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 〈식스 핏 언더〉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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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물이나 액션 드라마 혹은 최근 들어 급속하게 장르화하고 있는 “영매” 드라마 등에는 매회 죽음이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들에서도 죽음 자체는 주제가 아닙니다. 죽음을 주제로 기나긴 시리즈를 이어가는 드라마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될 듯합니다. 가족 멜로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장르에 블랙 코미디로 악센트를 준 후 전격적으로 죽음이라는 주제를 드라마의 전 영역에 채택한 파격이 하나 있으니, 바로 HBO의 〈식스 핏 언더Six Feet Under〉입니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American Beauty〉의 각본을 쓴 알란 볼이 일약 할리우드의 총아로 떠오르면서 제작에 나선 드라마지요.

제목의 ‘식스 핏’은 봉분을 거의 두르지 않고 매장을 하는 미국 장례문화에서 관을 묻기 위해 땅을 파는 깊이라고 합니다. ‘왜 6피트냐?’라는 의문은, 그 이하면 곰이 냄새를 맡고 시신을 파헤칠 수 있다느니, 성인 남녀의 평균 신장을 조금 웃도는 높이가 사후세계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망자에 대한 배려라느니 하는 등의 잡학전서적인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따져 봐도 드라마의 흐름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사전 정보에 불과할 뿐이니, 그냥 ‘파이브’, ‘세븐’보다는 발음하기 편해서 그러지 않았겠느냐 정도로 얼버무릴 수도 있을 듯합니다. 사실 서구의 매장 문화에서 그보다 더 궁금한 점은 땅속에 관을 버튼 하나로 스르르 내리는 방식입니다.

여하튼 제목에서부터 상당히 노골적으로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 작품은 미국 드라마 “작가주의(자들)”의 든든한 ‘빽’이자, 스크린쿼터라고나 할까, 그런 역할을 하는 HBO의 후원이 없었더라면, 당시에 제아무리 잘 나가던 알란 볼이라도 밀어붙이기 어려웠다 싶은 드라마입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무대 또한 노골적으로, 장의사 가족이 먹고 자는 장례식장입니다. 한국에도 자영 장례업자들이 있지만, 사업 장소 위층에 버젓이 살림을 차려놓은 곳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작년까지 미국에 머무는 동안, 동네마다 몇 개씩 있는 “가정집형” 장례식장을 보고 낯선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영화 〈마이 걸〉을 보고 ‘미국에는 장례식을 저런 식으로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지하에 방부처리와 복원작업을 기다리고 있는 시신이 있는데, 위에는 가정집을 꾸미고 산다는 것은 아무리 적게 쳐도 으스스한 기분이 들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아직도 왜 미국의 많은 장례업자가 집을 사업처로(혹은 사업처를 집으로) 삼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해석하자면, 죽음은 인생에서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것 중 하나라고 해도 동시에 인생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 중 하나니까, 장례식장 위에 장의사의 살림집이 있다 한들 어떠하며, 그것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위안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집에 식솔로 딸려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무엇이든 직업적으로 하면 내성이 생기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관한 어떠한 사연도, 아무리 처참한 시신도 내성에 프로페셔널리즘을 보태어 의지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이면, 생계를 위해 하는 여느 일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프로페셔널리즘은 견지하되, 직업에 대한 내성은 이미 갖추었으되, 죽음이 주는 의문은 누구보다 뻔히 알면서도 극복하지 못하고, 마조히스트가 되기를 자처하는 장의사들의 이야기는 어떠한가요.

피셔 장례식장의 주인이었던 너새니얼 피셔의 죽음은 피셔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립니다. 죽은 너새니얼이 아내나 자식들에게 딱히 억압적이었던 것도 아닌데, 사실은 자기도 답답해서 살아생전에 별별 비밀을 다 만들며 숨통을 풀고 다녔는데, 그의 죽음으로 이 가족의 연대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그가 죽기 전에는, 둘째 아들 데이빗은 자기가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어영부영 또래에 휩쓸려 다녔던 막내딸 클레어는 별반 삶의 목적이라고는 딱히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미국의 불만투성이 십대에 불과했으며, 세 자녀의 어머니인 루스 피셔는 한가하지만 답답한 전업주부의 전형에 더도 덜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열일곱 살에 집을 떠난 큰아들 네이트는 진정한 사랑을 만난 적이 없는 피셔가의 이방인이었습니다. 드라마는 큰아들 네이트가 인생의 서른다섯 번째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집으로 향하고, 아버지 너새니얼이 버스에 치여 죽으면서 시작됩니다.

