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어린왕자는 지구에 와서 수많은 꽃들을 볼 수 있었지만, 자신의 별에서 한 송이 장미꽃을 보는 것보다 기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별을 갖고, 많은 꽃을 본다고 해서 그것이 곧 행복은 아닌 것 같습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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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히는 대로 책을 꺼내 읽는 버릇은 아마도 어렸을 적 잠자리에서 몇 번이고 전래동화를 읽어주셨던 아버지 목소리 덕분인 것 같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일 때면 흥부 놀부니 혹부리 영감이니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연기까지 섞어서 재미있게 들려주셨고, 계속 다시 듣고 싶은 마음에 떼를 쓰다보면 어느새 아버지께서 저보다 먼저 잠들어 계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섯 살 일곱 살 점점 나이가 들면서 저는 혼자 책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좋아하시는 부모님 덕택에 집에 책이 많았던지라, 손만 뻗으면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왕자』를 처음 읽었던 것은, 아마도 그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책장 한쪽 구석, 키가 닿지 않아 의자를 짚고 올라서서 책을 꺼냈지요. 금발머리에, 한 손은 허리에 짚고, 다른 한 손은 검으로 땅을 짚고 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저는 힘들게 꺼낸 그 책을 조금 읽다가 덮고 말았습니다. 보아뱀, 소혹성, 장미……. 그 모든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어렸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몇 번, 중학교에서도 몇 번, 필독 도서로 지정되기도 하고 읽을 기회도 있어서 다시 펼쳐보게 되었고, 그때마다 전에는 만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인 지금, 다시 읽어보면 『어린왕자』는 또 다른 말을 제게 걸어옵니다. 저는 18살, 학생입니다. 더구나 고3이고요. 저도 그렇지만 제 친구들도 내신?논술?수능을 꼭짓점으로 하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갇혀 있습니다. 공부는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고, 그렇게 등 떠밀려 왔습니다. 부모님들도 그러시지만, 물론 성적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고 그런 압박들이 못 견디게 갑갑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나서, 그 이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초등학교 때부터 10년이 넘도록 우리는 언제나 공부만 해왔는데, 이 모든 과정이 끝난 이후에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저와 제 친구들의 고민은, 물론 지금의 학업 성적에도 있지만 그 이후의 문제에 대한 것이 더 큽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 얻어서, 돈 많이 벌면……. 부모님들과 사회는 그것을 성공이라 부르지만, 그것만으로 저와 제 친구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숫자를 좇도록 강요받고, 왜 우리조차 이제는 그것이 유일한 삶의 방식인 양 믿어가고 있는 걸까요.

어린왕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른들에게 새 친구에 관하여 얘기를 하면 어른들은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결코 묻지 않는다. 목소리는 어떠니,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나비를 수집하니 하는 등의 말은 묻지 않고 나이는 몇이니? 형제는 몇이니? 몸무게는 얼마니? 그 애 아버지는 얼마나 버니? 하고 묻는다”라고요.

어린왕자가 지나왔던 별에, 우주의 5억 개의 별이 모두 자기 것이라며 별의 숫자를 되풀이하여 세는 상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세고, 또 세고. 세는 데에만 열중해서 사람을 잊은 그의 모습이, 왠지 우리 미래의 모습인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많이 가지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나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슬플 뿐입니다.

어린왕자는 지구에 와서 수많은 꽃들을 볼 수 있었지만, 자신의 별에서 한 송이 장미꽃을 보는 것보다 기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별을 갖고, 많은 꽃을 본다고 해서 그것이 곧 행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린왕자가 그랬듯 내 작은 별과 꽃 한 송이만 있어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결국엔 아무리 많은 별과 아무리 많은 꽃을 가져도 나만의 꽃과 별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하고 싶은 일들을 부모님이나 주변의 압박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일지 모르는데요.

숫자의 시대입니다. 모두들 돈이라면 최고로 아는, 돈을 위해서라면 친구도 가족도 배신하는 시대입니다. 그렇게라도 얻은 돈이 행복을 보장해준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최근의 한 조사에서 행복지수 1위를 기록한 국가가 선진국이 아닌, 최빈국에 속하는 방글라데시라는 걸 보면서 우리가 지금 한참 잘못된 길을 아무 생각 없이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행복은 많이 가지지 않더라도 꿈과 열정과 내 작은 별의 꽃 한 송이처럼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저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오래도록 하게 됩니다.

#김충원 #어린왕자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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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맘

2007.11.17

저는 아주 오래전에 어린왕자를 책으로 읽고 영화로도 보았습니다. 영화속에서 여우역에 니콜러스 케이지와 비슷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읽도록 어린왕자 책을 준비했어요. 아마 지금 내가 어린왕자 책을 다시 읽는다면 문형범님 처럼 어린왕자가 새로운 말을 듣게될 것 같아요. 얼른 읽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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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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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1900년 6월29일 프랑스 리옹의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해군사관학교에 입학 시험에 실패한 뒤 생크루아 미술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21세 때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소위에 입관 되었으나 비행사고를 내고 예편되었다. 1920년 공군으로 징병되었다. 1921년 4월에 공군에 입대하여 비행사가 되었는데, 이는 그의 삶과 문학 활동에 큰 시발점이 되었다. 제대 후에도 15년 동안이나 비행사로서의 길을 걸었다. 1926년에는 민간 항공회사 라테코에르사에 입사하여 우편비행 사업도 하였다. 1923년 파리의 회사에 회계사로 입사하면서 시와 소설을 습작하다가 트럭 회사의 외판원으로 다시 입사한 후 틈틈이 비행 연습을 한다. 1929년 장편소설 『남방우편기(Ourrier sub)』로 작가로 데뷔하였다. 두 번째 소설 『야간 비행』으로 페미나상을 수상, 이후 『인간의 대지』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하였다. 『인간의 대지』는 같은 해 미국에서 『바람, 모래와 별들』이라는 제목으로 영문판이 번역·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40년에 나치 독일에 의해 프랑스 북부가 점령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동화가 삶의 유일한 진실임을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다”고 말했던 생텍쥐페리는 이 시기에 『어린 왕자』를 집필했고, 1943년 미국 Reynal & Hitchcock 출판사에서 불문판과 영문판(캐서린 우즈 역)이 함께 출간되었다. 『어린 왕자』는 1946년 프랑스 Gallimard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어린 왕자』는 1935년 비행 도중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과정을 바탕으로 쓰였다.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인 『어린 왕자』는 26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전 세계 1억 부 이상 판매되며 현재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 작품이다. 생텍쥐페리는 1943년에 프랑스로 돌아가 공군 조종사로 활동했으며, 1944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군용기 조종사로 지냈다. 1944년 33비행정찰대가 이동하고 이미 5회의출격을 초과하여 8회 출격 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출격하기로 한 7월 31일 오전 8시 반, 정찰 비행에 출격한다. 대전 말기에 정찰비행중 행방불명 되었다. 1944년 7월 31일 세상을 떠난 것으로 짐작한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회항하여 오는 길에 코르시카 수도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독일 전투기에 의해 격추당해 전사하였다고 한다. 유작 "성채I(tadelle)”는 이후에 친구들이 생텍쥐페리의 녹음본과 초벌 원고를 정리하여 1948년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