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은 진정 사라졌을까요?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7.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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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 《USA투데이》는 ‘최근 25년간 사라진 25가지’를 정리해 보도했는데, 그중 15위가 교양이었습니다.

동감하시나요? 여기에 대한 답은 입장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전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믿지 않습니다. 거의 매일 같이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있기 때문이죠.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교육 수준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전의 교양 있는 사람들이 당연히 알고 있었던 지식을 요새 사람들이 모르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예를 들어, 요새 사람들의 한문 실력은 백 년 전 교양인들에 비하면 형편없죠. 하지만 그들은 기본 지식이 사서삼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옛 사람들이 몰랐던 걸 압니다. 백 년 전 이 땅엔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극히 제한되어 있지만, 요샌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세월이 흐르면 교양의 내용도 달라지는 겁니다.

‘교양’에 관한 여러 가지 책

하지만 ‘교양의 죽음’처럼 느껴지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D모 영화의 토론자 중 한 명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몇 백 년 전 사람입니다!”라고 외쳤을 때, 전 그냥 지식의 결여가 아니라 ‘반교양’의 시꺼먼 실체를 봤습니다. 정치 기사 댓글란에 툭하면 등장하는 ‘좌파’라는 단어 사용의 과격한 자유로움을 볼 때도 비슷한 걸 느끼죠. 최근 차별금지법안과 관련된 많은 토론자들이 지난 몇 십 년 동안 우리가 쌓은 지식을 뻔뻔스럽게 밟아 뭉개고 있을 때도 비슷한 기분을 느낍니다. 여기서 우리가 접하는 건 단순한 무지가 아닙니다. 원론만 따진다면 무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요. 여기서 보이는 건 그냥 무지가 아니라, 토론에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초적인 지식과 교양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토론이라는 것에서 공통된 지식이라는 것은 공통된 언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거든요.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가장 편한 해답은 입이 달린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들은 꼭대기의 몇 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인터넷에서는 누구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요. 거기에 대해 어떤 책임감도 느끼지 않으면서요. 질적 하락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보다 더 거대한 해답은 교양이라는 것이 원래부터 그렇게까지 힘이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교양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세상에 대해 거의 모든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21세기 초의 세계는 보편적인 교양이 커버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넓죠. 세상이 바뀌어 지식을 더욱 편하게 보존하고 전수하는 기술이 발명되지 않는 한, 우린 일반교양을 이전처럼 믿고 의지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우린 슬슬 그에 대처할 만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그 단계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아직 일반교양은 쓸만해요. 이전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대안품들도 나와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전 맨 위에 예로 든 “몇 백 년 전 사람 아리스토텔레스”의 발언을 비교적 편하게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건 단순히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에 대한 중·고등학교 수준의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토론을 한다고 나왔으면서 그전에 컴퓨터 앞에서 자판 몇 개를 두드리면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지식에 대해 전혀 대비하지 않은 나태함에 대한 비난입니다. 편견과 나태를 통제할 수 있는 있는 약간의 예절과 부지런함만 갖추어도 무의미한 충돌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세상은 꽤 좋아졌거든요.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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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war

2007.11.27

"약간의 예절과 부지런함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그 교양이라는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냥 요 몇년간 TV토론장면을 보고 느낀점입니다. 무엇이건 본인에게 이득이 생기는 것만 잘 가져다 붙이는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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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y

2007.11.25

교양이 있는 사람에 대한 해석은 갖가지이지만, 교양이 없는 사람에 대한 해석은 거의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교양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세상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았다는 말이 참 와닿네요. 우리는 현재의 세상에 대해 거의 모르거나, 일부분만 잘 압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교양을 가질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 기회가 사회적 지위나 가문에 따라 제한되었던 과거와 달리 말입니다. 제한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회를 가진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요. 교양이 사회적 선택이 아니라 개인적 선택이 된 지금은 오히려 교양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더 큰 비판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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