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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승 칼럼] 그로부터 얼마나 멀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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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과의 관계에서 자기 연민에 안온하게 빠지지도 못하고, 이성과 논리로 임시적인 보호를 시도하지도 못하는 여자를 여럿 알고 있다. 그들은 어딘가 늘 아프다.

다시 진행되는 세계 (이미지: Hideki Kimura)

“밤이 되고 나는 공포에 질려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어디에 있든 들킬 것이다. 결국 들키고 말 거라는 것. 그게 내 두려움의 시작이다.” 1

그런 영화를 봤다. 현재의 경험을 과거의 불안정한 토대 위에 애써 조립해 세우려는 한 여자가 등장한다. 웅크린 채 죽어가는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서서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 존재처럼 모든 것을 응시한다. 시선이 바느질이 되는 응시. 그렇게 꿈과 현실을 잇고, 언어와 소리를 꿰맨다. 제일 무서운 것. 내레이션이 흐른다. 들키는 것. 무엇에게? 기억. 기억에게.

어떤 날은 과거가 없는 것처럼 산다. 과거가 없으면 자기연민도 없다. 오늘의 일은 오늘이 원인이 될 뿐, 거미줄이 차갑게 이마에 부딪히는 지하실을 방문할 이유는 없다. 이제야 어른이 된 것도 같고, 앞으로 2, 3일 정도는 안심해도 좋을 짧은 미래를 보장받은 듯도 하다. 그러나 침범은 어찌할 새도 없이 이루어진다. 선글라스 안에서 아주 잠깐 잊을 수 있을 뿐인 빛의 존재처럼 때로는 짧은 문자 하나로, 가끔은 머리카락이 찰랑일 정도의 가벼운 충돌만으로 기억은 진동한다. 부동하는 몸에 유리조각처럼 틈입해 들어오는 기억이 있는가 하면, 연결된 줄을 거침없이 당겨 우리를 정확히 그 시공간으로 이동시키는 기억도 있다. 전자는 만성기억으로 긴 이야기가 되기 힘든 반면, 후자는 이동 때마다 다시 쓰이며 세계를 여러 번 진행시키는 이야기가 된다. 


“너는 좀 다를 줄 알았어.” 


내 혀로 내 얼굴을 핥고 싶어지는 말이 새벽 1시 반에 도착한다. 문자메시지를 또박또박 읽어본다. 너는. 좀. 다를. 줄. 알. 았. 어. 뭐가? 혹은 왜? 물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문자가 담긴 화면이 어떤 기억을 여는 게이트가 되면서 그럴 기회를 놓쳤다. 고작 한 문장이 나를 특정 시점으로 즉각 옮겨 놓는다. 누구든 내게 와서 소리를 지를 수 있던 그때. 오늘의 친구는 다음 날 아침 어제의 기억을 집어삼킨 말간 얼굴로 나를 모른 척 지나가곤 했다. 나는 뒤에서 수군거리는 얼굴들 하나하나에게 독풀의 이름을 붙였다. 투구꽃, 흰뱀풀, 나팔수선화, 인형의 눈… 10년 후쯤 도시의 대형 교회 앞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독풀들과 마주쳤다. 우리가 오해했어. 가슴에 성경을 끌어안고 그들은 또 말갛게 말했다. 

오해는 선택하는 것이다. 그 시간이 말하길, 그렇다. 그럴 수 있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관계의 형성과 유지는 서로의 선해善解에 기대어 이루어진다. 선해의 의지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불안할 게 없다. 그는 그로 충분하다. 판단이나 평가되지 않는다. 그래야 한다. 인간은 복잡한 매체이고, 욕망이나 감정은 불안정하므로 와해의 가능성을 잠시 잊고 연결될 수 있는 관계의 환상은 필수다. 욕망이 충돌하고 감각이 굴절되고 자기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오해를 선택하는 파국이 남기는 건 그동안의 안정과 안전을 무수한 선해에 의지해왔다는 사실이다. 얼마든지 오해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러지 않았던 사람이 어떤 시점에서 그것을 선택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이후 내 향방에 대한 결정만이 남는다. 나도 오해를 선택할 것인지, 그렇더라도 계속 선해할 것인지. 너는 좀 다를 줄 알았어. 선해하려다가 너무 멀리 다녀왔다. 과거가 없는 하루일 수 있었는데. 

어떤 기억과의 관계에서 자기 연민에 안온하게 빠지지도 못하고, 이성과 논리로 임시적인 보호를 시도하지도 못하는 여자를 여럿 알고 있다. 그들은 어딘가 늘 아프다. 아프다는 말은 잘 하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 나를 끼워 넣는다. 우리는 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의 반대가 되고 싶다. 우리가 그렇듯 기억 역시 가장 잘 살아 있을 수 있는 방식으로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난폭하고 우발적인 기억의 초대는 이야기와 내재적 세계를 형성하는 시학을 남긴다. 비인칭 화자로서 기억이 수행하는 지속적인 역할이다. 기억이 장르라면(아마도 고딕이겠지) 우리는 이 세상에 슬픔을 승계하는 이들이 있다는 오래된 표식으로 쓰일 것이다. 침식된 묘지의 비문과 2024년 일기의 문장이 중첩되어 지나간다. 


다시 밤이고 두렵다. 기억에게 들키는 일. 그로부터 이만큼 멀어졌어도.


1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1962년, 1974년, 1976년 세 차례에 걸쳐 브라질리아를 방문한다. ‘내부자였던 외부인’의 눈으로 도시의 인상을 날카롭게 남긴 그의 글은 당시 브라질리아를 묘사한 최고의 에세이로 꼽힌다. 그의 글은 영화 <Brasiliários>(1986)에 영감을 주었고, 이 영화는 다시 아나 바스(Ana Vaz)의 첫 작품 <Sacris Pulso>(2007)에서 전치, 재생된다. 인용문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Clarice Lispector, 『De corpo inteiro』, Editora Siciliano; 2a ed edition,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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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승

읽고 쓰고 연결한다. 『100세 수업』, 『아무튼, 연필』, 『짐승일기』, 『술래 바꾸기』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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