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시지 마세요 - 『원순 씨를 빌려 드립니다』 박원순
인문학 릴레이 특강 두 번째 시간이다. 제 2강은 ‘기부문화를 뿌리내리게 하고 참여연대,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를 만든’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변호사이다.
201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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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릴레이 특강 두 번째 시간이다. 제 2강은 ‘기부문화를 뿌리내리게 하고 참여연대,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를 만든’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변호사이다. 이날의 강연 주제는 ‘나눔’이다. 바로, 함께 잘 사는 사회를 위한.
경남 창녕의 궁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유년기에는 버릇이 나쁜 아이였다고 말한다. 집안에 누님이 넷인데 다들 오냐오냐해주니까 기고만장했다는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삼십리 길을 통학하면서 어스름에 부모님께서 밭일을 하는 걸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때 알았습니다. 내가 깨어 있을 때 부모님이 자는 걸 보지 못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이후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으니까요.”
이후 그는 검사가 된다. “검사 생활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습니다. 검사복을 벗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죠. 변호사를 그만두고는 영국과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 참여연대를 설립하고 시민운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2002년,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그만둔다. 자리를 옮긴 곳은 아름다운 재단이었다. 지금 그가 몸담고 있는 희망제작소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그곳에서 많은 변화를 디자인한다. 처음으로 한 일은 ‘아름다운가게’였다.
“아름다운가게는 원래 참여연대에 있을 때 진행하려던 사업입니다. 그러다가 참여연대를 나와 아름다운재단으로 옮긴 김에 직접 해보기로 했습니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안 쓰는 물건을 기부 받아 안국역 앞에서 행상 형식으로 판매한 것입니다. 차츰 단골도 생기고 반응이 뜨거워졌습니다. 2002년 10월에 아름다운가게 창립총회를 열고 1호점의 문을 열었지요.”
2011년 1월 현재 아름다운가게는 110개의 점포에서 200억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재단은 ‘1% 나눔’을 제안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백 가지 중 최소한 하나는 나누자는 것입니다. 1% 나눔은 단지 돈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모금액보다 나눔에 대한 의식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받는 월급 중 1%를 떼어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겠지만, 재능과 전문성으로 나눔에 동참할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어떤 이에게는 커다란 힘을 주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이제 이 ‘1% 나눔’은 우리 국민 1,000명 중에 1명이 참여한 대중적인 ‘나눔’운동이 되었습니다.”
착한 기업, 공정무역 그리고 비영리 단체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인 ‘바디샵’은 전쟁 반대, 인권 존중, 공정 무역, 동물실험 금지 등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회사의 목표만 보면 무슨 시민 단체 같죠. 그런데 이 회사가 전 세계로부터 벌어들이는 돈은 어마어마합니다. 지구촌 고객들이 이 회사 제품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품질 제품과 함께 영혼을 팔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화장품 회사 중에도 영혼을 파는 사례가 있습니다. ‘희망가게’는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고(故) 서성환 회장의 뜻을 받들어 유가족들이 아름다운재단에 맡긴 기부금이 모태입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이 돈으로 ‘한부모 가정’에 창업 자금을 대출하고 자립을 도왔습니다. 2004년에 1호점을 연 희망가게는 불과 5년 만에 80호점을 넘어섰습니다.”
그는 또한 ‘공정무역’을 주목했다. 향후 10년 이내 공정무역과 관련된 일자리가 10만 개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스타벅스는 다국적 기업의 배를 불리는 것”이라며 공정무역 커피를 이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제는 “윤리적 소비의 시대” 아닌가.
“언젠가 저와 막역하게 지내는 장하성 교수가 자랑을 하더군요. 본인이 학장으로 있는 고려대학교 MBA가 서울대학교 MBA를 넘어섰다고요. 그런데 저는 모금학, NPO(비영리단체)학도 가르치지 않는 학교가 어떻게 일등을 논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방법만 배우는 곳이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미국에는 스탠퍼드, 버클리, 컬럼비아 대학뿐만이 아니라 지방의 주립대학에서도 이런 과목들을 앞다퉈 개설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창조적 자본주의의 거대한 흐름을 인식하고 대비하려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희망제작소에서 ‘모금전문가학교’를 연 이유를 밝혔다. “모금은 이제 NPO의 운영을 위한 부수적인 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의 경쟁력을 높이는 직업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모금전문가’를 21세기형 신종 직업이자, 고소득 전문직으로 대접받을 직종이라고 소개한다. “모금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소셜 디자이너의 희망 수레
‘커뮤니티 비즈니스 연구소’는 희망제작소가 펼치는 지역 사업이다. “지역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전통과 역사, 지역적 자산을 활용해야 해요. 우리 조상들이 마을에서 발전시켜온 삶의 지혜가 얼마든지 새로운 기업의 모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야말로 우리의 전통 자원, 역사 자산, 문화유산을 재평가하고 그것을 산업과 기업의 원천으로 활용할 때가 온 거죠. 발칙한 상상력을 지닌 젊은이들이 가야 할 곳은 지역이고 마을입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지역이 전북 완주군이다. “희망제작소에서 벌이는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충실한 실현자”이기도 한 이곳에는 “100개의 마을이 농촌형 비즈니스를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소셜 디자이너에게 직업의 세계는 무한하다. 그는 “새로운 시각으로 보면, 널려 있는 것이 직업”이라고 말한다. 그 많은 직업 중 무엇을 택해야 할까. 그는 다음 네 가지문장을 전한다. ‘남이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부모나 아내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미래를 통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생태적인 세상이 올 것이고, 문화와 예술이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농촌이 중심이 되고 보다 투명하고 책임감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협력과 파트너쉽 그리고 네트워킹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창의적인 시대라서 이전 길을 따라 가다보면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올해 그는 ‘희망수레’를 끌고 거리로 나간다.
