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포트 록페스티벌 현장을 찾아가다!
벌써 5년째를 맞은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은 올해부터 단순한 축제가 아닌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멀티 행사로 거듭났다. 오늘 마친 록페스티벌은 펜타포트라는 큰 덩어리의 한 부분인 것이다.
201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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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개최 전날 밤, 인천 일대는 번개와 천둥이 휘몰아쳤었다. 불과 24시간도 안 남은 상황에서 정상적인 공연이 가능하겠느냐는 걱정과 평일 오후라는 시간적 제약이 마음에 걸렸던 터라 공연장인 인천 드림파크로 향하는 길이 편치만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하늘은 잔뜩 찌푸린 채로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러한 노파심을 당돌하게 비웃어 준 것은 페스티벌의 초반 분위기를 띄워준 국내 밴드들이었다. 그것도 자신들에게 기대하는 특성화된 스테이지에서 상상 이상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말이다. 남들 눈에는 평일 오후에 시간 보내러온 ‘잉여’들이라고 비춰졌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을 관객들의 호응도도 훌륭했다. ‘미친’ 뮤지션들과 ‘미친’ 관객들이 하모니를 이루는 이례적인 장관이 드림파크 잔디밭에서 연출되었다.
‘미친’ 뮤지션들로 이루어진 대열의 선두주자는 갤럭시 익스프레스(Galaxy Express)였다. 최신 앨범 에서 리메이크한 신중현의 「빗속의 여인」 반주와 함께 무대 위에 오른 세 남자의 패션은 정말 가관이었다. 김희권(드럼)은 검은 목욕 가운을 걸쳤고, 박종현(기타)은 짧은 비치웨어 바지를 입고 물총 세례와 비치볼을 던지며 한바탕 로큰롤 난장판이 일어날 것을 예언했다. 시크한 블랙 수트를 입은 이주현(베이스)이 그나마 정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세 명의 ‘맨 인 블랙’은 퍼포먼스의 끝을 보여줬다. 풍차 돌리기, 이빨로 기타줄 뜯기, 등 뒤로 연주하기는 물론이었고, 이주현의 어깨 위에서 박종현이 두 번이나 구사한 무등 타기 연주는 공연의 백미였다. 대체로 에 수록된 최신곡 「요즘 개들은 짖지 않는다」 「진짜 너를 원해」가 이어진다 싶었는데 역시나 관객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게스트를 음흉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리쌍의 제3의 멤버이자, 최근에 애절한 발라드 「미워요」로 사랑을 받아온 정인이 성큼성큼 걸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비트는 퀸(Queen)의 「We will rock you」로 시작했지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콜라보레이션의 최종 완성품은 조안 제트 앤 더 블랙하츠(Joan Jett and the blackhearts)의 「I love rock and roll」이었다. 정인의 가창력은 정평이 나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록 적인 감성도 완벽하게 소화시킬 수 있는 명품 보컬이라는 점까지 충분히 증명한 무대였다.
“강씨 집안의 사내, 강산에입니다.” 정감 있는 경상도 억양은 역시 반가웠다.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밴드 이름 그대로 록 마니아들을 안드로메다로 관광 보낸 무대를 선사했다면 강산에는 높은 연령층까지 몸과 마음을 들썩이게 만드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올맨 브라더스 밴드 (Allman Brothers Band)가 프린팅된 티셔츠를 레이어드한 편안한 옷차림으로 강산에는 흐르는 분위기에 따라 자유롭게 노래하고 관객과 어울렸다.
페스티벌에 임하는 자세를 「삐딱하게」로 암시했다면 「예럴랄라」에서는 하모니카 연주만으로도 관객들의 손발을 자유자재로 흐느적거리게 만드는 재주를 선보였다. 의외로 공연장에는 30~40대의 중년층 관객도 많이 눈에 띄었는데 이들까지 포괄할 수 있는 「할아버지와 수박」 「와그라노」 「넌 할 수 있어」, 마지막 앙코르 곡으로 열창한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까지 펜타포트에서 강산에의 무대는 폭넓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대표곡들을 압축해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강산에는 무대를 내려가면서 짧은 말이었지만 의미심장한 인사를 전했다. “여러분, 오래 살아야 합니다. 우울하다고 자살하고 그러면 안 돼. 우리가 눈에 구멍이 뚫려서 그렇지, 세상에는 아름다운 구석도 많이 있단 말야. 우리가 살아있으니까 이런 즐거운 공연도 즐길 수 있는 것 아니겠어? 오래 삽시다.” 구수한 사투리가 담겨 있었던 탓인지, 마지막 말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날 펜타포트에 참가한 뮤지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눈에 띄는 의상들을 입고 무대를 달궜다. 금요일 라인업의 홍일점이라고 할 수 있었던 오지은은 그의 밴드인 ‘늑대들’을 대동한 무대에서 짧은 미니원피스를 입고 광적인 폭발력으로 탄성을 자아냈다. 자못 귀여운 가사와 멜로디가 담긴 「웨딩송」과 「인생론」이 거친 늑대들의 기타 사운드와 함께 질주했다. ‘방 라이브’ 동영상 속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치던 모습만으로 그녀를 인식했던 이들에게는 통렬한 반전이었다.
날이 저물면서 야외 스테이지에는 국내 대형 페스티벌에서 빠질 수 없는 손님인 크라잉 넛이 올라섰다. 대중적으로 친숙한 밴드이기에 익숙한 레퍼토리를 기대하는 것이 사실이나, 이번 공연에서는 그동안 들려주지 않았던 곡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크라잉 넛 쇼’를 만들었다.
이런 변화된 흐름에서도 끝 부분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말달리자」가 나오는 순간 관객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닥쳐”를 외쳤고, 「밤이 깊었네」의 후렴에선 다 같이 열창했다. 화이트 셔츠로 말끔한 차림새를 갖췄던 보컬 박윤식은 워터건을 쏴대며 이 열광에 보답하였다.
