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은 “현실에 환상이라는 조미료를 뿌리기”
『입속 지느러미』
소설 안에서는 어쩌면 비현실적일 수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서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장면을 정성 들여 만들어내고 싶어요. (2024.06.28)
‘선형’은 어느 해 여름, 세 이름을 떠나 보낸다. 외삼촌 ‘강민영’, 친구이자 동업자였고 연인이자 꿈이었던 ‘이경주’, 그리고 ‘피니’.
선형은 대학 시절 내내 작곡 동아리에서 만난 경주의 목소리로 자신이 만든 노래를 세상에 들려주고 싶다는 신념과 꿈에 사로잡혔다. 경주와 함께 밴드를 하고, 대대로 내려온 집요함으로 곡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선형의 꿈을 처참히 짓밟았다. 결국 선형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삼촌 민영이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민영이 선형 앞으로 청계천 근처의 작은 상가 건물을 남겼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혀가 잘린 인어 피니를 만난다.
조예은 작가의 장편소설 『입속 지느러미』는 치명적인 목소리의 인어를 사랑하게 된 인물의 이야기다. 그 사랑은 오래된 건물의 지하, 퀴퀴하고 축축한 그곳에 있는 인어가 어떻게든 노래하도록 만들고 싶은 집요한 사랑이다. 자신을 망각할 만큼 압도적인 사랑이다. 한때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까지 쉬이 놓아버리게 만드는 사랑이다. 이번 작품을 쓰면서 “사랑이 가능하게 하는 것”을 계속 생각했다는 조예은 작가는 “의미가 없는데도, 해답을 찾을 수 없음에도 계속 생각하게 되는 그 마음”이 사람을 어디까지 끌고 가는지 상상했다. 그리고 선형은, 독자의 상상보다 더 멀리까지 나아간다.
‘작가의 말’을 보니 이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하신 건 꽤 예전 이야기더라고요.
『입속 지느러미』와는 좀 다르긴 했어요. 처음에 썼던 건 도시와 청년, 그리고 호러 콘셉트의 앤솔러지를 제안 받았을 때 생각난 이야기였어요. 도시가 청년들이 모이는 곳이자 청년들의 무수한 꿈이 사그라드는 공간으로 느껴졌거든요. 또 어떻게 보면 엄청나게 많은 꿈이 모여드는데 그 중 극소수만이 살아남고, 다 없어지는 건데요. 그것이 잔인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호러로 풀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그때는 서해안 바다 컨셉은 없었고요. 청계천 골목을 배경으로, 지하실에 있는 작은 가게가 나오는 이야기를 상상했었어요. 아무래도 호러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였고요. 무섭게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분량 역시 단편은 좀 애매할 것 같고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했던 거예요. 그렇게 묵혀 두었던 시놉시스를 여기에 쓰면 딱 알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쓰게 됐어요.
판타지에 가까웠던 이야기가 지금과 같이 무시무시한 이야기로 나아갔던 이유도 있었을 것 같아요.
엄청나게 많은 도시 괴담이 있잖아요. 입소문으로만 들리지만 누구도 실제로 마주한 적은 없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요. 저는 ‘이루어진 꿈’이 꼭 도시 괴담 속의 기괴한 괴물 같은 존재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누구는 성공했대, 엄청 대박이 났대, 하는 얘기들이 무수하게 들리잖아요. 그렇지만 막상 나는 아니고, 몇 다리를 건너면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보지는 못하는 거예요. 결국 이루어진 꿈이야말로 괴담 같은 이야기구나,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기존에 더 추상적이고 판타지 강한 시놉시스에 호러 분위기를 더 살리기로 했죠. 구체적으로는 인어의 속성과 서해안 배경을 더 끌어오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호러 쪽으로 정리가 되었어요.
이 작품을 두고 “취향이 한껏 들어간 소설”이라고 하셨잖아요. 작가님을 따라왔던 독자라면 눈치 채기도 했겠지만요. 구체적으로 어떤 취향들을 마음껏 담은 건지 궁금해요.
우선 장면 묘사가 그래요. 『입속 지느러미』에는 지금까지 제가 썼던 것보다 더 끔찍한, 고어적인 묘사가 많이 들어갔어요. 제가 실제로는 잔인한 걸 진짜 못 봐요. 영상은 정말 못 보는데요. 텍스트는 별로 타격이 없어요. 텍스트는 상상을 거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막상 그런 걸 못 보면서 글로 다른 분들에게 잔인한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게 저의 소소한 악취미예요.(웃음) 그래서 끔찍한 장면이나 우중충하고 퀴퀴하고 축축한 분위기 묘사를 즐겁게 할 수 있었죠.
