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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칼럼] 내가 프라이탁을 사지 않는 이유

이소연의 소비냐 존재냐 - 마지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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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소비하고 지배하며 나 자신마저도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것인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서 충만한 만족을 느끼며 순간순간 존재할 것인가. 오늘도 질문한다. 소비냐, 존재냐. 그것이 문제로다. (2024.05.10)


기후위기 시대, 소비와 소유를 넘어 존재하는 법을 고민하는
이소연 에디터의 에세이. 격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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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존재한다는 게 무슨 뜻인데요?

어… 그게 그러니까…

타자기 위를 신나게 날아다니며 글을 쓰던 손가락은 애석하게도 빛을 발휘하지 못했다. 일찍이 발라둔 립밤이 말라붙은 입술만이 위아래로 옴짝달싹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존재한다는 게 뭐냐면요…

이토록 피곤한 물음이 될지 몰랐다. 소비냐 존재냐 라는 질문 말이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같은 이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 처음 어스름하게 내 머릿속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때로 돌아가 보자. 그 시작은 다름 아닌 내가 사랑해 마지않은 옷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옷에 대한 책을 마감하던 때였다.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호기로운 다짐을 책 제목에까지 그대로 옮겨 실은 나의 첫 책.

오랜 기간 무수히 많은 옷을 사 왔지만, 매일 아침 나는 ‘오늘은 또 뭐 입지’라는 피로한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옷을 소비해도 단 하나 나 자신만은, 내 삶만은 오롯이 내 것이 아닌 기분이었다. 형형색색의 옷들 속에서 색채를 잃어가는 듯했다.

그런데 열 살 때쯤 친척 언니에게 난생처음 ‘공주 잠옷’을 선물 받았을 때를 떠올려 보면, 그때는 무언가 달랐다. 그 잠옷을 입으면, 나는 저녁을 먹으라는 엄마의 부름에 긴 치마의 양 끝단을 잡고 뒤꿈치를 든 채 사뿐사뿐 식탁으로 걸어갔다. 평소처럼 우당탕탕 서두르는 법도 없었다. 정말 공주라도 되었다는 냥. 옷은 평범한 일상에 활력을,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마법 같은 일의 시작이 되어주었다.

그 후로도 옷을 쭉 좋아했던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쇼핑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기이한 쇼핑광 소비 중독까지는 아니었다. 그냥 평범하게, 일주일에 두어 번은 집 앞 현관문에 택배 상자들이 나를 기다리는 정도였다. 옷장 안에 처박혀서 형체를 알 수 없게 된 ‘새 옷’을 이사가 갈 때가 되어서야 ‘아 맞아, 이런 옷이 있었지!’ 하는, 아주 평범한 정도.

이내 소비는 조금씩 진화했다. 지하상가를 오가며 5천 원, 1만 원짜리 옷을 일상적으로 구매하던 나와 내 친구들은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서는 ‘결혼식에 갈 때 들 만한 명품백' 하나는 들어야 한다며 또 다른 위시리스트를 새롭게 꾸려 나가기 시작했다. 죽지도 않고 새롭게 나타나는 게임 속 몬스터들처럼, 내가 사야 하는 옷들은 나의 생애 주기에 따라, 삶의 단계에 따라 끈질기게 맞춰 진화하며 곳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소비냐 존재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그러니까 소비하지 않고 오롯이 존재하는 것이 이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당키나 할까. 그것은 마치 이미 도로, 전기, 상하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하와이의 한 시골 숲에 들어가 살며 ‘나는 자연인입니다’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것 아닐까. 나무에 열린 커피 열매를 단 한 번도 본 적 없으면서도 매일 같이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내려 마시고, 엄마 아빠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서울에서 본가까지 전달하기 위해 꽃 선물을 퀵으로 주문하는 내가, 과연 소비하지 않고 오롯이 존재할 수 있을까.

스스로 답하지도 못할 질문에 대한 칼럼을 주제로 글을 이어가기로 했다는 결심이 마냥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소비냐 존재냐라는 언어화된 질문 아래, 사는 것만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졌던 큰 웅성거림이 작은 소음으로 쪼개져서 들리기 시작했다. 많은 ‘평범’했던, 사실은 굉장히 수상했던 그 일상들에 ‘이건 내 몫이 아니었어’ 하고 선을 그을 수 있게 됐다. 더 이상 생일에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많이 받지 못한다고 인생을 헛살았다 좌절하지 않게 되었으며, 해마다 새로운 굿즈를 쏟아내는 스타벅스 컵 앞을 서성이지 않게 됐다. 나의 삶마저 물고 뜯고 씹는 소비의 대상으로 전시하던 인스타그램은 (잠시) 중단했다. 부단히도 ‘존재’하려는 작은 시도였다. 나의 삶을 다른 어떤 것에도 다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오롯이 내 안에 품으려는 시도.

우리는 옷 한 벌을 구입하면서도 오롯이 존재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 감정마저 쉽사리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하여 소비냐 존재냐는 질문의 답이 항상 ‘구매 중단’ 혹은 ‘경제 활동 종료’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래서 존재한다는 게 무슨 뜻인데요?’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할 수 있겠다. 매일 새로운 옷을 사 옷장을 갈아 치우는 대신 옷 한 벌 한 벌의 깊은 가치를 충만히 느끼는 것이다. 환경을 염려한다는 이유로 프라이탁 제품을 소비하는 대신 그 가치를 진심으로 지지하기 위해 소비하지 않기를 선택하며 새로운 방식의 지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소비하고 지배하며 나 자신마저도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것인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서 충만한 만족을 느끼며 순간순간 존재할 것인가. 오늘도 질문한다. 소비냐, 존재냐. 그것이 문제로다.

지금까지 ‘이소연의 소비냐 존재냐’ 시리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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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소연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자)

싼 가격에 ‘득템’하는 재미에 푹 빠져 기쁘나 슬프나 옷을 사다, 2019년부터 새 옷을 사지 않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미디어 스타트업 뉴닉에서 3년간 에디터로 일하며 기후위기, 환경, 포스트팬데믹 뉴노멀에 대한 글을 썼다. 바닷속과 바닷가의 쓰레기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 코리아 활동가가 됐고,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바다 깊은 곳에 버려진 폐어구를 수거하는 정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전환 매거진 [바람과물]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릿터] [코스모폴리탄] [1.5도씨매거진] 등 다수의 매체에 기후위기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2019년 아산정책연구원 영펠로로 선발돼 워싱턴에서 미국의 분리배출 및 폐기물 정책 디자인을 연구했고, 2020년 제2회 아야프(아시아 청년 액티비스트 리서처 펠로십)에서 국내 재활용 정책 및 현황을 연구했다. 그 밖에 스브스뉴스 「뉴띵」, 모비딕 「밀레니얼 연구소」, EBS FM 「전효성의 공존일기」, KBS 라디오 환경의 날 특집 같은 예능·교양 콘텐츠에 출연하거나 환경 교육 및 특강을 진행하는 등 일상적인 방식으로 기후위기, 그린워싱, 패스트패션의 허와 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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