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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특집] 엽편 <이렇게 살기로 했습니다> ① - 신승은, 오혜진

우리가 상상하는, 어쩌면 어디선가 살고 있을 어떤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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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가족 같은 걸 상상해 본 적 없었다. 겪어본 적이 없어서 잘 상상이 안 가기도 했고, 그런 게 중요한가 싶었다. 그런데 살다보니까 겪고 있다. 너무 다른 넷이랑 사는 삶. (2024.05.17)

ⓒ 포테톳

제도 안과 바깥에서, 한국과 한국을 벗어난 자리에서, 혼자 그리고 여럿이, 우리는 이렇게 살기로 했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채널예스에서 다양한 가족의 의미를 묻습니다.


야옹, 뺙, 웨옹, 우응

글 | 신승은 (싱어송라이터)


눈을 감는다. 잠든 것 같은데... 야옹, 뺙, 웨옹, 우응. 고양이마다 다른 울음소리가 1시간 간격으로 바톤 터치를 해가며 한 번 씩 어렴풋이 들린다. 눈을 뜬다. 벌써 아침이다. 아침에는 ‘우응’ 담당이 우응우응하며 다가온다. 쓰다듬으면 좋아서 콩하고 바닥에 쓰러지듯 눕는다. 삼삼이다. ‘삼삼아’ 하고 마음속으로 말한다. 고양이들에게 말을 많이 해주면 좋다는데 마음속으로 말하는 습관이 잘 고쳐지지 않는다. 아침을 차리는 내내 졸졸 쫓아다니는 바람에 넘어질 뻔했다. 이 광경을 ‘웨옹’ 한 마디 없이 무심히 지켜보는 자, 땅이다. 아침 인사를 담아 쓰다듬으면 5초 이내에 골골 소리를 낸다. 아침밥을 들고 식탁으로 온다. 아침 먹고 간식을 주는 패턴이 있다. 그러니 아침 빨리 먹으라고 오늘도 어김없이 앙꼬가 식탁에 올라와 등 돌리고 눈치를 준다. 앙꼬는 늘 슈짱 곁에 있는데 이 때만은 독립적이다. 같이 자던 앙꼬가 폭 튀어나가는 바람에 슈짱도 잠이 조금 깼다. 비몽사몽이다. 눈이 다시 슬슬 감기는데... 내가 물 뜨러 지나가자 잠 덜 깬 목소리로 ‘야옹’한다. 슈짱의 ‘야옹’은 대체로 ‘인사해라’다. 정중히 쓰다듬는다. 하루에 두세 번 청소기를 돌려도 고양이 모래가 발에 밟힌다. 아무리 돌돌이를 해도 밖에 나가면 다들 ‘고양이 키우시나 봐요?’하고 묻는다. ‘네. 넷이랑 살아요.’ 하고 자랑스럽게 답한다. ‘키우는 게 아니라’는 소리가 없다. 마음속으로 말하는 습관은 가끔 도움이 된다.

좋은 가족 같은 걸 상상해 본 적 없었다. 겪어본 적이 없어서 잘 상상이 안 가기도 했고, 그런 게 중요한가 싶었다. 그런데 살다보니까 겪고 있다. 너무 다른 넷이랑 사는 삶. 노트북 너머로 문지방에 얼굴을 대고 자고 있는 삼삼이가 보인다. 현실이다. 오늘도 안도한다.



부양부양扶養浮揚

글 | 오혜진 (문학평론가)


언니, 나 또 근로장려금 신청대상이라고 국세청에서 문자 왔어.

헐, 또?

나라에서 돈 준다니 좋긴 한데, 근데 나 늘 근-로- 하고 있잖아? 왜 자꾸 나한테 근로 장려하는 거지? 대체 얼마나 더 근-로- 하라는 거여.

글쎄, 아마 너가 정규직 버는 만큼 벌 때까지?

대학 시간강사로 그게 가능? 맨날천날 수업 중이거나 수업 준비 중인데 나 왜 항상 또래 평균소득 40프로 이하야?

말해 뭐해.

근데 근로장려금 신청하려면 종소세 먼저 신고하라던데? 언니 종소세 신고했어?

했지. 귀찮아서 어플로 후딱 해치워버림. 요번에 환급금 좀 나오나보더라. 부양가족 있으면 더 나오고.

하지만 우린 둘 다 해당사항 없으시고요―

그치. 완전 싱글세라니까.

