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북살롱]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 『세 가지 소원』의 박완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가끔 나이에 대해 고민에 잠길 때가 있습니다. 나이란, 스무 살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늙는다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이십 대에는 십 대를, 삼십 대에는 이십 대를 그리워하게 되죠. 저 역시 언젠가부터 나보다 어린 사람들을 보면 ‘너흰 젊어서 좋겠구나!’ 하는 약간의 탄식과 함께 부러워만 했어요.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들의 삶을 살고 지나온 셈인데도 말이죠. 그러다가 문득, 나이에 대해 생각을 바꾸었답니다. 이젠 나이듦에 대해 곰곰 생각하고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나는 어떤 할머니를 원하는가?’와 같은 긍정적인 고민들을 하기로 말이죠. 그래서 저의 롤 모델이 될 분을 생각해보았어요. 와, 망설임도 없이 박완서 선생님이 떠올랐답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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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이에 대해 고민에 잠길 때가 있습니다. 나이란, 스무 살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늙는다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이십 대에는 십 대를, 삼십 대에는 이십 대를 그리워하게 되죠. 저 역시 언젠가부터 나보다 어린 사람들을 보면 ‘너흰 젊어서 좋겠구나!’ 하는 약간의 탄식과 함께 부러워만 했어요.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들의 삶을 살고 지나온 셈인데도 말이죠. 그러다가 문득, 나이에 대해 생각을 바꾸었답니다. 이젠 나이듦에 대해 곰곰 생각하고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나는 어떤 할머니를 원하는가?’와 같은 긍정적인 고민들을 하기로 말이죠. 그래서 저의 롤 모델이 될 분을 생각해보았어요. 와, 망설임도 없이 박완서 선생님이 떠올랐답니다.



 

올해 연세가 일흔아홉이지만 그 어떤 작가보다도 왕성한 활동을 하시고, 제 아버지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작가이시며(^^) 그 많은(!) 연세에도 창작 활동과 독서는 물론이고, 진부하지 않은 감정을 가진 소녀 같은 할머니 작가, 박완서 선생님. 궁극적으로 딱, ‘박완서 선생님의 반의반만큼이라도 비슷하게 나이가 들면 행복한 삶이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향긋한 북살롱>의 초대 작가로 나오신, 박완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어요. 평소 신간이 나올 때마다 책을 사서 읽었고, 오래 전부터(선생님이 말씀하시던 <향장>이라는 사보가 있을 때부터) 선생님의 소설과 산문들을 알고 있긴 했지만 책이나 지면을 통해서뿐이었죠. 직접 얼굴을 대면하고 강연을 들은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던 셈입니다. 마음 한구석에선 감동의 물결이 흐르고, 혼자 감개무량하여 가슴이 두근거렸답니다. 또한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한 시간 가량 너무나 행복했어요. 그 행복을 혼자 누리고 싶었으나, 그건 선생님의 뜻이 아니겠죠?(^^) 해서 이렇게 서두가 길었습니다. 그럼, 선생님의 고운 말씀을 들려 드릴게요. 함께, 그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살구나무꽃, 바람에 날리던 날

이번 <향긋한 북살롱>에서는 출판사 관계자가 아닌 그림을 그리는 밥장 님이 사회를 보셨답니다. 그리고 박완서 선생님과 정이현 작가가 함께 자리를 했습니다. 우연히 같이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예스24에서 낭독회와 관련한 전화가 왔었대요. 통화를 하신 박완서 선생님이 “같이 할래?”라고 권유를 하셔서 정이현 작가도 참여하게 되었다더군요. 첫인사로 선생님은 “독자가 나와 같은 노년층이라고 생각했는데 젊은 분들이라 놀랐다.”며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겸손의 인사를 하셨어요.


