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당신은 내 것입니다!”
아무리 기나긴 군중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갈구하던 두 영혼이 마침내 서로를 발견하면... 마치 두 영혼처럼 불같고 순수한 결합이 땅에서 시작되어 천국으로 영원히 지속됩니다.
글ㆍ사진 서진
2011.06.13
작게
크게

아델 푸쉐(Adele Foucher)에게

1821년 파리

내 사랑,
아무리 기나긴 군중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갈구하던 두 영혼이 마침내 서로를 발견하면… 마치 두 영혼처럼 불같고 순수한 결합이 땅에서 시작되어 천국으로 영원히 지속됩니다.

이 결합은 사랑, 진실한 사랑... 사랑하는 사람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 입니다. 삶이 헌신과 열정에서 나오는 사람의 사랑, 가장 위대한 희생이 가장 달콤한 기쁨인 사람을 향한 사랑이지요.

이것은 당신이 내게 불어넣은 사랑입니다. 당신의 영혼은 사랑하게 만들어 졌고 그것은 천사들의 순수함과 열정으로 차 있어요. 그러나 어쩌면 당신은 다른 천사만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경우에 나는 걱정에 떨어야만 하겠지만 말입니다.

당신의 영원한,
빅토르 위고.


1822년 3월 15일 금요일 저녁

어제와 그제, 즐거운 두 밤을 보내고 나서, 나는 오늘 저녁은 확실히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서 이곳에 앉아 당신에게 편지를 쓸 겁니다. 게다가 나의 에델, 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델,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이이야기 하지 않았던가요? 오 맙소사, 이틀 내내 스스로에게 매 순간 마다 이런 행복이 꿈이 아닌지 묻곤 했습니다. 내가 느낀 것이 이 땅의 것이 아닌 것 같았어요. 이런 맑게 갠 천국을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은 아직 모르겠죠 아델, 내가 체념하고 하기로 했던 것을 말입니다. 아, 내 자신은 알고 있을까요? 왜냐 하면 나는 나약하고, 조용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내가 모든 미친 절망의 바보짓들에 대해 스스로 준비해 왔기 때문입니다. 난 용감하면서도 잘 체념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 나를 겸허히 당신의 발 앞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아주 위엄 있고, 아주 다정하며 강한 당신에게 말입니다. 내 헌신의 최고 한계가 내 삶 자체를 희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관대한 내 사랑 당신은, 나를 위해 당신의 휴식의 순간을 희생할 준비가 되었군요.

당신은 자연의 모든 선물을 받은 특권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용기와 눈물을 둘 다 가지고 있지요. 오 에델, 이런 말이 눈먼 광신이라고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을 향한 열정은 내 삶을 통틀어 계속 지속되어 왔고 날마다 커지고 있어요. 내 모든 영혼은 당신 것입니다. 만약 내 모든 존재가 당신 것이 아니었다면 내 존재의 조화로움은 잃어버렸을 것이고, 나는 죽어야만 했겠지요. 불가피하게 죽었을 겁니다.

아델, 이건 내게 희망을 주거나 절망을 줄 편지가 도착할 때의 명상이죠.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당신은 어떤 것이 내 기쁨이었는지 알고 있겠지요. 내가 아는 것을 당신이 느꼈을 수도 있으니 설명하지 않을게요.

나의 아델, 왜 기쁨(joy) 말고는 이러한 감정을 대신할 다른 말이 없을까요? 그건 인간의 언어에 그런 행복을 표현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애처로운 체념으로부터 무한한 천상의 기쁨에 이르기까지 갑작스럽게 널뛰는 감정이 나를 화나게 합니다. 심지어 지금도 나는 이성을 잃고 있어요. 이 신성한 꿈에서 갑자기 깨어날까 두려워 몸서리칩니다.

오, 이제 당신은 내 것입니다! 이제야 당신은 내 것입니다! 곧 한 달 뒤에, 어쩌면, 내 천사는 내 팔에 안겨 잠들고, 깨어내고, 살겠지요. 모든 순간. 모든 당신의 생각, 모든 당신의 모습이 나를 위해 존재할 겁니다. 내 모든 생각, 모든 내 순간, 모든 내 모습도 당신을 위해 존재할 겁니다. 아델!

잘있어요 내 천사, 내 사랑스러운 아델! 잘 있어요! 나는 당신의 머리카락에 키스를 하고 잠이 들 겁니다. 아직도 나는 당신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나는 당신을 꿈꿀 수 있어요. 곧 아마도 당신은 내 곁에 있게 될 겁니다. 잘 있어요.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을 위해서 당신을 포옹하는, 당신을 사랑하는, 남편이 잠시 흥분했던 것을 용서해 주시오.


빅토르 마리 위고 (1802-1885)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 소설가이다. 노동자 계층의 곤궁한 현실에 관심을 끌었던 '노틀담의 곱추'와 '레 미제라블' 등의 명작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낭만적인 프랑스 문학의 가장 유명한 작가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위고는 어린 시절 이웃집 소녀였던 아델 푸쉐와 사랑에 빠졌다. 격렬한 사랑에 빠져 10대 후반에 비밀 약혼을 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보다 명문 집안의 며느리를 원했다. 둘은 3년 가량을 비밀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마침내 1822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그들은 결혼했다. 아델은 다섯 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각자 몇 번의 외도에도 불구하고 1868년 그녀가 죽을 때까지 결혼생활을 유지하였다.


