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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랑 칼럼] 김혜자, 윤여정, 나문희
윤아랑의 써야지 뭐 어떡해 12편
이따금, 순전히 어떤 배우 한 명 때문에 그가 출연한 연극이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나도 그렇고 아마 당신도 그럴 것이다. (2024.03.08)
이따금, 순전히 어떤 배우 한 명 때문에 그가 출연한 연극이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나도 그렇고 아마 당신도 그럴 것이다. 이런 이끌림의 정동은 (팬덤이라는 중요한 요소를 짐짓 무시하고 말하자면) 아마도 크게 세 가지 경우로 나뉠 텐데, 첫 번째는 작품을 고르는 배우의 안목을 신뢰할 때이고, 두 번째는 배우의 외모가 취향일 때이며, 세 번째는 배우의 퍼포먼스를 감상하고자 할 때이다. 오늘은 이 중에서 세 번째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금방 ‘연기’ 대신 굳이 ‘퍼포먼스’라고 말한 건, 우리가 배우에게서 기대하는 게 종종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실현하는 것으로서 연기에 포괄되지 않는 다양한 몸짓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배우 김혜자와 작가 노희경의 일화를 한 번 예시로 들어보자.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게스트로 출연했던 김혜자에 따르면, <우리들의 블루스>의 간단한 첫 대본 리딩 직후 노희경이 그에게 이런 쓴소리를 했단다. “선생님, 그 엄마를 그렇게 사랑스럽게 하면 어떡해요? 그러면 누가 선생님을 또 캐스팅하겠어요?” 처음엔 약간 욱할 정도로 황당했던 김혜자였으나, 나중엔 자신이 맡은 “기구한 여자” 강옥동을 연기하는 데 있어 이 말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나타나는 그의 이색적으로 무뚝뚝한 모습을 보면 과연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한데 이후 김혜자가 노희경에게 저 말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자, 이번엔 노희경이 이렇게 얘기했단다. “선생님이 근데 아무리 아무리 내가 모질게 얘기했어도, 선생님 천성은 어쩔 수 없었어요. 그래서 (…) 그 여자가 동정을 받았지, 내가 하라는 대로 진짜 그렇게 악바리로만 했으면 안 될 뻔했어요.” 흔히 배우는 ‘극 중 등장인물로 분장하여 연기를 선보이는 자’라고들 하지만, 이 일화는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는 배우의 다른 측면을 슬며시 일깨워준다. 자신과 배역이 뒤섞인 상태를 한시적으로 경험하는 자, 그럼으로써 자신의 신체가 지닌 필연적인 한계 속에 잠재된 가능성을 (연기를 포함한) 퍼포먼스로써 이끌어내는 자. 달리 말해 배역을 경유해 ‘가능했던’ 자신을 그리고 자신을 경유해 ‘가능한’ 배역을 발굴해야 하는 자.
이 일화의 주인공인 김혜자는 어떨까. 나는 그가 항상 미묘한 침묵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고 느낀다. 다만 이때의 침묵이란 말을 하지 않는 순간이 아니라 말이 이루어지지 않는 순간을 이르는데, <장미와 콩나물>이나 <엄마가 뿔났다>에서처럼 수다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할 때에도, 혹은 <사랑이 뭐길래>나 <눈이 부시게>에서처럼 몹시 표현적인 연기를 할 때에도, 그는 엄청난 비밀이나 속내를 남들에게 조금씩 감춘 채 고통받고 인내하는 것처럼 보이곤 하는 것이다. 가련한 음색 때문일까, 아니면 묘한 무표정 때문일까, 배우로서 김혜자는 자꾸만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이 얼굴이나 목소리나 제스쳐가 표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 것 같다는 의구심. 그의 몇 안 되는 영화 출연작 중 제일 유명한 것들이 하필 그런 의구심의 ‘외설적’ 판본을 가져가는 <만추>와 <마더>란 사실은 아무래도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요컨대, 김혜자는 말 만으론 말이 되지 않는 혼탁한 세계를 더듬도록 우리를 유도한다.
한편 윤여정은 그 반대다. <죽여주는 여자>에서도 볼 수 있듯, 그는 한참 입을 다물고 있을 때에도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에겐 어떤 비밀도 속내도 끊임없는 물줄기로 터져 나오는 듯하다. 하나 대화 장면마저 독백으로 만들어버리는 흔한 배우들처럼 배타적인 태도는 또 아니어서, 윤여정의 그런 성질은 우리에게 진솔함과 당당함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가 가련함을 연기할 때조차 애절하기 보다는 강력하게 보이는 건 그 때문인 게다. <윤식당>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이미지가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배우로서 활동할 때도 이를 소급해 받아들이는 걸까? 하지만 김기영이나 임상수와의 긴밀한 협업을 생각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맹렬한 가련함’이란 표현은 물론 형용모순에 가깝겠으나, 윤여정에게 있어선 충분히 가능한 표현이 될 테다. 이를 두고 외침의 퍼포먼스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문희는 어떤가? 내 또래의 많은 이들에겐 그가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의 코믹한 역할로 보통 각인되어 있겠으나, 내게는 어렸을 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나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기진맥진한 얼굴로 각인되어 있다. 어마어마한 책임감 속에서 문득 비치는 피로와 고독의 얼굴. 거기엔 다른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할 여유조차 없는 듯하다. 그 점에서, 배우로서 나문희는 침묵이나 외침과는 관련이 없다. 그의 퍼포먼스는 기진(氣盡)에 더 가깝다. 육체적 혹은 정서적 기진이 아니라 어떤 운명적인 기진. 혹은 운명을 감당한 결과로써 기진. 그래서 나문희는 어떤 작품에 어떤 역할로 나와도 (적어도 내게는) 너무나 애처롭다는 느낌을 준다. (심지어 나는 그 유명한 “호박 고구마”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안타까움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물론 그에게 애처로운 역할이 많이 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하나 아쉽게도, 그의 퍼포먼스를 정말 충실하게 활용한 영화는 아직 만들어진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것이 그의 팬으로선 참 아쉽고 또 아쉽다.
당연히 눈치챘겠지만, 나는 여기서 여성 노인 배우들만을 얘기했다. 이 세 배우를 여기에 거론한 건 이들이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 함께 주연으로 출연했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나이 든 여성 배우들에게서 이끌림의 정동을 자주 경험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이들을 유별나게 좋아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나문희가 (김영옥과 박근형과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 <소풍>이 소소하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나문희의 팬을 자처하면서도 아직 이 영화를 못 본 건,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결국 핑계에 불과할 것 같다. 나는 순전히 나문희의 퍼포먼스가 보고파 그의 영화 출연작 대부분을 개봉 당시에 보곤 했다. 그리고 아마도, 이 글이 게재되고 얼마 안 있어 혼자 <소풍>을 보러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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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을 주로 다루며, 주체성과 현실 감각을 문제 삼는 문화비평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2022),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공저, 2023), 『악인의 서사』(공저, 2023)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