캐릭터와 내용에 관해서도 그런데요. 저는 해피엔딩을 좋아하거든요. 어떻게든 희망을 한 숟가락 남겨 놓고자 하는 편인데요. 이번 작품에서는 물론 아주 조금 희망을 남겨놓긴 했지만, 마냥 희망적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도시라는 곳이 희망과 꿈이 물거품이 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 데서 오는 비정함을 살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주인공이 끝내 자신의 꿈을 내려놓고, 자신의 꿈을 대신 이입한 존재를 떠나 보내면서 이야기를 끝내게 됐죠.
“그거 알아?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계속 계속 생각하다 보면 이해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다 상관없어져. 이해하려는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지지. 어차피 끝내 알 수 없을 테니까.”(143쪽)라는 문장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계속 생각이 났어요. 무엇보다 사랑의 기이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그 문장에 제가 생각하는 사랑의 가장 단순한 정의를 다 표현한 것 같아요. 끝에 도달할 수는 없어도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 같은데요. 어떤 대상을 너무 사랑해서 이해하려 해도, 설령 이해를 했다 생각하더라도 사실 그건 이해가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끝내 평행선을 달리듯 하는, 그렇지만 계속 바라보게만 되는, 그런 감정의 상태 자체가 사랑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렇게 적은 문장이었어요.
사실 소설을 쓰면서 했던 생각은 사랑의 속성 자체보다는 사랑이 가능하게 하는 것을 더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의미가 없는데도, 해답을 찾을 수 없음에도 계속 생각하게 되는 그 마음을 말이에요. 그게 엄청 대단한 것 같거든요. 당장의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마음이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요. 좋은 쪽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하거나 상황을 바꿀 수 있다면 정말 아름답겠지만 항상 그렇게 작용하는 것 같진 않아요. 이 마음은 그냥 상황을 꺾어버리거나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일종의 게임 아이템 같고요. 그 속성을 가지고, 소설에서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 쪽을 선택해서 그려봤어요.
예전 <채널예스> 인터뷰에서도 “사랑을 하는 주체들이 일반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기괴할수록 그 감정은 더 빛을 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잖아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많이 생각하시는 편이세요? 이것을 자꾸 탐구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요?
아무래도 소설을 쓸 때는 사건도 사건지만, 그 사건에 따라 변화하는 인물의 속마음을 그리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그렇게 몰입해서 이야기를 쓰다 보면 상황만으로는 납득 불가한 것이 납득 가는 지점들이 발생하는데, 저는 그것이 좋거든요. 뿌듯하기도 하고요. 현실에도 엄청 다양한 종류의 사랑이 있잖아요. 그런데 사랑하면 흔히 연인 사이의 로맨스를 떠올리죠. 저는 거기에 상대를 향한 감정도 있지만 정상성에 대한 욕망이 최소 절반 이상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현실에서의 사랑은 사회 구조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마냥 편안히 볼 수가 없는 지점이 있고요. 그래서 소설에서는 그 정상성에 대한 욕망 부분을 미뤄놓고, 그 감정 자체를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좀 비틀린 인물들을 등장시켜서 감정의 꿈틀거림 자체를 그렸던 거예요. 그것이 저한테는 의미가 있고 재미있는 것 같아요.
부록으로 함께 나온 <터닝북>에서 환상 서사를 애용하는 이유에 대해 “겁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신 것도 재미있었어요. 읽는 사람들이 소설에서 도피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마음이었는데요.
소설을 포함한 여러 콘텐츠를 보다가 우연히 좋은 이야기를 만나면 그것들이 제게는 진짜 현실의 연료 같은 게 돼요. 신기하죠. 그 세상은 작가들이 만들어낸 가짜 세상이고, 가짜 캐릭터인데 어떻게 그들의 삶과 이야기가 실제 현실에서 나한테 힘을 줄 수 있는지 말이에요. 제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즐기다 보니까 저 역시 제가 쓰는 이야기들이 읽는 분들의 현실에서 물리적인 동력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사실 대부분의 현실은 피로하죠. 저한테 현실은 소설보다 훨씬 삭막하고 비정한 세상이거든요. 소설에서는 굴러 떨어진 사람이 극적으로 일어서서 발돋움하는 게 당연히 가능하잖아요. 작가가 그런 모습을 그리고자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데요. 현실에서는, 물론 기적처럼 그런 사례들이 있겠지만, 자주 가능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제 소설 안에서는 어쩌면 비현실적일 수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서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장면을 정성 들여 만들어내고 싶은 거예요. 그런 장면들을 통해서 사람들한테 착각을 심어주는 거잖아요. 이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이에요. 소설은 작가가 만들어낸 평형 세계이고, 이 세상 안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가능했다는 착각을 심어주는 일이 것 같거든요. 제가 겁이 많은 성격이기도 해서요. 도피처럼 제 소설 안에서 환상적인 요소를 자주 사용하는 것 같아요.
