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고물가 시대를 지혜롭게 헤쳐가는 법
『돈의 권력』 폴 시어드 저자 서면 인터뷰
돈은 경제가 돌아가게 하지만, 소득 불평등이나 부채로 인한 부담, 인플레이션 등 많은 문제를 낳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 경제 문제들을 올바로 인식하고 헤쳐갈 수 있을까? (2024.05.22)
팬데믹을 지나며 늘어난 나라빚과 가계빚, 고공행진하는 물가까지 전 세계가 후유증을 앓고 있다. 돈은 경제가 돌아가게 하지만, 소득 불평등이나 부채로 인한 부담, 인플레이션 등 많은 문제를 낳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 경제 문제들을 올바로 인식하고 헤쳐갈 수 있을까? 전 S&P글로벌 부회장과 하버드 수석 경제학자를 지낸 『돈의 권력』 저자 폴 시어드에게 현재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경제 이슈에 관해 물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은 지금까지 여러 경제 관련 책을 펴내셨지만 한국에는 처음 소개됩니다. 먼저 한국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돈의 권력』이 한국어 번역판으로 널리 소개되어 한국 독자들과 만날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저는 S&P글로벌 부회장을 지냈었고, 현재는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수석연구원이자 세계경제포럼(WEE)의 위원을 맡고 있는 폴 시어드입니다.
대학생이던 지난 1976년 12월, 처음으로 서울에 방문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전문 경제학자로서 여러 차례 서울을 찾았었습니다. 현재 한국은 경제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성공적인 국가 중 하나입니다.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세계에서 14번째로 큰 경제 규모를 자랑하고 있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강력한 이웃 국가인 일본을 넘어선 것은 물론 이제 유럽연합(EU)과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까지 이르렀죠.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가 연평균 6.1%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저(低)개발국에서 벗어나 번영하는 선진산업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놀랍습니다.
한국의 정책 당국자들과 금융시장 참가자, 기업인, 시민 모두 이 책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계속된 인플레이션으로 사람들의 부담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발생된 인플레이션은 정부가 너무 많은 돈을 찍어내고 중앙은행이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경제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푸는 경제부양책을 썼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주된 원인은 팬데믹이 경제의 공급 측면, 특히 노동 공급이 미친 엄청난 피해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글로벌 경제 전반에 걸쳐 공급망 붕괴로 나타났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읽지 못한 정책적 실수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의 부채 증가와 인플레이션 상승은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이 적절했다고 보시나요?
전통적인 경제는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과 재정당국의 재정 정책을 별개의 정책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맥락에서는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인상해 통화긴축 정책을 펴는 것은 높은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올바른 방법입니다.
그러나 저는 중앙은행이 통합정부의 일부이고, 통화 정책도 재정 정책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총수요와 고용,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 지출과 조세의 역할에 더 집중합니다. 이렇게 재정당국과 중앙은행이 통합정부 차원에서 조화롭게 정책을 편다면 정책금리를 덜 인상하고 정부 지출을 억제하고 세금을 올림으로써 총수요를 억제하고,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동시에 소득 재분배 효과도 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득 불평등이 점점 더 심화되면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의 불평등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시장경제의 혐오스러운 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번영을 창출하는 경제 시스템이 가진 오류가 아닌 기능에 가깝습니다. 불평등이 실제 존재하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커지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이 시장 경제가 작동하는 데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현상인 것은 아닌지, 생각보다 무해한 것은 아닌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또 오히려 불평등을 예방하거나 사후에 시정하려는 시도가 득보다는 실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사람들은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는 방안’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효과가 없습니다. 과세를 통해 사회적 지출 프로그램을 신설하거나 기존 프로그램을 확대할 만큼 충분한 재원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부 프로그램에 필요한 자금 규모에 비해 부유층이 너무 적고, 부자들이 자신의 부의 변화에 대응해 소비를 늘리거나 줄이지 않기 때문에 이 해법을 실행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각국의 부채는 엄청난 양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렇게 막대한 정부의 부채는 미래 어느 시점에 갚아야 할 돈이기에 우리 자손들에게 짐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정부의 부채가 미래 세대에 부담이 되고, 우리의 손자들의 미래를 저당잡고 있는 셈이라는 주장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정부 부채는 그를 보유한 사람에게는 자산이지만, 이를 물려받은 세대에게는 부채와 자산이 상쇄됩니다. 또 미래 세대는 막대한 생산성 자본과 축적된 과학적, 기술적, 사회적 노하우를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정부 부채는 정부가 창출한 돈이 그만큼이라는 것입니다. 정부가 적자예산으로 창출한 돈은 국민이 보유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재정적자나 부채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무턱대고 지출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지만, 정부는 가계와는 다르게 봐야 합니다. 개인은 적자를 내면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돈을 아끼거나 더 벌어야 하지만 정부는 개인과 다르게 돈을 빌리는 게 아니라 만들어냅니다. 정부는 마음껏 돈을 만들 수 있기에 돈이 모자랄 수도 없고 그걸 되갚을 필요도 없습니다.
