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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완선의 살다보니 SF] 장수와 번영을

고등한 외계 문명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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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와 번영을”은 미국의 SF 드라마 <스타 트렉>에 등장한 문구다. 원래는 “Live long and prosper”, 약자로는 LLAP. 처음 보는 외계 종족을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된다면 우선 장수와 번영을 기원해보면 된다. (2024.05.21)


심완선 SF 칼럼니스트가 일상에서 벗어난 딴생각을 풀어내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격주 화요일 연재.


pexels


근래 오랜만에 “장수와 번영을”이라는 인사를 들었다. 듀 모 토끼 작가에 대한 이벤트 자리였다. 발표자인 강은교 님은 관련 개념을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진행했는데, “장수와 번영을” 같은 말에는 아무 설명을 더하지 않았다. 아니, 그거야말로 아는 사람만 아는 말이잖아요. 아니다, 여기 앉아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니까 상관없나? 아니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것이 오타쿠, 아니 참된 독자의 매너인 걸까? 웃기고 좋아...

참고로 이 행사의 정식 명칭은 “듀나 데뷔 30주년 기념 연속 비평 콜로키움: 듀나 월드를 탐색하는 세 갈래의 오솔길 – 제1회 듀나의 사이보그 소녀들: 아이러니 속에서 춤추기”였다. 전체 사업명은 훨씬 딱딱한 이름이고, 공적으로 지원금을 받아서 진행하는지라 절차도 딱딱하다. 그래도 마음속에서는 이벤트요 온리전이요 부흥회다. 겉으로는 학술행사처럼 생겼더라도, 대학교 세미나실에서 진행하며 참여하는 사람 태반이 연구자라도, 주요 동력이 팬심이기 때문이다. (이 문단에는 노골적인 광고가 포함되어 있으며, 가장 대규모 이벤트는 2024년 7월 21일에 열릴 포럼이라는 점도 밝혀둔다. 한가락 하시는 분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탈 예정이니 관심 있으신 분은 검색 및 참석 부탁드립니다.)

“장수와 번영을”은 미국의 SF 드라마 <스타 트렉>에 등장한 문구다. 원래는 “Live long and prosper”, 약자로는 LLAP. 처음 보는 외계 종족을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된다면 우선 장수와 번영을 기원해보면 된다. 이는 행성을 불문하고 대개의 종족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다. 적어도 드라마의 설명에 따르면 그렇다. 사실인지는 당연히 알 수 없지만, 지구에서 LLAP로 인사하면 일정 확률로 반가운 반응을 얻을 수 있다. 상대가 트레키(스타 트렉의 팬덤)거나 약간이라도 이쪽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아!’ 하고 웃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벌컨식 경례를 곁들이면 더 좋다. 손가락을 둘째, 셋째끼리 붙이고 또 넷째, 다섯째끼리 붙여서 들어올리면 된다. 나는 혹시라도 외계 종족을 처음으로 조우하는 일이 벌어지면 이 인사를 써먹으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그쪽에서 지구인에 대해 사전 조사를 했다면 ‘아!’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

나는 지구 바깥, 혹은 태양계 바깥에 지적 문명을 건설한 외계 종족이 있으리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저 그들이 존재한다고 상정하는 데 익숙할 뿐이다. 나의 최애캐가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살아있는 인물처럼 여기는 것과 비슷하다. 칼 세이건 원작의 영화 <콘택트>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 “우주에 만약 우리뿐이라면 그건 엄청난 공간 낭비겠지”에도 마음이 간다. 우주에는 별이 엄청나게 많으니 그중 하나쯤엔 생명이 있겠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건 너무 허전한 일이다. 이 대사의 원조는 19세기 영국의 사학자이자 비평가였던 토머스 칼라일이라고 한다. 그의 버전은 좀 더 길고 우울하다. “슬픈 광경. 그들이 거주한다면 비참함과 어리석음은 얼마나 널리 존재하는 것인가. 그들이 거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공간 낭비인가.” 이런 회의적인 말을 반으로 뚝 잘라서 긍정 에너지를 뿜어내다니, 칼 세이건은 과연 인류애 넘치는 스타 과학자이며 완전 럭키비키다.

과학사에서는 외계 종족 탐사를 이야기할 때 페르미 역설을 출발점으로 삼는 듯하다.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동료들과 밥을 먹다가 질문을 던졌다. 우주에 별이 무수히 많으므로 고등한 외계 문명이 존재하는 것이 확률상 타당하다는 대화가 오갔기 때문이었다. 페르미의 질문은 그대로 페르미 역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렇다면 모두 어디에 있는데?”

가능한 답은 크게 세 가지다. (작품에 따라 답을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 <삼체>라든가.)


  • 답1: 존재하는데 우리가 모를 뿐이다. 이미 우리와 함께 살고 있을 수도 있다.
  • 답2: 존재하는데 교신하지 못했다. 너무 멀거나, 통신 기술이 다르다.
  • 답3: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혹은 이제는, 어쩌면 한 번도.


