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고 싶은 모든 이를 위한 그곳 - 『심야식당』/홈메이드 가든 피클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8.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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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경까지, 사람들은 ‘심야식당’이라고 부른다.
메뉴는 술과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뿐, 나머지는 알아서들 주문하면 만들 수 있는 한 만든다.

- 아베 야로(安倍夜郞), 『심야식당深夜食堂』


밤에 여는 작은 식당 겸 술집이 있다. 이 식당의 특이한 점은 다른 가게들이 문을 닫는 시간인 밤 열두 시에 영업을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일 인당 마실 수 있는 술의 양은 정해져 있지만, 메뉴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마스터라고 불리는 주인은 가게에 재료가 있다면 만들 수 있는 한 만들어 준다. 저녁의 유흥가 골목 모퉁이에 있는 그 식당에는 자정부터 새벽까지, 수많은 사연만큼 수많은 음식에 관한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술집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늦은 밤 여는 식당이라서 그럴까, 스트립 걸에서부터 야쿠자와 게이바 호스트, 여자로 성전환수술을 한 남자와 여자 프로 레슬러, 성인비디오 배우까지, 모여드는 사람들 모두 그 누구보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 이곳 심야식당에서 편하게 보통 사람으로 한 끼 밥과 한잔 술을 마시며 위로받길 바라는 그들의 마음을 반영하듯, 메뉴도 가츠오부시를 뿌린 밥, 오차즈께, 칼집을 내어 볶은 비엔나소시지, 포테이토 샐러드와 오이절임 같은 평범한 음식들이다.

『심야식당』 1회에 나오는 빨간 비엔나 소시지.
일본의 비엔나 소시지는 더 붉은 모양이다.
홀딱 빠진 건 아니지만, 요리책만큼 요리만화도 열심히 보려고 노력한다. 요리를 전공하기 훨씬 전부터 보아온 『맛의 달인』이나 『미스터 초밥왕』『아빠는 요리사』. 그리고 『식객』과 이번에 영화화된 『앤티크(서양골동양과자점)』와 같은 작가인 요시나가 후미의 『사랑이 없어도 먹고살 수 있습니다』. 전 권을 소장하고 있는 『대사각하의 요리사』와 요리 만화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신의 물방울』까지. 종류와 다루는 소재도 다양하게 요리 만화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지칠 줄 모르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과연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과 흥미는 절대 없어질 수 없는 것인가 보다.

만화를 통해 요리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쉽고 흥미롭게 얻뾽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걱정도 된다. 만화로만 얻는 지식에는 한계가 있고, 많은 요리 만화들이 일본 만화인 것을 생각해 볼 때, 전통 일본 요리에 대한 자료들은 또 모르지만 서양 요리들은 일본화된 것을 보아야 하는 데다가, 한 번 걸러서 번역된 텍스트들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화적으로 표현되는 요리와 와인의 맛들 때문에 가끔은 집중하기 힘들어지곤 한다. 초밥을 먹으면 밥알과 생선이 바다 위로 솟구치면서 태풍을 일으키고 천둥번개가 치면서 모든 사람들을 감동의 도가니에 빠트리고, 와인 한 모금에 삼라만상 전 세계 아름다운 풍경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다니, 아무리 만화라지만 가끔은 심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완전히 몰두하기보다는 웃음이 먼저 터져 나온다.

그리고 음식을 두고 그렇게 끊임없이 경쟁하는 것이 나의 취향에는 맞질 않는다. 음식은 그냥 즐기는 것이고 음식의 맛을 좋다 나쁘다 느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인데, 이런 느낌 저런 느낌이라고 그려놓는 것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다시 말해 음식이 주는 느낌이란, 맛 자체로써, 그 음식의 훌륭함으로 감동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맛이 떠올려주는 여러 다른 감각이나 추억들로 인해 크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심야식당』의 이야기처럼.

가츠오부시를 잔뜩 얹은 소스 야끼소바.
만화에서는 달걀 프라이를 얹어나온다.
국내에 아직 2권까지밖에 나오지 않은 아베 야로(安倍夜郞)의 만화 『심야식당深夜食堂』 은 내가 읽었던 어떤 요리 만화보다 내 마음을 많이 흔들어 놓았다. 소박하고 간단한 메뉴를 주제로 해 풀어져 나가는 짧은 단편 안에 그 음식을 먹고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가게 주인과 단골들의 얼굴은 에피소드를 통해 겹치고 새로 보여지고, 작은 가게에서 이어질 이야기가 많이 남았음을 보여준다. 특히 눈에 칼자국이 있는 주인 마스터의 이야기는 아마도 한참 뒤에 나올 모양이다.

