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한없이 밑으로 떨어질 때 나를 받아주는 취미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81회)
몸을 움직여서 하는 취미가 심리적인 면에 보탬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운동을 취미로 삼을 때 엄두를 못 내면, 단체운동으로 먼저 시작해보는 것도 저는 좋을 것 같아요. (한자)
방구석 저 | 김영사
한자(황정은): 오늘 저희가 읽고 이야기 나눌 책은 『취미가 우리를 구해줄 거야』라는 책입니다. 그냥 님이 고르신 책이죠.
그냥: 네. 방구석 저자가 쓰고 그리고 김영사에서 나온 책입니다. ‘잘 하지 않아도 상관없고, 해야 할 필요가 없어도 상관없이, 그냥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 취미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죠. 그렇게 취미가 많아지고 혼자 즐겁게 하다 보면 나의 세상이 다채로워지고, 더 다양한 것들로 세상이 채워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책입니다. 그림 에세이고요.
방구석 저자는 인스타툰을 그리고 있는 작가이고 두 권의 독립 출판물을 냈습니다. 『구석구석 Paris』 『우울할 땐 귀여운 걸 보자』라는 책입니다.
『취미가 우리를 구해줄 거야』는 저자가 취미로 한 많은 일들을 종목별로 이야기하고 있죠. 그 중에는 식물 키우기, 달리기, 영화 보기, 지도 그리기, 수영도 있습니다. 책의 끝부분에 가면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저는 읽으면서 ‘정말 취미가 작가님을 구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구석 작가님은 공대생이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주변 어른들은 ‘너는 공부도 잘하는데 그림은 대학 가서 취미로 하면 되지’라고 했던 거죠. 그래서 ‘그래, 취미로 하면 되지’ 하고 공부 열심히 해서 성적에 맞춰서 대학에 갔어요. 학교를 다니다가 ‘그래, 내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그림이 있었지, 이제 취미로 할 시기야’ 하고 그림과 관련된 취미 활동을 합니다. 전시회도 많이 가고, 교양 강의도 많이 듣고, 미술관에서 스태프로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취미 활동을 열심히 하죠. 그러다가 졸업반이 되니까 걱정이 되는 거예요. 뭐 해서 먹고 살지? 어떡하지? 그러다가 피키캐스트 앱을 만나게 돼요. 피키캐스트를 보면서 ‘이런 콘텐츠 되게 재밌다, 나도 만들어 볼까?’ 하면서 콘텐츠 만드는 방법을 배워요. 촬영하고 편집하고 글도 쓰면서 콘텐츠를 만들고, 결국 그 콘텐츠로 피키캐스트의 취업에 성공합니다. 콘텐츠 에디터가 된 거예요. 그때 회사에서 만난 동료들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 꼭 빠지지 않는 주제가 영화였다고 하죠. 원래 그렇게까지 영화를 좋아하거나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동료들이 막 눈을 빛내면서 영화 이야기를 하는 걸 보고 ‘나도 영화를 좀 볼까?’ 하면서 또 파기 시작합니다. 독립영화관을 찾아 다니면서 독립 영화도 열심히 보고, 그러다가 자신의 감상을 그림으로 그려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그게 또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그래서 글도 곁들여 쓰다 보니 만화를 그리게 됐고, 그러다 지금에 이르게 됐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제가 되게 길게 이야기했지만 책에는 함축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담겨 있는 이야기인데요. 그걸 보고 저는 이 책의 제목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아, 취미가 구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구석 작가님은 다양한 활동을 할 때 비장하지가 않아요. 되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거든요. 책의 처음부터 그 면모가 드러나는데, 첫 장부터 저는 조금 해방감이 들었어요. 사전에서 취미의 정의를 찾아보면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보통 ‘제 취미는 이것이에요’라고 말하려고 하면, 먼저 자기검열을 하지 않습니까? 그걸 나의 취미라고 말해도 될까? 하고요. 왜냐하면 그렇게 말했을 때 상대방이 ‘그럼 ~을 잘하시겠네요?’라고 물어볼 수도 있는데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고, 이런 묘한 부담감이 있잖아요. 방구석 작가님도 그런 마음이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사전적 취미의 정의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거죠. 잘 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의 방법대로 따라 할 필요도 없고, 꼭 깊이 파고들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닫고 그 다음부터 가벼운 마음으로 많은 것들을 시도해본 거예요. 그러다 흥미가 떨어지면 그만두기도 하고, 내 방식대로 바꿔서 다시 해보기도 하고요. 그런 이야기들이 저한테도 묘하게 해방감을 줬어요.