선생님이 살고 계시는 아치울 마을엔 의외로 봄이 늦게 왔답니다. 더구나 올 봄에는 성급하게 지리산으로 벚꽃구경을 다녀온 탓에 아치울 마을의 봄을 더 기다리고 있었대요. 그런데 몇 주 전 별안간 더웠던 그날에, 꽃이 활짝 피며 봄이 와버렸습니다. 그렇게 꽃이 핀 기간은 사흘 남짓밖에 안 되고, 이내 져버려 아까운 마음이 들었는데 꽃이 떨어질 때는 함박눈이 내리는 것 같이 아름다웠다는군요. 저도 벚꽃이 떨어져 날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어요. 그 정경은 감히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죠.

선생님의 집 앞엔 아주 큰 살구나무가 있는데 더위가 별안간 오면서 살구가 엄청나게 떨어졌대요. 떨어진 살구는 일 년 동안 동네에서 이것저것 잘 얻어먹은 보답으로 잼을 만들어 나눠 먹을 기회를 만든다고 합니다. 정이현 작가도 작년 봄에 그 잼을 맛보았답니다. 단맛이 느껴지면서 살구 특유의 신맛도 나던 그 잼은 봄이랑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했어요.

이번에 박완서 선생님은 『세 가지 소원』이라는 이야기 모음집을 출간하셨어요. 부제를 ‘작가가 아끼는 이야기 모음’이라고 붙일 만큼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이야기들만 고르고 골라 책으로 엮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 책의 글들은 1970년대에 쓰인 작품들이라네요. 와우~

“1970년에 등단하여 얼마 지나지 않은 신인 시절에 신문사의 콩트를 청탁받아 쓴 글이다. 그런 제의를 받으면, 헛으로 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 등단했기에 나이 값을 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70년대 작가로 불리었던 20대의 최인호 등등 날리는 작가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70년대 작가라는 이름으로 신문지상을 장식할 때 나는 말석에서 겨우 70년대 작가군으로 속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엔 20대들 틈에 40대인 내가 있다는 것에 대해 열등감도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크든 작든 열심히 썼다. 작은 지면일지라도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열의와 능력을 다해서 썼다. 그래서 콩트는 콩트대로, 장편이나 단편은 굳이 좋은 글이 아니라 할지라도 또 그 나름대로 좋아했다. 한데, 근래에 와서 묻히거나, 절판된 책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았다. 오래되었지만 나는 그 글들을 하나도 잊지 않았다. 내게는 귀한 글들이고, 금싸라기 같은 느낌이 나는 글들이기에 그렇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출판사에서 그 글들을 다시 묶어 준다고 하기에 고마웠다.

책에는 최근에 쓴 이야기들도 넣었다. 그 글들은 지금 생각하면 어떤 글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에 썼던 글들은 세월이 지났어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건 아마도 그 당시에 열의와 능력을 다해 써서 그런 것 같다. 버리기는 아까웠다. 자식들은 다 예쁘지만 내 자식 중에서도 ‘더’ 예쁜 자식이 있다. 그런 자식을 ‘더’ 사랑해주길 바라듯이, 젊었을 때의 나는 이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작품을 보니 젊은 날의 열정이 생각났다. 그래서 독자들에게도 내가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고 쉽다는 생각을 했다.”


아, 선생님은 어찌 이리 말도 예쁘게 하시는지요. 어른 보고 이런 말을 하면 실례가 되는 소리지만 정말 귀여우시다는 생각이 들지 뭐예요. 지금에야 나이 마흔이 별것 아닌데 그 당시엔 정말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이현 작가는 선생님이 『세 가지 소원』 속의 글들을 쓰실 무렵엔 작은 아기였다며 어색할 줄 알았더니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한 것 하나 없이 위로되는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어쩜 그리 자연스럽고 술술 잘 읽히는지…….


