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면 생각보다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어요”
『10대에게 권하는 의학』 예병일 교수 서면 인터뷰
의학이 사람의 몸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과학적 연구방법 외에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24.04.30)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등에서 의사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의과대학에서는 무엇을 배우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과대학에서 배우는 의학이라는 학문은 대체 어떤 학문일까요? 의학은 역사상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왔을까요? 의학은 앞으로 또 어떻게 발전할까요? 의학을 배우면 어떤 분야에 진출해 일할 수 있을까요?
최근 청소년이 자아 찾기와 진로 탐색을 돕는 ‘10대에게 권하는 시리즈’ 열 번째 책 『10대에게 권하는 의학』을 출간한 예병일 교수님을 만나 의학에 관한 궁금증을 여쭤 보았습니다.
현재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지요. 학생들을 가르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의학은 공부해야 할 범위가 아주 넓습니다. 이 세상의 지식은 많이 알면 알수록 좋지만 의과대학에서 6년간 공부하는 동안 다 할 수가 없으니 가장 중요한 것들만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 집중하라고 합니다. 공부해야 할 지식이 아주 많다 보니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자신만의 공부방법을 간직하는 것이 사회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큽니다. 또 뭔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작전을 잘 짜야 하는데 어떻게 작전을 짜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자신만의 지식 습득 방법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작전을 짜고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10대에게 권하는 의학』에서도 ‘의학에서 인문학이 강조되는 이유’를 설명하셨고,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라는 책도 출간하셨어요. 얼핏 생각하면 의학은 과학에 더 가까울 것 같은데 의학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학문을 크게 과학, 인문학, 사회학 등으로 구분하지만 편의상 구분한 것일 뿐 특정 학문이 한 가지 성격만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적 실험을 많이 하는 심리학은 셋 중 어느 학문일까요? 또 과학철학은 어디에 속할까요? 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19세기 말에 과학적 연구방법을 이용해 감염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을 발견하고, 감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하다 보니 20세기 초에 의학은 과학의 한 분야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의학에는 코로나19 같은 대규모 감염병이 유행할 때 백신을 누구에게 먼저 사용할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행위는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행위는 무엇인지, 어린이 몸의 상처를 본 의사가 이를 아동학대로 신고해야 할지 환자의 비밀을 지켜야 할지 등 과학적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사안을 다뤄야 할 때도 많이 있지요. 의학이 사람의 몸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과학적 연구방법 외에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의사가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책을 읽어 보니,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로 진출이 가능하더라고요.
환자를 보는 의사를 임상의사라 합니다. 의과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장차 환자를 보려면 졸업 후 의사면허 시험을 치르고 합격해야 합니다. 그러면 임상의사로 일할 수 있습니다.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 운전수가 아니듯이 의사면허를 가지고 있으면서 임상의사가 아닌 분들도 계십니다. 책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진출할 수 있는 분야를 여러 가지 소개했는데 의사면허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런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임상의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하는 분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또 임상의사를 하면서 시간을 쪼개 다른 일을 하시는 분들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초의학을 하시는 분들은 전보다 줄어들고 있으며, 의학을 공부하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으니 임상의사가 꿈이 아닌 청소년들도 의학은 공부해 볼 만한 학문입니다.
예전에는 아프면 병원에 갔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아프지 않기 위해(예방), 또는 더 나아지기 위해(개선) 병원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는 듯합니다. 의학의 역할이 이전에 비해 훨씬 더 확장되고 있지요?
의학이 ‘사람의 몸을 연구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학문’이라 한다면 병원은 ‘건강을 관리해 주는 곳’이 될 것입니다. 병원에는 몸에 이상이 있음을 느낀 후에 가는 것보다 건강검진을 하거나 치과에서 정기적으로 스케일링을 하는 것처럼 병이 생기기 전에 미리 가는 것이 좋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몸에 이상이 적지만 나이가 들면 중고품 기계가 고장이 잘 생기듯이 사람의 몸에도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커집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병이 생긴 환자에게 병원비를 보조해 주는 것보다 병이 생기기 전에 막는 것이 더 비용을 아낄 수 있으므로 중년이 되면 무료로 건강검진을 해 주기도 합니다. 국민들도 전보다 평소 건강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므로 병원은 물론 보건소, 국민체육센터와 같은 시설을 찾아서 건강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10대에게 권하는 의학』에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재까지 의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과 사건이 담겨 있어요. 교수님이 생각하시기에 가장 흥미롭거나, 가장 획기적인 사건 또는 가장 중요한 인물을 하나만 꼽아주신다면?
유명한 위인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기보다 그 분들이 한 일이 왜 대단한 일인지를 아는 것이 좋습니다. 1816년에 프랑스 의사 라에네크는 가슴의 소리를 듣기 위해 종이를 돌돌 말아서 가슴에 댄 결과 심장이 뛸 때와 숨을 쉴 때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게 별 게 아닌 것 같지만 라에네크가 소리를 잘 듣기 위해 개발한 의료기가 청진기이며, 인류역사상 최초로 사용한 진단기구입니다. 청진기가 질병 진단에 효과가 있음이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의료기 개발에 뛰어들었고, 지금까지도 좋은 기계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으니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세상을 바꾼 셈이 됩니다. 의학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이 워낙 많기는 하지만 의학에 대한 생각을 바꿔 주었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AI의 발달, 줄기세포 연구 등으로 의학이 또 한 차례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는데 의학은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까요?
아쉽게도 사람은 미래를 내다보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AI의 발달과 줄기세포 연구 등이 의학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는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현재로서는 아주 가능성이 큰 기술이라 할 수 있지만, 얼마나 의학에 큰 영향을 줄지를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인류가 더 연구를 많이 하면 할수록 의학에 미칠 영향이 커질 테니 이 책의 독자들도 새로운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계속 공부해 가시기를 권합니다.
이 책은 의대 진학을 목표로 두고 있는 청소년 외에도 의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요.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려요.
환자를 보는 임상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과대학에 들어가야 하지만 임상의사가 아닌 진로는 의과대학을 졸업하지 않더라도, 즉 의사면허가 없더라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약이나 백신을 만드는 사람, 의료기를 개발하는 사람, 전국민의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보건정책을 수립하는 사람, 전 세계보건기구 이종욱 사무총장님처럼 국제 보건에 힘쓰는 사람 등 많은 분야에서 여러분들을 필요로 하니 호기심을 가지고 다양한 분야를 접해 보기 바랍니다.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같은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재료로 분자생물학 연구를 진행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이용해 기초의학을 연구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의학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 교수로 지낸 뒤 2014년부터는 의학교육학 교수로 지내며 인재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여러 전공을 경험하면서 쌓은 융합적 사고를 바탕으로 의학을 전공하는 학생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과학과 의학 지식을 재미있게 전달하고자 글쓰기와 강연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교수의 꿈을 이룬 해에 첫 책 『의학사의 숨은 이야기』를 출간했고, 그 이후 『유전공학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처음 만나는 혈액의 세계』,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저도 의학은 어렵습니다만』,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세상을 바꾼 전염병』,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등 다수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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