말씀드렸다시피 끝부분에는 ‘취미로 삶이 구해진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그게 저한테는 응원이 됐어요. 만반의 대비를 하지 않고 조금 느슨하게 살아도 살아지는 삶이 있다는 것, 그런 일이 생긴다는 것의 증거이고 증명인 거예요. 그걸 보는 게 힘이 됐어요. 사실 이 책은 한두 시간이면 다 읽을 만한 가벼운 책인데 저는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단호박: 저는 이 책을 읽고 필연적으로 저희가 갖고 있는 취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냥 님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그냥: 사실 이 책에 관심을 갖고 고르게 된 이유는, 제가 요즘 취미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기 때문이에요. 마침 그 취미 활동을 방구석 작가님도 하셨더라고요. 왜, 좋아하는 게 생기면 그거에 대해서 누구랑 막 이야기를 하고 싶잖아요. 그런 마음에 반갑게 골랐던 책이었어요. 저는 요즘 수영하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단호박: 수영을 할 때 어떤 게 좋나요?
그냥: 일단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복잡한 나의 일들도 그렇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어요. 지금 당장 숨 쉬고 가라앉지 않고 물 먹지 않고 팔다리 젓는 일에만 집중해야 되기 때문에 복잡한 생각을 잊을 수가 있고요. 그리고 뭔가 안 되던 게 되니까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분명히 다리 젓는 것도 안 되고 팔 돌리기도 안 됐는데 어느 날 팔 돌리기가 되고, 25m 레인을 편도로 가는 동안 서너 번을 쉬었는데 오늘은 갑자기 한 번도 안 쉬고 가게 되고, 안 되던 게 되니까 되게 재밌습니다.
한자(황정은): 방구석 작가님이 그 요령으로 ‘힘을 빼는 것’을 말씀하기도 했죠.
그냥: 맞습니다. 저는 ‘힘 빼기’도 공감하지만 ‘까짓 것’에 너무 공감했어요. 예전에 제가 두 분한테도 난생 처음으로 물에 떴다고 막 흥분해서 이야기했었잖아요. 그때 딱 그 마음이었거든요. ‘사람들은 몸에 힘을 빼야 뜬다는데 나는 물에 빠질까 봐 너무 무서워서 몸에 힘을 못 빼. 그런데, 해보자! 죽기야 하겠어? 그냥 해보자’ 그렇게 생각했는데 정말 된 거거든요. ‘까짓 것 정신’을 요즘 많이 생각하면서 배웁니다.
단호박: 힘 빼기가 힘들죠. 저는 제 인생 전반에 있어서 힘 빼기가 안 돼서 그게 고민입니다.
그냥: 너무 의외인데요? 저는 단호박 님 볼 때 항상 긴장되어 있지 않고 몰랑몰랑한 상태인 것처럼 느끼거든요. 그런데 힘 빼기가 안 되신다니 놀라운 이야기네요.
단호박: 취미를 자꾸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어떤 종류의 활동을 했을 때 효능감이 느껴졌을 때 사람들이 즐겁잖아요. 그런데 그 효능감을 위해서 자꾸 힘이 들어가는 거예요. ‘효능감을 느끼는 건 즐거워, 그러면 효능감을 더 많이 느껴야지’ 그러면 힘이 들어가요.