이 만화가 다른 어떤 요리 만화와도 다른 것은, 음식의 맛을 찾아 떠난다거나 대결구조로 가는 것이 아닌 소박한 요리 안에 담겨진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무뚝뚝한 마스터는 늘 같은 시간 가게를 열고 사람들이 원하는 음식을 ‘될 수 있는 한’ 만들어 주지만, 그렇고 무심한 듯하면서 섬세한 보살핌이 힘든 이들에게 무엇보다 힘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찾아가서 지친 마음을 익숙한 음식으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심야식당의 단골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림 속의 그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노라면 '어떤날'의 명곡, 「초생달」의 한 구절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언젠가 잃어버렸던 내 마음 한 구석
그 자릴 채우려 내가 또 찾아가는 곳
아무 약속 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

그렇게 나를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준 따듯한 밥을 먹는 것도 행복이지만, 누군가의 이야기와 하소연을 들어주고, 수많은 위로와 행동을 대신해 말없이 음식 한 접시, 한 그릇으로 요리를 먹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치유해 줄 수 있는 것 또한, 요리하는 사람만의 행복이자 커다란 특권이다. 심야식당의 손님들과 마스터는 그야말로 완벽한 소통을 하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사랑으로 마음아파 하는 이들을 위한 에스프레소 시럽을 얹은 초콜렛 브리오슈. 사랑은 에스프레소처럼 쓰고 초콜릿처럼 달다.
이 만화책을 읽고 있으면 나와, 요리와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나의 가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은 접었지만 한때 요리를 가르치며 운영했던 스튜디오컀 테스트키친과 아직 가져보진 못했지만, 언젠가는 가지고 싶은 심야식당 같은 가게에 대해서. 키친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이었다고는 하지만 항상 사람들이 밤이고 낮이고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찾아오는 이유도, 배우고 싶은 메뉴도 각자 달랐고, 나 또한 그 모두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해주고 싶은 메뉴도 모두 달랐었다. 익숙한 메뉴를 만들기도 했지만, 누군가를 생각하며 레서피를 만드는 일도 꽤 많았었다.

키친 식탁에서 같이 수다 떨다 지치면 간편하게 뚝딱 구워냈던 또르띠야 피자와 닭고기, 포테이토 웻지, 우울한 아가씨들을 위한 에스프레소 시럽이 들어간 초콜렛 브리오슈, 늘 준비해 놓았던 홈메이드 가든 피클, 같이 술 마시고 끓였던 해장라면까지, 그 모든 시간이 보람 있고 행복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술을 마시고 요리를 만들면서도, 왜 난 그렇게 허전함을 느꼈을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마도 친구처럼 될 수 있는 주인과 손님의 관계가 아닌 그래도 마지막에는 예의를 지켜야 하는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터놓기에는 깍듯하고, 편하게 요리를 즐기기보다는 배우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친한 듯하지만 무심한 듯 마음을 터놓기는 힘든 관계로 남게 된 것이 아닌지. 조금 아쉽다.

좀 더 사람들을 편하게, 묵묵히 받아줄 수 있게 될 때 친구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 동네 구석에 작고 조용한 가게를 열고 싶다. 메뉴는 제철재료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지만, 손님이 원하는 것은 가능하다면 만들어주는 그런 곳. 별말 없이 한숨만 쉬어도, 눈물 한줄기를 흘려도 그 사람이 필요한 요리가 무엇인지 알아채고 만들어주는 그런 치료사가 되고 싶다.