언젠가는 소설로 쓸 것이라는 믿음이 작가가 되게 했다

사회자이신 밥장 님이 질문을 던졌어요. 소설이 직업이신 분들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며 40대에 등단하시고 평생 글을 쓰셨는데 선생님이 생각하는 글 쓰는 삶이란 어떤 삶인지 물었죠. 이 질문에 박완서 선생님은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이런 만남을 싫어한다기보다 소심해서 두려워하는 편인데 그 까닭이 이런 질문을 받을 때다. 이분이 무슨 뜻으로 질문했을까? 고민하게 된다.”라고 하시더군요. 사회 보신 밥장 님이 살짝 당황했겠죠?(^^) 하지만 이내 선생님은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다른 직업도 똑같겠지만 나는 보통의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살다가 6.25 전쟁을 맞았다. 무척 힘들었다. 중산층의 가정에서 보호받고 자란 소녀가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마음 아픈 경험들을 하였을 때, 그전까지는 아무리 문학소녀였다고 해도 글을 쓴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만약 글을 쓴다고 해도 ‘무슨 글을 쓸까?’ 싶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에도 나오는데 나는 선생님이 되라는 어머니의 바람으로 선생님이 될 운명이었다. 하지만 못된 인간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모욕과 견디기 힘든 수모를 받고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경험들을 소설로 써서 그 인간들에게 글로써 복수를 하겠다는, ‘언젠가는 이 일을 소설로 쓰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무력했기에 그런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그 시절에 그런 믿음마저 없었다면, 최소한의 자존심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잊고 지냈는데 막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드디어 내 시간이 났다. 그제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그 당시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된 것처럼,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내 글로 인해 위로가 되고 힘이 되면 좋겠다.”

선생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소설가로서의 길을 가게 한 셈이네요. 처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나왔을 때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나요. 그걸 읽고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도 연이어 읽으면서 소설 속에 푹, 빠졌었죠. 『그 남자네 집』이 나왔을 때는 또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는지, 책을 읽고서는 엄마 젊은 시절 이야기니까 꼭 읽어보라며 엄마에게 책을 건넸던 기억이 나요.


이날 정이현 작가가 박완서 선생님이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었어요. 저는 와~ 하고 놀랐죠. 소녀 같은 선생님의 마음이 그대로 와 닿았거든요. 선생님은 웃으시며, “이민호 같은 남자를 싫어하는 남자도 있을까? 파마머리 싫어했는데 이민호가 파마머리로 나오니 그 머리도 좋아지더라. 이상한 것은 이순재도 좋아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건 화제가 안 되고 이민호를 좋아한다는 것만 화제가 되더라. 나는 시대를 대표하는 꽃미남을 좋아한다. 이민호 말고도 좋아하는 남자들 많다.(웃음) 언젠가도 좋다고 한 사람이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그 얘길 했더니 그를 안다는 사람이 만나게 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싫다고 했다. 그런 것하곤 다르다. 그냥 화면으로 보는 거지. 실제는 싫다. 노인네들이 좋아한다는 거는 그런 거다.”

위의 말은 나중에 독자가 질문한 답변 중에도 잠깐 언급이 된답니다. 그 질문은 이러했죠. 박완서 선생님을 뵈면 맑고 아름답게 나이가 드는 것 같고, 선생님처럼 따뜻한 분위기를 갖고 있는 할머니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며 곱게 나이 든 비결이 있으신 건지 궁금하다고 말이죠. 선생님은 “비결이랄 것도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늙었다. 어느 정도 늙어가다가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 유턴을 하여 돌아올 때가 있다. 작가로서 걱정스러운 것은, 감성이 진부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관심이 많고, 좋은 시집을 골라 시를 읽기도 하며, 젊은 작가들이 쓴 소설도 읽으면서 감성이 진부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라고 해요. 상투적이 되고 진부해지면 끝이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누굴 좋아한다고 해서 주책스러운 노인네가 아니라, 보고 좋으면 좋은 것이고, 슬픈 것을 보면 눈물나는 게 당연하듯이 그런 감정이 나이가 들었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전 이 말이 어찌나 마음에 와 닿았는지 앞으로 매일 시 한편씩 읽을 것이며, 꽃미남 남자들도 많이 좋아하기로 했답니다.(^^)