서진의 번역후기

세상에서 가장 짧고 유명한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있다면 그건 빅토르 위고 였을 겁니다. 레미제라블의 성공을 기다리던 작가는 “?” 하나만 적은 편지를 출판사에 보냈고 답장은 “!” 느낌표 하나였지요. 그런 편지 였다면 번역하기 쉬웠겠지만 역시, 연애편지는 다르더군요. 사랑하는 연인을 신성화하고 사랑을 종교처럼 여기는 것은 작가들의 연애편지에서 공통된 것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빅토르 위고의 편지는 ‘광신’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것 처럼 그 정도가 심한 것 같습니다. 과연 예술가들에게 사랑은 꼭 필요한 영감(inspiration)일까요? 아델과 결혼한 이후로도 빅토르 위고는 여배우 쥘리에트 드루를 필두로 많은 연인을 사귀었습니다. 그의 작품의 드러나는 민중에 대한 애정은 아마도 그가 만나던 매춘부들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프랑스 정치 변혁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그는 작가 뿐만이 아니라 정치가로서도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빅토르 위고가 있을 정도로, 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어쩌면 넘쳐서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이, 그대로 작품에 대한 열정으로 나타나는지도 모르겠지요.


함께 읽어보면 좋은 책들





 
#서진 #빅토르 위고
6의 댓글
User Avatar

만다

2013.02.27

<오, 이제 당신은 내 것입니다! 이제야 당신은 내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 기쁨과 행복이 질투나네요.
답글
0
0
User Avatar

sind1318

2013.02.01

'사랑하는데 외도를 한다.' 이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못한 거 아닐까요?
답글
0
0
User Avatar

prognose

2012.01.16

편지를 봐서는 정말로 아내를 사랑했구나 생각했는데 서로 몇번이고 외도를? 꿈이 깨어진 느낌입니다. 빅토르 위고에 대한 일화 몰랐는데 그 유명한 "?"편지가 빅토르 위고 이야기였군요.
답글
0
0

더 보기

arrow down
Writer Avatar

서진

소설가, 한페이지 단편소설 운영자.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12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 2010년 에세이와 소설을 결합한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출간. 세상의 가장 큰 의문을 풀 책을 찾아 헤매는 북원더러.(Book Wanderer) 개인 홈페이지 3nightsonly.com

Writer Avatar

빅토르 위고

프랑스 낭만주의 시인이자 극작가, 소설가, 정치가. 1802년 프랑스의 브장송에 태어났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바람대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일찍이 문학적 재능을 보이며 시작(詩作)에 몰두했다. 위고는 첫 시집 『오데와 잡영집』(1822)으로 주목을 받은 이래, 희곡 [크롬웰](1827), 시집 『동방시집』(1829), 소설 『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날』(1829) 등을 발표하며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특히 [크롬웰]에 부친 서문은 고전주의 극 이론에 대항한 낭만주의 극 이론의 선언서로서, 위고가 낭만주의 운동의 지도자로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7월 혁명의 해인 1830년에는 희극 [에르나니](1830)의 초연이 낭만파와 고전파 사이의 ‘에르나니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쟁에서 낭만주의는 고전주의로부터 완전히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1850년경까지 문단의 주류가 되었다. 그 후에도 위고는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치며, 시집 『가을 낙엽』(1831), 『내면의 음성』(1837), 『햇살과 그늘(1840)』, 희곡 [마리용 드 로름](1831), [힐 블라스](1838) 등을 발표했다.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1831)는 위고에게 민중소설가로서의 지위를 굳혀 주었으며, 1841년에는 프랑스 학술원 의원으로 선출됐다. 그 뒤 위고는 10여 년간 거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정치 활동에 전념했고, 1848년 2월 혁명 등을 계기로 인도주의적 정치 성향을 굳혔다. 1851년에는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반대하다가 국외로 추방을 당하여, 벨기에를 거쳐 영국 해협의 저지 섬과 건지 섬 등에서 거의 19년에 걸쳐 망명 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시집 『징벌』(1852), 『정관』(1856), 『여러 세기의 전설』(1부, 1859), 소설 『레 미제라블』(1862), 『바다의 노동자들』(1867) 등 대표작의 대부분이 출간되었다. 특히,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대하 역사소설로서, ‘인간의 양심을 노래한 거대한 시편’이자 ‘역사적, 사회적, 인간적 벽화’로 평가받는 위고 필생의 걸작이다. 1870년 보불 전쟁으로 나폴레옹 3세가 몰락하자, 위고는 공화주의의 옹호자로서 파리 시민의 열렬한 환호 속에 프랑스로 돌아왔다. 1874년에는 『93년Quatrevingt-treize』을 출간했다. 대하소설 『레 미제라블』에 여담 형태로 삽입된 ‘워털루 전투’ 이야기는 위고가 벨기에 전적지에서 두 달간 머무르며 곳곳을 답사하는 노력 끝에 집필한 것이다. 위고 특유의 비장미 넘치는 문체가 돋보이는 이 글은 일세를 풍미한 영웅 나폴레옹의 패배 과정을 극적이고도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는 동시에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일깨우며 여운을 남긴다. 1876년에는 상원의원으로 당선됐으나, 1878년에 뇌출혈을 일으켜 정계에서 은퇴했다. 국민 시인으로서 영예로운 대접을 받았고, 비교적 평온한 만년을 보내며, 『웃는 남자』(1869), 『끔찍한 해』(1872), 『93년』(1874), 『여러 세기의 전설』(2부, 1877; 3부, 1883) 등을 발표했다. 1885년 5월 폐렴으로 파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고, 200만 명의 인파가 애도하는 가운데 그의 유해가 판테온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