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시작이다 - 〈걸 인 더 카페〉
2006.09.12
〈걸 인 더 카페 The Girl in the Cafe〉를 본 이유는 순전히 스크린플레이 크레디트에 올라 있는 리처드 커티스라는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서부터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로 으레 감독 이름으로 기울게 되어 있는 주목을 시나리오 작가로 돌리게 만들었던 그는 〈러브 액추얼리〉에서는 연출도 맡아서 진면목을 과시했습니다. 이 작품으로 리처드 커티스는 다음 작품이 가장 기다려지는 감독, 시나리오 작가의 선두 대열에 올랐습니다. 제 경우에 그렇다는 말씀입니다만, 많은 분들이 동의하시리라고 믿습니다.
물론 감독인 데이빗 예이츠의 이름을 보고 선택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영국의 여러 TV 시리즈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다음 편 연출을 맡게 되면서 성공가도를 예약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아직까지 눈에 띄는 이름은 리처드 커티스입니다. 리처드 커티스도 TV에서 내공을 쌓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불세출의 코미디 시리즈 〈미스터 빈〉의 각본 작업에도 참여했지요. 그러던 그가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으로 비상의 날개를 폅니다. 그러고는 리처드 커티스만의 로맨틱 코미디 역사를 쌓아나가게 되지요.
세계적인 유명 여배우가 조그만 서점 주인과 연애를 하고, 클라우디아 쉬퍼(클라우디아 쉬퍼가 클라우디아 쉬퍼를 똑 닮은 여자를 연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가 평범한 아이 아버지와 사랑을 키워가는 등, 커티스의 이야기에도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관계가 전개되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의 로맨스에는 두 사람만이 애절한 주인공이 되는 것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의 수줍은 주인공들은 소심하고 서투르기는 하지만 세상을 향해 닫혀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100층이 넘는 빌딩 두 개가 비행기에 받혀 무너져 내리고, 전쟁이 일어나고, 범죄로 누군가를 잃고, 그런 험한 꼴 가득한 세상을 때로는 두려움에 떨며 바라보면서도 온데 널려 있는 것이 사랑이라며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이 리처드 커티스의 인물들입니다.
하나하나가 애틋하고 장한 캐릭터들에게서 나오는 위트 만발한 대사에 물들다 보면, 어느새 리처드 커티스 중독자가 됩니다. 말랑말랑하기만 한 것 같으면서도 허투루 하는 데가 없이 단단한 커티스의 시나리오는 마이클 무어와는 참으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감정의 격랑이 심하지 않으면서도 속을 헹구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각본이든 연출이든 언제나 크리스마스 같은 작가 리처드 커티스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어김없이 찾아보게 되는 것이지요.
〈걸 인 더 카페〉는 얼마 전에 열린 에미상 시상식에서 TV영화/미니시리즈 거의 전 부문에 후보로 올라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하여 각본상과 여우조연상을 탔습니다. 우선 연기에 대해서만큼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러브 액추얼리〉에서 유일한 히트곡 〈Love Is All Around〉를 부르다, 부르다 지쳐서 냉소주의자가 되고 만 퇴물가수를 연기한 빌 나이는 이 단막극에서 이보다 더 능청스러울 수는 없는 연기 변신을 선보입니다. 지나칠 만큼 남을 의식하고 배려하며, 쓰고 나면 말이 닳아지기라도 할 듯 한마디, 한마디 심혈을 기울여 골라서 하는 소심한 중늙은이 연기를 정말 잘도 해냅니다. 앙증맞은 말투에 카리스마를 품고 있는 켈리 맥도널드의 연기도 든든했고요.
영국의 BBC와 미국의 HBO에서 같은 날 방송되었던 〈걸 인 더 카페〉는 드라마가 주제로 삼았던 따뜻한 사랑만큼 따뜻한 호응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국에서는 550만 명이 시청하며 29퍼센트의 아주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기대에 미쳤다는 소감보다는 오히려 혹평에 시달렸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입니다. 드라마는 영국 정부의 고위관료이며 혼자 외롭게 사는 중년의 주인공 로렌스와 그에 비하면 훨씬 젊은 여인인 지나가 붐비는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왔다, 자리가 없어서 합석하면서 시작됩니다. 너무나 얌전하고 조심스러운 그들의 첫 만남이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비슷한 사랑을 연출했던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거의 막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G8 회담이 열리는 아이슬란드에 영국 대표를 보좌하기 위해 떠나는 로렌스가 그 여행에 지나를 초대하면서 엉뚱하다 싶게 점프하며, 전개 또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없이 조금 밋밋하게 갑니다. 아이슬란드에 대해서는 비욕의 나라라는 것밖에 모르는 지나의 돌출 행동이 시발점이 되지요. 지나치게 선언적이고 순진한 감상으로 복잡한 국제정치를 그려내어 시청자들의 지적 수준을 모욕했다는 원성도 있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드라마는 2005년에 실제로 열렸던 G8 회담을 다분히 의식해서 제작된 측면도 있습니다. 밥 겔도프가 G8 회담에 아프리카의 빈곤 퇴치에 대해 더 성실하고 실질적인 접근을 요구하며 라이브 에이드 이래 20여년 만에 기획했던 라이브 8 공연과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지요.