태교를 듣는 듯한 고운 목소리로 낭독을 하시다

이번 북살롱에서는 낭독의 시간도 가졌습니다. 『세 가지 소원』에 실린 작품 중에서 두 편을 출판사에서 골랐어요. 골라준 작품들이 다행히도 선생님이 모두 좋아하는 산문들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과 「다이아몬드」의 일부분이었는데 그중에서 첫 번째로 낭독하신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의 낭독 부분을 올려드릴게요.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 가족들의 이야기로 아기를 가진 엄마의 마음과 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할머니의 마음이 들어 있는데 아이에게 탄생 선물로 이야기를 해 주겠다고 생각하는 장면이에요. 할머니의 생각을 선생님이 읽어주시니 할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었답니다. 독자 중에 한 분이 임신을 한 분이셨는데 선생님의 낭독이 아이에게 좋은 태교 선물이 되었다며 좋아하더군요. 그럼, 잠시 우리도 낭독하신 글을 읽어볼까요? 직접 듣지 못한 분들은 아쉽겠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들어보세요. 어쩌면 선생님의 음성이 들릴지도 몰라요.


  (…) 할머니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들은,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 적부터 수없는 할머니의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온 이야기는 더러는 잊어버리기도 했지만, 더 많이 보태지고 새롭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부피는 어마어마합니다. 그러나 부피만 어마어마할 뿐 그 이야기들은 오래 전에 이야기의 목숨인 꿈을 잃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의 꿈은 어린이와 만나, 어린이 속에 들어가 어린이의 꿈이 되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어린이와 만나지 못해서 죽어 버린 이야기들을 살려 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손자 손녀들을 위해 꼭 살려 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할머니는 많이 늙는 것만큼 많이 지혜롭기 때문에 결코 그 일을 서두르지 않습니다. 서두름이야말로 서투른 짓이라는 것을 할머니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조심조심 죽어 버린 이야기들을 건드려도 보고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어도 봅니다.
  (…) 할머니의 마음속에 갇혀 표본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음속의 새가 날지 않기 때문에 하늘을 나는 새를 보아도 가슴이 두근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기와 더불어 먼 하늘로 날아가 버린 새를 뒤쫓고 있는 사이에 할머니의 마음속에서 먼 고장에 대한 그리움이 되살아나고, 죽어 표본이 되어 버린 새들이 푸드득대며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 중에서


시를 통해 삶의 새로움을 발견하다

낭독이 끝난 후 독자들의 질문 시간이 있었어요. 많은 질문들을 해주셨는데 지면 관계상 한 질문만 옮겨볼게요. 위에서 말한 아기를 가진 분의 질문이었어요. 선생님은 글이 잘 안 풀릴 때면 시집을 읽는다고 하셨어요. 시는 참 어려워요. 소설 같으면 읽고서 ‘아, 그렇구나!’ 하는데 시는 읽고 나면 ‘이게 뭐야!’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죠. 그런, 시를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추천해주고 싶은 시가 있으면 가르쳐달라고 했답니다.

“서정주, 김사인, 문태준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 시라는 건 삶을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문태준 시인의 시 중에 「산수유나무의 농사」라는 아주 짧고 평범한 시가 있다. 그 시를 읽기 전에는 우리 집에 있는 산수유나무의 존재란 그저 옆 마당에서 안을 들여다보지 않게 하기 위한 가림막의 존재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태준 시인의 시를 읽고 나서 그 나무의 존재를 새롭게 발견하였다. 아침에 밥을 먹으며 그 나무를 바라보면 혼자가 아니었다. 아주 예쁜 새가 앉아 열매를 먹고, 꽃이 피면 벌들이 날아들었다. 그 시를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풍경이었다. 작은 시로 인해 나무를 하나 발견한 셈이다. 이렇듯 시는 삶의 새로움을 발견해주기도 한다. 시가 재미없다고도 하는데 그것도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자꾸 읽어줘야 한다. 우리가 학생 때 시나 시조를 외웠던 것처럼 좋은 시인들의 시를 외우기도 하면서 읽으면 좋다.”