열성적인 과학자들은 ‘존재한다’와 ‘그렇다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확인하자’에 투자했다. 예를 들어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에서는 ‘아레시보 메시지’를 우주로 방송했다. 십진법 숫자, DNA, 인간과 태양계의 형태 등이 이진법 신호로 변환되어 전파로 송신되었다. 여기엔 만일 특정 구간이 반복되는 등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는 신호를 우리가 보낸다면, 수신하는 쪽에서도 암호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리라는 전제가 들어있다. 상대방이 어디에 있든 수학과 과학은 공통의 언어이리라는 믿음도 들어 있다. 같은 우주에 속하기만 하면 과학은 우주에 부합하는 형태로 수렴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 탐사선에는 조그마한 금속판이 실렸다. 파이오니어 10호, 11호에 실린 ‘파이오니어 금속판’에는 수소 원자의 모양이 새겨졌다. 수소는 우주에 가장 많은 원소이므로 그것을 기본 단위로 사용하면 의미가 통하리라는 아이디어였다. 탐사선이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그곳이 같은 우주라면 수소를 알아볼 테니까. 그렇다면 금속판에 새겨진 펄서(맥동하는 중성자별) 그림을 보고 역산하여 지구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을 테니까.

보이저 1호, 2호에는 금속판에 더해 ‘골든 레코드’가 실렸다. 그새 LP 디스크 기술이 개발된 덕분이었다. 구리 디스크에 금박을 입혀 ‘골든 레코드’라는 별명이 붙은 이 음반의 정식 명칭은 ‘지구의 소리’였다. 이는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프로젝트였던 탓에, 칼 세이건을 비롯해 골든 레코드 제작을 추진한 팀은 매우 촉박한 일정으로 작업을 마쳤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주 많은 자문위원이 참여했다. SF 작가인 로버트 하인라인이나 아서 클라크 등은 외계인을 상상하는 사람다운 조언을 했다. 인간과 전혀 다른 감각 체계를 지닐 경우 어떻게 신호를 이해할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또한 제작팀은 코넬대학교를 통해 각종 언어 사용자를 수소문해서 55개 언어로 이루어진 인사말을 녹음했다. 인사말 내용은 자유였던 듯하다. 녹음 내용은 온라인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외계에 목소리를 전하겠다고 선뜻 나선 사람들이 무슨 말을 골랐는지 살피면 재미있다. 언제 한번 놀러오라는 친근한 인사도 있고 지구의 거주자로서 머나면 별의 주민에게 보내는 거창한 인사도 있다. 한국어로 된 ‘안녕하세요’도 있다. 사실 다양한 언어를 짤막하게 보내면 수신자가 이를 해석할 가능성은 훨씬 낮아진다. 그래도 제작팀은 최대한 다양한 언어를 포함하는 쪽을 택했다. 외계인만이 아니라 지구인도 수신자에 들어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보이저 호의 메시지가 정말로 다른 종족에게 닿을지는 알 수 없다. 혹여 은하 건너편의 누가 발견하더라도 그때면 이미 우리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음반은 우리를 위한 일종의 타임캡슐 역할을 겸해야 했다. 지구에서는 보이저 호의 메시지를 분명히 기억할 테니까. 레코드에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타자를 환대할 능력이 있으며, 그렇게 하리라는 사실이 담겨야 했다. 제작팀은 그렇게 합의했다.

나는 레코드에 인간만이 아니라 고래의 인사도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좋아한다. 골든 레코드에 관한 논픽션 [지구의 속삭임]에는 그 과정이 자세히 담겨 있다. ‘지구의 소리’ 파트를 맡은 앤 드루얀은 고래들을 녹음한 파일을 구하기 위해 관련 연구자에게 연락한다. 그녀는 지구의 지적 생명체를 존중하는 의미로 고래의 노래를 넣으려 한다고 설득한다. 레코드에는 또한 천둥소리, 빗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와 함께, 동물 울음소리, 인간의 웃음소리, 기계의 소리, 키스하는 소리도 들어갔다. 뇌파를 기록한 것도 있다. 앤 드루얀이 직접 녹음한 것이었다. 이런 기록만으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내기는 어렵겠지만, 그녀는 우주로 영구히 보낼 만한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외계로 신호를 보내면 괜히 위험한 생명체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있었다고 한다. 나쁜 놈들이 신호를 받고 찾아와 지구를 공격하면 어떡하냐고. 그에 대한 반박은, 이미 지구는 우주에 시끄럽게 방송을 하고 있다는 거였다. 지구 주변에는 텔레비전, 라디오, 위성 신호가 가득하다. 그러니 지구 주변까지 올 만큼 가까운 곳에서 신호를 받는 외계인이면 어차피 지구를 알아채지 못할 리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평화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쪽이 낫다는 주장이다. 상대방에게 메시지가 의미있게 작용한다면, 아무래도 외설이나 저속한 내용보다 ‘지구의 소리’가 나을 테니까.

나는 역시 LLAP를 꽉 쥐고 있을 생각이다. 과학의 언어를 쓸 자신은 없으니 평화적인 의미라도 담으려고 한다. 첨언하자면 보이저 호의 이름을 딴 <스타 트렉: 보이저> 시리즈는 보이저 호가 지구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린다. 이쪽은 이름만 같을 뿐 인류가 실제로 보낸 보이저 호와 동일한 탐사선은 아니다. 현실의 보이저 호는 하염없이 멀어지고 있지만 이쪽은 지구로 귀환한다. 그들의 목적지는 우리다. 그리고 <스타 트렉>답게 이 시리즈에도 LLAP가 등장한다. 장수와 번영을. 은하 반대편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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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심완선

SF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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