소설에 환상적인 요소를 넣었을 때, 그것이 쓰고자 하는 이야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신 건 언제예요?
저의 순전한 취향이 제일 컸던 것 같은데요. 이 취향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냥 만들어져 있던 것이어서 첫 순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다만 맨 처음 읽은 한국 문학은 기억하고 있어요. 중학생 때쯤 구병모 작가님의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었어요. 그게 처음 읽은 한국 소설이었고요. 현실에 환상적인 요소가 아주 조금 들어간, 하지만 마냥 해맑지 않은 이야기잖아요. 저의 취향에 딱 맞았던 것 같아요.
게다가 괴물 이야기도 좋아하신다고요.
네.(웃음) 『입속 지느러미』에서 민영 삼촌이 이집트에서 일을 했었고, 주인공이 어렸을 때는 삼촌과 괴물이 나오는 B급 영화를 봤다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제가 실제로 그랬어요. 물론 저희 외삼촌은 해고를 당하지 않았고, 계속 회사에 다녔지만요. 명절에나 가끔 한국에 오시면 저랑 잘 놀아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삼촌을 좋아했는데요. 삼촌은 늘 <아나콘다>나 <피라냐> 같은 괴수 영화를 봤어요. 영화가 잔인하니까 엄마는 못 보게 했는데 그러면 꼭 더 보고 싶어지잖아요.(웃음) 그래서 삼촌 옆에 어떻게든 붙어서 <에일리언>이나 <미믹> 같은 영화를 함께 봤던 기억이 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선형의 서사 중 작가님의 실제 경험에서 나온 게 있군요?
캐릭터를 만들 때, 그 캐릭터의 성격과 속성을 잡는 것과는 별개로 어린 시절의 장면이나 필요한 사건 같은 것을 얘기할 때는 제가 겪은 일에서 가져와 쓰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면 선형과 민영의 집요함은 어때요? 작가님과 닮은 편인가요? 이들의 집요한 성격 자체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동력이기도 하고요. 여러모로 소설 안에서 다양하게 잘 쓰이는데요. 이것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건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했거든요.
선형의 성격과 제 성격은 너무 달라요. 제가 생각하는 저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면 지구력이 약한 거거든요.(웃음) 선형은 그런 저의 대척점에 있는 성격이라고 생각하면서 썼어요.
저한테는 없지만 선형의 핏줄에 내려오는 집요함이라는 것 자체를 처음 떠올린 계기는 있었는데요. 저희 이모랑 이모부 얘기예요. 어머니에 따르면, 이모부의 아버지인가 하는 분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장구 치는 분이셨대요. 근데 이모의 딸, 저한테는 사촌 언니가 음대를 갔거든요. 게다가 이모랑 이모부가 퇴직 후에 취미 활동을 하시는데 둘 다 음악을 하세요. 한 분은 가곡을 부르고, 한 분은 아코디언을 연주하시는데요.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잘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최근에는 사촌 언니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데요. 초등학생인데 피아노를 배운 한 달 밖에 안 됐음에도 엄청 잘 친다는 거예요. 저는 이런 이야기가 너무 신기했어요. 그래서 생각하다가 직접적인 능력이나 기술 대신 집요함이라는 속성 자체를 넣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던 거예요.
이번 작품을 쓰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무엇이었어요?
쓸 때는 늘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제일 크게 하고요. 이번에는 끔찍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가장 바라는 두 가지였어요. 그리고 단어를 꼽자면, 제일 많이 생각했던 것이 ‘꿈’이었는데요. 선형이가 소리와 음악에 엄청 집착하잖아요. 선형을 쓰면서 예술을 쫓는 이 마음은 무엇인지 계속 생각했거든요. 제가 만든 캐릭터지만 제가 그렇게 집요한 성격이 아니다 보니까 도대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그토록 쫓는 마음은 무엇인지를 많이 생각했어요.
사실 현실에서도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데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최대한 이해해 보려는, 탐구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쓰기 힘들었던 장면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선형이 작곡가의 유혹적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잖아요. 그런 장면을 볼 때 그것이 어떤 마음인지, 저 역시도 오래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딱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사실 선형이라는 캐릭터를 처음 잡을 때부터 그랬는데요. 왜 그렇게까지 예술에 집착하는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요.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요. 극단까지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균형을 찾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맞아요, 제가 항상 현실적인 것과 원하는 것의 균형을 생각하고 그것에 엄청 연연하는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선형 같은 캐릭터를 더 그려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역시 <터닝북>에서 “사방에 피가 튀고 세상에 종말이 다가온 비극적인 상황이라도 일말의 귀여움이 남은 작품에 심장이 뛴다”고 하셨어요. 이때의 귀여움은 어떤 것인가요?
