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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승 칼럼] 그것은 왜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김지승의 끔찍하게 예민한 질문들 7화 – 없지만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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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의 의미가 쓰기와 연결되자 은근히 무겁다. 모든 글은 “그것이 내게는 중요했다”라는 고백이 아닐 수 없으므로. 그렇다면 읽기는 당신에게 그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귀 기울이는 일. (2024.08.13)

투명한 몸이 흐른다. 그것이 내게는 중요하다. (손현선 작, <투명-몸> 부분)


예언의 조각들이 쪼개지고 쪼개져서 빛이 되었다고 믿는 한 여자가 곁에서 잠들었다. 잠든 얼굴이 그의 등을 닮았다. 무방비하게 단단하다. 이 세계에서 그 얼굴의 시간이 멈춘다. 저 세계에서 그의 시간은 나 없이 흐를 것이다. 멈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부재의 리듬을 익힌다. ‘너는 어디에 있나’라는 문장이 놓이는 자리와 ‘너는 어디에도 없다’가 놓일 자리 사이의 거리는 멀면 멀수록 좋겠지만 날카로운 예언의 조각들이 두 눈을 찌르기 전까지 누구도 그 거리를 짐작할 수 없다. 불면은 밤의 옥탑방에서 서성인다. 잠든 얼굴이 휴대폰에 옮겨준 동영상을 재생한다. 아직 끄지 마(아직 끄지 마) 1 음성은 반복해 울린다. 아직(아직)


“두 현실의 절반만을 겨우 느끼며 한 발은 여기, 한 발은 저기” 2


지난 3월 세상을 떠난 작가 민용순(Yong Soon Min)을 그가 남긴 짧은 문장과 함께 떠올린다. 나는 테레사 학경 차(Theresa Hak Kyung Cha)를 경유해 처음 그와 만났다. 두 작가 모두 자신의 몸을 각인과 종속, 탈주의 공간으로 인식했고 다양한 오브제와 언어를 정체성의 기표로 활용했다. 민용순의 회고에 따르면 둘의 첫 만남은 1975년 대학 미술관(현 버클리미술관 퍼시픽 필름아카이브)에서 마련한 시각예술 분야 시상식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민의 에칭 작품과 차의 비디오 작품인 <mouth to mouth>가 미술관에서 전시 중이었다. 민은 차의 작품에 즉각 매료된다. 한국인 이민자라는 즉각적인 유대감이 더해지며 민은 차를 ‘언니’로 인식했다고 기억한다. 고작 두 살 차이였지만 그럴 때 ‘언니’는 어떤 감정의 자리 같다. 찢어진 지도 조각을 품고 사는 종족들이 감정을 내어주는 자리. “기억이 전부” 라고 말할 수 있는 자리, 언니. 

낮에는 있음의 불안이 장악한다. 무언가 너무 많이 “있다.” 그래서 나는 없다. 있으려고 애를 쓰지만 없다. 계속 없음으로 돌아온다. 하루치 언어의 첫 숨이 들리기도 전에 마음이 조각조각 나버리기도 한다. 뉴스와 미필적 고의의 고의와 화살처럼 꽂히는 문장들과 비명… 그 사이사이 네 기분을 기필코 망치고 말겠다는 맹렬한 의도들에 마음이 고꾸라진다. 고맙습니다. 자신을 보호하고 싶을 때는 그렇게 말한다. 한때 이모라고 불렀던 사람에게 배운 것이다. 정작 그는 내가 보는 앞에서 그 말을 한 적이 없다. 이모는 이모가 아니었지만 이모로 불렸던, 엄마 곁의 많은 여자들 중 하나였다. 이모에게는 할 말이 너무 많았고, 옆에 있는 사람을 예외 없이 웃겼기 때문에 ‘고맙습니다’는 꺼내들 새가 없긴 했다. 어쩐지 의도적인 회피의 냄새가 나던 순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냥 그게 내게는 중요해. 아무 때나 고맙다고 하지 않는 것. 

그러면서 나한테는 왜 고맙다고 하래? 

너도 너한테 중요한 걸 직접 결정할 때가 오겠지. 그 전까지는 다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따르는 게 안전하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를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싫다 좋다 반응이 없었다. 그런 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이. 

민용순은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이모였다가 언니가 된 그도 같은 병명으로 마흔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 세계에서 그들의 시간은 멈춘 상태다. 나는 이 세계에 있다가 없다가 한다. “두 현실의 절반만을 겨우 느끼며 한 발은 여기, 한 발은 저기”에 있다.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을 살피기에는 조금 유리한 상태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의 의미가 쓰기와 연결되자 은근히 무겁다. 모든 글은 “그것이 내게는 중요했다”라는 고백이 아닐 수 없으므로. 그렇다면 읽기는 당신에게 그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귀 기울이는 일. 테레사 학경 차, 민용순, 이모였다 언니가 된 사람으로부터 전해지는 기울임. 그들이 없는 세상에서 일반의 중요함과 가치를 결정하는 이들보다 크게, 오래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들을 향해 울고 싶다. 당신에게 그것은 왜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우리에게 중정(中庭)을 선사하는 이 질문과 그 질문 밖으로 손잡고 나가기를 그만두지 않으려고. 

눈앞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 있음을 인지하는 건 생후 24개월이 지나면서다. 비가시적인 존재의 시간과 공간을 헤아리는 능력이 그즈음 생긴다는 의미다. 대단하지 않아? 나는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이의 멈춘 얼굴을 바라보며 묻는다. 고른 숨소리.


아직 끄지 마(아직 끄지 마) 

이제 꺼(이제 꺼)


대답 대신 테레사 학경 차의 음성이 시차를 두고 웅웅거린다. 당신은 없음으로 있다. 


1 테레사 학경 차의 비디오 아트 <Passages/Paysages, 통과/풍경(1978)>의 내레이션. 이하 이탤릭체는 출처 동일
2 Yong Soon Min, ‘The Weight of Memory’, The Yale Review, 2022.
3 
Theresa Hak Kyung Cha, 『DICTEE』, UNIV. Of California Press, 2001, pp.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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