〈식스 핏 언더〉는 죽음을 일상적으로 다루면서도 비교적 잔잔하게 극을 조율해 나갑니다. 파일럿 에피소드에서 설정된 너새니얼 피셔의 교통사고 장면을 빼고는 비명을 내지를 만큼 압도적인 카메라 워크 하나 찾아볼 수 없으니까요. 드라마는 시종일관 아버지의 죽음을 맞아 자의로 타의로 변화해 갈 수밖에 없는 피셔가의 내면을 그리는 것에만 몰입합니다. 간혹 상식을 깨는 설정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등장하곤 하지만 그저 장치에 불과할 뿐, 이내 카메라의 시선은 화이트 디졸브(white dissolve)와 함께 피셔가의 일상으로 이동합니다.

심지어 〈식스 핏 언더〉에는 장례식과 더불어 에피소드 하나를 깔끔하게 마무리해주는 미덕조차 없을 뿐더러, 요즘 드라마에서 짓궂다 싶은 만큼 악의적으로 반복되는 그 흔한 클리프행어 엔딩조차 없습니다. 쉽게 갈 수 있는 숱한 대중적 장치를 마다하고 외곬으로 일관하는 이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작가주의의 면죄부는 어디까지일까 싶은 위태위태함이 드리워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미국 드라마에서 십대들의 방을 비출 때면, 이 드라마의 포스터가 종종 등장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이승의 삶을 다한 사람이 물러나지 않고, 살아남은 자의 내면을 그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런 판타지적 요소가 이 드라마의 스타일을 강화하면서, 마니아층을 낳는 것이겠지요.

알란 볼이 〈아메리칸 뷰티〉의 성공에 이어 곧바로 도전한 드라마 〈식스 핏 언더〉. 사실 저는 상도 남부럽지 않게 많이 받고 흥행도 한 〈아메리칸 뷰티〉를 보면서,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크나큰 감흥은 얻지 못했습니다. 특히 새로운 형식의 참신한 블랙 코미디라는 평가에서, 그 참신함이라는 말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금 불편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사람이 박수를 쳐주는 작품이 있으면, 으레 같이 따라 박수를 치는 저로서는 이를테면 좀 별난 경험이었습니다.

〈식스 핏 언더〉가 꿋꿋하게 다섯 시즌을 엮어가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메리칸 뷰티〉에서는 이야기의 끝이었던 해체된 가족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설정한 것과 더불어, 미국 드라마로서는 보기 드물게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강하게 폭발시키면서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점인 듯합니다. 〈식스 핏 언더〉가 정말로 특이한 점은 종종 등장하는 판타지적 장치라기보다는 바로 그 점인 것 같습니다. 미국 드라마는 캐릭터가 감정의 결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거의 악덕이라고 여기지 않나 싶을 만큼 극도로 자제하는 문화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식스 핏 언더〉는 마치 축제라도 벌이듯 인물들이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분방하게 분출합니다. 그래서 장례식은 산 자를 위한 것이며, 어떤 소설은 축제라고 표현했던가요. 그러면서 장편 드라마답게 캐릭터에 귀여운 요소를 입히면서 정감을 붙이는 것도 힘이 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한다는 “발 닦게 이슈”가 있는 데이빗과, 남편이 죽은 후 부족했던 자식들의 사랑을 원망하며, 그리고 한편으로는 연애사업도 만끽하며 사랑을 주는 만큼 받지 못하여 늘 울분에 차 있는 귀엽고 고운 피셔가의 엄마 루스, 피셔가의 사람으로서는 감정에 가장 개방적이며 남을 돕고 싶어하는 마음과 자신의 행복을 지키고 싶은 마음, 뒤늦게 빠진 사랑의 수수께끼에 천진하게 괴로워하는 큰아들 네이트, 막 나가는 십대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어 사랑스러움을 멋지게 되찾아나가는 막내 클레어가 일구어가는 피셔가의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미국에서는 〈식스 핏 언더〉가 방영되면서 장의사 지망생들이 크게 늘어났다는 뒷이야기도 있답니다.

