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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특집]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

“애기 이름이 뭐예요?” “카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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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가 돌아와 다시 엉망진창이 된 우리 집이 좋았다. 무언가 완성되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집이란 곳이 이토록 아늑하고 따뜻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우리의 공동체는 카라를 만나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갔다. (2024.05.21)

ⓒ 포테톳

제도 안과 바깥에서, 한국과 한국을 벗어난 자리에서, 혼자 그리고 여럿이, 우리는 이렇게 살기로 했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다양한 가족의 의미를 묻습니다.


8년 동안 사귄 사람과 서른여섯에 결혼을 했다. 순전히 내 의지로 꾸린 나의 가족, 이 단출한 2인 공동체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내가 속해본 어떤 공동체보다 평등했고 평화로웠다. 아이가 있어야 할까? 질문만 반복했을 뿐 답은 내리지 못한 채로 마흔이 되었다. “자식 없는 사람이 제일 불쌍하다”는 시아버지의 말은 “고양이 없는 사람이 제일 불쌍하다”는 친구의 말만큼이나 타격감은 없고 오히려 귀여웠다. 

저항감이 든 건 엄마의 말이었다. “너희 부부 사주엔 아이가 없단다.”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 대번에 눈을 부라렸다. 나도 못 찾은 내 인생의 길을 본 적도 없는 역술인이 이미 알고 있다는 게 좀 황당했던 것인데, 엄마는 딸이 방금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팔자를 가졌다는 사실에 충격 받고 그걸 부정하려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는 진지하고 단호하게 쐐기를 박았다.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없어!” 그러니 괜히 애쓰지도 말라고 했다. 옛날 사람들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애기 이름이 뭐예요?” 간호사의 질문에 멈칫했다가 작게 대답했다. “카라요.” 왜인지 간지럽고 부끄러웠다. “애기가 몇 살이에요?” 이동장 안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애기’를 보며 말했다. “4개월이요.” 곧이어 진료실에서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라, 들어오세요.” 나는 좀 비장해졌다. ‘애기’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엄마의 예언은 틀린 것 같다. 

기록 활동가로 5년째 살고 있었지만 글 쓰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다. 그 좋아하던 술도 담배도 다 끊었다. 면벽 수행하는 수도승처럼 종일 집 안에서 노트북만 노려보며 살았던 내게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뭐니 뭐니 해도 마감을 못한 자였다. 마감하느라 얼굴이 노래진 어느 일요일 오후, 친구가 작은 고양이를 앞세워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입양될 때까지 임시 보호를 부탁했다. 보드라운 털과 귀여운 얼굴 뒤에 바늘 같은 발톱과 송곳 같은 이빨을 숨긴 1.5kg의 앙증맞은 이 생명체...는 평온했던 내 생활을 놀랄 만큼 빠르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고양이였다. 현관의 신발 사이에서 뒹굴다 이불 속으로 뛰어들었고 시원하게 똥을 눈 뒤 싱크대 위로 점프했다. “안돼!” 하고 붙들면 냅다 나를 할퀴었다. 새벽이면 이불 속을 비집고 들어와 손과 발을 사정없이 물었다. 자다가 습격을 당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다크써클이 턱 끝까지 내려왔다. 그를 몰래 유기하는 상상도 제법 구체적으로 했다. 

그 와중에도 이 녀석의 사냥능력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멋있어서 나도 모르게 물개박수를 치게 됐다. 자기 키의 3배쯤을 가볍게 날아올라 공중에서 사냥감을 낚아채고는 특공무술 하듯 몸을 둥글게 말아서 착지했다. 어린 고양이는 어린 인간과 달리 무력하지도 수동적이지도 않아서 경이롭기까지 했다. 슬픈 건 우리 집엔 사냥할 게 인간밖에 없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존재는 나를 바라보며 엉덩이를 씰룩이는 고양이. 너를 사냥하겠다는 신호다. 곧 피바람이 불 것이다.

한 달 뒤 우리는 카라와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통제 불가능한 이 낯선 존재에게 속수무책으로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SNS에 넘치는 그림 같은 고양이를 기대했던 내게 “세상에 무해하기만 한 고양이는 없다”는 듯 그는 온몸으로 요구하고 짜증 내고 저항하고 기쁨을 표현했다. 우리는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었고 그는 그 이름에 반응했다. 우리는 그에게 매일 밥을 주었고 그는 아침이 오는 것에 환호하듯 우리가 눈을 뜨면 환희의 세레모니를 펼쳤다. 카라는 대단한 생존능력을 가졌고 동시에 너무나 취약했다. 여기는 인간의 집. 그는 동물이었고 갇혀 있었다. 나는 카라를 버릴 수도 있었고 사랑할 수도 있었다. 살릴 수도 있었고 죽게 내버려둘 수도 있었다. 끝없이 무책임해질 수도 있고 어쩌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나 자신을 만날 수도 있었다.  