언니가 나 좀 부양할래? 어차피 나의 근-로-는 너무 하찮아서 나라에는 보이지도 않나 본데. 능력 없는 나 좀 도와 길러줘. 가라앉은 나 좀 떠오르게 해줘.

*

언니, 수업 준비 다 했어?

대충?

난 아직 하는 중. 하기 싫어 미쳐버림. 왜 우린 이 나이 먹도록 학교에서 벗어나질 못하지?

나 전생에 궁에서 양반집 규수들 가르치는 상궁이랬어.

소오름. 난 수업 갈 때 되면 갑자기 배 아파. 수업 가기를 온몸이 거부해. 개강한 지 일 주일 됐는데 벌써 종강하고 싶어.

강사들 다 그래.

가족돌봄휴직인가? 그런 찬스 한번 써보고 싶다. 결혼하거나 애 낳아서 합법적으로 휴가 쓰고 싶다. 생계형 이성애 시도해볼까?

할 수 있으면 해보세요- 하지만 그것도 정규직만 가능하다는 거.

맞네? 이성애의 벽보다 높은 벽이 있었구나.

됐고, 난 우리 동동이랑 쿠쿠 검강검진 가는 날 휴가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르게. 쿠쿠 병원 한 번 데려가려면 종일 진을 빼야 되는데.

엊그제 교강사 모임 때, 다들 두 시간이 넘도록 자식 자랑이 늘어지는 거야. 자식이 어디 명문대를 갔고 무슨 장학금을 받았고 블라블라…. 나 똥 마려워서 집 가고 싶은데 끝날 기미가 안 보이기에 한마디 했지. ‘우리 아들은 효성이 지극해요. 지 엄마 독감 걸려서 아프다니까 옆에서 제 이마를 짚고 밤새 간호해주더라고요.’ 이랬지. 그랬더니 내 옆에 앉은 분이, 장 선생 아들 있어요? 이러더라구. ‘아뇨, 우리집 고양이 동동이요. 엄마를 아주 끔찍이 위하거든요.’ 했더니 분위기 싸해지더라. 이렇게 또 킬조이…

*

쿠쿠, 너 방금 엄마한테 하악질 했어? 그건 아니지. 엄마가 가정교육 그렇게 시켰어? 쿠쿠! 쿠쿠! 엄마 말하고 있는데 너 어디 가.

쿠쿠야, 엄마 말 듣지 마. 언니 말 들어. 언니한테 와.

야, 너랑 나랑 양육방침이 다르면 애가 혼란을 느끼잖아. 금쪽같은내새끼를 그렇게 보고도 몰라?

아니, 언니 양육방침 너무 고압적이야. 맨날 ‘엄마’, ‘엄마’ 하구… 나 어제 학회 가서 퀴어가족 어쩌구 가족의 대안 어쩌구 발표하고 왔는데 우리집에 이런 비뚤어진 모성 있을 줄이야?

뭐가 비뚤어진 모성이야. 우리 동동이랑 쿠쿠 내가 가슴으로, 지갑으로 낳았거늘-

암튼 동동이랑 쿠쿠한테 우리를 ‘엄마’로 인식시키는 거, 뭔가 ‘충분히’ 퀴어하지 않아. 정상가족 흉내 내는 거 같아.

그럼 뭐라 그래?

그냥… 아줌마?

그건 너무 성별 이분법적, 나이 중심적…

흠, 적절한 호칭이 없네. 동동이랑 쿠쿠가 우리를 그냥 ‘야, 너’라고 불렀으면 좋겠는데. 아, 생각해보니 우리가 맨날 밥 주는 길고양이들 있잖아. 금동이랑 나리랑 고요랑 밤이, 걔넨 우리를 ‘야, 너, 걔, 쟤’라고 부르는 거 같아.

하긴 걔네 추르 먹을 때 표정이 확실히 맞먹는 느낌이긴 해. 얻어먹는다든가, 신세진다든가 하는 느낌이 전혀 없어. 니네 산책 중에 심심할 테니 잠시 귀여운 나의 추르 먹방 쇼를 보고 가렴- 이런 느낌이지?

그치. 우릴 위한 먹방 쇼야. 덕분에 하루의 피로가 풀리지.

우리가 냥이들을 돌보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그 반대였네.

서로서로 닥치는 대로 돌보는 거지. 뭐.

그럼 오늘도 찹찹찹 먹방 쇼 감상하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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