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 『좀머 씨 이야기』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8.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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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이 지치고 힘들 때 믿고 신뢰하는 사람에게 기대면서 위로 받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남이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보다는, 혼자서 짊어지기 힘든 무게의 감정들을 잠시 내려놓고 따뜻한 휴식을 취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 상처들이 너무 비대해지고 자신의 어깨 그리고 두 다리로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주저앉아 절망함과 동시에 마음은 얼어붙고 자신 안에 자신을 가두는 지경에 이르는 것 같습니다. 너무 큰 상처로 인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타인의 위로와 관심으로 극복될 수 없는 문제인지라 자신을 홀로 방치하게 되는 것이지요.

시간이 지나도 자기 자신이 가둬놓은 감정의 미로에서 현명하게 탈출하지 못한다면 자신과 자신의 그림자는 분리되고 심장은 풀로 붙일 수 없을 만큼 산산조각 나, 결국 어느 한쪽을 잃어버리고야 마는 것이겠죠.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땐 상뻬의 예쁜 그림에 마음을 빼앗겨 소박한 이야기로 치부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받아들이는 시선 자체가 바뀌어 지독히 고독하고 외로우며 슬픈 이야기의 소설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좀머 씨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으며, 무엇으로부터 그렇게 큰 상처를 받고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고야 만 것일까요. 마지막 페이지 소년의 독백은 단어 하나하나가 몹시 슬프고 공허하며 애절하기까지 합니다.

좀머 씨는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말합니다. 쥐스킨트가 자신의 목소리를 좀머씨에게 부여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죠. (쥐스킨트에 대해 알려진 가십거리들만 봐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잃어버린 반 고흐도, 짐 모리슨도, 커트 코베인도, 히스 레저도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세상에 외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물론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지만 누가 봐도 히키코모리 성향이 강한 일러스트레이터의 때늦은 투정으로밖에는 안 들릴 것 같아요.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장 자끄 상뻬 그림/유혜자 역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텅 빈 배낭을 짊어지고, 길다랗고 이상하게 생긴 지팡이를 손에 쥐고 뭔가 시간에 쫒기는 사람처럼 잰걸음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묵묵히 걸어다니기만 하던 좀머 씨는 어린 소년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며 꿈속에까지 나타나 궁금증을 잔뜩 불어넣어 주는데……. 한 소년의 눈에 비친 이웃 사람 좀머 씨의 기이한 인생을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나간 한 편의 동화와도 같은 소설.

7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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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heeys

2008.03.31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좋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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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라차차

2008.03.11

얇은 분량이지만 많은 생각과 여운을 주는 책이었지요...^^ 향수도 정말 인상적이고...파트리크 쥐스킨트, 정말 매력있고 독특한 작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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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ㅎ

2008.03.08

저도 좀머 씨이야기 봤어요 ^ ^ 읽을때마다 느낌이 다른 게 역시.. 책이란 두고두고 읽어도 느낌이 다 다른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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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장 자끄 상뻬> 그림/<유혜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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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크 상페

가냘픈 선과 담담한 채색으로, 절대적인 고립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그리움과 아쉬움을 통해 인간의 고독한 모습을 표현하는 프랑스의 그림 작가. 1932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난 그는 데생 화가이다. 소년 시절 악단에서 연주하는 것을 꿈꾸며 재즈 음악가들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60년 르네 고시니와 함께 『꼬마 니꼴라』를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었고, 1962년에 작품집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가 나올 무렵에는 그는 이미 프랑스에서 데생의 1인자가 되었다. 지금까지 30여 권의 작품집들이 발표되었고, 유수한 잡지들에 기고를 하고 있다. 1991년 상뻬가 1960년부터 30여 년간 그려 온 데생과 수채화가 빠삐용 데 자르에서 전시되었을 때 현대 사회에 대해서 사회학 논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는 평을 들었다. 프랑스 그래픽 미술대상도 수상했다. 산뜻한 그림, 익살스런 유머, 간결한 글로 사랑을 받고 있는 장 자끄 상뻬는 92년 11월 초판이 발간돼 48쇄까지, 99년 신판이 10쇄까지 나오는 등 총 80만부가 팔린 『좀머씨 이야기』의 삽화를 그린 전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정치니 성(性)을 소재로 삼지 않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서도 성인층에까지 두터운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그의 기본적인 관심은 끊임없이 고독을 생산해 내는 인간과 사회의 모순을 하나의 유머러스하고 깊이 있는 장면으로 포착하는 것으로써 글과 그림이 잘 어울리는 그림 소설들은 아주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프랑스의 「렉스프레스」, 「빠리 마치」 같은 유수한 잡지에 기고할 뿐 아니라 미국 「뉴요커」의 가장 중요한 기고자이다. 그는 이 잡지의 표지만 53점을 그렸다(9년 간의 「뉴요커) 기고는 나중에 『쌍뻬의 뉴욕 기행』이라는 작품집으로 묶여 나왔다). 그는 파리 외에도 뮌헨, 뉴욕, 런던, 잘츠부르크 등 주요 도시에서 데생과 수채화 전시회를 열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랑베르씨』, 『얼굴 빨개지는 아이』, 『가벼운 일탈』, 『아침 일찍』, 『사치와 평온과 쾌락』, 『뉴욕 스케치』, 『여름 휴가』, 『속 깊은 이성 친구』, 『풀리지 않는 몇 개의 신지』, 『라울 따뷔랭』, 『까트린 이야기』, 『거창한 꿈들』, 『각별한 마음』,『상뻬의 어린 시절』 등이 있다. 2022년 8월 11일 목요일, 89세의 나이로 여름 별장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