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책 이야기] 에두르지 말고 말해요.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신달자
지난 6월,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책 이야기’를 들려줄 저자는 신달자 선생님이었다. 새 책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들에 대한 에세이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0.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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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 다정한 말투로 던지는 도치법이 좋더라

누군가를 인식하고 어떤 감정을 갖기까지 그 사람의 말은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사람은 시각적인 데에 가장 빨리 반응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가장 먼저 인식하게 되는 것이 겉모습이기 때문에 외양이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친다고 치자. 그것은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 하지만 외양은 호감을 결정짓는 첫 단계, 첫 순간에 불과하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는 것과 마음을 사로잡히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지 않던가. 마음을 빼앗겼다고 내 스스로 승복하게 만드는 데에는 상대에게 분명 외양 이상의 매력적인 무언가가 있다(모두가 그렇다고 말하진 않겠다만 대개가 그렇다). 그 사람이 지닌 고유의 분위기, 목소리, 말투, 표정 등등 누군가에게 마음이 사로잡히면 점차 디테일한 것들이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디테일 가운데 하나인 ‘말’의 속성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여기서 ‘말’이란, 말투(종결어미가 ‘~했냐?’인지 ‘~했니?’인지), 자주 쓰는 단어, 그 배치 등을 포괄한다. (개인적으로 문장에 강약을 주는 도치법에 매력을 느낀다. “철수야, 잘 지냈니?”보다는 “잘 지냈니, 철수야?”) ‘나는 어떤 말투에, 어떤 단어를 쓰는 사람이 좋더라’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한번 생각해보라. 당신도 무의식 중에 매력을 느끼는 상대의 어떤 말투, 어떤 단어, 어떤 화법이 있을 테다.

표정이나 느낌, 분위기 등이 그 사람에게 은연중에 배어 나오는 것이라면. 말은 그보다 훨씬 주도적이다. ‘수단’이라고 할 만큼 적극적이고 의지적인 속성을 가졌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표정을 짓고, 작은 동작을 취하지만, 말은 무의식보다는 의식에 가깝다. 이 말을 할까 말까? 이 말은 괜히 했군. 이 말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말할까? 그런 점에서 여느 디테일과는 다른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화해하는 첫 마디


지난 6월,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책 이야기’를 들려줄 저자는 신달자 선생님이었다. 새 책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들에 대한 에세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글이 화해에 관한 에세이라고 밝혔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은 자신과 혹은 공동체와 화해를 할 때 첫 마디가 된다는 이야기다. “미안하다는 말은 결국 상대에게 고맙다는 말을 이끌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사랑해’라는 말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인간에게 특권이 있다면 동물에게 없는 언어, 말이 있다는 것이다. 소는 태어나면 몇 번 비틀거리다가 제 발로 선다. 인간은 1년가량 누워 있고 기어 다니다가, 1년이 채 못 됐을 때 겨우 서게 된다. 그렇게 서서 배우는 게 말이다.” 이날 강연회에서는 우리가 배운 말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이른바 말의 활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은 우리나라 사람에게만 특수용어처럼 쓰이지만, 사실은 일상용어다. 누구라도 언제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사소한 이 말 한마디를 너무 인색하게 쓰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화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힘을 천배로 늘리는 인간의 기적일 것입니다. 우리 서로 그런 마음의 각오를 표현하는 일에 인색하지 말고, 바로 앞 분에게 이렇게 인사를 하면 어떨까요?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고 말입니다.(p.5)


꿈은 말해야 한다. 사랑도 말해야 한다


이날의 강연은, 진심과 감동이 담긴 말하기가 얼마나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해주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자리였다. 저자는 화법의 달인, 인간관계의 일인자, 데일 카네기의 여러 일화를 들려주었다. 인상적인 것은 신달자 저자의 강연 자체였다. 시인은 말하기보다 글쓰기가 더 익숙할 터인데, ‘감동의 명강의, 수많은 청중을 사로잡은 희망특강’이라고 책 띠에 적혀있는 문구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강의가 유려했다. 마치 서두와 결말이 잘 짜인 한 권의 책을 듣는(!) 듯했다.

화술이나 화법에 관한 강연은 아니었지만, 적절한 말이 지닌 감동과 그 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말을 잘 (사용)하는 것은 말의 속성을 잘 아는 것과 같은 셈이었다. 적어도 말이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 중에 이뤄진다는 것만 알고 있어도 우리의 대화는 달라질 것이다. 내가 자주 써야 하는 말, 우리에게 필요한 말, 쓰지 않는 게 좋은 말을 습관처럼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말 때문에 얼굴이 달아오를 일이 훨씬 적어질 테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을 해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그 말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공감한다면, 확신한다면, 그때에 우리의 말이 달라질 것이다.