관련 상품 보기

『식스 핏 언더』 앨런 벨 | 워너브라더스 | 2005년 07월
크리스마스 이브, 로스앤젤레스에서 `피셔 앤 선` 장의사를 운영하던 나다니엘 피셔는 아들을 데리러 공항에 가던 중 버스가 그의 영구차 측면을 들이받는 사고를 당해 사망하게 된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집으로 돌아온 시애틀 유기농 식품 조합에서 근무하는 네이트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에 당혹감을 감추진 못한다. 심약한 어머니 루스는 교회에서 만난 이발사 하이램과 바람을 피우고 있고, 동생 데이빗은 흑인 경찰 키이스와 비밀리에 동성애를 하고 있는데...

『아메리칸 뷰티』 아네트 베닝 출연/샘 멘데스 감독 | CJ entertainment | 2002년 06월
2000년 아카데미 최다 수상(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각본상/촬영상), 2000년 골든글로브 최다 수상(작품상/감독상/각본상), 99년 전미 영화학회 최우수작품상 수상, 99년 LA비평가협회 감독상 수상, 99년 토론토 국제영화제 관객상, 전세계 네티즌이 뽑은 역대 최고의 영화 2위 선정!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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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sgg

2006.04.24

좀 밋밋하고 컬트적이었던 것 같던데... 역시 소개글이 더 잼남다.
엑스 파일때는 FBI 지망생이 늘고, CSI때는 과학수사대 지망생이 폭증했다더니... 사람들 가벼운 건 미국이나 울나라나 똑같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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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myj

2006.04.20

드라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멋진 글이군요..^^므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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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1918

2006.04.20

드라마를 안봐서 모르겠는데...
이글로 봐선... 정말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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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실

홍익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어렸을 때의 꿈은 건축가였지만,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를 본 후부터는 무언가 집요하게 조사하고 탐구하며 결실을 맺는 직업, 예컨대 평전 작가 같은 것에 대한 갈망이 생겼고, 그 소망은 가슴 한켠에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를 참 좋아해서 한때 다큐멘터리 작가가 되겠다고 캠코더를 메고 다녔던 적도 있었다. 한국과 미국 보스턴에 머물며 10여 년간 출판기획과 취재를 하면서 대중 문화 자유기고가와 영미권 도서 번역가로 활동해왔다. 미국 드라마 시리즈에 대해서 그녀만큼 깊이 있으면서 재미있게 쓰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미국 드라마 평론가이기도 하다.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은 일본의 만화가 아다치 미츠루, 골프채는 잡아본 적도 없지만 18홀 라운딩을 함께 하고픈 사람을 한 명 고르라면 단연코 메이저리그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즈다. 향후 배워보고 싶은 것으로는 "브라더 미싱으로 예쁜 원피스 만들기" "매킨토시로 그림 그리기" "나이스한 강아지 그루밍 기술" 등이 있으며,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으로는 "야구장의 몇 만 관중 앞에서 시구하기" "험머 타고 북미 대륙횡단하기" "플레이 스테이션 위닝 일레븐 게임에서 오버헤드킥 성공시키기" 등이 있다. 국내 리그는 물론 메이저리그 야구 마니아로, 보스턴 레드삭스의 열혈 팬이다. 특히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좋아해서, 그의 플레이를 보려고 미국으로 건너가 메이저리그 전 시즌을 관전하기도 했다. 직접 쓴 책으로는 『미드 100배 즐기기 시즌 1』, 『위트 상식사전 프라임』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야구 교과서』, 『첼시』, 『리버풀』, 『유쾌한 깨달음』, 『자연과학 상식사전』, 『디자인이 만든 세상』, 『하버드가 지배한다』, 『마이 히어로』,『훈육의 심리학』, 『나 누주드, 열 살 이혼녀』, 『마테크』, 『그 여자의 살인법』, 『냉동 인간』, 『수비의 기술』, 『외지인의 죽음』 『매춘부의 죽음』, 『대식가의 죽음』, 『잔소리꾼의 죽음』, 『돌런갱어 시리즈』(전5권), 『몸을 긋는 소녀』, 『언더베리의 마녀들』, 『뼈 모으는 소녀』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