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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칼럼] 방생할 물고기 팝니다

이소연의 소비냐 존재냐 -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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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을 하는 게 아니라, 선행을 소비한다. 수요와 공급이 직조해 낸 생과 죽음의 경계, 그 어스름하고도 선명한 경계선을 자유롭게 오가는 유일한 수단은 돈이다. (2024.03.08)


기후위기 시대, 소비와 소유를 넘어 존재하는 법을 고민하는
이소연 에디터의 에세이. 격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pexels


물 만난 물고기라는 말은 어쩐지 싫었다. 필드를 뛰며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공기 찾은 인간 같다’고 감탄하지 않으니까. 그런 사이코패스 같은 표현이 또 어디 있을까. 물고기는 물을 만날 게 아니라, 원래 물에 있어야 했다. 자신이 살던 곳에 무사히 돌아가는 것만으로 박수받는 것만큼 모진 생도 없을 것이다.

3월 3일, 수십 명이 바다를 향해 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바닷가에 멈춰 섰다. 슬며시 다가가 무슨 절을 하는 것이냐 물으니, 물고기를 놓아주는 행사라며 설명이 이어졌다. “방생하는 거예요. 생명 살리고 복 돌아오라고.” “물고기는 어디서 나서 방생하는 거예요?” “죽을 뻔한 생명을 구해오는 거예요.” 어디 물고기들이 도로 한 가운데라도 걸어 다닌단 말인가. 죽을 뻔한 물고기 생명을 어디서 구해온다는 거지.

의아함은 마른 양손을 모아 싹싹 비벼가며 간절히도 염원하는 사람들을 지나 도로를 건넜을 때 해소됐다. 한 횟집의 팻말이 바닷바람에 대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방생용 고기 팝니다. 너털웃음을 선보이는 사장님은 가게를 기웃거리는 손님에게 유쾌하게 이야기를 건네며 수조의 물고기를 건져냈다 담갔다를 반복했다. 그 펄떡이는 생동에 감탄하라는 듯. 이내 붙잡힌 물고기는 아가미 깊숙이 칼을 찔리는 횟감이 될까, 몸이 겨우 잠길 정도의 물과 함께 비닐봉지에 담겨 바닷가로 향하는 방생용 고기가 될까. 그 운명(과 각각의 가격)이 궁금했다.

인터넷에 방생을 검색해 보니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방생하는 법’에 대한 글이 올라와 있었다. 수협 공판장에서 경매에 참여하면 그 어디서 구매하는 것보다 싼 값에 방생할 수 있다는 ‘꿀팁’도 공유됐다.

누군가는 바닷속 모래까지 긁어내 물고기를 잡고, 누군가는 그중 ‘상품성’ 떨어지는 물고기를 방생용으로 판매한다. 또 누군가는 그걸 사서 바다로 돌려보낸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물고기를 살리기 위해 돈까지 내는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겠냐마는, 물고기를 횟집 수족관에 가둬두고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게 만든 사람에게 돈을 주고 ‘방생용 물고기’를 사 가는 것은, 도로를 걸어가는 물고기를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앞뒤가 맞지 않고 괴이하다. 선행을 하는 게 아니라, 선행을 소비한다. 수요와 공급이 직조해 낸 생과 죽음의 경계, 그 어스름하고도 선명한 경계선을 자유롭게 오가는 유일한 수단은 돈이다.

기부금을 받으려는 자선 단체들은 강남 한복판에 ‘도를 아시나요’ 혹은 ‘마스크팩 공짜로 드립니다’ 보다 더 잦은 빈도로 출몰한다. 어리숙해 보이는 사람에게 동그라미 스티커를 들이밀며 다가가지만, “돈이 없어 죄송해요”라는 대답에는 금세 흥미를 잃고 멀어진다. “신용카드 결제도 되고, 계좌이체, 가상 계좌이체, 휴대폰 결제까지 가능해요”라고 설명하는 반짝이는 눈동자와, 망설이는 이를 내려다보는 찰나의 차디찬 시선. 좋은 일과 좋아 보이는 일의 경계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받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더 중요해진 기부와 선행. 가둬두고 판매하는 방생용 물고기. ‘그래도 이 정도면 됐지’와 ‘분명 무언가 잘못됐는데’ 사이의 어딘가, 찝찝한 뿌듯함.

팔리는 선행에 씁쓸해할 여유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방생 기도문이 퍼지던 바닷가 근처 횟집들은 그마저도 저녁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를 찾았을 것이다. 인자한 웃음으로 방생용 고기를 내어주던 사장님은 횟감용 고기로 변해 버린 물고기 목을 단번에 내처 댕강 썰어낼 것이다. 동그라미 스티커를 붙이지 않고 강남대로를 빠져나간 직장인은 ‘시발비용’을 태워 가며 텅 빈 쇼핑백을 둘러맬 것이다.

하지만 잘 팔리는 ‘선행 매출’에 마냥 좋은 게 좋은 것이라 박수 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는 어깨가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나눔 경매 피켓을 자랑스럽게 치켜들고, 또 누군가는 선행한 치킨집에 돈쭐을 내주겠다며 배달 주문 버튼을 누르겠지만 이 모든 ‘좋은 소비의 소비’ 아래 우리 삶은 어쩐지 조금도 더 나아지지가 않는다. 죽음을 앞둔 것들을 도무지 살릴 수가 없다.

모든 것을 소비할 수 있는 시대. 가치, 공덕, 선행마저 돈으로 거래되는 시대. 깨끗하게 닦인 선한 길, 그 완벽한 자기 위로의 서늘함을 지워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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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소연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자)

싼 가격에 ‘득템’하는 재미에 푹 빠져 기쁘나 슬프나 옷을 사다, 2019년부터 새 옷을 사지 않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미디어 스타트업 뉴닉에서 3년간 에디터로 일하며 기후위기, 환경, 포스트팬데믹 뉴노멀에 대한 글을 썼다. 바닷속과 바닷가의 쓰레기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 코리아 활동가가 됐고,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바다 깊은 곳에 버려진 폐어구를 수거하는 정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전환 매거진 [바람과물]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릿터] [코스모폴리탄] [1.5도씨매거진] 등 다수의 매체에 기후위기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2019년 아산정책연구원 영펠로로 선발돼 워싱턴에서 미국의 분리배출 및 폐기물 정책 디자인을 연구했고, 2020년 제2회 아야프(아시아 청년 액티비스트 리서처 펠로십)에서 국내 재활용 정책 및 현황을 연구했다. 그 밖에 스브스뉴스 「뉴띵」, 모비딕 「밀레니얼 연구소」, EBS FM 「전효성의 공존일기」, KBS 라디오 환경의 날 특집 같은 예능·교양 콘텐츠에 출연하거나 환경 교육 및 특강을 진행하는 등 일상적인 방식으로 기후위기, 그린워싱, 패스트패션의 허와 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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