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세상에는 케이크를 3등분으로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79회)
(33페이지에 실린) 그림을 딱 펼친 순간에, 이 아이들이 세상을 보고 듣는 방식이 애초에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한자) (2024.02.08)
미야구치 코지 저/부윤아 역/박찬선 감수 | 인플루엔셜
한자(황정은): 오늘 저희가 읽고 와서 이야기 나눌 책은 단호박 님이 고른 책입니다.
단호박: 맞습니다. 미야구치 코지 저자가 쓰고 부윤아 번역가가 옮기고 인플루엔셜에서 출간한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는 책인데요. 전반적으로 초록색인 표지에 분홍색으로 크레파스 같은 무언가로 선을 그린 느낌의 표지입니다. 한자 님이 처음에 ‘이 표지가 내가 기억하는 표지가 아닌 것 같다’라고 하셨는데,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 표지를 처음으로 본 거여서. 아마 그 전에 다른 판본으로 나왔었을 수도 있고요.
한자(황정은): 제가 57페이지에 나오는 그림으로 이 책을 기억을 하고 있었나 봐요.
단호박: 아, 맞아요. 이 그림이 굉장히 많이 인터넷에 돌아다녔었죠. 소년들이 그린 그림을 저자가 다시 그려서 책에 실은 건데요.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이라고 제목을 말씀드렸다시피 이 책에 ‘케이크를 똑같은 양으로 잘라봐라’라고 주문을 했을 때 굉장히 이상한 방식으로 케이크를 자른 그림이 하나 나옵니다.
이야기를 천천히 한번 해보도록 하죠. 미야구치 코지 저자는 아동정신과 의사인데요. 소년원 법무기관에서 일했다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공립 정신과 병원에서 아동정신과 의사로 근무를 했었고, 발달장애 아동이나 학대 피해 아동이나 등교 거부 아동, 사춘기 아이들을 진찰하고 진료했다고 합니다.
방금 전에 케이크 이미지가 나왔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저자가 충격을 받은 부분도 딱 그 부분이었죠. 소년원에 가서 아이들을 진찰하고 정신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는 건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검사를 거치는데 ‘케이크를 3명이서 똑같이 나눠 먹는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잘라봐라’라고 했더니 그 중에 몇 아이들이 일단 케이크의 원형을 절반으로 자르더래요. 그러고 나서 한참을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을 하다가 다시 절반으로 자른 걸 4분의 1로 자르고 나서 다시 멈춘 거죠. 그래서 아이가 실수를 했구나 하고 새로 원형의 그림을 주면서 ‘다시 잘라볼래?’라고 했을 때 또 똑같이 절반으로 일단 잘라놓고 다시 굳어진 모습을 보게 된 거예요. 표지에도 일부분 실려 있는 그림인데요. 57페이지에 있습니다. 첫 번째 그림을 보시면 일단 원형을 절반으로 갈라놓고 그 다음에 고민을 하다가 나머지 절반을 또 절반으로 가른 그림이 있고요. 두 번째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 번째 그림은 ‘그렇다면 케이크를 5명이서 똑같이 나눠 먹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되겠니?’라고 그랬더니 소년원에 있는 친구가 ‘그건 할 수 있어요’라고 하더니 자신 있게 수박에 줄을 긋는 것처럼 크게 4개의 선을 일직선으로 긋는 거죠. 그리고 한 친구는 케이크를 4등분 하더니 5명이서 어떻게 먹어야 될지 고민을 하다가 1/4 조각 중 하나에 금을 그어서 5개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 어느 것도 똑같이 나눠지지 않는 거죠. 미야구치 코지 저자는 그때 ‘이 아이들이 지금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뉘우친다거나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구나,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어그러져 있구나, 이 방식대로라면 이 친구들이 소년원에서 내가 정말 잘못을 했고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겠구나’라고 깨닫게 됐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이 문제가 여러 번 이야기에 오르고 있죠. 경계선 지능 장애라고 해서, 기존에 ‘IQ가 몇 이하라면 이것은 장애입니다’라고 판별하는 기준이 있는데 70 이하가 장애로 판정이 되고 있고요. 70~84 정도에 해당하는 부분을 경계선 지능 장애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같은 경우에는 장애 판정이 안 되고 장애 관련 복지라든지 그런 것을 얻지 못하고 다른 말로 하자면 ‘느린 학습자’라고 지금은 불리고 있는데요. 70~84의 경계에 있는 아이들에게 상대적으로 학습의 기회가 보장되지 않고 학습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중도 탈락을 하게 된다거나 그런 경우가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미야구치 코지 저자의 경우에는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경계선 지능 장애에 관해서는 소년원에 간 친구들이 아니더라도 사회 전반적으로 저희가 이야기를 해봐야 될 주제라고 생각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냥: 저는 케이크 그림이 나오기 전에 엄청 충격을 받은 그림이 있었는데, 33쪽에 나와요. 