독일에는 ‘파라이 흐트’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아마……’ 정도로 해석됩니다. 미국에는 ‘퍼햅스’라고 해서, ‘아마 그럴 수도……’ 정도의 ‘본심 은폐 심리’ 매커니즘이 존재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딱 잘라 말하는 것을 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p.36)

그래서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 <러브 스토리>의 한 장면이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알고 있고, 많은 이야기에서 인용되는 유명한 대사.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거야.” 선생님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의아했단다. “정말 그런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늘 이 말을 꿀꺽 삼킨다. 우리는 말하는 대신 상대방을 멋대로 믿어버린다. ‘너 알지? 너 내 속 몰라?’ 이렇게 넘어가기 일쑤다. 아마 그래서 제니퍼도 그렇게 말한 걸 거다.”

‘내 맘 알지?’라고 상대에게 기대버릴 때는,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을 모르거나 확신이 없는 경우가 많다. 과연 말하지 못하는 까닭이 부끄러움 때문일까?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말이 있지 않나. “꿈은 말해야 한다.” 모두가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걸 보니, 이건 좀 믿을 만한 얘기 같다. 생각하는 것과 입 밖으로 내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생각하는 것은 고민에 그치지만, 입 밖으로 말하게 되면, 나 스스로도 믿게 된다.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혹은 물건 혹은 서비스)의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내는 순간, 그 사람(그것)이 훨씬 좋아졌던 경험, 있지 않던가. 그러니까, “내 맘 알지?”는 믿음의 증언이 아니라 조금은 이기적이거나 무책임한 마음의 발로라는 것. 까짓 거, 문학 하는 것도 아닌데 에둘러 가지 말고 말하자는 것.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그 사람이 나를 이해하고, 그 사람이 나에게 있다는 존재의 확인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요. (…) 내가 누구인가를 확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p.73)


사랑은 두 마음이 마주 보는 것

선생님의 딴지 걸기(!)는 이어진다. “사랑은 마주 보는 게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는 일이라고?” 이 말 역시, ‘사랑해’라는 말 대신 ‘내 맘 알지?’로 둘러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선생님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사랑이란 상대를 살려주는 것이다. 그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다. 마주보지도 않고 앞만 바라보면 사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어떤 이상만 바라보는 것을 오래 지속한다고 그게 사랑일까? 의문이 든다.” 사랑을 마주 보란 말씀.

마주 보면? 싸우게 된다. 노려볼 때도 있다. 외면할 때도 있겠지만, 눈 앞에 상대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손을 잡거나 안아주기도 쉽다. 감정도 마음도 에둘러 가지 말자는 것. 게다가 마주 보는 일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만 가능하다. 홀로 좋아하는 마음도 같은 방향을 볼 수는 있지만, 외면하는 마음과 마주 보기는 어?다. 고로 선생님 왈, 짝사랑 말고 사랑 하라신다. “역시 사랑은 혼자 좋아해서도 안되고, 상대방과 나의 삶을 살리는 사랑이어야 한다. 삶의 의지를 더해주는 게 사랑이다.”

이왕이면 사람 살리는 말을 하며 살자는 거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하나의 생명을 좌우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말을 쉽게 할 수 없을 거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키는 것도 말이다. 내 옆 사람에게 힘을 건네주듯이 말을 건네자. 그런 말을 쓰자.” 197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이작 싱어는 이런 수상소감을 남겼다. “내가 쓰는 유대어에는 무기, 핵이라는 말이 없다. 기쁨과 사랑, 희열과 봉사만이 있다.”

우리에게는 어떤 언어를 가지고 있나. 우리의 삶 속에는 어떤 말이 있고, 어떤 말이 없었나. 아마 이날, 이 자리에 모인 독자들은 일상에 먼지처럼 무심하게 대했던 언어들을 한번씩 쓸어 담아 보았을 테다. “적어도 내 고향에서는 고운 말만을 배워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남을 어루만지는 말을 가지지 않고 어떻게 시를 써왔겠나. 앞으로 그런 말, 그런 시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것을 약속하겠다.”