한자 님은 어떠십니까? 뭔가 요새 즐거워하시는 게 있나요?
한자(황정은): 많죠.
그냥: 저번에 한자 님이 ‘전 취미가 없는데요’라고 하셔서 걱정했는데…
한자(황정은): 그게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달라진 점이기도 한데, 이 책을 처음에 그냥 님이 읽자고 했을 때는 ‘난 정말 할 얘기가 없다, 난 취미랄 게 없는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책을 읽는 동안에 ‘뭔가를 꾸준히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취미’라는 어떤 고정관념을 내가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따지면 저는 단타성 단발성 취미가 대단히 많은 사람인 거예요. 생각을 해보니까.
그냥 님이 수영 이야기 하셨는데 저도 수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수영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게 재미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물에 뜨는 게 재미있었거든요. 그래서 자유 시간에 물에 들어가서 몸에 힘을 빼고 그냥 둥둥 떠 있다가 호각 울리면서 안전요원 선생님 오셔가지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랬는데, (웃음) 그게 저는 즐거웠거든요. 물에 들어갔을 땐 그게 취미인 것 같고.
지금은 이어지고 있지 않은 잠깐 잠깐 했던 취미들이 있는데, 끝난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가야금이라든지 방송 댄스도 있고요. 언젠가 다시 이어질 수 있는 그때그때 취미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뭘 가만히 바라보는 거 되게 좋아합니다. 그래서 응시가 취미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고, 근래 발견한 취미로는 읽기. 책 읽기가 제가 근래 발견한 취미인 것 같아요.
단호박: 재발견이군요.
한자(황정은): 아니에요. 근래에 그것이 취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퍼센트가 좀 있는데, 근래에 책을 읽는다는 것이 취미의 영역 쪽으로 조금 많이 이동을 한 것 같아요. 퍼센트로 따졌을 때. 예전에는… 읽기라는 게 취미에서 시작된 뭔가가 아니었거든요. 그냥 이걸 하지 않으면 뭔가 죽을 것 같다, 죽는다의 영역이라서. 읽기 쓰기가 다 그러다 보니까 취미라고 하기에는 좀 맞지 않는 그런 영역의 무언가였는데, 최근에는 조금 더 즐기는 마음으로 접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단호박: 저희가 하는 모든 활동 중에 어떤 것을 취미로 하고 어떤 것을 취미가 아닌 것으로 나눌 것인가 생각을 좀 했었는데, 저는 나름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는 정립을 했거든요. 돈을 받으면 프로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같은 식으로 생각하면 돈을 안 받으면 그 활동은 취미가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을 일단 했고요.
한자(황정은): 그렇습니까?
단호박: 그렇게 얘기를 하기에는 좀 너무 취미한테 너무한 일인 것 같아서… (웃음)
한자(황정은): 대단히 자본주의적 관점이거든요. (웃음)
단호박: 그렇습니다. 마음이 좀 그래요. (웃음) 그래서 취미는 명확히 나눌 수 있는 정의는 없는 것 같고요. 대신 책을 읽으면서 나름의 구분을 해봤어요.
