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칼 세이건이 지금 『에덴의 용』을 썼다면?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6.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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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의 『에덴의 용』을 다시 읽었습니다. 이 작품은 이전에도 몇 번 번역되어 읽은 적이 있는데, 새 번역본을 읽는 건 역시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뒤로 거의 30년의 세월이 지났어요. 소설이라면 언제 번역되어도 상관없지만 과학교양서인 경우라면 사정은 다르죠. 그동안 과학은 발전하게 마련이고 새 정보도 쌓이니까요.

영어로 출판된 과학책 중 가장 많이 판매된 『코스모스』의 작가 칼 세이건
그럼 『에덴의 용』은 낡은 책일까요?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이 책은 근처 초신성에 의한 공룡 멸망설을 진지하게 제시하고 ‘핑퐁’을 최첨단 비디오 게임으로 소개하고 있으니까요. 그밖에 제가 깜빡 잊었거나 놓치고 지나갈 만한 자잘한 점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과학적인 개념을 소개하고 기본적인 과학 교양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에덴의 용』은 여전히 유익한 책입니다.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죠.

일단 세이건은 좋은 작가이고 과학자입니다. 표현은 풍부하고 예시는 정확하며 자신이 쓰는 대상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지요. 심지어 그의 전공이 아닌 부분에서도 말입니다. 아시모프의 논픽션 책들이 여전히 팬들에게 사랑받는다면 세이건도 그러지 말라는 법 없죠. 『에덴의 용』은 그냥 좋은 책입니다.

다른 이유는 덜 재미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린 30년 동안 그렇게까지 엄청난 발전은 이루지 못했어요. 물론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정보사회가 발전하는 식의 기술적 도약은 있었지요.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이나 양자역학의 등장처럼 한 시대의 과학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한 혁명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에덴의 용』이 다루는 인간 두뇌와 지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세이건의 예측과 기술이 아직도 의미가 있는 건 그동안 우리가 쌓은 발전이 양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세이건이 지금 『에덴의 용』을 썼다면 다른 책이 되었을까요? 그럴 겁니다. 담겨있는 주장과 지식엔 큰 차이가 없었을 거예요.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엔 상당한 차이를 두었을 겁니다.

전 그가 책에 『에덴의 용』이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70년대는 근본주의 기독교와 창조론의 역풍이 별다른 의미가 없었던 때죠. 세이건이 『에덴의 용』에 수많은 성서 인용을 넣고 정보를 전달하고자 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도 그가 신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인문적 교양이 과학적인 지식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편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죠. 세이건은 온갖 종류의 사이비 과학을 증오하던 남자였어요. 지금 썼다면 결코 근본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하거나 잘못 인용될 만한 비유는 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에덴의 용』에서도 끝부분에선 사이비 과학을 비판하는 문장들이 조금 나오긴 해요. 하지만, 지금 발표되었다면 이와 관련된 챕터 하나를 더 추가했을 걸요. 세이건의 기준에 따르면 우리는 30년 전보다 특별히 똑똑하지 못해요. 오히려 평균을 내면 더 어리석어졌을 걸요. 이런 데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부터가 그 증거입니다.

수많은 과학자와 SF 작가들은 이성과 과학이 지배하는, 더 나은 미래를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십 년 동안 우리가 쌓은 과학과 기술의 양적 발전에도 우린 점점 더 많은 역풍에 시달리고 있죠. 인터넷과 정보 사회의 발전은 오히려 이런 역풍을 부채질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쓸모없는 정보과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이 돌아다니고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목소리를 내죠.

이런 경향이 쉽게 멈출 것 같지 않습니다. 과학이 더욱 분명한 해답을 몇 년 안에 줄 가능성은 거의 없고…. 사실 과학 자체도 잘못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해답을 줄 수 있는 때에도 오용되고 있기 때문이죠. 얼마 전 북핵사태 때 “과학적으로 대답하시죠!”를 외쳐댔던 전여옥 의원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과학에 대해 상식적인 개념만 알고 있어도 그런 말은 나올 수가 없죠. 사실 저번 줄기세포 소동도 마찬가지였고요. 이 모든 건 과학이라는 단어에 대한 미신적 숭상과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의견을 내는 ‘주류’ 과학자들에 대한 편리한 증오가 교묘하게 겹쳐진 결과였죠.

