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고 싶은 모든 이를 위한 그곳 - 『심야식당』/홈메이드 가든 피클
2008.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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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경까지, 사람들은 ‘심야식당’이라고 부른다.
메뉴는 술과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뿐, 나머지는 알아서들 주문하면 만들 수 있는 한 만든다.
- 아베 야로(安倍夜郞), 『심야식당深夜食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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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통해 요리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쉽고 흥미롭게 얻뾽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걱정도 된다. 만화로만 얻는 지식에는 한계가 있고, 많은 요리 만화들이 일본 만화인 것을 생각해 볼 때, 전통 일본 요리에 대한 자료들은 또 모르지만 서양 요리들은 일본화된 것을 보아야 하는 데다가, 한 번 걸러서 번역된 텍스트들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화적으로 표현되는 요리와 와인의 맛들 때문에 가끔은 집중하기 힘들어지곤 한다. 초밥을 먹으면 밥알과 생선이 바다 위로 솟구치면서 태풍을 일으키고 천둥번개가 치면서 모든 사람들을 감동의 도가니에 빠트리고, 와인 한 모금에 삼라만상 전 세계 아름다운 풍경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다니, 아무리 만화라지만 가끔은 심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완전히 몰두하기보다는 웃음이 먼저 터져 나온다.
그리고 음식을 두고 그렇게 끊임없이 경쟁하는 것이 나의 취향에는 맞질 않는다. 음식은 그냥 즐기는 것이고 음식의 맛을 좋다 나쁘다 느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인데, 이런 느낌 저런 느낌이라고 그려놓는 것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다시 말해 음식이 주는 느낌이란, 맛 자체로써, 그 음식의 훌륭함으로 감동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맛이 떠올려주는 여러 다른 감각이나 추억들로 인해 크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심야식당』의 이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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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가 다른 어떤 요리 만화와도 다른 것은, 음식의 맛을 찾아 떠난다거나 대결구조로 가는 것이 아닌 소박한 요리 안에 담겨진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무뚝뚝한 마스터는 늘 같은 시간 가게를 열고 사람들이 원하는 음식을 ‘될 수 있는 한’ 만들어 주지만, 그렇고 무심한 듯하면서 섬세한 보살핌이 힘든 이들에게 무엇보다 힘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찾아가서 지친 마음을 익숙한 음식으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심야식당의 단골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림 속의 그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노라면 '어떤날'의 명곡, 「초생달」의 한 구절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언젠가 잃어버렸던 내 마음 한 구석
그 자릴 채우려 내가 또 찾아가는 곳
아무 약속 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
그렇게 나를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준 따듯한 밥을 먹는 것도 행복이지만, 누군가의 이야기와 하소연을 들어주고, 수많은 위로와 행동을 대신해 말없이 음식 한 접시, 한 그릇으로 요리를 먹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치유해 줄 수 있는 것 또한, 요리하는 사람만의 행복이자 커다란 특권이다. 심야식당의 손님들과 마스터는 그야말로 완벽한 소통을 하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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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식탁에서 같이 수다 떨다 지치면 간편하게 뚝딱 구워냈던 또르띠야 피자와 닭고기, 포테이토 웻지, 우울한 아가씨들을 위한 에스프레소 시럽이 들어간 초콜렛 브리오슈, 늘 준비해 놓았던 홈메이드 가든 피클, 같이 술 마시고 끓였던 해장라면까지, 그 모든 시간이 보람 있고 행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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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사람들을 편하게, 묵묵히 받아줄 수 있게 될 때 친구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 동네 구석에 작고 조용한 가게를 열고 싶다. 메뉴는 제철재료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지만, 손님이 원하는 것은 가능하다면 만들어주는 그런 곳. 별말 없이 한숨만 쉬어도, 눈물 한줄기를 흘려도 그 사람이 필요한 요리가 무엇인지 알아채고 만들어주는 그런 치료사가 되고 싶다.
혼자 술 마시기도 편한 음악이 조용히 흐르는, 따듯하지만 무심한 듯 조용한 공간. 그 안에서 사람들이 만나고 요리를 먹고 친구가 되는 것을 바라보며 다음날 메뉴를 고민하는 단순한 주인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도 무척이나 행복할 듯싶다. 참, 이렇게 다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을 꿈꾸다니. 사람들에게 지쳐 훌훌 털고 바다와 사막을 돌아다니다가 왔음에도 나의 요리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위로하고, 신경 쓰는 일을 아무래도 완전히 포기하기는 불가능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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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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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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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니
2009.02.01
소박한 메뉴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캔디
2008.11.18
꼭 이런 식당에서 하루 묵은 카레라이스를 먹고 싶을 거 같아요.
지원
2008.11.18
저도 언젠가 꼭 내고 싶은 식당 모습이었습니다.
'따뜻하게 마음을 나누고 별말 없이 한숨만 쉬어도, 눈물 한줄기를 흘려도 그 사람이 필요한 요리'를 하고 싶었던 것이 제가 요리를 하고
음식을 맛보던 목적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몇번이고 되풀이 되는 심야식당을 읽고
손녀딸님의 글과 함께 다시금 생각하며
앞으로의 제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는 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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