(2010)의 앨범 커버 의상과 동일하게 입고 나온 ‘더 라이크(The Like)’는 그야말로 ‘신선함’이란 단어를 쓸 수밖에 없었다. 남성 뮤지션들이 주축으로 이루어진 축제의 장에서 늘씬한 다리맵시를 자랑하는 모델 같은 4명의 여성이 등장. 핫한 원피스를 입은 그녀들은 인사도 쿨하게 단 두 글자 “안녕”을 외치며 시작도 전에 관중을 흥분의 도가니로 인도했다. 앞서 크라잉 넛 공연으로 인해 땀에 젖은 채 분란하게 이동한 남자 관객들은 그 상황 속에서도 일제히 약속이라도 하듯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이 흔하지 않은 광경을 기록하였고, 밴드는 멤버 토마스의 육중한 드럼 소리를 기점으로 강렬한 사운드를 선사했다.
의상의 제약으로 무대에서 자유자재로 이동하진 못했지만, 그 덕분에 더욱 집중이 가해진 연주는 얼터널티브 록의 맛을 실컷 들려줬다. 더 라이크는 중간 라에나(베이스)가 “감사합니다”라는 멘트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얘기 없이 연주를 지속했는데, 엘리자베스(보컬)가 내지르는 목소리의 힘과 밴드의 합은 그 어떤 록 그룹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에너지와 지구력을 갖고 있었다.
2007년 ‘사랑과 평화’의 공연을 성사시키며 과거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들을 재조명했던 펜타포트는 올해도 거장의 컴백 무대를 마련했다. 그 주인공은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세계로 가는 기차」를 작곡한 들국화의 원년 멤버 조덕환. 2명의 건반 주자와 2명의 기타리스트, 베이스와 드러머를 합체한 그의 밴드는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블루스한 음악과 함께 잔잔한 향을 피워냈다. 특히 앞서 공연을 마쳤던 이장혁이 통기타를 들고 나와 합주를 시도, 음악계 선후배들 간의 뜻깊은 만남을 이루어냈다. 들국화 이후, 2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지나 돌아온 조덕환이지만, 과거 음악팬들을 감동하게 했던 아우라는 여전했다.
첫날 드림 스테이지의 마지막 무대는 피아(Pia)였다. 습하고 더운 날씨에도 옥요한(보컬)은 짙은 베이지색의 코트를 코디했고, 기다랗게 연결된 LED로 휘감은 턴테이블 장식은 그 존재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포스를 뿜어냈다. 예상대로 뉴 메탈의 폭격은 눈과 귀를 사정없이 공격하며 모인 사람들을 흥분시켰고, 미친 듯이 슬램을 하는 집단들이 생기며 록페스티벌에서만 볼 수 있는 광란의 현장을 재현해냈다. 공연 중간 펜타포트에 참여하게 된 상황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한 이들은 처음 시작과는 대조적으로 조용한 마무리를 하며 헤어짐을 건넸다.
피아의 공연이 예상보다 3분 일찍 끝났고, 덕분에 사람들은 금요일의 대미를 장식해줄 밴드를 보기 위해 여유 있게 이동했다. 이때까지 큰 딜레이 없이 원활하게 진행되었던 행사였지만, 애석하게도 마지막 무대는 잡음이 생겼다. 갑작스레 일어난 음향 시설 문제는 타임 테이블에 적혀 있던 저녁 10시를 넘어서도 해결되지 못했고, 21분이 지나 헤드라이너 스테레오포닉스(Stereophonics)가 기타 줄을 튕기며 인사를 건넸지만, 스피커는 터져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기다렸던 관객들은 점점 답답함을 호소했고, 해결되지 않은 이 상황은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말았다. 2곡이 지나서야 켈리 존스(보컬)의 마이크와 기타가 잡혔지만, 지다니(기타)는 공연 중간에 기타를 3번이나 바꿀 정도로 기계가 말썽을 부렸다.
스태프들의 지속적인 노력은 중반 「Hava a nice day」가 흐르기 전에 어느 정도 복구하며 관객들을 안심시켰다. 곡 사이 “Thank you”를 외치며 밴드는 끊임없이 대표곡들을 불렀고, 귀를 관통하는 노래들은 늦은 시각에도 관객의 발을 묶었던 마법 같은 힘이었다.
국내 팬들의 무한한 사랑이 전달된 것일까. 이미 공연 전 팬 사인회로 지칠 법도 한 스테레오포닉스는 퇴장 후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다시 앙코르를 시작, 「Dakota」로 마무리하며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예정이었던 11시 30분이 훌쩍 지난, 이미 시계는 자정의 숫자를 넘어섰던 상태였다. 악조건 속에서도 2시간의 가까운 러닝 타임을 꾸리며 프로다운 팬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2010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의 첫날 공연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잔뜩 낀 구름이 연방 비 걱정을 하게 해주었지만, 하늘도 오늘의 잔치를 축하하고 싶은지 이슬비 정도로 양보해주며 관람객을 풀어주었다. 작년까지 치러졌던 송도보다 더 넓어졌고, 교통적으로도 편리해진 장소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행사가 됐다. 라인업과 환경이 모두 갖춰진, 올해로 5년 차가 된 펜타포트가 듬직하게 느껴졌다.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
둘째 날
지난해 펜타포트 공연은 여름철 록 페스티벌로 보기엔 다소 부족함이 없진 않았다. 해외 밴드라곤 데프톤스가 홀로 외로이 공연 열기를 뜨겁게 한 것이 전부였다.
또한 국내 밴드 위주의 라인업 편성 탓에 급기야 지산밸리 축제에 관객 대다수를 뺏기는 수모까지 당해야만 했다. 일각에서는 “이러다 펜타포트가 내년부터는 문을 닫을지도 모르겠다”는 의구심마저 나돌았다.
