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쿠바 Hemingway in Cuba
1928년,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는 플로리다의 키웨스트 섬에서 낚시 여행을 위해 쿠바에 왔고, 곧 아바나와 쿠바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다. 1년 후, 그는 구 아바나 중심부에 있는 호텔 암보스 문도스(Hotel Ambos Mundos)에 거처를 정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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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암보스 문도스의 헤밍웨이가 머물렀던 방.
그가 사용했던 타자기를 비롯 그가 떠날 때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928년,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는 플로리다의 키웨스트 섬에서 낚시 여행을 위해 쿠바에 왔고, 곧 아바나와 쿠바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다. 1년 후, 그는 구 아바나 중심부에 있는 호텔 암보스 문도스(Hotel Ambos Mundos)에 거처를 정했다. 그의 흔적을 좇는 우리의 여정도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호텔에서 헤밍웨이가 다이키리(Daiquiri, 럼주에 라임주스, 설탕, 얼음을 섞은 칵테일)를 한 잔씩 하던 바인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까지는 걸어서 금방 갈 수 있다. 헤밍웨이가 앉았던 자리는 언제나 경쟁이 몹시 치열하다.

헤밍웨이는 아바나 동쪽에 있는 작은 어촌 코히마르(Cojimar)에서 바다낚시에 빠져들었다. 이곳은 소설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그는 1939년부터 아바나 근처 샌프란시스코데파울라(San Francisco de Paula)의 울창한 열대 숲에 자리 잡은 소박한 시골집 핀카 비히아(Finca Vigia)에 살며 집필을 했다. 넓은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면 9천 권의 책이 있는 서재와 타자기, 사진들이 보인다. 그 집에서는 욕실에서 내다보는 전망이 가장 좋다. 헤밍웨이도 그곳에서 항구 너머로 아바나와 바다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 구 아바나에 있는 작은 바인 보데히타 델 메디오(Bodeguita del Medio)도 헤밍웨이가 자주 찾던 곳이다. 칵테일 ‘모히토(Mojito)’를 마셔 보자.
- 코히마르의 헤밍웨이 광장에는 기둥들로 둘러싸인 누각에 헤밍웨이 흉상이 있다. 코히마르 사람들이 직접 세운 이 흉상은 고기잡이배의 청동 프로펠러로 만든 것이다.
- 핀카 비히아의 정원에는 헤밍웨이가 아꼈던 요트 ‘엘 필라르’가 있다. 12미터 길이의 이 요트는 헤밍웨이가 멕시코 만류 속으로 청새치를 잡으러 갈 때 탔던 것이다.
- 아바나의 해안 산책로 말레콘(Malecon)을 따라 걸어 보자. 산책로 옆에는 낡은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이 플로리다 해협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데, 이것이 헤밍웨이가 미국에서 배를 타고 와서 처음 보았던 풍경이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럼주를 마시고 바위에 앉아 낚시를 하는 현지인들로 활기가 넘친다.

- When to go: 가장 좋은 때는 12월부터 5월까지다. 여름에는 무척 덥고 습하며, 10월과 11월에는 허리케인이 찾아온다.
- How Long: 열흘이면 여행할 수 있다. 그러나 쿠바의 매력적인 도시들과 남쪽의 아름다운 카리브 해 해안을 충분히 여행하려면 2~3주 정도 걸린다.
- Planning: 한국인이 쿠바를 여행하려면 비자는 필요 없지만 여행자 카드(Tourist Card)를 발급받아야 한다. 여행자 카드는 쿠바가 지정한 여행사나 항공사, 기관에서 발급하며, 한국에서는 발급받을 수 없다. 멕시코에 들른다면 멕시코의 지정된 여행사에서 발급받거나, 중간 경유지의 공항에서 해당 항공사에 의뢰하여 받을 수 있다.
- Inside Information: 코히마르에 있는 라 테라차(La Terraza)라는 식당도 헤밍웨이가 자주 갔던 곳이다. 헤밍웨이의 사진이 많이 걸려 있는 이곳에서 식사도 하고 항구 전망도 즐기자.
- Websites: www.cuba.com

#여행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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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6.15

쿠바라는 곳은 공산주의 국가라는 인식이 있어서 여행자체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었군요. 열흘도 꽤 긴 시간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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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3.16

거구의 헤밍웨이가 젊은 시절에는 저렇게 소박하고 작은 탁자에 앉아서 집필을 했네요. 매우 활동적이고 남성적인 취미인 사냥과 낚시를 즐기면서도 몇시간은 꼼짝하지 않고 글을썼다는게 신기하네요. ㅎㅎ 밤새 술먹고 여자들과 놀아도 글은 언제나 규칙적으로 썼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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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2012.03.15

헤밍웨이의 체취가 고스란히 묻어 있어서 쿠바를 방문하는 이들에게도 색다른 경험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헤밍웨이가 사용했던 타자기가 참으로 탐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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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지오그래픽> 편/<서영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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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돌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1년, 해외 특파원으로 건너간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유명 작가들과 교유하는 등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후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와 ‘포그너’와 함께 3대 작가로 성장하였다. 그의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1926년에 발표했는데, 헤밍웨이의 대다수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데 공헌했으며,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판되자마자 수십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10년 만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2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풀어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큰 찬사를 받았으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러나 이 해에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말년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동의 규범에 철저한 만큼이나 죽음과 대결하는 삶의 성실성과 숭고함을 작품에 투영하려 노력해왔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로 거처를 옮겼고,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10여 년 넘게 긴 침체기를 겪었지만, 인생의 절망과 희망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신념을 잃지 않으면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