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플레이리스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임지은 「눕기의 왕」 X 9와 숫자들 ‘평정심’
다 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잠시 멈출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 시간입니다. (2024.07.16)
9와 숫자들 - 평정심
뒤통수가 사라진다 누워 있었기 때문에
떠다니는 하품을 주워 먹는다 누워 있었기 때문에
아침이 돼서야 이를 닦는다
누워 있었기 때문에......
먹지 않고 걷지 않는다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늦겨울 봄볕처럼
아주 잠시 생겼다 사라진다
뭐든 중간이라도 가려면 가만히 있어야 하고
가만히 있기엔 누워 있는 것이 제격이니까
다른 걸 하려면 할 수도 있는데
안 하는 거다
왜? 누워 있으려고
그리하여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어디든
누워 있을 수 있게 된다
밥상, 난간, 카드뿐인 지갑
젖은 하늘이 마르고 있는 빨랫줄
지금 어디야? 같은
질문과 포개진 사람의 그림자까지
졸음을 데리고 와 같이 눕는다
졸음은 죽음이 아닌데 코가 비슷하고
같은 베개를 나눠 쓰고
음음...... 허밍을 하고
이 방은 혼자 눕기엔 넓으니까
너무 건조해서 침묵이 흐르니까
누구도 마침표를 찍으려고 하지 않으니까
이 시는 지금 누워 있고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 임지은 「눕기의 왕」 (『이 시는 누워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민음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 다 같이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 저기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분, 잠시만 멈춰주세요. 생각만으로도 벌써 죄책감이 차오르는 분도 참아주세요. 다 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잠시 멈출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 시간입니다. 우리 딱 지금부터 삼십 분만, 아니 한 시간만, 하루만, 열흘만…여기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말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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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한 표정으로 태연하지 않은 세계를 말하는 담대한 시인 누워 있는 시가 일으키는 당연한 것들의 특별한 힘 시인 임지은의 세 번째 시집 『이 시는 누워 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가 민음의 시 322번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서 세계를 받아들이는 임지은의 방식은 그의 자서에서부터 드러난다. 그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