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해부하기 - 『올드보이』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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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원작을 봤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도 그랬을 것이다. 이미 국내에서 개봉하여 흥행 성공을 거둔 후, 뒤늦게 칸영화제에 출품되어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올드보이>는 누구도 쉽게 비판할 수 없는 명예를 얻었다. 한참 게으름을 피우다 대상을 받은 후에야, DVD로 <올드보이>를 보고 나니, 원작을 읽고 싶어졌다. 영화 <올드보이>는 박찬욱의 영화에서 일관되게 추구하는 원죄와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원작은 과연 어떨까? 그게 궁금해서 만화 『올드보이』를 읽었다.

츠치야 가론 글, 미네기시 노부아키 그림의 『올드보이』는 사설 감옥에 갇힌 한 남자가 풀려나는 모습부터 시작된다. 고토가 어떤 남자였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오대수라는 이름을 ‘오늘도 대충 수습’이란 말로 푸는 장면들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만화에서는 다르다. 어느 모로 보나 고토는 평범한 남자다. 커다란 인생의 굴곡도 없었고, 특별하게 타인에게 원한을 질 일도 하지 않았다. 자잘한 사고를 치고 대충 수습하며 살아가는 오대수와는 전혀 다르다. 박찬욱은 사설감옥에서의 10년간의 연금, 만두 맛으로 찾아내는 중국집, 후최면의 설정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이미 DVD가 나온 지도 오래 되었으니,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놔보자. 오대수가 연금된 이유는, 혀를 잘못 놀렸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이우진의 누나가 누군가와 정사를 하는 장면을 보고, 그것을 무심코 친구에게 말한 것이다. 오대수는 그 상대가 이우진이라는 것도 몰랐다. 이우진의 누나는 그런 소문이 퍼지자 자살을 한다. 근친상간을 했던 그들은, 거대한 죄의식에 침윤되어 있었다. 우진의 죄의식은, 누나가 자살을 한 후 오대수에게로 향한다. 극도의 죄의식이 극도의 분노와 공격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다분히 기독교적인 원죄와 구원의 이야기다. 근친상간이나, 이를 뽑는다던가 하는 구체적인 장면들이 충격적으로 다가오긴 하지만, 사실 영화 <올드보이>는 다분히 상식적인 이야기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혀를 뽑는다는 설정도 그렇다.

하지만 원작은 다르다. 고토를 가둔 카키누마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복수를 시작한다. 어떤 시각으로 보자면, 그 이유는 너무나도 사소하다. 하지만 카키누마란 인간이 대체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고토와 카키누마의 담임선생이었던 쿠사마는 말한다. 너희 둘은 일종의 과잉이었다고. 보통의 아이들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카키누마를 딱히 악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그가 어둠, 카오스, 허무의 상징인 것은 분명하다. 전학생인 카키누마는 고토를 보는 순간, 그가 자신의 반대축에 서 있는 동류(同類)임을 안다. 카키누마가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부정적인 성향의 그 녀석은 이 나라의 파행적인 인간들이나 작가, 깡패, 살인자까지도 용서하지만 진실한 아웃사이더에게는 공포를 느꼈던 걸 거야.”

모든 문제는 거기에서 출발한다. 카키누마는 순조롭게 학교를 졸업하고, 버블 경제를 이용하여 엄청난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건 단지 돈일 뿐이다. 그 무엇도 카키누마의 본질적인 허기를 채우지 못한다. “아마 부도 지위도, 변태적인 성의 지향도 충족시킨 그는 끝내... 자신의 생애에서 부끄러움 또는 상처같은 응어리를 생각해냈겠지.” 그래서 그는 고토를 찾는다. 그리고 자신의 알터 에고일 수도 있는 고토가, 너무나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을 고토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건 단순한 복수 같은 것이 아니다. “좀더 뿌리깊은 본질에 관계된 중요한 일”이다.