올해 펜타포트는 그러나 확실히 부활한 듯했다. 젊은층이 좋아하는 해외 밴드들이 일부 참여해 작년 행사와 달리 라인업 구성도 조금은 보충된 느낌이었다.
특히 둘째 날에는 최근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LCD사운드시스템이 놀라운 공연을 선사했고, 히트곡 「Reason」으로 한국에서도 이름값이 높은 후바스탱크가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르는 등 여름 페스티벌다운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전 내한공연 당시 라이브가 다소 약하다는 쓴 소리를 들은 바 있던 후바스탱크는 이날 예상외로 매끄러운 라이브를 선보였다. 보컬리스트 더그 롭의 컨디션이 꽤 좋아 보였는데, 그의 활기 넘치는 무대매너로 인해 공연장을 찾은 청중들은 밤 11시가 다 되도록 자리를 뜨질 않았다.
둘째 날 공연장을 찾은 인원은 작년보단 확실히 많은 숫자였다. 윤밴(윤도현)이 공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주말 페스티벌다운 분위기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으나 날이 저물면서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들었다. 작년처럼 지산밸리와 공연 날짜가 겹치지 않은 점도 관객 동원에 한몫했다.
후바스탱크 이전에 공연을 가진 LCD사운드시스템의 무대 매너는 단연 압권이었다. 사실 둘째 날 하이라이트는 그들의 차지였다.
밴드의 주인공인 제임스 머피는 6명의 백밴드를 동원하고 나서 펜타포트의 밤을 용광로 같은 댄스클럽으로 만들어 놓았다.
“한국에는 이번이 첫 방문이에요. 오늘 여러분을 만나니깐 무척 흥분되네요.”
제임스 머피는 두 번째 곡으로 「Drunk girls」을 노래하며 초반부터 공연장을 클럽 분위기로 달아오르게 했다. 특히 LCD사운드시스템의 공연 시간에는 백인 젊은이들이 유난히 즐기는 모습이었다.
국내 팀으로는 윤도현 밴드가 관객들의 흥을 북돋았다. 공연 후반에 가서 윤도현은 위스키 한 병을 들고 나오더니 무대 위에서 알코올을 과다 섭취하는 등 예전보다 더 맹렬한 기세로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그 외 관객을 끌 수 있는 밴드가 부족했다는 점은 라인업 구성에 아쉬움을 준 펜타포트 측의 숙제로 남았다.
다행히도 둘째 날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았다. 저녁에는 바람도 잔잔히 불어왔다. 장마철 열리는 페스티벌 특성상 이날은 공연을 즐기기에 무척 상쾌한 날씨였다.
올해 펜타포트 무대는 송도를 떠나 드림파크로 옮겨왔다. 4년간 송도를 줄곧 찾던 이들에게는 다소 낯선 장소였다. 그러나 공연장 바닥은 파릇한 잔디가 돋아나 있었고 푸르른 신록이 주변 경관을 휩싸고 있어 나쁘진 않다는 반응이 대세였다.
공연장을 찾은 한 30대 관람객은 “이전 송도보다 드림파크가 훨씬 록페스티벌 분위기가 난다”면서 “서울 시내에서도 거리가 짧아 이동하기 수월했다”고 말했다.
글 / 김獨(quincyjones@hanmail.net)
셋째 날
화장실도 냄새 나고 모기나 날벌레들이 쉴 새 없이 공격한다. 비가 내리면 진흙 뻘로 변신하는 스테이지도 문제거니와 가장 못 참는 것은 더위다. 이상 한 번도 펜타포트록 페스티벌에 동참하지 못했던 같은 지역 시민의 변이었다. 하지만 제일 가까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마지막 날 공연 취재에 당첨됐다.
전날 음주를 피한 이유로 일요일 아침엔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일어 날 수 있었다. 새벽에 세차게 내린 빗소리에 잠을 깨서인지 소나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것저것 주섬주섬 챙겼다. 대충 지리는 알고 있었기에 여유 있게 집을 나섰고 운전대를 잡은 지 30분 만에 공연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수도권 매립지답게 탁 트인 넓은 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주차장은 넓은 데다가 일찍 온 탓에 공간이 많아 망설임 없이 한 번에 주차할 수 있었다. 생각했던 더위는 평원이라 바람이 잘 불어 어디 조그만 그늘에라도 들어가면 금방 땀을 식힐 수 있었다. 아직 메인 스테이지가 오픈하기 이른 시간이라 입구 바로 옆에 있는 드림 스테이지로 향했다.
국내 밴드 포(Poe)의 모습이 보였다. 3인조 록 밴드인데 특이하게도 기타가 없이 건반이 멜로디를 이끄는 흡사 킨(Keane)을 연상케 했다. 공연을 끝까지 보고 잠시 배를 채우러 푸드존으로 향했다. 탄두리 치킨과 인도식 빵인 난 그리고 맥주 한잔으로 배를 채우니 메인 스테이지 문이 열렸다. 그늘을 찾아 맨 앞쪽으로 가서 뒤를 보니 이백 명 남짓 보이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둘째 날 이만칠천 명이 입장했다는 통계가 의심이 되는 순간이었으나 첫 타자인 슈퍼키드가 무대에 오르자 구름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긴팔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빨간 멜빵과 검은 바지로 의상을 통일한 모습으로 쉴 새 없이 관객들을 몰아붙였다. 댄서이면서 보컬인 두 명의 멘트는 만담을 보는 듯 유쾌했다.
두 번째로 오른 허클베리핀 역시 제복으로 무대의상을 통일해 눈길을 끌었다. 곧 나올 새 앨범에 실릴 노래를 불렀지만 노래는 몰라도 록으로 하나 된 우리는 형제 아니던가? 메인 라인업도 중요했지만 사실 드림 스테이지 쪽 밴드들도 챙기고 싶어서 둘 사이를 연방 부채질하며 오갔다.
