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없는 이름의 주인들이 보내는 저주의 메아리 – 강민영 작가
여자들을 이용하고 희생시키며 살았던 남성이 지은 이 집은, 존재 그 자체로 재앙의 시작이다.
잘 가꾸어진 울창한 숲에서 나무좀 벌레 한 마리가 나타나면 숲 주인은 공포에 떨기 시작한다. 나무좀의 출현은 곧 숲의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무좀이 원하는 건 단 하나다. 나무. 나무좀은 나무를 시들고 말라죽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나무 하나의 죽음은 수백 수천 개의 나무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때문에 나무좀을 발견한 숲 주인 혹은 나무의 주인들은 나무좀의 박멸을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나무좀을 쫓아내거나 나무좀을 없애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벌레는 생태계가 교란되거나 토양에 문제가 있는 곳에서 발생하며, 이런 곳으로 자신의 동료들을 끌어 모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무좀들은 ‘무언가 잘못되어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나무좀이 생존하는 곳은 제대로 된 땅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소설 『나무좀』의 화자인 할머니와 손녀는 서로의 속에 이 ‘나무좀’이 살고 있다고 말한다. 손녀의 탄생을 포함해 아주 오랜 시간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이 집에서 생존해온 할머니는 보다 명확히 이야기한다. “나는 그 아이의 몸속에 살고 있는 나무좀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손녀는 자신의 몸 어딘가에 이 벌레가 살고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한다. 할머니와 손녀가 서로를 보살피는 동시에 증오하고 경계하는 애증의 관계이자 운명의 공동체임을 부인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나무좀의 존재 때문이다. 눈과 손을 이용해 명확히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 그들의 안에 들어있는 존재. 그리고 그 나무좀은 할머니와 손녀가 영영 떠나지 못하는 이 집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손녀와 할머니는 번갈아가며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집이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이 집에 살아가는 자신들을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는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작고 낡은 집은 분명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리고 집을 ‘살아 있다’고 판단하게 만드는 것은 집 안을 배회하는 유령들, 즉 어둠의 그림자들의 존재다. 이 집의 주인이자 생존자인 두 사람은 그림자들이 계단과 복도를 기어다니고 문 뒤에 숨어 밖을 엿보는 것을 바라보며 그들을 집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귀신 들린 집이자 유령들이 떠도는 공간, 그들과 함께 살아남아 계속해서 자신의 난 곳과 가문을 저주해야만 하는 두 여성. 어둠이 집의 바닥과 대들보에도 남아 있는 이 이상한 집은 근본부터 잘못되었다. 씻고 또 씻어도 조금도 깨끗해지지 않는 여자들의 비명과 핏빛 증오 속에 이 집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집은 그 여자들의 몸 위에 세워졌고, 우리 어머니의 몸 위에서 간신히 버티고 서 있었던 셈이다. 어머니의 고통과 두려움 위에서. 그건 선물이 아니라, 저주였다.” (57쪽)
여자들을 이용하고 희생시키며 살았던 남성이 지은 이 집은, 존재 그 자체로 재앙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폭력의 굴레 앞에 스러지고 꺾인 여성들의 절규로 치환된다. 아내를 가두기 위해 지은 이 황량한 벌판의 작은 집은 결국 집을 지은 남성을 산 채로 잡아먹는다. 그리고 그들의 딸들은 자신을 괴롭히고 위협하는 위험의 근원이자 근본을 제거하기 위해 바닥부터 잘못된 집이 가지고 있는 저주의 힘을 빌린다. 그들의 벌린 입을 영영 막도록, 그들 스스로 어둠의 그림자가 되어 집에 영원히 구속되도록, 말하자면 ‘복수’를 위해서 말이다.
“나는 바로 여기, 벽들이 내 아버지를 삼킨 방에서 태어났다.” (61쪽)
남성들에 의해 희생된 여성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화자인 할머니와 손녀 또한 제대로 된 이름으로 불리거나 자신의 이름을 누군가에게 말하지도, 어딘가에 나지막이 읊조리지도 않는다. 그들은 기억되고 기록되지 못하는 대신, 자신에게 부여된 이름을 없는 것으로 만들거나 빼앗아 가버린 대상들을 이 저주받은 집 안쪽에 깊숙이 파묻기로 한다. 존재하지 말아야 할 집이 존재함으로 인해 생긴 균열은 나무좀을 만들어낸다. 강제로 삶이 이주된 나무에 필연적으로 딸려오는 나무좀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다. 선대의 저주를 딛고 생존한 할머니와 손녀는 그 일을 조용히 처리해나갈 뿐이다.
“어둠의 그림자들이 그를 삼키자 나는 문을 닫아버렸다.” (37쪽)
『나무좀』은 또한 남성 권력으로부터 발발되는 물질적·정신적 폭력의 기반인 ‘전쟁’을 폭로한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과거인 스페인 내전과 그에 따른 독재 정권의 잔재는 근현대의 스페인 문학을 포함해 다방면의 스페인 문화 예술을 마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전쟁과 독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겼지만, 여성들에게 특별히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집은 이 여성들의 상처 위에 세워졌다. 영원히 씻어낼 수 없는 절망과 파멸의 감각 속에 여성들은 생존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앗아 간 사람들의 입과 코를 회칠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악마의 등뼈』에는 시대와 스페인 내전이라는 역사의 굴곡에 스러져버린 사람들과 유령들이 나온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하지만 영원히 터지지는 않을 불발탄이 박혀있는 고아원의 한가운데를 불안이 줄곧 잠식한다. 전쟁이 가져다준 참혹함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대변하는 이미지의 향연 속에 가장 압권은 바로 이 대사다.
“유령이란 무엇인가? 영원히 저주받은 존재? 어쩌면 순간의 고통. 죽은 것도 산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감정은 금방 정지되어버린다. 빛바랜 사진, 호박 안의 벌레처럼 말이다. 유령, 그건 바로 나다.”
『나무좀』의 두 여성은 스스로가 유령이자 그림자이며 나무좀임을 자처한다. 자신들의 운명을 집어삼킨 이 집을 저주하면서도 집이 지시하는 복수를 일종의 ‘처단자’로서 감행하며, 선대의 비명과 회한을 내면 깊숙이 욱여넣는다. 그럼으로 인해 그들은 새로운 연대를 만든다. 그렇다. 이곳은 ‘귀신 들렸다’고 일컬어지는 여성들의 유토피아다.
*필자 | 강민영
글 쓰고 글 엮는 사람. 제3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영화 매거진 『cast』의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프리랜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출간작으로는 경장편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 에세이 『자전거를 타면 앞으로 간다』가 있으며, 리디북스의 ‘우주라이크소설’을 통해 중·단편소설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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