세이건은 과학자들의 방법론이 일반 세계에서도 적용되길 바랐습니다. 아름다운 생각이고 저 역시 남몰래 그런 시대가 오길 바라지만 그건 꿈입니다. 심지어 과학세계에서도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죠. 우리가 불완전한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이 비이성적인 혼돈 속에 정신 일부를 담글 수밖에 없어요. 문제는 그 비율을 어느 정도로 유지하느냐의 문제인데, 아까도 말했지만 과학은 그 해답이 아닙니다. 딱하게도.

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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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Mr. Lee)

2006.12.25

칼 세이건의 [에덴의 용]의 속편 격인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우리나라에선 몇 년전에 김영사에서 출간되었다가 오역으로 인해(이상헌 역) 전량 수거되어 폐기되었죠. 이 책을 읽어보시면 칼 세이건의 종교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칼 세이건은 종교적인 인간이었지만 사이비 종교나 유사 종교단체(UFO나 ESP를 믿는), 심지어 제도화된 종교조차 어느 부분에선 반대했습니다. 또한 종교의 역사에서 비이성적인 부분에 대해선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던 인물이었죠. 스티븐 J. 굴드나 리차드 도킨스, 아이작 아시모프나 로버트 샤피로 이상으로 창조론자들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이 책의 제목도 신화로서의 에덴과 실존하지 않는 상상속의 동물인 용을 대비시켜 반과학의 과학에 대한 도전을 경계하는 의미로 붙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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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ulki

2006.11.14

투덜투덜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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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li

2006.11.14

듀나님에게도 낚인 느낌을 받아야 하는가? 스포츠 신문기사도 아니고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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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에드워드 세이건

1934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우크라이나 이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인문학 학사, 물리학 석사, 천문학 및 천체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 대학교 의과 대학에서 유전학 조교수, 하버드 대학교 천문학 조교수를 지냈다. 그 후 코넬 대학교의 행성 연구소 소장, 데이비드 던컨 천문학 및 우주 과학 교수,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의 특별 초빙 연구원, 세계 최대 우주 동호 단체인 행성 협회의 공동 설립자 겸 회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미국 항공 우주국(NASA)의 자문 위원으로 매리너, 보이저, 바이킹, 갈릴레오 호 등의 무인 우주 탐사 계획에 참여했고 과학의 대중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저술과 방송을 통해 세계적인 지성으로 주목받았다. 행성 탐사의 난제들을 해결한 공로와 핵전쟁의 영향에 대한 연구와 핵무기 감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NASA 공공 복지 훈장, NASA 아폴로 공로상, 미국 우주 항공 협회의 존 에프 케네디 우주 항공상, 탐험가 협회 75주년 기념상, 소련 우주 항공 연맹의 콘스탄틴 치올콥스키 훈장, 미국 천문학회의 마수르스키 상 그리고 1994년에는 미국 국립 과학원의 최고상인 공공 복지 훈장 등을 받았다. 그 외에도 과학, 문학, 교육, 환경 보호에 대한 공로로 미국 각지의 대학으로부터 명예 학위를 스물두 차례 받았다. 그의 저서 『코스모스(Cosmos)』(1980년)는 전 세계 출판계에서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평가받았고, 30여 권의 저서 중 『에덴의 용(The Dragons of Eden)』(1978년)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외계 생물과의 교신을 다룬 소설 『콘택트(Contact)』(1985년)는 1997년에 영화로 상영되어 전 세계에 감동을 선사했다. 이 외에도 『우주의 지적 생명(Intelligent Life in the Universe)』(공저, 1966년), 『UFO, 과학적 논쟁(UFO’s: A Scientific Debate)』(공저, 1972년), 『코스믹 커넥션(The Cosmic Connection)』(1973년), 『화성과 인간의 마음(Mars and the Mind of Man)』(공저, 1973년), 『브로카의 뇌(Broca’s Brain)』(1974년), 『다른 세계들(Other Worlds)』(공저, 1975년), 『지구의 속삭임(Murmurs of Earth)』(공저, 1978년), 『혜성(Comet)』(공저, 1985년),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길(A Path Where No Man Thought)』(공저, 1990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1994년),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The Demon Haunted World)』(공저, 1995년), 『에필로그(Billions & Billions)』(1997년, 사후 출간),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The Varieties of Scientific Experience)』(2006년, 사후 출간) 등을 썼다. 평생 우주에 대한 꿈과 희망을 일구었던 그는 1996년 12월 20일에 골수 이형성 증후군으로 시작된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