저자가 소년원에 근무를 시작하면서 만났던, 굉장히 거칠게 이야기하면 사건 사고를 많이 일으키는 재소자 소년의 인지능력을 검사하기 위해서 ‘이 그림을 보고 따라 그려봐’라고 말했던 거죠. 그런데 따라 그리는 건데도 결과물이 정말 달라요. 33페이지에 예시였던 그림과 실제로 소년이 그것을 따라서 그린 그림이 같이 실려 있는데, 이 한 페이지만으로 저는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가 똑같은 것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보고 파악하는 것’ 자체가 나와 다른 사람이 다를 수가 있고 그러면 그것을 파악한 결과인 ‘이해’ 즉 어떻게 이해했느냐도 다를 수 있다는 깨달음이 크게 왔어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깨달음과 충격이 계속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한자(황정은): 저도 그 그림이 상당히 충격이었어요. 저자도 그 그림을 보고서 충격을 받아서 직장을 아예 옮긴 거 아닙니까? 병원을 나와서 교정시설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된 건데, 초반부터 그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저자를 좀 믿을 수 있는 상태에서 글을 읽기 시작했어요. 이런 류의 글을 읽을 때 약간의 경계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하잖아요. 그런데 좀 믿으면서 읽을 수 있었고. 33페이지의 그림을 딱 펼쳐둔 순간에, 이 그림을 저자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이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저도 비등한 정도의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냥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애초에 세상을 보고 듣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그 그림이 보여주지 않습니까? 그 그림을 눈으로 보자마자 느낀 무참함이 있었는데, 그동안 얼마나 세상 사는 게 힘들었을까. 세상이 이렇게 보이는데 사회에서는 이들을 향한 평가가 너무나 가혹한 거죠.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교정시설에 도착할 때까지 어디에서도, 그걸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많이 무참했고 그리고 정말 슬펐어요.
가정에서 이들의 상태가 발견이 되지 않는 이유가 책에서도 언급이 됩니다만 크게 두 가지잖아요. 첫째가 아이를 담은 환경이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고 문제를 발견하고 그런 다음에 병원에 데려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가 발견이 안 된다는 거죠. 즉 가난하거나 학대를 겪고 있는 사례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보호자의 상태가 아이의 상태와 다르지 않은 경우를 짧게 언급을 하더라고요. 학교에서도 발견이 돼야 되는데 안 된 거죠. 학교는 학업 성적 결과를 중심으로 학생들을 판단하는 시스템이라서 학생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일단은 공부를 잘하는가 못하는가에 있다 보니까 그 잣대로 보면 이들은 그냥 공부 못하는 학생들인 거예요. 학업 부진을 겪는 학생들이고. 이런 단순한 기준으로는 이 청소년들의 상태를 알 수가 없고. 그런데 한편으로 저는 이 ‘알 수 없음’ 상태가 대단히 능동의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호박: 어떤 면에서죠?
한자(황정은): 개개 학생이 가진 ‘문제’가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 점점 되고 있는 것 같아서 많이 걱정이 됐어요. 왜냐하면 선생님들에게 여력이 없어요. 반에 이런 행동을 하는 학생이 있어도 그 문제를 발견해도 지금 교육 여건에서 교사들이 할 수 있는 바가 많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좀 들더라고요. 그래서 여러모로 이 그림이 준 충격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냥: 단호박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최근에 경계선 지능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고 저도 최근에 뉴스를 통해서 접했어요. 우리가 흔히 평균적이라고 하는 지능보다 조금 낮아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그 어려움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생각보다 많고, 우리가 그들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어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자세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는데요.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은) 겉으로 볼 때는 낮은 수준의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고, 그래서 부모를 비롯해서 교육 현장에 있는 분들도 알아차리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거죠. 그게 정말 맹점인 것 같아요.