방구석 저자가 취미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 활동에는 무엇이 있는가, 생각을 했을 때 저는 네 가지로 나눴거든요. 무언가를 경험하는 것이 있을 것 같고요. 여행이라든지 아니면 모든 종류의 콘텐츠를 읽거나 듣거나 보는 일이 다 ‘경험하기’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독서를 한다든지 영화를 본다든지 하는 게 무언가를 경험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고요. 혹은 무언가를 배우는 일일 때, 재즈 피아노를 배운다든가 수영을 배운다든가 누군가에게 이걸 하는 방법을 배우고 내가 ‘이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이렇게 할 때 되는구나’라는 걸 느끼는 효능감의 순간이 배움이라고 생각을 했고요. 스스로도 재밌다고 생각한 분류는 무언가를 가꾸고 돌보는 것도 취미의 영역에 들어갈 수가 있더라고요. 그게 식물을 가꾸는 것도 될 수 있지만 본인 스스로 가꾸고 돌보는 일도 포함이 되는 거예요. 수염 그루밍도 어떻게 보면 취미가 될 수 있는 거죠. 수염을 얼마나 예쁘게 혹은 어떤 모양으로 다듬는가, 면도기를 무엇을 쓸 것인가, 거품은 어떻게 할 것인가, 거품의 쫀쫀함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영역도 무언가 가꾸고 돌보는 영역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어떤 것들은 이 분류가 다 중복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누군가를 가꾸고 돌볼 때 그 누군가가 내 자신이 된다면 운동도 내 자신을 가꾸는 방식이 될 수 있잖아요. 수영도 나 자신을 돌보는 방법이 될 수 있고, 배우는 것과 동시에 나를 돌보는 일인 거죠. 그런 겹침이 생긴다고 생각을 했고요.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 음악을 직접 쳐서 만든다든가 그림을 그린다든지 만화를 그린다든지 하는 일도 취미의 분류에 속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저도 나름 취미가 꽤 많더라고요. 콘텐츠 감상에 있어서는, 이것이 어떤 도움이 되는가 나에게 어떤 자양분이 되는가라는 생각을 안 하고, 조금 더 쾌의 영역에 가깝게 그냥 즐거우려고 감상하는 영역은 웹소설이더라고요. 다른 책은 직접 생각을 하든 무의식적으로든 ‘나중에 이것을 어디에 써먹을 일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을 자꾸 하게 되거든요. 제가 책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영화를 보더라도 ‘나중에 이 영화의 줄거리를 나의 글의 소재로 삼아야겠다’라는 생각을 알게 모르게 이상하게 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리고 영화에 배경 음악이 깔리면 저도 모르게 ‘이 음악은 어떤 느낌이니까, 이것을 나중에 써먹어야지’ 이런 느낌을 계속 받게 된단 말이죠. 웹소설은 그나마 모든 콘텐츠 중에서 제가 ‘어딘가에 써먹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제일 적게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최근에 제가 즐거워하는 OTT 예능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요. <크라임씬>이라고, 최근 제 즐거움의 영역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최근에 또 ‘경험하기’ 쪽으로 본다면 저는 새 모이 주기가 아닐까 싶은데, 새를 구경하는 것이 재밌습니다. 약간 권력 암투 같은 느낌이 있어요. 새들 간의 권력관계의 지형도 파악, 이런 느낌? 멧비둘기가 오기 시작했는데, 비둘기가 다른 새에 비해서 몸집이 크거든요. 그래서 몸집으로 다른 새들을 좀 압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 새들이 수가 많아지면 약간 혁명을 일으켜요. 그리고 비둘기 대 직박구리 하면 직박구리가 못 이기는데, 비둘기 한 마리 대 직박구리 두 마리 하면 직박구리가 또 혁명을 일으키고. 가끔 또 재밌는 게, 박새는 절대 어느 새도 이기지 못하는데 다른 애들이 싸우고 있을 동안 그냥 날아와서 (모이를) 물고 갑니다. 각자의 지형이 생기죠. 그런 걸 보는 게 요새 좀 즐겁습니다.
‘배우기용’으로 뭐가 있을까요? 제가 항상 얘기했던 피아노 배우기 같은 게 있을 것 같고요. 성악은 쾌의 영역이 너무 적어서 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분명 저에게 효능감을 주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데, 그 효능감을 받기 위해서 9는 안 즐겁고 1이 즐겁다 보니까, 즐거움의 영역이 줄어들수록 제가 힘들어져서 지금은 안 하고 있습니다. 재즈 댄스는 되게 빨리 늘었거든요. 선생님이 매번 칭찬을 해주셨어요. 저한테 모든 종류의 우쭈쭈와 효능감을 막 불어넣어주셨는데, 제가 선생님 안무 스타일이 별로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그래서 효능감을 받기는 하는데 그 효능이 저한테 별로 안 즐거워요. 그래서 일단은 쉬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갑자기 사교댄스로 가볼까 싶어가지고, 요즘 라인 댄스 같은 거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희 집 근처에서 사교댄스를 들을 생각하니까 어떤 분이 수업을 들으실지 몰라서… 파트너 댄스인데 그 파트너가 저랑 마음에 안 들면 진짜 골치 아파지거든요.
