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여성의 날] 죄를 빌고 용서를 짓네 벌하고 사라지는 이 있네 - 현호정 소설가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세상 - 현호정 소설가
‘당신은 저에게 벌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에게 반드시 용서할 것입니다. 그게 제가 당신에게 주는 죄입니다. 복수는 쉽지 않을 겁니다.’ (2024.03.05)
채널예스 여성의 날 특집 기획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세상’
욕망을 숨기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여성들은 선입견을 벗어나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소설, 영화, 과학,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형성을 부수고 다채로운 욕망을 보여주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에게 죄짓고 일정 기간에 걸쳐 죗값 치르는 식으로 살았다. 손바닥만 한 하루에 갇혀 어떻게든 그를 돕는 데 전념하다, 돌연 머릿속에서 스스로 석방 결정이 나면 주저 없이 나가 다음 죄지을 자리를 찾았다. 그리 짠 시절이 이어져 내 인생이 됐다.
벌 받는 나야 괴로우니 그게 그 계절의 전부 같지만, 정작 상대방은 기억조차 못들 할 테다. 어쩌면 그 당시에도 내가 자기에게 뭔가 잘못해서 이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채로 왜 쟤는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나 의아했을 수 있다. 비웃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냥 내가 살기 위해 그랬을 뿐임을 이 지면을 빌어 밝힌다. 나는 삶을 이어갈 다른 방식이랄지 동력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역사적으로는 물론 개인사적으로도 오랜 풍화와 침식을 거쳐 이미
‘ 아야 .’
정도로 남아 있던 어느 날이었다.
이 훼손에 으뜸으로 기여한 첫 직장으로부터 야반도주하는 내가 뒷문을 열기 전 허겁지겁 브래지어 속에 뭔가를 쑤셔 넣는다. 감춘 패물은 ‘Why 대신 How를 찾는 요령’이었다. 굳이 하나하나 의미나 이유를 찾으려 애쓰지 말라는 것. 다만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것으로 족하다는 것. 아무도 딱히 할 말 없는데 원탁에 둘러앉은 주간 회의, 그냥 안 만드는 게 사는 쪽에도 심지어 파는 쪽에도 게다가 당연히 지구에도 이득인 신제품의 개발이 이럴진댄 삶이라고 뭐가 다를까. 내가 이 회사에 왜 다녀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대신 할부로 차를 하나 사라는 가르침이 있었으니─ 나는 얼굴도 모르는 타 부서 소나타 오너에게 모티브를 얻어 내 삶을 이어갈 죄의 융자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었다. 사소한 행정 실수에서 상대에게 큰 상처를 주는 사건, 전 지구적 재난과 역사적 비극에 이르기까지 나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안은 모두 차곡차곡 내 마음 속 죄의 명부에 기록되었다. ‘이 일을 어떻게든 해결할 때까지는 죽으면 안 돼.’삽시간에 나는 ‘살아야 하는 사람’에서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됐고 이 전환은 진정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세상의 모든 상처에서 내 혈흔을 발견하는 데에 얼마나 탁월하였나. 솜씨는 기적과 같아서 우리가 우주의 팽창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듯 나 또한 그 진행 양상을 더 이상 인지하지도 감각하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스스로 느끼기에 지상에서 가장 죄 많은 자가 됐다. 앞으로 벌 받을 날이 까마득해 도망치고 싶어졌다. 나는 내가 책임으로부터 도망칠 수도 있는 사람인지 미처 몰랐으나, 알고 보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거였다. 그것도 아주 능동적으로. 쉽게 말해 나는 예전보다 더 자주, 더 오래, 더 깊이, 나의 죽음을 생각했다.
유서를 쓰다 보니 차차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나쁘게 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조금 억울해지기 시작한 나는 유서 작성 프로그램을 한글에서 엑셀로 바꾸었다. 지금까지 나한테 잘못한 사람들을 기억의 저편에서 다 끌어올려 연도 내림차순으로 정렬. 그러다 보니 쉽게 복수가 가능해 보이는 건들이 눈에 띄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식으로 또 몇 년을 이어 살았다. 은혜든 원한이든 절대로 못 잊고 아무리 작아도 갚고야 만다는 사주를 타고난 탓인지. 머리가 좋은 편인 데다 기록 강박까지 있기 때문인지 이 죄와 벌의 목록은 또 하염없이 늘어났고 이제 나는 최소한 백 살까지 산 뒤에야 죽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됐다.
친구는 묻곤 했다.
“호정아,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그게 만수무강이랑 뭐가 달라?”
그러나 의지는 거친 때를 만나 삽시간에 꺾이기도 뽑히기도 하는 법이라, 지난 가을에는 또다시 사건을 겪은 뒤 친구에게 울면서 애걸복걸했다.
“친구들은 나를 사랑하니까 내가 모두 떠나 편히 쉬기를 바라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매 순간 고통을 느끼며 계속 살아있기를 원할까? 매분 매초 조금의 기쁨도 없이 괴로움으로 미쳐버릴 것 같은데 그럼에도 계속 살아있어 주기를 바랄까?”
그러자 친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기를
“어, 계속 고통스러워 주기를. 제발.”
기가 막혀 나는 눈물이 그치고, 그러자 친구는 울기 시작하던 그날의 더없이 미천한 삶과 사랑의 회전문. 나는 이 순간 누가 누구에게 나쁜 사람인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다며 사과한 사람이 반 바퀴 돌아 다시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듣는 설계. 그 안에 갇혀 죄수와 형리 역할을 바꿔 가며 빙빙 도는 게 놀이가 아니면 뭘까 하는 생각도 체념의 한숨처럼 배어 나왔다.
하지만 진실로 나는 내 삶이 누군가와 죄와 벌을 뒤집으며 노는 놀이에 그치지 않기를 원한다. 이 놀이는 웃음을 거의 유발하지 않으며 자칫하면 소중한 이를 매우 다치게 한다. 끝내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벌써 지쳤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러나 어떤 이가 깊게 빠진 놀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완전히 질릴 만큼 반복하는 것뿐이지 않을까. 이에 나는 죄와 벌을, 복수와 용서를 뒤바꾼 문장을 다시 몇 차례 적는다.
‘당신은 저에게 벌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에게 반드시 용서할 것입니다. 그게 제가 당신에게 주는 죄입니다. 복수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이때의 ‘당신’은 한 명일 수도 여럿일 수도 있지만 가상의 인물은 아니다. 언제나 내 손바닥 위에서 따뜻한 피부로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이 다 무슨 소용일까. 나는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안다.
“당신이 내게, 내가 당신에게 더 이상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당신이 내게, 내가 당신에게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임을 이해하나요. 당신이 내게, 내가 당신에게 저지른 나쁜 짓이 하나도 없다는 말은 우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난 적 없었다는 의미임을 이해하나요. 그리하여 용서는 제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악한 일이 되고 저는 이제 더없이 정결한 얼굴빛으로 아무도 없는 정면을 최초로 응시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이제 더없이 정결한 얼굴빛으로 아무도 없는 정면을 최초로 응시하기 시작한다.
(혹은 더없이 비참한 얼굴빛으로 모두의 얼굴을 내내 응시하고 있다.)
*필자 | 현호정 『단명소녀 투쟁기』 『고고의 구멍』, 『삼색도』 등을 썼다. 2020년 박지리문학상, 2023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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