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담의 추천사] 낡을 힘이 있는 정치를 위하여
안담의 추천사 6화
나는 낡을 힘이 있는 정치를 원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뛰어난 질문에 맹렬히 응답하는 정치, 그 질문을 닳고 닳도록 사용하는 정치, 그리하여 그 질문이 정의롭게 낡을 수 있도록 힘쓰는 정치를 원한다. (2024.04.04)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1991년 11월 탄생한 인문잡지 『녹색평론』의 창간사,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의 첫 문장이다. 지금 쓰여야 할 어떤 글의 첫 문장으로도 손색없는 질문이라서 가끔 이 창간사를 다시 읽는다. 『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 선생은 무엇보다 이 잡지의 탄생이 정당한지를 물으며 글을 시작한다. 가치 없는 책을 두고 으레 하는 표현인 ‘나무 아깝다’라는 수사는 그에게는 조금도 비유가 아니다. ‘범람하는 인쇄물 공해’ 속에서 ‘불가피하게 삼림파손에 이바지’하면서까지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는가? 있다 한들, ‘파국’을 향해 가속하는 ‘산업문명의 압도적인 추세’ 속에서 그 이야기가 어떤 의미라도 있을까? 준엄한 질문 앞에서 그는 가까스로 대답한다.
“우리가 『녹색평론』을 구상한 것은 지극히 미약한 정도로나마 우리 자신의 책임감을 표현하고, 거의 비슷한 심정을 느끼고 있는 결코 적지 않을 동시대인들과의 정신적 교류를 희망하면서, 민감한 마음을 지닌 영혼들과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이후로 몰아치는 명문장 사이에서 정신을 잃다가 문득 겁이 난다. 왜 이렇게 잘 읽히는가? 무려 30년 전의 글이 왜 아직 시의적절한가? 절륜한 사상가를 향한 감탄과 존경일 뿐만은 아니다. 이 글이 이토록 오래 유효하지는 않도록 변화했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었으리라. 그가 염원해 마지않았을 자기소멸을 생각한다. 이 글이 얼마나 빠르게 낡아가기를 희망했을지 생각한다. 나는 깊은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낀다.
그럼에도 체념을 아끼는 이유는, 이런 참담함과 허무함에 마음을 다 내주는 습관이야말로 좋은 질문에 대한 가장 무도한 응답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말할수록 약해지는 기분이 든다고 하더라도, 또박또박 말해야 할 때가 있다. 나는 낡을 힘이 있는 정치를 원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뛰어난 질문에 맹렬히 응답하는 정치, 그 질문을 닳고 닳도록 사용하는 정치, 그리하여 그 질문이 정의롭게 낡을 수 있도록 힘쓰는 정치를 원한다.
안타깝게도 기후 위기를, 빈곤을, 소수자 차별을 끝내고 평화와 평등을 실현하려는 정치의 존재감은 투표용지 위에서 한없이 희미하거나 의심스럽다. 원하지 않는 정치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하는 정치를 정확하게 표시하기 위해서 표를 던지면서도 마음은 움츠러든다. 너무 순진하다는 비난, 민폐라는 비난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망하는 팀플에 하나씩 있다는 그 빌런이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는 감각을 떨치기가 어렵다. 이렇듯 생태계를 위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투표하는 일은 또다시 지는 쪽에 서게 될 거라는 무력감과 굴욕감을 견디는 일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나는 하얗게 세어버린 마음으로 투표소에 갔다. 그날의 첫 투표자가 되기 위해 새벽빛과 함께 기상하는 할머니들의 반짝이는 눈을 생각하면 신기했다. 나와 다른 선택을 내리는 사람들일지라도,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책임감만큼은 부러웠다.
그런데 장혜영을 생각하면 그 할머니들의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다. 발달장애인 동생과의 일상을 전하던 ‘생각많은 둘째언니’가 ‘이웃집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나는 생소한 기분을 느꼈다. 우리 ‘곁에’ 있겠다는 진보 정당들의 약속에 지쳐갈 때쯤, 장혜영이 우리 ‘사이’에서 나타난 것이다. 시설이 아니라 집에서 동생과 함께 사는 삶, 그와 다투고 노래를 만들고 커피를 마시고 장을 보러 가는 삶, 착해서가 아니라 더 행복하고 자유롭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삶. 나도 이입할 수 있는 아주 말랑하고 연약한 삶 속에서 건져 올리는 법안을 기대하는 마음이 바로 투표소에 가는 마음이라면, 그렇다면 나도 새벽에 일어나 볼 수 있지 않을까. 마포에 살 걸 그랬다고 아쉬워한다. 장혜영에게 표를 주기 위해서.
마포을에 출마한 장혜영의 슬로건은 ‘내 삶을 지키는 정치’다. 나는 장혜영이 지키려는 ‘내 삶’들 속에 장혜영의 삶이 있기를 바란다. 장혜영이 장혜영의 삶을 위해 투쟁하는 방식은 내 삶까지 나아지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9일 마포 주민들이 주최한 추가 소각장 토론회에서, 마포 말고 서울의 무인도에 소각장을 짓는 대안을 제시한 한 주민에게 패널인 장혜영은 이렇게 답했다. 서울시가 밀어붙이려는 매립 대 소각의 프레임 속에서 소각장 문제는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다고,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하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지 않으면 이 문제는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라고. 어떻게 하면 추가 소각장이 필요하지 않도록 쓰레기 자체를 줄일 수 있을까? 질문의 틀을 바꾸면 이것이 특별히 마포에서만 간절한 현안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마포를 위한 정치란 마포만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고 말하기. 그게 장혜영의 방식이다. 나를 위해서라도 나만을 위해 싸우지는 않는 방식. 전국의 노동자들을 위해,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위해, 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를 위해, 발달장애인을 위해, 언니랑 결혼하고 싶은 모두를 위해, 전세 사기 피해자를 위해, 절멸을 목전에 둔 생명들을 위해 싸우는 방식. 그런 방식으로만 우리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낡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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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서울 서대문에서 태어났다. 봉고 차를 타고 전국을 떠돌다가 강원도 평창에서 긴 시간 자랐다. 미학을 전공했으나 졸업 후에는 예술의 언저리에서만 서성였다. 2021년부터 ‘무늬글방’을 열어 쓰고 읽고 말하는 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2023년에 활동가들을 초대해 식탁에서 나눈 대화를 담은 첫 책 《엄살원》을 함께 썼다. 가끔 연극을 한다. 우스운 것은 무대에서, 슬픈 것은 글에서 다룬다. 그러나 우스운 것은 대개 슬프다고 생각한다. 정상성의 틈새, 제도의 사각지대로 숨어드는 섹슈얼리티 이야기에 이끌린다. 존재보다는 존재 아닌 것들의, 주체보다는 비체의, 말보다는 소리를 내는 것들의 연대를 독학하는 데 시간을 쓴다. 주력 상품은 우정과 관점. 얼룩개 무늬와 함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