가슴에 사랑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학 할 수 있다


강연이 끝나고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한 독자가 저자에게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물었다. 마치 이날 강연의 부록 같은 이야기였다. 연사 신달자 선생님이 아닌, 시인 신달자 선생님의 이야기. “결론부터 말하면 딱 죽을 맛이다”라는 서두로 웃음을 터뜨렸다. 대학에 처음 입학해서, 노트 첫 장에 이렇게 쓰셨단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밥을 먹겠다.’ “이 말은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먹겠다는 각오다. 그래서 이렇게 됐다. 고로,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웃음)”

“너 몇 평짜리 집에 사냐? 아버지 뭐 하시냐? 문학은 이런 걸 묻지 않는다.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건강한 정신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가슴에 사랑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학을 할 수 있을 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다 좀 깨지더라도, 그렇다고 안 할 거 아니지 않나. 인내하면서 목적을 향해 부단히 걸어가면 작가라는 목표에 도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날의 강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한 장면으로 마무리했다. “어린 왕자가 어느 별에 내려서 약장사를 만난다. 이 약장사는 아주 특이한 약을 팔고 있었다. 한 알을 먹으면, 일주일 동안 목이 마르지 않는 알약이었다. 『어린 왕자』를 쓸 때 생텍쥐페리는 100년 후에 인간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약장사의 흥정은 계속된다. ‘일주일 동안 목이 마르지 않아서, 냉장고 문을 열지 않으면 몇 분이나 절약할 수 있을까? 53분 절약할 수 있다.’ 그때 어린 왕자가 이렇게 대답한다. ‘나에게 53분이 주어진다면 난 저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겠다.’

사람들은 편리한 것을 찾아 떠난다. 너무 휙휙 지나가는 요즘,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을 사랑할 줄을 모른다. 어린 왕자가 말한, 샘이 있다는 그 믿음으로 명상적인 자세와 노동의 자세를 겸비하면 샘이 어디에 있든 못 갈 이유가 뭔가. 자기 스스로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알기 바란다. 그때 생기는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인생을 씩씩하게 살아나가길 바란다.”
이날의 강연, 마주 앉은 독자들에게 힘 되는 말, 살게 하는 말을 해주셨더랬다.

#신달자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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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6.01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네요. 하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사랑받기는 힘들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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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경남 거창에서 출생, 부산에서 고교 시절을 보내고 숙명여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평택대학교 국문과 교수,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거쳐 숙명여대 명예교수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문화진흥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시와 연애하던 대학 시절의 열정으로 1964년 《여상》여류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며, 결혼 후 197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를 게재하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 2001년 시와시학상, 2004년 한국시인협회상, 2007년 현대불교문학상, 2008년 영랑시문학상, 2009년 공초 오상순문학상, 2011년에는 김준성문학상과 대산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12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였다. 시집 『봉헌문자』 『아버지의 빛』 『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 『오래 말하는 사이』,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수필집 『백치애인』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 『고백』『너는 이 세 가지를 명심하라』『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등이 있다. 『나이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며, 시어머니와 어머니의 죽음, 본인의 암 투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삶과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고통을 이겨 낸 감동적인 드라마로서,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던 시인의 깊은 상처를 온몸으로 고백한 작품이다. 이 책에서 시인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깨달은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 주며, “영원히 싸우고 사랑해야 할 것은 오직 인생뿐”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 질곡의 세월 속에서 탁월한 감수성으로 건져 올린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한 깊은 사유를 때론 열정적으로, 때론 담담하게 풀어 나가는 시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노라면 삶의 한 고비를 넘어온 여성의 여유로움과 따스함, 모성과 포용력이 느껴진다.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시인의 눈이 뜨겁다. 시선집 『바람 멈추다』는 개성적인 시세계의 영역을 폭넓게 확장시켜 온 시인의 시선집으로, 시력 40년을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다. 첫 시집 『봉헌문자』에서부터, 『겨울축제』, 『고향의 물』, 『모순의 방』, 『새를 보면서, 『시간과의 동행』, 『아버지의 빛』, 『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 『오래 말하는 사이』, 『열애』 에 이르기는 10여 권의 시집에서 저자 스스로 뽑은 대표시 100편을 모아 구성하였다. 오랫동안 자신의 몸 속에 쌓아온 고통의 시간들을 성찰하고 치유하는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지속적으로 견지해 온 시인의 시에서, 그러한 고통을 넘어 새로운 삶의 기율을 ‘사랑’의 에너지로 생성해 가려는 시인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