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작고 귀여운 책을 향한 세상의 잔혹한 박해가 없기를
『귀여운 것들』 기에천 작가 서면 인터뷰
어른이 되면서 그 무고한 인형의 마음이 불쑥불쑥 생각나는 거 있죠. 아니, 언제는 내가 없으면 안 된다면서 갑자기 나를 버려? 이거 인형 입장에서는 정말 어이가 없고 상처인 거잖아요. 그래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024.06.19)
여기, 매력이 터지는 작가 한 명이 있다. 2023 네오픽션상을 받으며 불쑥 등장한, 묘하게 신경 쓰이는 이상한 인형들을 잔뜩 끌어안고 나타난, 그 이름도 독특한 ‘기에천’이다. 무려 첫 소설에 강지영 소설가는 “우화와 괴담을 한 접시에 플레이팅한 어른을 위한 야식”이라고 극찬했고, 김희선 소설가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 속을 거니는 듯한 환상적인 느낌”을 받았다며 박수를 보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치덕치덕 묻은 그녀의 첫 책 『귀여운 것들』과 어쩌자고 소설보다 더 귀여운 작가 기에천을 정식으로 소개한다. 모르면 손해인 이 둘을 놓치고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데뷔작 『귀여운 것들』 출간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제가 살면서 출간 소감을 말하는 날이 오다니 감개무량합니다. 일단 서점에 제 책이 존재하는 게 정말 신기해요.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이제 첫 발을 뗀 것뿐이지만 기쁘고 행복합니다.
사실 엄청나게 짜릿하고 즐거웠던 순간은 따로 있었어요. 바로 네오픽션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입니다. 그동안 글을 쓰면서 정말 많은 공모전에 도전했는데, 시간이 흐르며 인내심만 늘어가더라고요. 기대하지 않아야 나중에 상처를 덜 받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네오픽션상을 타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그간 참아온 마음이 다 터져 나오듯 오열했어요. 엉엉 울면서 여기저기 전화해 기쁜 소식을 알렸죠. 이성이 제 자리를 찾은 건, 제 가족과 지인들 모두의 업무를 완벽하게 방해하고 난 후였답니다.
기회가 생긴 김에 제 소개를 제대로 해봐도 될까요? 저는 기에천이고요, 장편소설 『귀여운 것들』로 2023 네오픽션상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2024년 6월에 첫 책이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인 작가이고요. 대단하지요? 겸손해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독특한 소설이에요. 귀여운데 잔혹하고, 환상적인데도 되게 현실 같은. 어떻게 구상하신 건가요?
저는 공포를 사랑해요. 그런데 말입니다, 겁이 정말 많아요. 공포 영화를 보러 신나게 영화관에 가서 상영 내내 눈 가리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그래서 처키가 유행했을 때, 저희 집에 있는 인형이 너무 무섭게 느껴지더라고요. 누우면 눈을 감고 앉으면 눈을 뜨는 인형이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를 버렸습니다. 혹시 다시 집으로 찾아올까 봐 멀리 가져다 버렸어요.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그 무고한 인형의 마음이 불쑥불쑥 생각나는 거 있죠. 아니, 언제는 내가 없으면 안 된다면서 갑자기 나를 버려? 이거 인형 입장에서는 정말 어이가 없고 상처인 거잖아요. 그래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버려진 것들에 이입하게 됐어요. 우리가 보통 버리는 것을 쓰레기라고 하잖아요.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이 단어가 좀 너무하다 싶더라고요. 쓰임을 다 했다는 기준이 너무 일방적이잖아요. 심지어 아직 멀쩡한데 버리는 일도 부지기수고요. 그래서 이것 참 안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완벽히 비추는 거울이 되기는 싫었어요. 매일 벌어지는 잔혹하고 심각한 일들은 이미 뉴스로도 보고 있는데 내가 사람들을 더 피로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꿈같은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막상 꿈을 꿀 때는 재미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데, 깨고 나면 어쩐지 곱씹게 되는 그런 꿈 말이에요.