그냥: 저는 라틴댄스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진짜 오래 하고만 있는데, 저도 파트너 문제가 항상 마음에 좀 걸리는 거예요. 그래서 선뜻 가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한자(황정은): 그게 이번에 방구석 저자님의 책에서 제가 배운 태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저자는) 뭔가 하고 싶은 거, 재미를 느끼는 거, 재밌겠다 싶은 걸 많은 고민을 안 하고 그냥 해요. 그런 걸 보면서 ‘저렇게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냥: 방구석 작가님은 정말 그런 분이에요. 큰 걱정하지 않고 ‘재미있겠다, 해봐야지!’ 하는. 그게 이 분의 에너지인 것 같고, 저는 그 엄청 풍성한 호기심이 되게 부러웠어요. 이렇게 많은 것들에 ‘재밌겠다, 해보고 싶어!’라고 느끼고 선뜻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인 것 같아요.
한자(황정은): 저는 요즘에 식물 바라보는 게 정말 좋아요. 이것도 나의 취미이더라고요. 요즘에 입춘이 지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갑자기 집 안에 있는 다종다양한 식물들이 새싹을 내고 있어요. 너무너무 신기하게 딱 그때가 되니까 잎을 내서, 그거 바라보는 재미가 요즘 쏠쏠합니다.
그냥: 단톡방에 자랑도 하셨죠.
한자(황정은): 저희 홍콩 야자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자라고 있어요. 그때 제가 사진으로 보내준 아이들은 벌써 기존의 잎들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커졌어요. 놀랍지 않습니까?
그냥: 저는 이 책에서 식물 키우기에 관련된 이야기 중에 인상적인 게 되게 많았어요.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나하고 맞지 않는 환경에서는 성장하지 못한다’라는. 사람도 식물도. 그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 깊었고. 또 작가님이 키우시는 열대 식물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아이들이 그렇게 안 자라다가 오히려 작업실 안에서 습해서 곤란했던 공간에 옮겨놨더니 무성하게 자랐다는 거잖아요. 뭔가 감동이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여기는 좋은 환경이 아니야, 자라기에 지내기에 좋지 않아’라고 하는 환경에서 누군가는 잘 피어난다는 게 감동이었어요.
한자(황정은): 맞아요. 식물 기르는 이야기가 많이 심오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이 책이 정말 좋았던 게, 정말 많이 웃었어요.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도 그랬는데, 그것도 정확히 저랑 같은 경험이었거든요. 저는 달리기의 동기가 (방구석 저자와 달리) 하루키는 아니었어요. 그냥 집 근처에 달릴 수 있는 공원이 있었기 때문에 달리기를 시작을 했거든요. 또 오랜 로망이기도 했습니다. 조깅이나 마라톤이. 그래서 달리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운동을 안 하다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제일 처음 하기 쉬운 운동이 달리기예요. 그런데 사실 달리기는 운동을 전혀 하지 않다가 하기에는 굉장히 무리가 따르는 운동입니다. 근육이 많이 필요한 운동이고 자세도 굉장히 중요한 운동이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달리다가는 다쳐요. 그런데 저와 같은 기대와 과정을 이 분(방구석 저자)도 했더라고요. 이 분이 너무나 상쾌하게 ‘망설임 없이 달리다가 깨달았다. 지난 몇 년간 책상에만 앉아 있었던 몸뚱이는 달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하고 깨닫는 과정도 저랑 닮았고. (웃음) 그래도 이 분은 꾸준히 트랙에 섭니다. 매일 아침에 나가서 달리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얘기를 해요. 