그리고 선생님의 시에 관한 한 말씀 더. “가까이 뽑을 수 있는 곳에 시집을 두고 뭔가 안 써질 때 시집을 꺼내본다. 어떤 걸 써야하나 고민할 때는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를 읽는다. 막혔던 말문을 터준다. 구원 같은 게 시집이다. 어떤 말은 그대로 빌려오기도 한다. 이를테면, 적당한 말이 들어가야 전체가 사는데 딱 그 한마디가 생각나지 않을 때, 무심히 시집을 뒤지다가 ‘아!’ 할 때가 있다. 그것 때문에 문장이 빛나는 것은 아니지만, 막힌 부분과 적절하게 맞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많이 빌려오기도 한다.”


사람들이 아까워하지 않을 때 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바라는 ‘세 가지 소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멋있는 답변을 하면 좋겠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건강”이라고 하시더군요.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노인들이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이라고 말하는 것이 듣기 싫었는데 이젠 건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제일 앞선다며 누구의 부축도 없이 내 힘으로 다닐 데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또 선생님 가족들 모두 아무런 사고 없이 잘 지내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아픈 것 좋아하는 사람 없겠지만 아프지 않고 잘 지내다가 사람들이 아까워하지 않을 나이에 죽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시골로 이사 간 건 잘한 생각이라고 하셨어요. 선생님 집 창밖과 문 밖의 자연을 볼 때면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며 아주 조금이라도 말없이 즐거움을 주고, 늘 변함없이 꽃이 필 때면 피고 질 때가 되면 지는 그런 자연에게 배울 게 많다며 말이죠.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하면 선생님 힘드시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구 조르고 싶어진답니다. 하지만 선생님, 이젠 글보다는 건강이 우선이니 건강 잘 챙기시고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아주시면 좋겠어요.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 정말 행복했답니다.


사진으로 보는 박완서의 향긋한 북살롱







#세가지소원 #박완서
10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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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8.11

여기 참석하신 분들 돌아가시기 전에 박완서 작가님 직접 만날 수 있었네요. 부럽습니다. 좀더 오래 사실거라고 생각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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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0143

2011.01.23

마음속이 허전해집니다. 선생님 글을 읽으면 고향집
따뜻한 아랫목에 누은듯 편안했습니다. 영원한 나라로 편안히 가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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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iss