‘무는 고양이 교육법’을 백방으로 알아보다가 용한 고양이 ‘금이’에게 카라의 특훈(?)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금이는 어떤 인간이 땅속에 묻어서 죽이려 한 것을 구조해 친구가 금이야 옥이야 길러낸 고양이였다. 금이는 사람과도 고양이와도 잘 지내는데 특히 어린 고양이들을 잘 보살폈다고 했다. 난데없이 낯선 곳에 도착해 잔뜩 겁을 먹은 카라를 금이네 집에 두고 나오며 나는 간절하게 금이를 바라봤다. ‘금이 선생님, 부디 카라에게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그날 밤 친구가 영상을 보내줬다. 잔뜩 긴장해 ‘얼음’이 되어버린 카라가 방묘 네트를 사이에 두고 금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딸꾹질을 하는 영상이었다. 카라의 작은 가슴이 꿀렁, 할 때 내 가슴도 요동쳤다. 카라가 없는 동안 그동안 밀린 일을 해치울 생각이었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온통 카라 생각뿐이었다. 또 버려졌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나를 기다리면 어쩌지. 카라가 없는 집이 하나도 좋지 않았다.  

계획은 보이었는데 4일 만에 카라를 보러 갔다. 안방 침대 위에 자고 있던 그가 나를 보곤 멍한 표정을 지었다. “카라야.” 목이 메었다. 그의 눈빛이 또렷해졌다. “우리 고양이, 잘 있었어?” 카라의 보드라운 털 속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니 너무 좋아서 눈물이 찔끔 났다. 그동안 카라는 조심스럽게 행동반경을 넓히는 중이었는데 우리가 오니 몸짓이 눈에 띄게 과감해졌다고 친구가 말했다. 우리가 함께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카라가 내 무릎을 사뿐사뿐 밟고 지나가더니 옆에 있던 남편의 무릎 위로 건너갔다. 모두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카라는 남편의 무릎 위에 엉거주춤 자리를 잡고 앉더니 금이네 가족을 바라보았다. 여러 명의 애기 고양이를 구조하고 보호한 경력이 있는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자기도 엄마아빠 있다 이거지. 이제 안 무섭다 이거지.” 친구의 말이 맞다면 그건 카라가 우리를 가족으로 호명하는 작은 퍼포먼스 같았다. 태어난지 4개월 된 어린 고양이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쓰고 그 와중에 우리를 비빌 언덕으로 여겨주는 게 미안하고도 뭉클했다. 

카라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날 우르르쾅쾅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카라와 남편은 피곤에 절어서도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힘껏 사냥놀이를 했다. 금이의 특훈을 받은 뒤 카라는 개과천선하여 얌전하고 모범적인 무릎냥이 되었...을 리가 없다. 변한 건 나였다. 카라가 돌아와 다시 엉망진창이 된 우리 집이 좋았다. 무언가 완성되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집이란 곳이 이토록 아늑하고 따뜻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우리의 공동체는 카라를 만나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갔다. 

길고양이들의 삶이 보였고 이전엔 들리지 않았던 동물들의 목소리가 쏟아지듯 들려왔다. 동물을 덜 착취하는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카라와 꼭 닮은, 인간의 텃밭을 헤집었다는 이유로 삽으로 맞아 죽을 뻔한 고양이 홍시를 입양했다. 홍시는 고양이 학원이라도 다닌 것인지, 첫날부터 비둘기처럼 고로롱거리며 찹쌀떡 같은 발로 꾹꾹이를 시전하는 다정이 넘치는 고양이였다. 하나는 나를 물고 하나는 나를 핥는 두 고양이가 신나게 우다다를 하고 서로를 그루밍하다가 별안간 레슬링을 하고 또 한순간 몸을 기대 잠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 이보다 더 완벽한 가족은 없다는 기분이 들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저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20년 후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해서 훌쩍훌쩍 울어버린 날도 있다.


함께 자는 홍시와 카라. ⓒ 홍은전



*필자 | 홍은전

스물셋에 우연히 노들장애인야학을 만나 장애인운동을 시작했고 서른여섯부터 인권기록활동가로 살아가다 마흔에 고양이 카라를 만나 동물권의 세계에 사로잡혔다. 존엄이 짓밟히는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한다. 문제 그 자체보다 문제를 겪는 존재에게 관심이 있고 차별받는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노란들판의 꿈』 『그냥, 사람』 『전사들의 노래』를 썼고,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유언을 만난 세계』 『집으로 가는, 길』 등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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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홍은전

스물셋에 우연히 노들장애인야학을 만나 장애인운동을 시작했고 서른여섯부터 인권기록활동가로 살아가다 마흔에 고양이 카라를 만나 동물권의 세계에 사로잡혔다. 존엄이 짓밟히는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한다. 문제 그 자체보다 문제를 겪는 존재에게 관심이 있고 차별받는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노란들판의 꿈』 『그냥, 사람』 『전사들의 노래』를 썼고,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유언을 만난 세계』 『집으로 가는, 길』 등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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