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도 낡지 않는 배우가 되는 길
‘체험 삶의 현장’은 제목 그대로 유명인들이 서민들의 일터를 찾아가 노동의 가치를 직접 겪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진한 감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로 의심이 가는 대목도 나온다. 진짜로 온종일 노동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것인지, 아니면 고생하는 장면을 부분적으로 연기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더러 있다. 평생을 바쳐 한 가지 일에 매진하는 사람 곁에서 카메라 의식하며 열심히 ‘일하는 척하는’ 장면이 실례는 아닌지 한번 돌아볼 일이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9.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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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의 사자성어> 연재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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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을 슬기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장기나 장점을 지니고 있다.
요즈음에는 ‘경험을 쌓은 사람이 갖춘 지혜’로 사용한다.

‘체험 삶의 현장’은 제목 그대로 유명인들이 서민들의 일터를 찾아가 노동의 가치를 직접 겪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진한 감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로 의심이 가는 대목도 나온다. 진짜로 온종일 노동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것인지, 아니면 고생하는 장면을 부분적으로 연기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더러 있다. 평생을 바쳐 한 가지 일에 매진하는 사람 곁에서 카메라 의식하며 열심히 ‘일하는 척하는’ 장면이 실례는 아닌지 한번 돌아볼 일이다.

‘체험 삶의 현장’은 제목 그대로 유명인들이 서민들의 일터를 찾아가 노동의 가치를 직접 겪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진한 감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로 의심이 가는 대목도 나온다. 진짜로 온종일 노동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것인지, 아니면 고생하는 장면을 부분적으로 연기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더러 있다. 평생을 바쳐 한 가지 일에 매진하는 사람 곁에서 카메라 의식하며 열심히 ‘일하는 척하는’ 장면이 실례는 아닌지 한번 돌아볼 일이다.

한결같은 사람이 어디서나 보기 좋은 건 아니다. 배우의 세계가 그렇다. 이 역을 맡아도, 저 역을 맡아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면 관객은 당장에 외면한다. 변신도, 변심도 없는 사람은 연기자보다 모델에 어울린다. 냉장고, 혹은 아파트 앞에서 똑같은 이미지를 소비해도 지갑을 열 준비가 된 소비자는 그다지 질려하지 않는다.

방송사 분장실 풍경이 예전 같지 않다. 한곳에 모여 분칠을 하며 선후배가 담소를 나누는 장면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침대까지 갖춰진 대형 차량을 타고 기획사가 붙여준 코디네이터, 분장사를 대동하고 나타나는 주연 배우들은 늙은 선배 배우들과 미리 마주칠 일이 없다. 리허설할 때 가볍게 인사만 나누고 곧장 녹화에 들어가면 된다. 선배들이 어린 ‘스타’들의 예의 부족보다 훈련 미흡을 나무라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전문가가 되는 길은 수월치 않다. 어느 분야에서고 마찬가지다. 시간이 필요하고 교육이 필요하다. 서울예술대학에서 수업을 한 학기 맡은 적이 있는데 이미 얼굴이 알려진 젊은 연기자들이 꽤 있었다. 놀라운 건 엄청 바쁠 것 같은 그들이 수업을 빼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10년 전에 수업을 들은 김하늘, 박선영, 차태현 등이 저마다 적재적소에서 살아남는 모습을 보며 예술대학의 엄격한 교칙이 제대로 빛을 발한다는 생각을 했다.


늙어도 낡지 않는 배우가 되는 길은 없을까? 시트콤에서 귀여운 할아버지(‘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였다가 드라마에선 근엄한 임금(‘이산’의 영조)으로 바뀌었고 사극에서 죽음을 맞은 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인자한 팔순 노인(‘엄마가 뿔났다’의 나충복)으로 부활한 이순재 씨. 연기 경력만 53년째인 그가 “연기는 언제나 미완성이다. 하면 할수록 어려워진다”고 말하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드라마 촬영장은 전문가들의 숨결이 앙상블을 이루는 일종의 연주회와 비슷하다. 불안하고 불편한 연기로 NG를 반복해서 낸다면 그건 실례를 넘어 경범죄에 해당된다. 시간의 도둑 역시 무형의 소매치기다. 카메라와 조명을 앞에 두고 연기 지도를 해야 하는 연출자의 표정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무대에 서기 전에 교육과 훈련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노배우의 간곡한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획사는 분장사만 붙여주지 말고 발성이나 화법을 가르쳐줄 선생을 먼저 찾아야 한다. 그게 서로가 오래 가는 길이다.