햇볕이 따가웠던 한낮, 드림 스테이지의 그늘진 공간은 에어컨을 틀어 놓은 것처럼 시원했다. 곳곳에 돗자리를 펴고 낮잠을 자는 사람들이 보였고 콘솔 박스 쪽에도 그늘이 생겨 여러 명이 진을 치며 앉아 있었다. 별 문제 없어 보였던 드림 스테이지였는데 막상 공연이 시작되니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앞을 막고 뒤를 틔운 구조라 무대에서 스피커로 나오는 음량의 편중이 심했다. 즉, 맨 뒤에 있는 콘솔 박스나 중간 쪽은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스테이지 앞쪽의 볼륨은 거의 소음에 가까웠다. 공연에 집중하려고 무대로 다가서면 귀가 너무 아파 밖에 나와서도 윙윙거렸다. 드림 스테이지는 포기하고 메인 공연으로 향하던 중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한 악기사의 후원으로 꿈나무(?)들의 무대가 세워진 것이다. 많은 관중이 지켜보진 않았지만 드림 스테이지보단 음악에 대한 몰입이 훨씬 수월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밴드는 스마일 마스크를 쓰고 나온 펑크 밴드 시조새와 블루스 록 음악에 뿌리를 둔 써드 스톤(Third Stone)이었다. 특히 써드 스톤은 KT&G 상상마당 <밴드 인큐베이팅> 3기 최종 멤버에 합격해 낯익은 이름이었으며 발군의 기타 연주로 많은 행인들을 팬으로 포섭했다.
오후 4시가 되자 넓은 잔디밭엔 더 이상의 그늘이 보이지 않았다. 무대 앞쪽에 있던 그늘도 이젠 사라졌고 팬들은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이때 이한철이 등장해 능숙하게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부흥집회 찬양 인도자처럼 「가까이」 「차이나」, 중간에 「Sunny」와 메들리로 엮은 「차차차」 등으로 더위에 지친 대중들에게 기운을 복돋아 줬다. 공연 사이에 약간의 텀이 있었지만 이동에 에너지를 소비하느니 잠시 머물러 쉬기로 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제일 관심이 갔던 에고 래핑(Ego-Wrappin')의 모습을 온전히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머리에 상고 같은 모자와 검은 레이스를 걸친 보컬 나가노 요시에의 외모도 독특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과연 명불 허전이었다. 청중을 압도하는 우렁찬 울림과 많은 곡을 불러도 전혀 피치가 떨어지지 않고 정확한 음을 내는 목소리. 작은 체구에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올까하는 탄성을 지르며 감탄하게 되었다. 물론 팬들의 반응도 똑같았다. 전날 LCD사운드시스템이 해외파 우량주였다면 오늘은 에고 래핑이다. 김혜수가 불렀던 「색채의 블루스(色彩のブル-ス)」는 흔히 말하는 떼창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그들이 마이크를 놓자마자 정신없이 드림 스테이지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정말 뛰었다). 요즘 인디 신에서 강자로 주목받는 킹스턴 루디스카의 공연이 있기 때문이다. 도착하자마자 다들 흥에 겨워 들썩이기 시작했다. 뜨거운 여름과 브라스가 만들어 내는 스카 리듬은 뗄 수 없는 관계인가 보다. 하지만 아까 말한 문제점 때문에 좀 더 깊숙이 다가설 수는 없었다. 먼발치에서 킹스턴 루디스카의 공연을 보면서 내년엔 충분히 큰 무대에 설 수 있겠구나, 라는 작은 믿음을 갖게 되었다.
팬들과 밴드의 호흡이 가장 잘 맞아 떨어진 건 김창완 밴드의 시간이었다. 특히 후반부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가지마오」-「개구쟁이」로 이어지는 셋 리스트로 하나가 된 공연장이었다. 나온 지 30년이나 된 노래지만 아직도 따라 부를 수 있고 사람을 열광시키는 힘을 가진 산울림의 진면목을 다시금 확인했던 시간이 되었다.
정신없이 취재를 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었다. 가지고온 돗자리를 잔디밭에 펴고 잠시 쉬면서 저녁을 먹었다. 행사장에선 현금 대신 코인이라는 칩을 사용했는데 환전하는 데 줄이 길지도 않고 펜타포트 월드에 속해 있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여유가 생기니 여기저기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텐트촌, 간이 풀장과 벼룩시장 등 지나치기 쉬운 재미들이 곳곳에 보였다. 내년에도 기회가 된다면 3일은 힘들더라도 이틀 정도 여기에서 숙식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일본 블랙메탈 그룹 디르 앙 그레이(Dir En Grey)의 무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30분 정도 지체가 됐다. 워낙 국내에서 인기 없는 장르이기도 하지만 공연 중반부 팬들은 뜨거운 감자를 보러 속속 대열을 이탈했다. 그런데 도미노 효과로 이곳 역시 시작 시간이 늦춰졌다. 많은 팬들은 하염없이 나오는 전광판 광고를 지겹다고 했고 김씨는 별 멘트 없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봄 바람 따라간 여인」과 「비와 눈물」 「고백」같이 인지도 있는 곡을 보유하게 된 뜨거운 감자의 무대는 알콜 없이도 충분히 몽롱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낮에 우연히 만난 배순탁 선배님의 말처럼 30대의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내일 생계 문제도 있고 이대로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스톤 로지스(Stone Roses)의 이안 브라운(Ian Brown)을 보고 말리라는 다짐을 하며 어금니를 꽉 물고 다시 메인 무대로 향했다.