팬데믹 동안 한국은 주요국들 중 국가부채를 가장 적게 늘렸지만 기업과 가계 부채는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리고 금융당국은 부채를 통제하는 정책을 폈는데요. 한국 정부가 민간 대신에 국가부채를 더 늘리는 초지를 취해야 했을까요?
한국은 팬데믹 기간 중 국내총생산(GDP)이 급락하고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뛰자 통화와 재정 정책으로 경기를 회복시키고 인플레이션도 다소 안정시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가 한국 경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국 경제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이 어려운 시기를 비교적 잘 헤쳐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적절한 재정적자나 정부부채의 규모는 해당 국가의 정부 규모, 사회안전망 수준, 소득 재분배에 따라 다 달라집니다. 또 정부의 경제 개입 정도나 민간부문 상황 등에 따라서도 바뀔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정적자 규모나 정부부채 수준은 그 자체로 정책 목표가 돼선 안됩니다.
비트코인이 여전히 큰 화제입니다. 얼마 전 비트코인이 1억 원을 넘기도 하면서 언젠가는 기존 화폐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진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암호화폐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암호화폐는 21세기 화폐 혁신으로, 금융 생태계에서 영구적인 지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암호화폐가 주권 화폐를 대체하기는커녕 그 지위에 심각하게 도전할 가능성도 매우 희박합니다. 현재 전 세계에는 약 2만 1961개에 이르는 암호화폐가 있지만 전 세계 총통화 공급량의 약 1% 수준에 불과합니다.
또한 아직도 암호화폐로 자산의 가격을 표시하거나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자산을 거래하는 데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미국 달러화로 표시하고 기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래소에서 이뤄지는 거래도 대부분 다른 암호화폐를 거래하거나, 법정화폐로 암호화폐를 거래한 것일 뿐입니다. 교환의 매개체로서가 아닌 투기가 암호화폐의 수요를 주도하고 있는 셈이죠. 이렇게 가치를 측정할 수도, 사람 간에 금전적 가치를 이전하는 수단으로 흔히 쓰일 수도 없기에 암호화폐가 주권화폐에 도전할 가능성은 낮아보입니다.
『돈의 권력』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OECD와 G20 회원국인 한국은 미국과 EU, 일본 등 정교한 선진경제에 버금가는 통화 제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화폐가 애초에 어떻게 생겨났는지,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은 어떻게 서로 연관돼 있는지, 적자예산의 의미와 늘어나는 정부 부채를 우려해야 하는지, 금융위기의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예방하거나 혹은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질문은 베일에 가려져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암호화폐가 기존 국가 기반의 통화 시스템을 뒤흔들 수 있을지도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다시는 자기 나라를 포함한 경제와 통화문제를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 한국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경제에 관한 내용은 한국 경제의 통화 및 재정 정책, 화폐의 미래를 포함한 은행과 금융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폴 시어드 전 S&P글로벌 부회장, 하버드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 호주 출신 미국 경제학자로 현재 하버드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 겸 연구위원이다. 복잡한 경제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기존의 통념에 도전하는 과감함을 지닌 경제학자로 정평이 나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노무라증권, 리먼 브라더스에서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후 S&P글로벌의 부회장 및 수석 경제학자가 되었다. 1995년 금융 시장에 뛰어들기 전에는 일본 경제와 기업 조직 경제학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호주국립대학교와 오사카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역임했고, 스탠퍼드대학교와 일본중앙은행(BOJ)에서 객원 학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의제 위원회에서 재정 및 통화 정책을 위한 새로운 의제를 다루는 위원을 맡고 있고, 외교관계위원회(CFR)와 브레튼우즈위원회, 뉴욕경제클럽, 외교정책협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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