독자와의 질의응답은 경쾌하고 명료했다.
모든 사업에 성공하셨나요.
“실패는 누구나 합니다. 시행착오가 없을 수 없죠. 참여연대 설립 초기에는 일 년 동안 신문에 나오지 않았었어요. 어떻게든 알려야 했죠. 심지어 ‘경실련’과 비슷한 단체라고 말하고 다니기도 했습니다(웃음). 시행착오야말로 좋은 밑거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팀웍을 만들어야 하고, 사업의 패턴을 고민해야 합니다. 지속가능성(특히 재정적인 면)을 확보해야 해야죠.”
가슴의 울림을 만들어준 책이 있으셨는지요. 그리고 멘토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세상에 도움이 안 되는 지식은 없죠. 21세기는 융합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나의 삶을 바꾼 열 명의 스승’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하기도 합니다. 공자가 ‘세 명이 길을 가면 그 중 하나는 스승’이라고 말합니다. 눈에 보인다고 다 보는 게 아니죠. 마음, 생각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인권 법률’이란 대학 동아리를 만들어 대학생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보시기엔 대학생의 당면 과제는 무엇으로 보시나요.
“제가 대학생 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훌륭합니다. 우리가 세금을 내고 잘 쓰고 있다면 우리 대학생들이 등록금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사례를 심층적으로 연구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데이터를 토대로 주장할 수 있다면, 다음 선거에 좋은 공약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문제 하나만 해결해도 큰일을 해내시는 것이겠죠.”
사회적 기업과 자급자족 공동체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원순닷컴(www.wonsoon.com)에 주제별로 많은 글이 있습니다. 도움이 되실 겁니다. 한겨레와 희망제작소에서 주관하는 교육 일정도 있을 것입니다. 왕도는 없습니다. 책을 보는 것보다 현장을 보시는 게 가장 도움이 되실 겁니다.”
경남 창녕의 궁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유년기에는 버릇이 나쁜 아이였다고 말한다. 집안에 누님이 넷인데 다들 오냐오냐해주니까 기고만장했다는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삼십리 길을 통학하면서 어스름에 부모님께서 밭일을 하는 걸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때 알았습니다. 내가 깨어 있을 때 부모님이 자는 걸 보지 못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이후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으니까요.”
이후 그는 검사가 된다. “검사 생활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습니다. 검사복을 벗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죠. 변호사를 그만두고는 영국과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 참여연대를 설립하고 시민운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가게는 원래 참여연대에 있을 때 진행하려던 사업입니다. 그러다가 참여연대를 나와 아름다운재단으로 옮긴 김에 직접 해보기로 했습니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안 쓰는 물건을 기부 받아 안국역 앞에서 행상 형식으로 판매한 것입니다. 차츰 단골도 생기고 반응이 뜨거워졌습니다. 2002년 10월에 아름다운가게 창립총회를 열고 1호점의 문을 열었지요.”
2011년 1월 현재 아름다운가게는 110개의 점포에서 200억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재단은 ‘1% 나눔’을 제안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백 가지 중 최소한 하나는 나누자는 것입니다. 1% 나눔은 단지 돈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모금액보다 나눔에 대한 의식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받는 월급 중 1%를 떼어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겠지만, 재능과 전문성으로 나눔에 동참할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어떤 이에게는 커다란 힘을 주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이제 이 ‘1% 나눔’은 우리 국민 1,000명 중에 1명이 참여한 대중적인 ‘나눔’운동이 되었습니다.”
착한 기업, 공정무역 그리고 비영리 단체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인 ‘바디샵’은 전쟁 반대, 인권 존중, 공정 무역, 동물실험 금지 등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회사의 목표만 보면 무슨 시민 단체 같죠. 그런데 이 회사가 전 세계로부터 벌어들이는 돈은 어마어마합니다. 지구촌 고객들이 이 회사 제품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품질 제품과 함께 영혼을 팔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화장품 회사 중에도 영혼을 파는 사례가 있습니다. ‘희망가게’는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고(故) 서성환 회장의 뜻을 받들어 유가족들이 아름다운재단에 맡긴 기부금이 모태입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이 돈으로 ‘한부모 가정’에 창업 자금을 대출하고 자립을 도왔습니다. 2004년에 1호점을 연 희망가게는 불과 5년 만에 80호점을 넘어섰습니다.”