한자(황정은): 제가 아까 ‘알 수 없음의 능동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좀 했는데, 교실 안에 더 큰 문제로 다뤄지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그게 문제가 돼서는 안 되는 상황이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런 학생들 같은 경우는 한두 번의 관심으로 상태가 학습 능력이 개선이 되는 게 아니라서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렇다 보니까 더 몰이해라든지 무지의 상태로 그냥 두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저는 좀 들기도 했고요. 가뜩이나 지원이 부족하고 세상의 이해도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그림을 그린 이들이 너무 갑갑하게 살았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이들이 결국은 소년원이나 교도소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가 너무 기가 막혔어요.
단호박: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누군가 문제를 일으키면 ‘쟤는 꼴통이라서 그래, 쟤가 심성이 나빠서 그래’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냥 인지 능력이 부족해서 쉽게 그것을 화로 대체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서 그런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표현을 하고 있거든요.
한 번 짚고 넘어가야 될 부분이 있다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 모두가 이런 경계선 지능인 것은 절대 아니고요. 특정 교정 시설에 있는 사람들 중에 이런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원인 자체가 그 사람이 악해서가 아니라 이제까지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한 느린 학습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고요.
한자(황정은): 근데 그 비율이 상당히 높습니다. 30% 이상이고요. 저자가 만나는 내담자들이 대부분 청소년이라서 성인의 경우까지는 책에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아요. 그렇지만 저자가 추측하기로는 성인의 경우에도 재소자 중에도 상당수가 있을 거라고 예측을 하죠.
저자가 소년원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질러서 그 시설에 들어와 있는 거예요. 살인을 저질렀다거나 성폭력을 저질렀다거나 혹은 미수라도 범죄에 준하는 처벌을 받은 학생들인 거잖아요. 그런데 이들 중에서 단호박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경계선 지능이나 혹은 낮은 인지 기능을 가진 사람이 상당수 있다는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서 내내 하는데, 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계속 어려움을 겪다가 범죄에 노출되기가 더 쉬운 환경인 거잖아요. 그래서 결국 소년원에 다다르는 과정을 이 책이 잘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패턴이 이렇잖아요. 기존의 학습이나 교과 과정에서는 소외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니까 당연히 수업을 따라가질 못하죠. 그리고 또래 집단에서는 또 이해를 받지 못해요. 그러다 보니까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속에 울분을 쌓고, 그러다 보니까 범죄에 노출되고, 범죄 환경에 노출이 됐을 때 저지를 확률도 높아지고, 사실 이들이 범죄에 다다르게 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들이 갖고 있는 낮은 인지 기능이라든지 경계성 지능이라기보다는 세상의 몰이해 혹은 무지가 원인이라는 점을 책에서 짚고 있어요.
그냥: 맞아요. 그래서 저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4차 장애’라고 표현한 게 가슴에 콕 박혔는데요. 이렇게 쓰여 있어요. 1차 장애는 장애 자체에 따른 것, 2차 장애는 주변에서 장애에 대한 이해를 받지 못하고 학교 등에서도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따른 것. 3차 장애는 비행을 저지르고 교정시설에 들어왔는데 역시나 이해받지 못하고 엄격한 지도를 받아 한층 더 악화되는 것, 그리고 4차 장애는 사회에 나와서도 이해받지 못하고 편견 때문에 일을 계속하지 못해 다시 비행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라고 정리를 해 두었거든요. 이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고 있고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거예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저자가 만났던 사람들이 재소자이기 때문에 책에서 그들의 사례를 언급하고 있지만, 꼭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고 교정시설에 들어간 사람이 아니더라도 경계선 지능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를 시작해 볼 수 있는 단서들을 이 책이 많이 제공해 준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정말 또 마음이 아팠던 것은, 학교에서는 이들을 지켜보고 지도하고 관리를 해줄 선생님이 있지만 사회에 나오면 그렇지 않은 거예요. 