이미 시작을 40분이나 훌쩍 넘어 밤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지만 많은 팬들은 이안을 외쳤다. 오아시스(Oasis)와 블러(Blur)가 없던 그 시절 스톤 로지스가 바로 브릿팝의 대명사였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수놓은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간간히 침을 뱉고 건들건들 몸을 흔드는 모습은 성의 없어 보이기보단 대단한 자신감으로 충만해 보였다. 3일간 지속된 축제에 대미를 장식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차를 타고 집에 오면서 올해 인천시장 당선자가 밝힌 공약을 상기해 봤다. 과도한 축제 비용을 줄여 민생에 힘을 쏟겠다는 것이 내용인데 거기에 펜타포트의 이름이 거명되면서 많은 팬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었다. 악천후 속에서도 5만 명이 함께했던 이 축제가 계속 이어져 지역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페스티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해봤다.
벌써 5년째를 맞은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은 올해부터 단순한 축제가 아닌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멀티 행사로 거듭났다. 오늘 마친 록페스티벌은 펜타포트라는 큰 덩어리의 한 부분인 것이다. 아직 축제는 끝난 것이 아니며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www.pentaport.kr에서 확인 가능하다.
글 / 이건수(buythewayman@daum.net)
제공: IZM
www.izm.co.kr/
개최 전날 밤, 인천 일대는 번개와 천둥이 휘몰아쳤었다. 불과 24시간도 안 남은 상황에서 정상적인 공연이 가능하겠느냐는 걱정과 평일 오후라는 시간적 제약이 마음에 걸렸던 터라 공연장인 인천 드림파크로 향하는 길이 편치만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하늘은 잔뜩 찌푸린 채로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러한 노파심을 당돌하게 비웃어 준 것은 페스티벌의 초반 분위기를 띄워준 국내 밴드들이었다. 그것도 자신들에게 기대하는 특성화된 스테이지에서 상상 이상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말이다. 남들 눈에는 평일 오후에 시간 보내러온 ‘잉여’들이라고 비춰졌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을 관객들의 호응도도 훌륭했다. ‘미친’ 뮤지션들과 ‘미친’ 관객들이 하모니를 이루는 이례적인 장관이 드림파크 잔디밭에서 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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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뮤지션들로 이루어진 대열의 선두주자는 갤럭시 익스프레스(Galaxy Express)였다. 최신 앨범
세 명의 ‘맨 인 블랙’은 퍼포먼스의 끝을 보여줬다. 풍차 돌리기, 이빨로 기타줄 뜯기, 등 뒤로 연주하기는 물론이었고, 이주현의 어깨 위에서 박종현이 두 번이나 구사한 무등 타기 연주는 공연의 백미였다. 대체로
리쌍의 제3의 멤버이자, 최근에 애절한 발라드 「미워요」로 사랑을 받아온 정인이 성큼성큼 걸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비트는 퀸(Queen)의 「We will rock you」로 시작했지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콜라보레이션의 최종 완성품은 조안 제트 앤 더 블랙하츠(Joan Jett and the blackhearts)의 「I love rock and roll」이었다. 정인의 가창력은 정평이 나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록 적인 감성도 완벽하게 소화시킬 수 있는 명품 보컬이라는 점까지 충분히 증명한 무대였다.
“강씨 집안의 사내, 강산에입니다.” 정감 있는 경상도 억양은 역시 반가웠다.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밴드 이름 그대로 록 마니아들을 안드로메다로 관광 보낸 무대를 선사했다면 강산에는 높은 연령층까지 몸과 마음을 들썩이게 만드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올맨 브라더스 밴드 (Allman Brothers Band)가 프린팅된 티셔츠를 레이어드한 편안한 옷차림으로 강산에는 흐르는 분위기에 따라 자유롭게 노래하고 관객과 어울렸다.
페스티벌에 임하는 자세를 「삐딱하게」로 암시했다면 「예럴랄라」에서는 하모니카 연주만으로도 관객들의 손발을 자유자재로 흐느적거리게 만드는 재주를 선보였다. 의외로 공연장에는 30~40대의 중년층 관객도 많이 눈에 띄었는데 이들까지 포괄할 수 있는 「할아버지와 수박」 「와그라노」 「넌 할 수 있어」, 마지막 앙코르 곡으로 열창한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까지 펜타포트에서 강산에의 무대는 폭넓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대표곡들을 압축해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강산에는 무대를 내려가면서 짧은 말이었지만 의미심장한 인사를 전했다. “여러분, 오래 살아야 합니다. 우울하다고 자살하고 그러면 안 돼. 우리가 눈에 구멍이 뚫려서 그렇지, 세상에는 아름다운 구석도 많이 있단 말야. 우리가 살아있으니까 이런 즐거운 공연도 즐길 수 있는 것 아니겠어? 오래 삽시다.” 구수한 사투리가 담겨 있었던 탓인지, 마지막 말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날 펜타포트에 참가한 뮤지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눈에 띄는 의상들을 입고 무대를 달궜다. 금요일 라인업의 홍일점이라고 할 수 있었던 오지은은 그의 밴드인 ‘늑대들’을 대동한 무대에서 짧은 미니원피스를 입고 광적인 폭발력으로 탄성을 자아냈다. 자못 귀여운 가사와 멜로디가 담긴 「웨딩송」과 「인생론」이 거친 늑대들의 기타 사운드와 함께 질주했다. ‘방 라이브’ 동영상 속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치던 모습만으로 그녀를 인식했던 이들에게는 통렬한 반전이었다.
날이 저물면서 야외 스테이지에는 국내 대형 페스티벌에서 빠질 수 없는 손님인 크라잉 넛이 올라섰다. 대중적으로 친숙한 밴드이기에 익숙한 레퍼토리를 기대하는 것이 사실이나, 이번 공연에서는 그동안 들려주지 않았던 곡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크라잉 넛 쇼’를 만들었다.
이런 변화된 흐름에서도 끝 부분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말달리자」가 나오는 순간 관객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닥쳐”를 외쳤고, 「밤이 깊었네」의 후렴에선 다 같이 열창했다. 화이트 셔츠로 말끔한 차림새를 갖췄던 보컬 박윤식은 워터건을 쏴대며 이 열광에 보답하였다.
