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예스 여성의 날 특집 기획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세상’
욕망을 숨기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여성들은 선입견을 벗어나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소설, 영화, 과학,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형성을 부수고 다채로운 욕망을 보여주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근대 여성 작가와 현재의 여성 작가가 만나면 어떤 대화가 이루어질까? ‘소설, 잇다’는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소설을 한 권에 담은 시리즈다. 남성 작가에 비해 조명되지 않은 근대 여성 작가를 발굴하여 작품 3편을 싣고, 그에 응답하듯 현대 여성 작가의 작품과 평론가의 해설을 연결했다. 백신애와 최진영, 지하련과 임솔아, 이선희와 천희란. 마치 대화를 나눈 듯, 닮아 있는 두 여성 작가를 짝지운 건 편집자의 몫이다. 섬세한 기획으로 한국 문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황민지 편집자를 서면으로 만났다.
‘소설, 잇다’는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소설을 한 권에 담은 시리즈입니다. 시리즈를 기획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소설, 잇다’는 근대에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나갔으나 충분히 회자되지 못했던 대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근대 여성 작가들은 여성적/비여성적이라는 성별의 잣대로 양면적인 평가를 받아왔지만, 이들의 작품은 이 두 가지 측면을 떠나 다양한 여성들의 다양한 욕망을 그려내는 작품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따라서 ‘소설, 잇다’는 당대의 획일적인 비평으로 살아나지 못했던 해당 작품들의 의의를 다시 살리고 비슷한 결을 지닌 현대 소설가들을 매치하여 문학적 의미를 살릴 뿐만 아니라 읽는 재미까지 더하고자 했습니다. 이전에도 몇몇 출판사에서 근대 여성 문학 작품들이 소개되어 왔으나 현대의 독자들에게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지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대 여성 작가는 남성 작가에 비해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과거를 살아간 여성들의 글을 다시 읽고 조명하는 것은 어떤 작업이었나요? 근대 여성 작가를 선정하고 3편의 작품을 고르는 과정이 궁금했습니다.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등의 이름과 작품은 알지만 백신애, 지하련, 이선희 등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제도 교육을 통해서도 근대 여성 작가들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놀라운 것은 무려 백년 전의 이야기인데도 과거를 살아간 여성들의 고민이 현재와도 별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작업을 조명한다는 건 비단 과거에만 국한되는 작업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 작가들의 시각에서 지금의 세계를 바라본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 그들이 던졌던 의문들이 현대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근대 여성 작가와 작품은 기출간된 선집 및 전집 혹은 평론들을 검토하여 선별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1900년 전후로 태어나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주로 활동하고,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가들로 구성했습니다. 대상 작품의 연도는 1차적으로 해방 전으로 제한했습니다. 신여성의 탄생과 맞물리고, 일제의 파시즘 및 근대화와 민족주의 등 다양한 가치가 소용돌이치는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근대 작품은 대표성, 의의와 가치, 분량 등을 두루 살펴 수록했습니다만, 반드시 단편인 것만은 아닙니다. 작가에 따라서 단편과 중편, 장편소설 등을 실었는데, 가령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에서는 백신애의 단편이, 『백룸』에서는 이선희의 장편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에 되짚어볼 만한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이라면 장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하게 수록하고자 했습니다.
‘소설, 잇다’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두 여성의 세계관과 문제의식을 엮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를 짝 지우는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섭외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현재 한국문학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천착하는 주제와 작품 분위기 등을 고려하여 근대 여성 작가의 단편과 매치하고, 현대 작가의 손에 의해 재탄생한 작품과 함께 읽도록 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한 목표였습니다. 해당 작품을 해석하여 의의를 살리는 한편, 시대상의 차이는 인정하고 자유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재창조에도 의미를 두었고요. 현대 작가 작품들을 받아보고 나니, 대체로 근대와 현대의 두 작가가 서로 무척 닮아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시리즈는 두 작가와 더불어, 해설을 쓰는 평론가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당대에 올바른 비평을 받을 수 없었던 근대 여성 문학을 현재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당시 그들이 제기했던 문제들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면면들을 새로운 논의의 장으로 끌어오는 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나아가서는 이러한 지점들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까지 가닿으리라 생각했고요. 작가, 평론가, 독자 등이 함께 참여하여 다시 읽고, 새롭게 창조하고, 의미를 서로 나누는 긴밀한 연쇄를 이룰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작가들은 근대 여성 작가의 작품을 직접 읽고, 거기에 응답하듯 자신만의 작품을 썼는데요. 편집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소설, 잇다’에서는 마치 근대 작가, 현대 작가, 평론가의 글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 말에 크게 공감했는데요, 작가들이 응답하듯 자신만의 작품을 썼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령 최진영 작가는 백신애 작가의 주된 주제인 사랑을 다루면서, 현대의 사랑이란 좀 더 이해받고 이해할 수 있는 여성 간의 사랑으로밖에 상상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임솔아 작가는 지하련 작가의 소설 속 문장을 제목으로 빌려 오고, 지하련 작가의 작품들에 나타난 인물들을 참조하여 ‘약간 다르고 미묘하게 같은’ 현대 인물들로 작품 안에 녹여냈습니다.
천희란 작가는 세태 소설을 쓰는 이선희 작가의 틀을 가져와 사회 이슈를 다루었지만, 내용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리라이팅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반면 박솔뫼 작가는 김말봉 작가의 소설 뒷이야기를 이어 썼는데요, 김말봉 작가가 지나갔을 과거와, 그가 품었을 미래가 현재의 시공간과 나란히 놓이는 새로운 감각을 던져줍니다. 편집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기보다는 이토록 다양한 방식으로 근대 여성 작가에 대한 해석과 재창조가 이뤄진다는 점에 늘 놀라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소설, 잇다’ 시리즈가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요? 총 10권의 시리즈를 계획 중이라고 하셨는데, 향후 출간 계획도 궁금합니다.
근대 여성 작가들은 여성에 대한 억압과 속박이 당연시되던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찾는 일에 골몰했고, 글을 통해 어떻게든 현실을 돌파해 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소설, 잇다’를 통해 그들이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 그들이 좌절하지 않고 계속 자기를 증명해 나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지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은 또 하나의 지금 이 세상입니다. 백 년의 시간을 잇는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의 만남을 통해서 이들의 생각과 마음은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 우리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근간은 과연 변화될 수 있을지 곰곰이 들여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김명순과 박민정, 박화성과 박서련, 강경애와 한유주, 나혜석과 백수린 작가의 만남 등을 준비 중인데요, 향후 또 다른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를 선보일 가능성도 열어두고 싶습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김윤주
좋은 책, 좋은 사람과 만날 때 가장 즐겁습니다. diotima1016@yes24.com
huyen1809
2024.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