“가치관이 다른 놈들이 서로 피 터지게 집착해서 상대를 멸망시키려는 어설픈 전쟁....이 사회는 그런 하찮은 것에서 인간들이 사는데 자극을 느끼게 할만큼 유치의 극에 달했을 지도 몰라”라고 말하는 고토의 분석은 옳다. 『올드보이』는 버블 경제가 끝나고 10년 불황으로 빠져든 일본에서, 끈질기게 세계의 의미를 파고든다. 더욱 근원적인 어떤 신화로 접근하는 것이다. 세계의 진정한 가치는 과연 무엇인지,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말해주려 한다. 카키누마는 근원적인 고독, 어둠이었다. 타인이 보는 순간 가까이 하기를 꺼려할 만큼 근원적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카키누마는 세상의 지배자가 되기를 원한다. 표면이 아니라, 어둠 속에 존재하는 지배자가 되기를 원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위치에 선다고 해서, 그의 근원적인 결핍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고토를 불러낸 것이다. 자신처럼 고독하게 10년을 보낸 후, 자신의 반대편에 서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오대수도, 고토도 어떤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연금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 오대수는 혀를 잘못 놀렸고, 그래서 혀를 자른다. 일종의 미필적 고의인 것이다. 그건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같은 것이다. 원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희생을 치르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 오대수는 혀를 자르고, 최면술사의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고토는 죄가 없다. 그는 단지 하나의 존재였을 뿐이고, 카키누마가 분노를 느낀 것뿐이다. 그건 마치 신화 속 신들의 대결처럼 느껴진다. 선악도, 진정한 승자와 패자도 없는 대결. 그러나 의미심장한.
19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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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i1102

2019.06.23

하바리움을 직접 만드는 기회라니! 너무너무 기대됩니다♡ 꼭 참석해서 배우고 싶어요♡ 꼭 좋은 기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명 신청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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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2019.06.21

1인 신청합니다. 저자의 강의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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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쿵달콩

2019.06.20

프리져브드도 관심이 생겨서 우연히 책을 구매했었는데.. 하바리움까지 원데이클래스로 배울 수 있다니 너무 기쁘네요. 삶의 작은 활력이 되길 바라며 1명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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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 1

Tsuchiya Garon 글/Minegishi Nobuaki 그림

올드보이 dts (일반판:2Disc)

최민식, 유지태, 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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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글 쓰는 일이 좋아 기자가 되었다. [씨네21] [브뤼트] [에이코믹스] 등의 매체를 만들었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쳤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 소설, 만화를 좋아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자연스레 대중문화평론가, 작가로 활동하며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내 안의 음란마귀』 『좀비사전』 『탐정사전』 『나도 글 좀 잘 쓰면 소원이 없겠네』 등을 썼다. 15년 이상의 직장 생활, 7, 8년의 프리랜서를 경험하며 각양각색의 인간과 상황을 겪었다. 순탄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통과하고픈 생각은 별로 없는 그 시기를 거치며 깨달았다. 직장인과 프리랜서 모두 쉽지 않고, 어른으로서 살아가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 월급도 자유도 결국은 선택이고, 어느 쪽도 승리나 패배는 아니라는 것. 모든 이유 있는 선택 뒤엔 내가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 남는다는 것. 다 좋다. 결국은, 지금의 내가 있으니까. 2007년부터 13년간 상상마당 아카데미 ‘전방위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쌍은 경험과 노하우를 이 책에 그대로 풀어냈다. 글쓰기 초보자에게 글을 잘 쓸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준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모든 이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물할 것이라 확신한다. 주요 저서에는 『전방위 글쓰기』(2008), 『영화 리뷰 쓰기』(2008),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2012), 『나의 대중문화표류기』(2015),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미스터리』(2015),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호러』(2016), 『고우영』(2017) 등이 있다. 공저로도 『클릭! 일본문화』(1999), 『시네마 수학』(2013), 『탐정사전』(2014),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웹소설 작가 입문』(2017)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