의상의 제약으로 무대에서 자유자재로 이동하진 못했지만, 그 덕분에 더욱 집중이 가해진 연주는 얼터널티브 록의 맛을 실컷 들려줬다. 더 라이크는 중간 라에나(베이스)가 “감사합니다”라는 멘트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얘기 없이 연주를 지속했는데, 엘리자베스(보컬)가 내지르는 목소리의 힘과 밴드의 합은 그 어떤 록 그룹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에너지와 지구력을 갖고 있었다.
2007년 ‘사랑과 평화’의 공연을 성사시키며 과거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들을 재조명했던 펜타포트는 올해도 거장의 컴백 무대를 마련했다. 그 주인공은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세계로 가는 기차」를 작곡한 들국화의 원년 멤버 조덕환. 2명의 건반 주자와 2명의 기타리스트, 베이스와 드러머를 합체한 그의 밴드는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블루스한 음악과 함께 잔잔한 향을 피워냈다. 특히 앞서 공연을 마쳤던 이장혁이 통기타를 들고 나와 합주를 시도, 음악계 선후배들 간의 뜻깊은 만남을 이루어냈다. 들국화 이후, 2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지나 돌아온 조덕환이지만, 과거 음악팬들을 감동하게 했던 아우라는 여전했다.
첫날 드림 스테이지의 마지막 무대는 피아(Pia)였다. 습하고 더운 날씨에도 옥요한(보컬)은 짙은 베이지색의 코트를 코디했고, 기다랗게 연결된 LED로 휘감은 턴테이블 장식은 그 존재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포스를 뿜어냈다. 예상대로 뉴 메탈의 폭격은 눈과 귀를 사정없이 공격하며 모인 사람들을 흥분시켰고, 미친 듯이 슬램을 하는 집단들이 생기며 록페스티벌에서만 볼 수 있는 광란의 현장을 재현해냈다. 공연 중간 펜타포트에 참여하게 된 상황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한 이들은 처음 시작과는 대조적으로 조용한 마무리를 하며 헤어짐을 건넸다.
피아의 공연이 예상보다 3분 일찍 끝났고, 덕분에 사람들은 금요일의 대미를 장식해줄 밴드를 보기 위해 여유 있게 이동했다. 이때까지 큰 딜레이 없이 원활하게 진행되었던 행사였지만, 애석하게도 마지막 무대는 잡음이 생겼다. 갑작스레 일어난 음향 시설 문제는 타임 테이블에 적혀 있던 저녁 10시를 넘어서도 해결되지 못했고, 21분이 지나 헤드라이너 스테레오포닉스(Stereophonics)가 기타 줄을 튕기며 인사를 건넸지만, 스피커는 터져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기다렸던 관객들은 점점 답답함을 호소했고, 해결되지 않은 이 상황은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말았다. 2곡이 지나서야 켈리 존스(보컬)의 마이크와 기타가 잡혔지만, 지다니(기타)는 공연 중간에 기타를 3번이나 바꿀 정도로 기계가 말썽을 부렸다.
스태프들의 지속적인 노력은 중반 「Hava a nice day」가 흐르기 전에 어느 정도 복구하며 관객들을 안심시켰다. 곡 사이 “Thank you”를 외치며 밴드는 끊임없이 대표곡들을 불렀고, 귀를 관통하는 노래들은 늦은 시각에도 관객의 발을 묶었던 마법 같은 힘이었다.
국내 팬들의 무한한 사랑이 전달된 것일까. 이미 공연 전 팬 사인회로 지칠 법도 한 스테레오포닉스는 퇴장 후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다시 앙코르를 시작, 「Dakota」로 마무리하며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예정이었던 11시 30분이 훌쩍 지난, 이미 시계는 자정의 숫자를 넘어섰던 상태였다. 악조건 속에서도 2시간의 가까운 러닝 타임을 꾸리며 프로다운 팬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2010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의 첫날 공연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잔뜩 낀 구름이 연방 비 걱정을 하게 해주었지만, 하늘도 오늘의 잔치를 축하하고 싶은지 이슬비 정도로 양보해주며 관람객을 풀어주었다. 작년까지 치러졌던 송도보다 더 넓어졌고, 교통적으로도 편리해진 장소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행사가 됐다. 라인업과 환경이 모두 갖춰진, 올해로 5년 차가 된 펜타포트가 듬직하게 느껴졌다.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
둘째 날
지난해 펜타포트 공연은 여름철 록 페스티벌로 보기엔 다소 부족함이 없진 않았다. 해외 밴드라곤 데프톤스가 홀로 외로이 공연 열기를 뜨겁게 한 것이 전부였다.
또한 국내 밴드 위주의 라인업 편성 탓에 급기야 지산밸리 축제에 관객 대다수를 뺏기는 수모까지 당해야만 했다. 일각에서는 “이러다 펜타포트가 내년부터는 문을 닫을지도 모르겠다”는 의구심마저 나돌았다.
올해 펜타포트는 그러나 확실히 부활한 듯했다. 젊은층이 좋아하는 해외 밴드들이 일부 참여해 작년 행사와 달리 라인업 구성도 조금은 보충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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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둘째 날에는 최근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LCD사운드시스템이 놀라운 공연을 선사했고, 히트곡 「Reason」으로 한국에서도 이름값이 높은 후바스탱크가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르는 등 여름 페스티벌다운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전 내한공연 당시 라이브가 다소 약하다는 쓴 소리를 들은 바 있던 후바스탱크는 이날 예상외로 매끄러운 라이브를 선보였다. 보컬리스트 더그 롭의 컨디션이 꽤 좋아 보였는데, 그의 활기 넘치는 무대매너로 인해 공연장을 찾은 청중들은 밤 11시가 다 되도록 자리를 뜨질 않았다.