부지런하다고 스스로 우쭐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웃음) 여기에서 그림이 너무 귀엽고, 너무너무 재밌었고, 그러면서 (달리기에) 익숙해질 무렵에 이 분이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요. 달리기는 재밌지만 달리기와 영감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웃음) 그러면서 ‘대답해, 하루키’ 하고 원망하는 컷이 나오거든요. 이런 부분들이 너무너무 재미가 있었고 공감이 되면서, 또 방구석 저자의 페르소나가 무척 귀엽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거를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냥: 저는 요즘 수영에 대해서 생각을 엄청 많이 해서 ‘이 이야기를 정말 어디다가 마음 놓고 풀어놔야겠다’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거든요. 최근에는 이런 경험을 했어요. 너무 심란한 일이 있었는데, 한동안 그걸 머리에서 떨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제가 처음으로 25m 횡단에 성공을 한 거예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는 오늘을 그 기분 나쁜 일이 있었던 날로 기억하지 않고 처음으로 완주한 날로 기억할 거야.’ 그런 게 제가 요즘 취미활동을 하면서 즐거웠던 순간이에요.
한자(황정은): 맞아요. 취미에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한없이 떨어질 때 한 번씩 턱턱 걸려주고 받아주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단호박: 약간 재활의 경험 같기도 해요. 특히 신체를 쓰는 취미에 있어서는 그 전에 나에게 힘듦으로 남았던 게 몸으로 남게 되잖아요. 마음이 번잡해서일 수도 있고 정말 몸이 힘들어서일 수도 있는데, 몸이든 마음이든 어떤 식의 상처나 힘듦이나 스트레스가 몸으로 오게 된단 말이죠. 그런데 몸을 쓰는 취미를 하게 되면 그게 약간 재활이 되는 면이 있어요.
한자(황정은): 저 100% 공감해요. 여태까지 몸으로 나타난 신체적 증상들이 땀을 흘리면서 근육을 단련하는 과정에서, 물리적으로는 불쾌인데 그게 쾌로 전환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 대단히 마음이 괴로운 시기가 있었거든요. 그때 무게 운동을 좀 했어요. 바벨 운동을 하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마음이 다 부서져서 흩어진 것 같고, 그럴 때는 내 몸도 조각조각 나는 것 같고, 그런 물리적인 고통 신체적 증상으로도 나타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무게를 들려면 일단은 내 두 발바닥이 바닥에 단단히 붙어야 되거든요. 그래서 그날의 무게를 딱 들어 올렸을 때 무게 중심이 발바닥에 꼭 실려요. 그러면서 내 두 발바닥이 바닥을 꾹 눌리는 느낌이 있는데, 그게 정말 좋더라고요. 그 힘으로 버틴 시기가 있었어요. 정말 몸을 움직여서 하는 취미가 심리적인 면에 보탬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취미로 삼고자 하는 경우는 엄두를 못 내는 경우도 많잖아요. 수영이든 달리기든 말입니다. 그런 분들 같은 경우는 단체 운동으로 먼저 시작을 해보는 것도 저는 좋을 것 같아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서 선생님이 내 몸을 굴리는 대로 하라는 대로 옆 사람과 앞 사람이 하는 대로 굴리는, 그런 약간 몰아의 경험. 그런 재미가 있어요. 그리고 사람들 속에 섞여서 가끔 소리도 지를 수 있고. (웃음)
그냥: 역시 취미가 우리를 구해줄 겁니다.
오늘은 방구석 저자의 『취미가 우리를 구해줄 거야』를 함께 읽었습니다. 김영사에서 만든 책이고요.
한자(황정은): 다음에 저희가 같이 읽을 책은 제가 추천한 책입니다. 찰스 디킨스 원작이고요. 윤해준 번역가가 번역한 『올리버 트위스트』입니다. 이 책이 이번에 창비에서 출간이 됐어요.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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