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아이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7.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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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페어런트 트랩>을 다시 봤습니다. 헤일리 밀즈 나오는 오리지널 영화 말고 린지 로핸이 나오는 리메이크 버전 말이죠. 귀여운 아이들이 이혼한 엄마 아빠를 다시 합치려 노력한다는 내용의 순진무구한 코미디지만 지금 다시 보면 슬프고 오싹하고 그렇습니다. 엊그제 만들어진 영화처럼 느껴지는 건 순전히 기분이고, 98년작이니 이 영화는 벌써 10년 전 작품이에요. 그동안 쏜살같이 세월이 흐르며 수많은 일이 있어났지요. 무역센터가 무너졌고, 한국 영화가 쿨하다고 생각하는 외국 영화광들이 정말로 생겼고, 저는 더 이상 비디오 가게에 가지 않게 되었고, 린지 로핸은 천진난만한 아역 배우에서 말썽꾸러기 할리우드 중견 배우로 성장했습니다. 아니, 성장이라기보다는 변화라고 해야겠군요. 뉴스를 보니 얼마 전에 음주운전으로 체포되어 개봉 영화 홍보도 못한다는군요.


린지 로핸에겐 정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전 정말 모르겠어요. 경력만 본다면 로핸은 아주 성실한 프로페셔널처럼 보입니다. 꾸준히 양질의 (적어도 기본은 하는) 디즈니 영화에 출연했고 로버트 올트먼의 마지막 영화에 나왔고 메릴 스트립이나 제인 폰다 같은 거물과 공연했지요. 그 나이에 이 정도면 성공 중의 성공인 거죠. 제가 본 영화에서 로핸의 연기는 모두 괜찮았어요. 망가진 건 그 사람의 연기가 아니라 사생활이었죠.

할리우드 아역 출신 배우들의 물이 아주 좋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탈리 포트먼이나 안나 파퀸, 사라 폴리 같은 배우가 모두 그 시기를 거친 사람들이죠. 이들은 모두 좋은 가정교육을 받았고 훌륭한 프로페셔널이며 지금 자기가 뭘 하는지 분명히 인식하는, 책임감 있는 성인입니다. 사라 폴리 같은 사람은 장래가 촉망되는 영화감독이기도 하고요. 이들은 아이들이 할리우드에서 자라고 일하면서도 얼마든지 제대로 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사라 폴리는 작정하고 할리우드를 외면하고 자란 캐나다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말이 달라지는 건 아니죠.

그러나 그건 그냥 유행이었던가 봅니다. 어떻게 좋은 교육과 책임감이 유행일 수 있는지 모르지만, 린지 로핸이나 미샤 바튼 같은 그다음 세대의 할리우드 아이들은 이전 선배들의 교양이나 책임감은 느끼고 있지 못하죠. 파도가 빠지고 그런 것들이 아무 쓸모없다는 주장이 그 빈자리를 채운 것처럼 보입니다. 남은 건? 마약 중독으로 요양원에 들어가는 파티 걸들이죠.

걱정해야 할까요? 제가 걱정할 일은 아니죠. 그들은 여전히 화면 위에선 좋은 배우이므로 관객으로서 제가 불평할 일은 없습니다. 물론 결국 이런 식의 막장 인생 경험이 애들의 연기에도 영향을 끼치겠지만 아직은 그런 징조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텔레비전 화면 위에 주근깨투성이 얼굴을 가득 채우고 열심히 연습한 영국 악센트로 대사를 종알거리는 9년 전의 린지 로핸을 보니 억 하는 느낌을 막을 수가 없군요.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린지 로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할리우드에서 자라는, 돈 많고 복 받은 아이들 이야기도 아니고요. 여기서부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이미 우리가 무척이나 잘 아는 이야기죠. 한마디로 시간은 광속으로 흐르고 애들은 정말로 빨리 큰다는 겁니다. 그들이 실수 없이 자기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짧은가요.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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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age21

2007.10.06

흠...저게 로한이었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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