둘째 날 공연장을 찾은 인원은 작년보단 확실히 많은 숫자였다. 윤밴(윤도현)이 공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주말 페스티벌다운 분위기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으나 날이 저물면서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들었다. 작년처럼 지산밸리와 공연 날짜가 겹치지 않은 점도 관객 동원에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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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바스탱크 이전에 공연을 가진 LCD사운드시스템의 무대 매너는 단연 압권이었다. 사실 둘째 날 하이라이트는 그들의 차지였다.
밴드의 주인공인 제임스 머피는 6명의 백밴드를 동원하고 나서 펜타포트의 밤을 용광로 같은 댄스클럽으로 만들어 놓았다.
“한국에는 이번이 첫 방문이에요. 오늘 여러분을 만나니깐 무척 흥분되네요.”
제임스 머피는 두 번째 곡으로 「Drunk girls」을 노래하며 초반부터 공연장을 클럽 분위기로 달아오르게 했다. 특히 LCD사운드시스템의 공연 시간에는 백인 젊은이들이 유난히 즐기는 모습이었다.
국내 팀으로는 윤도현 밴드가 관객들의 흥을 북돋았다. 공연 후반에 가서 윤도현은 위스키 한 병을 들고 나오더니 무대 위에서 알코올을 과다 섭취하는 등 예전보다 더 맹렬한 기세로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그 외 관객을 끌 수 있는 밴드가 부족했다는 점은 라인업 구성에 아쉬움을 준 펜타포트 측의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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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둘째 날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았다. 저녁에는 바람도 잔잔히 불어왔다. 장마철 열리는 페스티벌 특성상 이날은 공연을 즐기기에 무척 상쾌한 날씨였다.
올해 펜타포트 무대는 송도를 떠나 드림파크로 옮겨왔다. 4년간 송도를 줄곧 찾던 이들에게는 다소 낯선 장소였다. 그러나 공연장 바닥은 파릇한 잔디가 돋아나 있었고 푸르른 신록이 주변 경관을 휩싸고 있어 나쁘진 않다는 반응이 대세였다.
공연장을 찾은 한 30대 관람객은 “이전 송도보다 드림파크가 훨씬 록페스티벌 분위기가 난다”면서 “서울 시내에서도 거리가 짧아 이동하기 수월했다”고 말했다.
글 / 김獨(quincyjones@hanmail.net)
셋째 날
화장실도 냄새 나고 모기나 날벌레들이 쉴 새 없이 공격한다. 비가 내리면 진흙 뻘로 변신하는 스테이지도 문제거니와 가장 못 참는 것은 더위다. 이상 한 번도 펜타포트록 페스티벌에 동참하지 못했던 같은 지역 시민의 변이었다. 하지만 제일 가까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마지막 날 공연 취재에 당첨됐다.
전날 음주를 피한 이유로 일요일 아침엔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일어 날 수 있었다. 새벽에 세차게 내린 빗소리에 잠을 깨서인지 소나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것저것 주섬주섬 챙겼다. 대충 지리는 알고 있었기에 여유 있게 집을 나섰고 운전대를 잡은 지 30분 만에 공연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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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매립지답게 탁 트인 넓은 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주차장은 넓은 데다가 일찍 온 탓에 공간이 많아 망설임 없이 한 번에 주차할 수 있었다. 생각했던 더위는 평원이라 바람이 잘 불어 어디 조그만 그늘에라도 들어가면 금방 땀을 식힐 수 있었다. 아직 메인 스테이지가 오픈하기 이른 시간이라 입구 바로 옆에 있는 드림 스테이지로 향했다.
국내 밴드 포(Poe)의 모습이 보였다. 3인조 록 밴드인데 특이하게도 기타가 없이 건반이 멜로디를 이끄는 흡사 킨(Keane)을 연상케 했다. 공연을 끝까지 보고 잠시 배를 채우러 푸드존으로 향했다. 탄두리 치킨과 인도식 빵인 난 그리고 맥주 한잔으로 배를 채우니 메인 스테이지 문이 열렸다. 그늘을 찾아 맨 앞쪽으로 가서 뒤를 보니 이백 명 남짓 보이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둘째 날 이만칠천 명이 입장했다는 통계가 의심이 되는 순간이었으나 첫 타자인 슈퍼키드가 무대에 오르자 구름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긴팔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빨간 멜빵과 검은 바지로 의상을 통일한 모습으로 쉴 새 없이 관객들을 몰아붙였다. 댄서이면서 보컬인 두 명의 멘트는 만담을 보는 듯 유쾌했다.
두 번째로 오른 허클베리핀 역시 제복으로 무대의상을 통일해 눈길을 끌었다. 곧 나올 새 앨범에 실릴 노래를 불렀지만 노래는 몰라도 록으로 하나 된 우리는 형제 아니던가? 메인 라인업도 중요했지만 사실 드림 스테이지 쪽 밴드들도 챙기고 싶어서 둘 사이를 연방 부채질하며 오갔다.
햇볕이 따가웠던 한낮, 드림 스테이지의 그늘진 공간은 에어컨을 틀어 놓은 것처럼 시원했다. 곳곳에 돗자리를 펴고 낮잠을 자는 사람들이 보였고 콘솔 박스 쪽에도 그늘이 생겨 여러 명이 진을 치며 앉아 있었다. 별 문제 없어 보였던 드림 스테이지였는데 막상 공연이 시작되니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앞을 막고 뒤를 틔운 구조라 무대에서 스피커로 나오는 음량의 편중이 심했다. 즉, 맨 뒤에 있는 콘솔 박스나 중간 쪽은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스테이지 앞쪽의 볼륨은 거의 소음에 가까웠다. 공연에 집중하려고 무대로 다가서면 귀가 너무 아파 밖에 나와서도 윙윙거렸다. 드림 스테이지는 포기하고 메인 공연으로 향하던 중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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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악기사의 후원으로 꿈나무(?)들의 무대가 세워진 것이다. 많은 관중이 지켜보진 않았지만 드림 스테이지보단 음악에 대한 몰입이 훨씬 수월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밴드는 스마일 마스크를 쓰고 나온 펑크 밴드 시조새와 블루스 록 음악에 뿌리를 둔 써드 스톤(Third Stone)이었다. 특히 써드 스톤은 KT&G 상상마당 <밴드 인큐베이팅> 3기 최종 멤버에 합격해 낯익은 이름이었으며 발군의 기타 연주로 많은 행인들을 팬으로 포섭했다.