혼자 술 마시기도 편한 음악이 조용히 흐르는, 따듯하지만 무심한 듯 조용한 공간. 그 안에서 사람들이 만나고 요리를 먹고 친구가 되는 것을 바라보며 다음날 메뉴를 고민하는 단순한 주인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도 무척이나 행복할 듯싶다. 참, 이렇게 다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을 꿈꾸다니. 사람들에게 지쳐 훌훌 털고 바다와 사막을 돌아다니다가 왔음에도 나의 요리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위로하고, 신경 쓰는 일을 아무래도 완전히 포기하기는 불가능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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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메이드 가든 피클

재료
월계수 잎 4장, 통후추 15알, 피클링 스파이스 1 티스푼, 물 720ml, 레몬 또는 사과식초 480ml, 백설탕 290g, 소금1과 1/2 테이블 스푼, 오이, 컬리플라워, 파프리카, 빨간 양파, 홍고추, 마늘, 양배추, 셀러리 등등

요리법
1. 유리병은 끓는 물 또는 식기세척기에 소독해 물기를 완전히 빼 준비한다.

2. 이를 비롯한 모든 야채들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깨끗이 씻어놓는다.
(보통 위의 야채가 3kg 정도 분량일 때 촛물의 양이 적당하다.)

3. 냄비에 분량의 단촛물과 월계수 잎, 통후추, 피클링 스파이스를 넣고 팔팔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1, 2분 더 끓이다가 불을 끈다.

4. 병에 야채를 담고 끓인 단촛물을 붓는다. 3분쯤 있다가 양배추를 더한다

5. 하루가 지나면 물만 따라내어 다시 끓여 차갑게 식힌 뒤 부어서 냉장고에 보관해 두고 먹는다.

* 양파를 넣은 피클은 되도록 빨리 먹을 것. 야채는 한가지로만 해도 맛있다.

* 여러 가지 야채를 넣는 피클일 경우 양배추는 단촛물을 부은 다음 조금 있다 넣어줄 것. 잎이 얇아서 같이 넣으면 너무 물러진다.

* 물을 끓여 다시 부을 시간이 없다면 단촛물을 끓인 다음 미지근하게 식혀 야채에 붓고 실온에 하루 정도 두면 다음날 바로 먹을 수 있다.

8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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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니

2009.02.01

심야식당. 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클릭했어요. ㅎㅎ 이런 식당이 있다면, 저도 금세 단골이 될 것 같네요.ㅋ

소박한 메뉴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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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

2008.11.18

저도 차유진 님 칼럼 읽고, 심야식당 구매해서 읽었어요. 위로 받고 싶은 밤,
꼭 이런 식당에서 하루 묵은 카레라이스를 먹고 싶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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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2008.11.18

언젠가 『심야식당』과 같은 가게를 내신다면, 저는 단골 1등을 차지할 것만 같네요... ^^

저도 언젠가 꼭 내고 싶은 식당 모습이었습니다.
'따뜻하게 마음을 나누고 별말 없이 한숨만 쉬어도, 눈물 한줄기를 흘려도 그 사람이 필요한 요리'를 하고 싶었던 것이 제가 요리를 하고
음식을 맛보던 목적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몇번이고 되풀이 되는 심야식당을 읽고
손녀딸님의 글과 함께 다시금 생각하며
앞으로의 제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는 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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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유진을 아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손녀딸'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친숙하다. 이 닉네임의 기원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PC통신이 처음 전파될 무렵 국내 치초로 생긴 무라카미 하루키 동호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그녀는 하루키의 소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 "분홍 옷을 즐겨 입고 요리를 잘하고 얼굴이 예쁘고 영리한 뚱뚱한 손녀딸"에서 자신의 닉네임을 따왔다. 경원대학교 섬유미술과를 졸업하고, 딴지일보 음악 홍보 및 공연기획, 재즈 전문 기자를 거쳐 영국의 「땅뜨마리요리학교(Tante Marie School of cookery)」로 유학을 다녀왔다. 그 후,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홍대 부근에서 쿠킹 스튜디오 「손녀딸의 테스트 키친」을 운영하며 새로운 맛을 테스트하고, 전파하는 즐거움에 빠져 살았다.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일에 흥미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미술관에 가고, 음악을 듣고, 시장통에서 건진 생각들을 글로 쓰는 것을 더 좋아하는 따뜻한 감성파. 어느 날 불현듯, 현실을 훌훌 털고 7개월 동안 남미와 멕시코, 미국을 여행하며 가슴에 담았던 요리와 문화 이야기를 글로 담았다. 2004년, 세상에 내놓은 첫 책 『푸드 러버를 위한 차유진의 테스트키친』 이후 두 번째로 묶어낸 『청춘남미』는 더 깊숙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금은 타로와 사주역학 상담 전문 살롱인 ‘에이 테이블’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