일단 귀여움이 빛나려면 상황이 끔찍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데요.(웃음) 상대적인 거잖아요. 온갖 귀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세상에서 하나의 귀여운 무언가는 그냥 당연한 것에 지나지 않겠지만 척박한 환경에 홀로 남아 있는 귀여움은 다르겠죠. 그때의 귀여움으로 누군가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수도 있고요. 이 귀여움이 유지되는 환경에서는 귀여움이 어떤 종류의 힘을 가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덧붙여서 늘 심장이 뛰는 이야기는 귀여움과 이어지는 건데요. 저는 뭐라도 계속 하는 마음이 나오는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가망이 없음에도 그냥 계속 하는 것 말이에요. 그건 귀여움이 세상을 구원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그 자리에 귀엽게 있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과 비슷한 거예요.
지난 6월 17일에 세븐틴의 정한과 원우가 발표한 싱글 1집 <디스 맨(THIS MAN)>의 스토리텔링 작업을 하셨잖아요. 새로운 작업에 거부감이 별로 없는 편이세요?
사실 작년까지는 새로운 작업을 거의 안 했어요. 소설가에게 들어오는 새로운 작업이라는 게 시나리오 작업 같은 거거든요. 근데 시나리오 작업은 기간이 엄청 길잖아요. 그것이 저한테는 기약 없는 작업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성격이 급한 편이라 그런 것 같아요.(웃음) 소설은 작업을 끝내면 곧 책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소설 작업만 집중했는데요. 이번에 한 앨범 작업은 그렇게 긴 기다림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되게 빨랐어요. 그래서 부담 없이 해보겠다고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소설가라서 행복할 때가 언제인지 궁금해요.
무엇보다 제가 쓰고 싶은 장면과 이야기를 펼쳐놓을 수 있을 때가 좋아요. 어떨 때는 종이 안에서 정말 신이 된 것 같을 때가 있거든요. 내가 이 캐릭터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고 별 이상한 세계를 만들 수도 있잖아요. 쓰는 순간에는 너무 힘들지만 그럴 때 소설 안에서는 정말 뭐든지 할 수 있구나, 싶어서 행복해져요. 또 소설로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가 벼락처럼 다가왔을 때 행복하고요.
작가님의 이야기에는 환상성과 동시에 지금, 여기와 닿아 있는 ‘현실성’이라는 중요한 축이 자리하고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궁금해졌어요. 지금, 작가님이 갖고 있는 가장 큰 화두는 무엇인가요?
맞아요, 환상을 좋아하면서도 완전 판타지 소설은 쓰지 못하는 게, 모든 세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직조해야 되는 것이 저에게는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일단 저는 현실을 기반으로 거기에 환상이라는 조미료를 뿌리는 걸 즐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현실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챙기려고 하죠.
현실에 무수히 많은 심란한 일들이 쏟아져 나오는데요. 지금의 가장 큰 화두라고 한다면 전쟁이에요.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잖아요. 처음에는 요즘 세상에 전쟁이 일어나는 게 말이 되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진짜 전쟁이 벌어지니까 타격이 있더라고요. 제 일상은 너무 평범한데 지구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너무 기이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나와 똑같은 사람들의 일상이 전쟁으로 급변했다는 게 너무 이상하고 무섭게 느껴져서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작년부터 읽게 되는 책들이 전쟁에 대한 책들이고요. 최근에도 영화 <존 오브 더 인터레스트>를 보면서 전쟁이 벌어지는 지금의 상황과 그런 사회 안에서의 인간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작가님의 관심이 어떤 방식으로든 작품에 담기기도 하겠죠.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작년부터 『사랑할 때와 죽을 때』와 『숨그네』 같은 전쟁에 관련된 고전 소설을 쭉 읽었거든요. 그밖에 영화나 다큐멘터리도 찾아보고요. 전쟁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있었던 납득되지 않는 끔찍한 학살에 관련된 일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찾아보고 있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그게 가능했지? 약간 왜 저렇게까지 됐지? 생각하는 거죠. 아까 말씀드린 사랑처럼 납득되지 않기 때문에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언젠가 꼭 써보고 싶은 이야기는 뭔가요?
추상적인데요. 모래 시계가 뒤집히는 것처럼 모든 게 뒤집어지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요. 세상이라고 믿었던 게 세상이 아니었고, 선한 캐릭터가 악해지고 악한 캐릭터가 선해지는, 어쩌면 죽음과 삶까지 뒤집을 수 있는 이야기 말이에요. 그렇게 모래 시계가 뒤집히듯이 모든 게 반전되는 이야기를 크게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죽기 전에는 쓸 수 있을까요?(웃음) 약간 상상만 하고 있어요.
*조예은 제2회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에서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로 우수상을, 제4회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서 《시프트》로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칵테일, 러브, 좀비》 《트로피컬 나이트》, 장편소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스노볼 드라이브》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연작소설 《꿰맨 눈의 마을》 등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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