리처드 커티스의 각본과 데이빗 예이츠의 연출이 그들이 이제까지 만들었던 여느 작품에 비해 세련되고 정교한 맛이 떨어졌던 것만큼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빈곤과 기아 같은 문제는 인도주의적 동정심이나 자선만으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이 드라마의 태그라인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랑은 세상의 잘못된 것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작, 즉 출발점은 될 수 있다는 게 이 드라마를 만든 사람들의 믿음이지요. 그리고 천지분간 못하는 듯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 드라마의 끝에 나오는 넬슨 만델라의 말, 2005년에 열린 라이브 8 공연에서 넬슨 만델라가 했다는 말은 역시 부르르 하는 심정이 안 들 수가 없게 합니다. 그리고 대사, 너무나 얌전하면서도 보는 사람을 뒤집어지게 하는 커티스 대사의 유머는 그만의 것으로 이 드라마에서도 싱싱하게 펄펄 뛰고 있으니까, 그 묘미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안방극장 전용으로 제작된 이 TV 영화를 볼 충분한 이유가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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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유명 여배우가 조그만 서점 주인과 연애를 하고, 클라우디아 쉬퍼(클라우디아 쉬퍼가 클라우디아 쉬퍼를 똑 닮은 여자를 연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가 평범한 아이 아버지와 사랑을 키워가는 등, 커티스의 이야기에도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관계가 전개되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의 로맨스에는 두 사람만이 애절한 주인공이 되는 것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의 수줍은 주인공들은 소심하고 서투르기는 하지만 세상을 향해 닫혀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100층이 넘는 빌딩 두 개가 비행기에 받혀 무너져 내리고, 전쟁이 일어나고, 범죄로 누군가를 잃고, 그런 험한 꼴 가득한 세상을 때로는 두려움에 떨며 바라보면서도 온데 널려 있는 것이 사랑이라며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이 리처드 커티스의 인물들입니다.
하나하나가 애틋하고 장한 캐릭터들에게서 나오는 위트 만발한 대사에 물들다 보면, 어느새 리처드 커티스 중독자가 됩니다. 말랑말랑하기만 한 것 같으면서도 허투루 하는 데가 없이 단단한 커티스의 시나리오는 마이클 무어와는 참으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감정의 격랑이 심하지 않으면서도 속을 헹구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각본이든 연출이든 언제나 크리스마스 같은 작가 리처드 커티스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어김없이 찾아보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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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BBC와 미국의 HBO에서 같은 날 방송되었던 〈걸 인 더 카페〉는 드라마가 주제로 삼았던 따뜻한 사랑만큼 따뜻한 호응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국에서는 550만 명이 시청하며 29퍼센트의 아주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기대에 미쳤다는 소감보다는 오히려 혹평에 시달렸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입니다. 드라마는 영국 정부의 고위관료이며 혼자 외롭게 사는 중년의 주인공 로렌스와 그에 비하면 훨씬 젊은 여인인 지나가 붐비는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왔다, 자리가 없어서 합석하면서 시작됩니다. 너무나 얌전하고 조심스러운 그들의 첫 만남이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비슷한 사랑을 연출했던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거의 막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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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야기는 G8 회담이 열리는 아이슬란드에 영국 대표를 보좌하기 위해 떠나는 로렌스가 그 여행에 지나를 초대하면서 엉뚱하다 싶게 점프하며, 전개 또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없이 조금 밋밋하게 갑니다. 아이슬란드에 대해서는 비욕의 나라라는 것밖에 모르는 지나의 돌출 행동이 시발점이 되지요. 지나치게 선언적이고 순진한 감상으로 복잡한 국제정치를 그려내어 시청자들의 지적 수준을 모욕했다는 원성도 있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드라마는 2005년에 실제로 열렸던 G8 회담을 다분히 의식해서 제작된 측면도 있습니다. 밥 겔도프가 G8 회담에 아프리카의 빈곤 퇴치에 대해 더 성실하고 실질적인 접근을 요구하며 라이브 에이드 이래 20여년 만에 기획했던 라이브 8 공연과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지요.
리처드 커티스의 각본과 데이빗 예이츠의 연출이 그들이 이제까지 만들었던 여느 작품에 비해 세련되고 정교한 맛이 떨어졌던 것만큼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빈곤과 기아 같은 문제는 인도주의적 동정심이나 자선만으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이 드라마의 태그라인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랑은 세상의 잘못된 것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작, 즉 출발점은 될 수 있다는 게 이 드라마를 만든 사람들의 믿음이지요. 그리고 천지분간 못하는 듯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 드라마의 끝에 나오는 넬슨 만델라의 말, 2005년에 열린 라이브 8 공연에서 넬슨 만델라가 했다는 말은 역시 부르르 하는 심정이 안 들 수가 없게 합니다. 그리고 대사, 너무나 얌전하면서도 보는 사람을 뒤집어지게 하는 커티스 대사의 유머는 그만의 것으로 이 드라마에서도 싱싱하게 펄펄 뛰고 있으니까, 그 묘미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안방극장 전용으로 제작된 이 TV 영화를 볼 충분한 이유가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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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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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린별
2006.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