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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승 칼럼] 살아왔으니 살아갈 수 있을까?

김지승의 끔찍하게 예민한 질문들 6화 – 살기와 쓰기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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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면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살아가는 자신과 쓰는 자신의 간극을 둘은 꽤 다른 방식으로 감수한다. (2024.07.16)

김지승 작가가 읽고 쓰기 위한 여성의 질문들을 던집니다.
격주 화요일 연재.

살기와 쓰기의 간극 때문에 겪는 이별이 있다. ⓒUgo Rondinone


재현된 욕망의 형태가 무의미한 관계가 있다. 그 강렬한 무의미함으로 두 사람의 이름이 서로를 끝없이 연소시키는 것처럼 느껴지는 관계.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 색빌-웨스트도 그랬다. 둘은 관습적 사랑이 가장 선한 형태로는 자기희생을, 가장 억압적인 형태로는 자기 망각을 요구하는 것임을 알았던 것 같다. 둘 다 그 방향으로는 소질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하루는 당신이 무섭다고 쓰고, 다른 날은 너의 모든 것이고 싶다고 쓰면서 그들은 익숙한 사랑의 장면을 바꾼다. 각본은 다시 쓰인다. 클리셰는 짓궂은 놀이다. 편지의 첫 줄마다 힘주어 쓴 “내 사랑!(my love!)”은 열정적인 유혹과 실망, 또 다른 욕망을 지나 오래 서로의 이름 대신 남는다. 

감정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시도만큼이나 친밀한 사이의 차이를 애써 외면하려는 의도 역시 부질없기 쉽다. 관계를 묶는 자의적인 연결고리가 그만큼 위태롭다고 해야 할까. 비타는 글보다 시싱허스트를 재건하고 정원을 조성한 가드닝 전문가로 더 자주 회자된다. 버지니아 울프가 비타를 처음 만난 1922년에도 그리고 지금도 현대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꼽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비타에게도 버지니아는 그 시대 최고의 작가였다. 비타가 1926년 『대지』라는 시집으로, 1933년 『시 모음집』으로 호손든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다작 작가였다는 사실은 잘 기억되지 않는다. 그가 경도된 목소리로 “버지니아, 당신의 글 때문에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더 자주 공유된다. 

그렇다면 버지니아는? 비타 소설에 관해 그가 남긴 짧은 표현에 정작 당황한 건 나다. “졸음에 겨운 하녀들이 등장하는 소설류”라니. 그리고 그는 아예 침묵하거나 관련해 말을 아꼈다고 전해진다. 침묵이 갖는 악의와 잔인함, 수동공격성 등을 우리는 그저 침묵의 가능성 정도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지킨다. 비타도 그랬을지 모른다. 침묵에서 감지되는 그 무엇을 기어코 상처로 마주하게 되던 순간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데 결정타가 날아온다. “비타가 왜 글을 쓰는지 내게는 참 수수께끼다. 내가 그녀라면 열한 마리쯤 되는 사슴사냥개를 데리고 조상들이 물려준 숲이나 둘러보고 다닐 텐데.”1 (잘 헤어졌어요, 비타!)

여성 작가에게는 특히 살기와 쓰기의 자리가 가깝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을 두 여자의 이야기는 나를 여지없이 관계 안에 도사리고 있는 신랄한 간극 앞으로 떠민다. 버지니아와는 태생과 계층이 달랐던 비타. 버지니아의 뭉크스 하우스를 방문할 때마다 그곳을 헛간처럼 느끼게 했던 비타. 특유의 귀족적 면모로 버지니아의 결핍과 욕망을 일깨웠던 비타. 그래도, 어쩌면 그래서 사랑했을 비타. 1920년대 동성 연인이자 작가였던 두 사람이 각자 다른 생의 조건에서 역설적으로 형성한 애착의 간극은 둘의 일기와 편지 곳곳에 남아 우리를 종종 외풍 심한 창가에 세운다. 작가라면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살아가는 자신과 쓰는 자신의 간극을 둘은 꽤 다른 방식으로 감수한다. 유일한 존재와도 나눌 수 없는 간극이 생기면 곧 그와의 관계는 침묵의 형식으로 처분된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쓰지 못하는 나라도 사랑해줄래? 묻지 않고 싸우지 않고 굳이 기다리지도 않고 조심조심 헤어진다. 

가장 최근에 헤어진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떠올린다.

“20대에 우리는 모두 가난했고 그게 이상하지 않았어. 30대에도 구조적 문제 운운하며 가난을 말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 그런데 40대 이후는? 가난은 한 개인의 무능의 결과가 되는 거야. 내가 잘못 살았다고 말할 권리를 모두가 나눠가진 것처럼 굴어.”  

그는 앞으로 점점 두꺼워질 가난을 뚫고 글을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참아온 화를 터트리듯 말했다. 나는 강하고 오래 지속될 응원의 말을 고르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사이 그가 내 침묵에 계속 마음을 베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와 그런 생각이 든다. 그가 남긴 질문 때문이다.

“한때 가난했던 사람과 지금도 가난한 사람 중 누가 가난의 언어를 더 수월하게 갖게 되는지 알아?”

1931년, 버지니아가 강으로 걸어 들어가기까지 10년의 시간이 남아 있던 그 해에 비타는 ‘시싱허스트 Sissinghurst’라는 시를 버지니아 울프에게 바친다. 시에서 비타는 침묵하기 위해 스스로 해자로 걸어 들어가 익사하는 자신을 그린다. 시를 읽고 남겼을지 모를 버지니아의 반응이 궁금하면서도 선뜻 찾아볼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사랑해도 신랄해지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안다. 사는 일과 쓰는 일의 간극이 잔인해졌다가 안심하기를 반복한다. 10년 후 버지니아 울프의 간극은 우리에게 물결을 닮은 질문을 남겼다. 살아왔으니 살아갈 수 있을까? 써왔다고 계속 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무수한 절단면과 하이픈과 절벽 같은 각도로 살기 아니, 쓰기를 지속할 수 있을까? 

최근 헤어진 사람이 남긴 질문의 답은 한때 가난했던 사람이다. 지금 가난한 사람의 언어는 대개 침묵당한다.  


1 Virginia Woolf, 『The Diary of Virginia Woolf, Vol. 3: 1925-30』, Harvest book,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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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승

읽고 쓰고 연결한다. 『100세 수업』, 『아무튼, 연필』, 『짐승일기』, 『술래 바꾸기』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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