#주철환 #사자성어 #이순재
108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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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4.05

이거 첫 문단이 똑같은 게 반복되네요. 전 삶의 체험 현장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뭔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방해하는 거같아보여서요. 그냥 연기하는 걸로만 보이다 보니. 배우라는 건 역시 얼굴만 예쁘다는 것만으로는 안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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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3.31

노마지지 아 이것도 한자 위부분이 사그러져버렸네요. 좀 큼직큼직하게 써주시면 좋을텐데 ㅎㅎ 아무래도 사진과 함께 첨부 되는게 힘든가봐요. 무대위에 서려면 연습뿐 연기생활 50년이 넘도록 연습 밖에 없다.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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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전

2011.08.15

맹상군 고사가 자연스레 오버랩됩니다. '노마지지'라는 말이 예전버전으로는 맹상군 고사와 비슷한 점이 있네요. 이순재님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고언들이 품격배우를 만들었나 봅니다. 차태현, 김하늘,박선영 등등 말입니다.
이순재님 같은 분의 강연이나 말이 잘 전달되 연예계가 정화되면 좋겠네요.
극단적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고 그만큼 그바닥이 치열하다는 방증도 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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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어 교사로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MBC 방송사에 입사해 [일요일 일요일 밤에], [퀴즈아카데미], [우정의 무대], [대학가요제] 등 시대를 대표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OBS 경인TV 사장, JTBC 대PD,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를 거쳐 현재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있다. ‘재미있게 살고 의미 있게 죽자’는 그가 40여 년간 고수해온 좌우명으로, 지금껏 좌우명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자부한다. 감사한 사람들 덕분이고,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재미있는 사람을 만나고 재미있는 시와 노래를 흥얼거리며 살다 보니 어느새 인생의 의미를 짚어보는 나이가 되었다. 남은 날들을 더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 있는 죽음을 맞는 것이 목표다. 방랑자였던 아버지 덕에 어릴 때부터 상상력이 남달랐다. 축구 명문이었던 학교를 다니면서도 그늘에 앉아 응원만 했고 악보도 못 그리면서 제멋대로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실력 있고 정 많은 국어선생님을 만나면서 자신도 일찌감치 국어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했고 2년 반 동안 교단에서 문학도, 팝송도 즐겁게 가르쳤다. 제대 말년에 우연히 본 방송사 시험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다. 신나게 연출하다가 틈나면 글 쓰고, 시간 나면 강단에도 서더니 언제부턴가 포털 사이트에 ‘유명한 PD’라고 치면 연관검색어로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뜬다. 사람들은 그를 [일요일 일요일 밤에], [우정의 무대], [대학가요제] 등을 연출한 전설의 ‘스타 PD’로 기억한다. ‘누군가 꿈을 이루면 그는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고 대학교수로 7년 반 동안 많은 방송인들을 키워내기도 했다. ‘살아있다’는 건 ‘꿈이 있다’는 거라고 속삭이는 그는 오늘도 꿈의 공장에서 30년째 현장을 서성이고 있다. 아직은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야 하는 희망과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한국방송대상 우수작품상(1990, 1991)을 비롯하여, 백상예술대상 우수작품상(1995), 방송위원회 선정 이 달의 좋은 프로그램상(1996), 경실련 선정 시청자가 뽑은 좋은 프로그램상(1998), 방송위원회 프로그램기획부문 대상(1997), 한국여성단체연합 평등방송 디딤돌상(1999),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가 주는 공로상(2002) 등의 수많은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주요 저서로는 그동안 『오블라디 오블라다』, 『더 좋은 날들은 지금부터다』, 『청춘』, 『사랑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 『퀴즈아카데미 1, 2』, 『30초안에 터지지 않으면 채널은 돌아간다』, 『PD는 마지막에 웃는다』, 『주철환 프로듀서의 숨은 노래 찾기』, 『상자 속의 행복한 바보』, 『시간을 디자인하라』, 『나는 TV에서 너를 보았다』, 『스타의 향기』, 『거울과 나침반』, 『PD마인드로 성공인생을 연출하라』 등 15권의 책과 2장의 앨범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