyd...? >는 그들의 앨범 중심, 이를테면 예술중심의 접근법을 뚜렷하게 확인해주는 대중음악 역사의 빛나는 궤적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의 전설들이 얼마나 처절하고 우직하게 에너지와 혼을 쏟아 음악을 탐했는지를 알게 된다. 우리가 왜 레전드를(Why Pink Floyd...?) 섬겨야하는지에 대한 증좌가 따로 없다.

핑크 플로이드는 7080세대의 음악적 프라이드이지만 후대에 자연스럽게 대물림되어 새로운 세대들몶 경배하고 경청한다. < The Dark Side Of The Moon >을 들은 한 대학 신입생이 놀란 표정으로 말한다. “이게 정말 1970년대에 만들어진 음악 맞아요? 믿어지지가 않아요. 너무나 고급스러운 사운드입니다!” 이번 리마스터드 앨범들은 그 경이를 경외의 단계로 끌어올릴 것이다.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제공: IZM
(www.izm.co.kr/)


#핑크 플로이드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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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1.11.11

우와 14장 앨범을 한번에 묶었군요. 영원불멸의 그룹 핑크 플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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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etilove

2011.09.15

핑크 플로이드... 이제 이런 밴드는 더 이상 나오기 힘든 구조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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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