소설 속에는 ‘이희지’ ‘깔랑’ ‘지점토 인형’ ‘그로테’ 등이 등장합니다. 작가님이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누구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덧붙여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소설을 완성하고 나서 많이 섭섭했어요. 정들었던 모든 인물을 떠나보내야 하니까요. 저는 제가 세계를 창조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모든 캐릭터가 자신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잠시 허락해주는 거라 여깁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질문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한 캐릭터’를 꼽아보라는 것처럼 들려요.
그렇다면 망설임 없이 뼈다귀예요. 사실 이 소설을 쓸 수 있게 가장 먼저 자신의 세계를 보여준 건 깔랑이에요. 제가 그들의 세계에서 빠져나가 다시금 인간만의 안온한 삶으로 돌아가게 해준 건 지점토 인형이고요. 그런데 그 중간 지점에 있는 뼈다귀가, 저는 자꾸만 생각이 나요.
뼈다귀는 많은 시련을 겪었어요. 그런데도 이 세상을 증오하고 미워하기는커녕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걸 막겠다고 동네를 순찰해요. 저는 이런 에너지가 좋아요. 이게 바로 세상에 대한 사랑이잖아요. 다소 천방지축이었던 뼈다귀가 나름 진중하게 변화한 과정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아픈 손가락 같고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깔랑과 지점토 인형의 삶이 궁금하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아, 왠지 귀가 좀 가렵네요. 그들이 제 욕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얘들아, 나는 너희 모두를 사랑해. 삶이 언제나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잠들기 전 기억나는 우스운 일 하나씩은 만들며 살아가면 좋겠어. 나도 그렇게 살아갈게.
소설에서 인형과 동물이 인간으로부터 이름을 부여받는 것에 대한 의미가 나오잖아요. 그런데 사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죠. 일반적으로 스스로 이름 짓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상징적으로 내가 나의 이름을 짓는, 이름을 부여한 이로부터 벗어나 오롯한 내가 되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귀여운 것들』은 그런 우리를 응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맞아요. 모두에 대한 응원이었어요. 글을 쓰다 보면 꼭 한 번씩 그런 순간이 오더라고요.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거예요. ‘나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순간이요.
저는 꽤 오래, 퇴근하고 다시 책상으로 출근하는 삶을 살았어요. 성과도 없는데 뭘 이렇게 답답하게 붙잡고 있나, 때때로 그런 생각이 들곤 했죠.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았어요. 그냥 남들이 정해준 이름대로 살아가면 편하지 않나 싶었죠.
그런데 저는 남이 정해준 대로 살면 속이 문드러지는 사람이에요. 제게 그런 기질이 있더라고요. 길들여지지 않은 달팽이 같달까. 누군가가 아무리 멋지고 깨끗한 플라스틱 집을 선물해준다고 해도 저는 만족이 안 돼요. ‘아니, 지금 눈앞에 풀숲이 있잖아. 그런데 왜 뛰쳐나가면 안 돼?’ 하는 게 바로 저예요.
제가 저의 모습을 인정한 순간부터 숨이 쉬어진 것 같아요. 그때부터는 지나가다 마주하는 웅덩이에 비친 제 등껍질이 놀랍지 않게 되었어요. 말랑한 더듬이 두 개도 더 이상 창피할 일이 없어졌고요. 그래서 제가 느낀 이 해방감을 많은 분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기에천이라는 이름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된 것처럼, 『귀여운 것들』의 독자분들도 자신의 이름을 지어 펼쳐내는 삶이 있기를, 그 삶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그로테스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돼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로테스크와 진짜 그로테스크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들고요. 외면과 내면, 인간과 비인간에 갖는 우리의 선입견에 돌을 던지는 것 같달까요. 던지신 돌이 잘 맞은 걸까요?
돌이 명중했는지는 아마 독자분들이 판단해주실 것 같아요. 그래도 이왕이면 제 메시지가 잘 꽂혔으면 싶기는 해요.