2011.01.22

한국문학계의 슬픈날이네요.
박완서 작가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예식장에서 접했는데...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친척어른 병문안을 서울삼성병원으로 갔었습니다..
자세한 건 지금 검색해보고 알았네요.
암튼 오늘은 잊지 못 할 날이 될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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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경기도 개풍(현 황해북도 개풍군) 출생으로,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이주했다. 1944년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교사였던 소설가 박노갑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작가 한말숙과 동창이다. 1950년 서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중퇴하게 되었다.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박완서에게 한국전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없는 기억이다.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온 `똑똑했던` 오빠가 `이제는 배부른 돼지로 살겠다`던 다짐을 뒤로 하고 여덟 달 만에 죽음을 맞이하고, 그후 그의 가족은 남의 물건에까지 손을 대게 되는 등 심각한 가난을 겪는다. 그후 미8군의 PX 초상화부에 취직하여 일하다가 그곳에서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된다. 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하고 살림에 묻혀 지내다가 훗날 1970년 불혹의 나이가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 이후 우리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까지 뼈아프게 드러내는 소설들을 발표하며 한국 문학의 한 획을 긋고 있다. 박완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 적절한 서사적 리듬과 입체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다채로우면서도 품격 높은 문학적 결정체를 탄생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작가는 우리 문학사에서 그 유례가 없을 만큼 풍요로운 언어의 보고를 쌓아올리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녀는 능란한 이야기꾼이자 뛰어난 풍속화가로서 시대의 거울 역할을 충실히 해왔을 뿐 아니라 삶의 비의를 향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구도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한국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다룬 데뷔작 『나목』과 『목마른 계절』,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아저씨의 훈장』, 『겨울 나들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을 비롯하여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풍경을 그린 『도둑맞은 가난』, 『도시의 흉년』, 『휘청거리는 오후』까지 저자는 사회적 아픔에 주목하여 글을 썼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작가는 행복한 결혼은 어떤 형태인가를 되묻게 하는 소설인 『서 있는 여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 점점 독특한 시각으로 여성문제를 조명하기 시작한다. 또 장편 『미망』,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에서는 개인사와 가족사를 치밀하게 조명하여 사회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배반의 여름』은 1975년 9월에서 1978년 9월까지 발표했던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조그만 체험기」, 「흑과부黑寡婦」,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등에서 볼 수 있듯이 박완서가 그리는 모성의 힘은 실로 놀랍다. 성균관대에서 열린 ‘2006 호암상 수상자(예술상) 초청 강연회’에서 박완서는 이렇게 말했다. “내 문학의 뿌리는 어머니”라고. 박완서 특유의 수다스러움으로 풀어내는 모성의 힘은 힘센 것들만이 권력을 쥐고 판을 치는 현대산업사회에서 뒤로 처진 자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위무해준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는 1987년 1월에서 1994년 4월까지 발표되었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가족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 네 개나 있는데 그중「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남편의 죽음을,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아들의 죽음을 담고 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특이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체로 되어 있는데 담담하게 이어가는 주인공의 목소리에서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저녁의 해후』에는 1984년 1월부터 1986년 8월까지 발표했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해산바가지」, 「애 보기가 쉽다고?」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여기에서 나타나는 하층민들의 인간애는 가진 자들의 야만성과 대비되어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은 1979년 3월에서부터 1983년 8월까지 발표한 작품들을 수록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속물성과 위선이 난무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진다. 젊은 것들의 무관심과 조롱 속에서 외롭게 늙어가는 노인들의 모습을 담아낸 「황혼」, 「천변풍경泉邊風景」과, 출세한 자들의 허위를 그린 「내가 놓친 화합(和合)」, 「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 등이 그것이다. 『미망』은 조선조 말기에서 6ㆍ25 전쟁 직후까지 그 파란만장했던 시대를 한 개성 상인의 가족사를 통하여 재창조한 대하소설이다. 민족의 수난사와 더불어 고난과 격동의 시대를 험준한 산을 넘듯 숨가쁘게 살아온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박완서 소설 문체가 도달한 궁극적인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작가는 사람과 자연을 한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느낀 기쁨과 경탄, 감사와 애정을 담아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펴냈다. 「친절한 책읽기」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연재했던 글도 함께 실어 노작가의 연륜과 성찰이 돋보이는 글을 선보였다. 1993년부터 국제연합아동기금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1994년부터 공연윤리위원회 위원, 1988년부터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으로 한국문학작가상, 『엄마의 말뚝』으로 제5회 이상문학상, 『미망』으로 대한민국문학과 제3회 이상문학상,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제38회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2006년, 문화예술인으로서 처음이자 여성으로서도 처음으로 서울대학교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평소 입버릇처럼 "전쟁의 상처로 작가가 됐다."고 고백해왔던 그녀는 전쟁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경험으로 글을 써왔다. 여러 편의 장편소설과 수필집, 동화집을 발표하고, 2010년 8월 수필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마지막으로 2011년 1월 22일, 담낭암 투병 중 별세했다. 경기 구리시에는 '박완서 문학마을'이 조성될 예정이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했고, 2006년 서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타계 이후 문학적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그 외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 소설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저문 날의 삽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 『친절한 복희씨』,『기나긴 하루』,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한 길 사람 속』,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