그는 또한 ‘공정무역’을 주목했다. 향후 10년 이내 공정무역과 관련된 일자리가 10만 개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스타벅스는 다국적 기업의 배를 불리는 것”이라며 공정무역 커피를 이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제는 “윤리적 소비의 시대” 아닌가.
지금 이 순간 기업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도 권고합니다. 영혼을 파는 기업이 성공합니다. 착한 기업이 장수합니다. 도덕군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도전 정신과 함께 사회적 책임을 늘 염두에 두라는 것입니다.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는 생각으로는 절대 성공한 기업가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신뢰만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p.78) |
“언젠가 저와 막역하게 지내는 장하성 교수가 자랑을 하더군요. 본인이 학장으로 있는 고려대학교 MBA가 서울대학교 MBA를 넘어섰다고요. 그런데 저는 모금학, NPO(비영리단체)학도 가르치지 않는 학교가 어떻게 일등을 논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방법만 배우는 곳이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미국에는 스탠퍼드, 버클리, 컬럼비아 대학뿐만이 아니라 지방의 주립대학에서도 이런 과목들을 앞다퉈 개설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창조적 자본주의의 거대한 흐름을 인식하고 대비하려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희망제작소에서 ‘모금전문가학교’를 연 이유를 밝혔다. “모금은 이제 NPO의 운영을 위한 부수적인 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의 경쟁력을 높이는 직업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모금전문가’를 21세기형 신종 직업이자, 고소득 전문직으로 대접받을 직종이라고 소개한다. “모금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소셜 디자이너의 희망 수레
‘커뮤니티 비즈니스 연구소’는 희망제작소가 펼치는 지역 사업이다. “지역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전통과 역사, 지역적 자산을 활용해야 해요. 우리 조상들이 마을에서 발전시켜온 삶의 지혜가 얼마든지 새로운 기업의 모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야말로 우리의 전통 자원, 역사 자산, 문화유산을 재평가하고 그것을 산업과 기업의 원천으로 활용할 때가 온 거죠. 발칙한 상상력을 지닌 젊은이들이 가야 할 곳은 지역이고 마을입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지역이 전북 완주군이다. “희망제작소에서 벌이는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충실한 실현자”이기도 한 이곳에는 “100개의 마을이 농촌형 비즈니스를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소셜 디자이너에게 직업의 세계는 무한하다. 그는 “새로운 시각으로 보면, 널려 있는 것이 직업”이라고 말한다. 그 많은 직업 중 무엇을 택해야 할까. 그는 다음 네 가지문장을 전한다. ‘남이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부모나 아내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미래를 통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생태적인 세상이 올 것이고, 문화와 예술이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농촌이 중심이 되고 보다 투명하고 책임감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협력과 파트너쉽 그리고 네트워킹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창의적인 시대라서 이전 길을 따라 가다보면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올해 그는 ‘희망수레’를 끌고 거리로 나간다.
독자와의 질의응답은 경쾌하고 명료했다.
모든 사업에 성공하셨나요.
“실패는 누구나 합니다. 시행착오가 없을 수 없죠. 참여연대 설립 초기에는 일 년 동안 신문에 나오지 않았었어요. 어떻게든 알려야 했죠. 심지어 ‘경실련’과 비슷한 단체라고 말하고 다니기도 했습니다(웃음). 시행착오야말로 좋은 밑거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팀웍을 만들어야 하고, 사업의 패턴을 고민해야 합니다. 지속가능성(특히 재정적인 면)을 확보해야 해야죠.”
가슴의 울림을 만들어준 책이 있으셨는지요. 그리고 멘토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세상에 도움이 안 되는 지식은 없죠. 21세기는 융합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나의 삶을 바꾼 열 명의 스승’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하기도 합니다. 공자가 ‘세 명이 길을 가면 그 중 하나는 스승’이라고 말합니다. 눈에 보인다고 다 보는 게 아니죠. 마음, 생각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인권 법률’이란 대학 동아리를 만들어 대학생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보시기엔 대학생의 당면 과제는 무엇으로 보시나요.
“제가 대학생 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훌륭합니다. 우리가 세금을 내고 잘 쓰고 있다면 우리 대학생들이 등록금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사례를 심층적으로 연구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데이터를 토대로 주장할 수 있다면, 다음 선거에 좋은 공약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문제 하나만 해결해도 큰일을 해내시는 것이겠죠.”
사회적 기업과 자급자족 공동체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원순닷컴(www.wonsoon.com)에 주제별로 많은 글이 있습니다. 도움이 되실 겁니다. 한겨레와 희망제작소에서 주관하는 교육 일정도 있을 것입니다. 왕도는 없습니다. 책을 보는 것보다 현장을 보시는 게 가장 도움이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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