저 또한 이 소설을 쓰면서 헷갈리는 지점이 많았어요. 특히 ‘인간적’이라는 단어에 대한 의문이 들었죠. 제 글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비인간적이고, 비인간들이 인간적이더라고요. 그래서인지 ‘그로테’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써내기 어려웠어요. 그로테스크라는 단어를 제가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풀어내야 하는 시간이었거든요.
보통 그로테스크하다는 느낌은 주관적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이 사회가 정해둔 ‘비정상’에 대한 감각을 우리는 교육받으면서 자라요.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 거죠. 그러므로 팔 네 개 달린 인형이 폐기 대상이라는 점에 다들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될 테고요.
하지만 저는, 그로테가 ‘그래서 뭐? 나는 내 할 일을 할 거야!’ 하는 부분이 핵심이었으면 했어요. 그로테의 생각과 행동이 편견을 다 깨부수겠다는 선언과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심지어 그로테는 사건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하잖아요. 독자분들이 이 부분에 대해 동의하셨다면, 저는 기꺼이 기쁨의 탭댄스를 출 겁니다.
버려진다는 것. 『귀여운 것들』이 가장 곱씹게 하는 메시지는 이것 같아요. 사랑과 신뢰와 연결되는 이 메시지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과, 이에 관해 독자분들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외침이 있다면요?
저는 로맨스를 좋아하지 않아요. 헤어지면 해결될 일을 뭐하러 저렇게 지지고 볶나, 생각이 들거든요. 너무 착해서 남들에게 다 내어주는 인물도 별로예요. 그래서 저는 제가 사랑과 신뢰를 믿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놀랍게도 저는 사랑과 신뢰 없이 못 사는 사람이더라고요.
물건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그 대상이 무엇인지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만남을 경험해요. 그 순간 서로에게 나의 삶을 내어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거예요. 그 약속을 지켜가는 과정이 바로 사랑이고, 서로 약속을 지키겠거니 하는 마음이 신뢰인 거죠.
저는 제가 발 디디고 살아가는 이 세계를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화가 많습니다. ‘아니, 왜 우리의 세계를 지키지 않는 거지?’ 하며 수시로 화를 내죠. 이 커다란 우주 속에서 서로 만나게 된 건 엄청난 행운이에요. 그런데 그런 서로의 삶을 왜 소중하게 여겨주지 않는 건지 답답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계속 이야기할 생각이에요. 제발 서로를 포기하지 말자고. 제가 계속해서 손을 내밀 테니 독자분들은 그 손 끄트머리를 살며시 잡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작가 소개에 자신을 ‘지독한 비인간주의자’라고 이름하셨어요. 비인간주의자 작가로서 인간 독자분들에게 다가갈 다음 행보에 대해 알려주신다면요?
비인간주의자인 만큼 비인간적인 글을 매우 많이 써보려고 합니다. 아주 지독하고 독특한 작품들을 계속해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앞으로 써나가는 이야기들에 어떤 동물이나 식물 또는 곤충이 등장하게 될지 알아맞히시는 분께 제가 선물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주 소박한 꿈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귀여운 것들』이 대박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독자분께서 『귀여운 것들 2』를 내달라고 아우성을 치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제 이름에는 엄청난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여‘기’ 한 달‘에’ ‘천’만 원을 벌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문장의 약자로 바로 저 ‘기에천’이 탄생했어요. 아마 한 달에 천만 원씩 번다면 정말 많은 분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일 테니, 저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겠죠?
저는 계속 써나갈 예정입니다. 제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갈 생각이에요. 소설가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절 발견하시면 한마디씩 해주세요.
“와, 기에천이다!”
*기에천 인간 이외의 것만 사랑하는 지독한 비인간주의자. 그래서인지 다시 태어난다면 꼭 용이 되고 싶다. 실험 대상으로 쓰이지 않기 위해 사람들을 잘 피해 다니겠다는 허무맹랑한 다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순수하게 재밌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운 좋게도 그런 즐거움은 현재진행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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