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시 플레이리스트] 어쨌든 이 세상에서 고양이가 최고라고 느낄 때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털결은 부드럽고, 털이 날리고, 몸은 날렵하고,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뭐라도 아는 것처럼 키보드를 쳐대고,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고, 때로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서랍에 들어가 있고.



행간을 뛰어다닐게 소리도 없이

재채기를 유발하는 내 털끝의 벼랑으로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주소로 가서

유기한 꿈을 마음껏 파헤치며 쓸게 그러니까

자 이것을 소리 내어 읽어보렴


우는 것은 다 똑같은 얼굴인데

쉽게 웃어주지는 않아 공짜라도

제목은 맨 나중에 짓게 되겠지 처음으로 돌아가면서


우리가 마음껏 뒷모습을 꿈꿀 수 있을 때

서로 물든 만큼 흉터가 생기겠지만


내가 나오지 않는 서랍이 없을 거야

네가 읽은 갈피마다 모두 우리 이야기가 되고

시는 나를 간추릴 수 없으니

그러니까 나는 시를 닮지 않았지만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이었더라도 좋아

나는 조그마한 너는 자그마치

호주머니가 많은 이 시를 읽어보렴

영원히 찾지 못하는 숨바꼭질이겠지만

우리는 술래에 익숙하니까


나는 다시 행간을 뛰어넘어

네가 잠드는 동안 젤리로 꾹꾹 눌러쓴

이 편지를 두고 갈 거야

재채기 소리에도 놀라지 않을게

네가 뒤로 숨긴 공을 모르는 척해볼게

귀찮은 건 좀처럼 참을 수 없더라도


화면엔 집사가 쓰다만 시가 켜져 있구나

소리도 없이 실컷 울다가 잠든 네 깜빡임이

나의 긴 낮잠을 배웅하기도 했으니까

이것 보렴,

키보드 위에 웅크리고 앉아 쓴 나의 시를


우리가 헤매고 있는

꿈의 주소록을

 

-  「집사야, 내가 쓴 시를 읽어보렴」 (『고양이와 시』, 서윤후 )



고양이의 매력에 혹한 사람들을 알고 있어요. 사실 아주 많이요. 고양이 이야기가 나오면 헐레벌떡 달려와 고양이 예찬을 하는 사람들이죠. 저도 고양이를 싫어하지 않아요. 털결은 부드럽고, 털이 날리고, 몸은 날렵하고,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뭐라도 아는 것처럼 키보드를 쳐대고,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고, 때로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서랍에 들어가 있고, 서랍에서 튀어나오고, ‘귀찮은 건 좀처럼 참’지 않고, 귀찮아도 필요해 보이면 옆에 있어 주고, 피가 날 만큼 세게 할퀴기도 하고, 부드러운 발바닥으로 제 피부를 누르기도 하죠. 아, 나 고양이 좋아하나?




추천 기사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채널예스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책, 영화, 공연, 음악, 미술, 대중문화, 여행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고양이와 시

<서윤후> 저12,600원(10% + 5%)

옆이 아닌 곁을 나누며 서로의 풍경으로 익어가는 고양이와 시 생활 속에서 탐구하는 테마와 시를 나란히 두고, 시와 생활이 서로를 건너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침달의 새로운 에세이 시리즈 「일상시화」. 첫 번째 순서로 서윤후 시인의 『고양이와 시』가 출간되었다. 여러 시집과 산문집을 펴내며 활발히 활동..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