오후 4시가 되자 넓은 잔디밭엔 더 이상의 그늘이 보이지 않았다. 무대 앞쪽에 있던 그늘도 이젠 사라졌고 팬들은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이때 이한철이 등장해 능숙하게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부흥집회 찬양 인도자처럼 「가까이」 「차이나」, 중간에 「Sunny」와 메들리로 엮은 「차차차」 등으로 더위에 지친 대중들에게 기운을 복돋아 줬다. 공연 사이에 약간의 텀이 있었지만 이동에 에너지를 소비하느니 잠시 머물러 쉬기로 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제일 관심이 갔던 에고 래핑(Ego-Wrappin')의 모습을 온전히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머리에 상고 같은 모자와 검은 레이스를 걸친 보컬 나가노 요시에의 외모도 독특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과연 명불 허전이었다. 청중을 압도하는 우렁찬 울림과 많은 곡을 불러도 전혀 피치가 떨어지지 않고 정확한 음을 내는 목소리. 작은 체구에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올까하는 탄성을 지르며 감탄하게 되었다. 물론 팬들의 반응도 똑같았다. 전날 LCD사운드시스템이 해외파 우량주였다면 오늘은 에고 래핑이다. 김혜수가 불렀던 「색채의 블루스(色彩のブル-ス)」는 흔히 말하는 떼창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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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마이크를 놓자마자 정신없이 드림 스테이지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정말 뛰었다). 요즘 인디 신에서 강자로 주목받는 킹스턴 루디스카의 공연이 있기 때문이다. 도착하자마자 다들 흥에 겨워 들썩이기 시작했다. 뜨거운 여름과 브라스가 만들어 내는 스카 리듬은 뗄 수 없는 관계인가 보다. 하지만 아까 말한 문제점 때문에 좀 더 깊숙이 다가설 수는 없었다. 먼발치에서 킹스턴 루디스카의 공연을 보면서 내년엔 충분히 큰 무대에 설 수 있겠구나, 라는 작은 믿음을 갖게 되었다.
팬들과 밴드의 호흡이 가장 잘 맞아 떨어진 건 김창완 밴드의 시간이었다. 특히 후반부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가지마오」-「개구쟁이」로 이어지는 셋 리스트로 하나가 된 공연장이었다. 나온 지 30년이나 된 노래지만 아직도 따라 부를 수 있고 사람을 열광시키는 힘을 가진 산울림의 진면목을 다시금 확인했던 시간이 되었다.
정신없이 취재를 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었다. 가지고온 돗자리를 잔디밭에 펴고 잠시 쉬면서 저녁을 먹었다. 행사장에선 현금 대신 코인이라는 칩을 사용했는데 환전하는 데 줄이 길지도 않고 펜타포트 월드에 속해 있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여유가 생기니 여기저기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텐트촌, 간이 풀장과 벼룩시장 등 지나치기 쉬운 재미들이 곳곳에 보였다. 내년에도 기회가 된다면 3일은 힘들더라도 이틀 정도 여기에서 숙식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일본 블랙메탈 그룹 디르 앙 그레이(Dir En Grey)의 무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30분 정도 지체가 됐다. 워낙 국내에서 인기 없는 장르이기도 하지만 공연 중반부 팬들은 뜨거운 감자를 보러 속속 대열을 이탈했다. 그런데 도미노 효과로 이곳 역시 시작 시간이 늦춰졌다. 많은 팬들은 하염없이 나오는 전광판 광고를 지겹다고 했고 김씨는 별 멘트 없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봄 바람 따라간 여인」과 「비와 눈물」 「고백」같이 인지도 있는 곡을 보유하게 된 뜨거운 감자의 무대는 알콜 없이도 충분히 몽롱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낮에 우연히 만난 배순탁 선배님의 말처럼 30대의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내일 생계 문제도 있고 이대로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스톤 로지스(Stone Roses)의 이안 브라운(Ian Brown)을 보고 말리라는 다짐을 하며 어금니를 꽉 물고 다시 메인 무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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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작을 40분이나 훌쩍 넘어 밤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지만 많은 팬들은 이안을 외쳤다. 오아시스(Oasis)와 블러(Blur)가 없던 그 시절 스톤 로지스가 바로 브릿팝의 대명사였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수놓은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간간히 침을 뱉고 건들건들 몸을 흔드는 모습은 성의 없어 보이기보단 대단한 자신감으로 충만해 보였다. 3일간 지속된 축제에 대미를 장식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차를 타고 집에 오면서 올해 인천시장 당선자가 밝힌 공약을 상기해 봤다. 과도한 축제 비용을 줄여 민생에 힘을 쏟겠다는 것이 내용인데 거기에 펜타포트의 이름이 거명되면서 많은 팬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었다. 악천후 속에서도 5만 명이 함께했던 이 축제가 계속 이어져 지역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페스티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해봤다.
벌써 5년째를 맞은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은 올해부터 단순한 축제가 아닌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멀티 행사로 거듭났다. 오늘 마친 록페스티벌은 펜타포트라는 큰 덩어리의 한 부분인 것이다. 아직 축제는 끝난 것이 아니며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www.pentaport.kr에서 확인 가능하다.
글 / 이건수(buythewayman@daum.net)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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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