누구도 나를 배움이 마땅한 존재로 보지 않고, 그러니까 실수해도 끌어주고 돌봐줘야 할 존재로 보지 않고, 그리고 겉으로는 경계선 지능이라는 게 크게 티 나지 않기 때문에 ‘너는 왜 이걸 못해, 다른 사람 다 하는데 왜 이게 안 돼’라는 평가를 계속 받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사회에서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매번 그런 지적과 비난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그곳에 오래 있을 수 없고, 그러면 자꾸 일을 그만두거나 옮기는 일이 생기고, 나이가 들수록 이 사람의 경제 기반이 다져지지 못하죠. 아니면 ‘나는 더는 경제 활동을 못하겠다’ 해서 집에서 은둔하는 경우도 생기고요. 책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인 것 같아요. 막연한 상상이라든가 추론이 아니고 정말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라서, 지금 그러고 있을 많은 청춘들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단호박: 인지 기능이 약한 청소년의 경우에는 특징이 있다고 정리를 하고 있는데요. 이 책에서는 ‘5 1’로, 5가지 기능 플러스 한 가지 기능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으로인지 기능이 약하다는 것을 들고 있는데요. 느린 학습자의 경우에는 보고 듣고 상상하는 힘이 약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이후에 내가 어떻게 될 거야’라고 상상하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돈이 모자를 때는 ‘부모님한테 빌려야지’ 혹은 ‘빌린 다음에 3개월 동안 일해서 벌어서 다음 갚아야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애를 때려서 빼앗아야겠다’ 이런 식으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경로로만 가게 된다는 거죠. 두 번째로는 감정 제어 능력이 약하다는 점을 들고 있는데요. 감정을 통제하는 걸 어려워하고 쉽게 화를 내고 그래서 인지 과정까지 이르는 데에 화가 가로막기 때문에 추론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고요. 세 번째로는 융통성이 없다는 점을 들고 있는데요. 어떤 일이든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고, 혹은 ‘이런 경우가 생길 때는 이렇게 행동해야지’라고 한 번 정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네 번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자기 평가가 부적절하다는 항목이 있었어요. 자신이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사회 안에서 나의 위치가 어디고 지금 내가 무슨 문제를 일으켰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거죠. 자신감이 너무 넘쳐서 나는 뭐든 할 수 있다고 여기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부족해서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점점 더 안에 갇히게 되는 확률이 높아진다고 하고요.
한자(황정은): 이 내담자들이 교정시설에 들어와 있는 상황 아닙니까? 그래서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인 거예요. 밖으로 나갔을 때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그런 변화가 있어야 되는데, 일단은 자기 인식이 있어야 변화를 할 수가 있는 거잖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거기에서 달라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저자가 이걸 굉장히 중요하게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따로 챕터를 활용을 해서 서술을 많이 하고 있어요.
변화가 있으려면 자기 성찰이나 자기 반성이 있어야 되는데, 이 성찰과 반성이라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즉 자기 인식이 먼저 있어야 하는 일인데, 이 점을 저자가 짚고 있어요. 그래서 변화의 요인으로 두 가지를 중요하게 꼽습니다. 나를 아는 것, 그리고 자기 평가 향상이 있더라고요.
저자는 실제 현장에서 경험으로 효과를 본 수업 방법을 소개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자기 평가 향상은, 수업 과정에서 발견을 한 건데, 아무리 설명을 해도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질 못한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자포자기 하듯이 ‘그럼 너희들이 나와서 해봐’라고 이야기했더니, 앞에 나와서 자기들이 직접 가르치는 역할을 너무 하고 싶어 하고 답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거예요. 이 과정으로 자기 평가가 놀라가는 걸 경험을 했다는 거잖아요.
이런 식으로 자기 인식을 강화하는 방법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는데, 자기 인식이 중요한 이유가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기준이 있어야 내가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규범이 내면에 쌓이는 거잖아요. 이건 해서는 안 되는 일, 이건 해도 되는 일, 이런 규범이 생기는데. 내가 갖고 있는 규범하고 실제로 내가 하는 행동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경우에 사람은 누구나 불쾌감을 느낀다는 거예요. 이런 걸 느껴야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구나’ 깨닫고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이 된다는 거잖아요. 그렇지만 인지기능에 문제가 있는 청소년의 경우에는 자기 인식이 부족한 상태라서 자기 성찰이나 반성이 앞설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수업을 통해서 자기 인식을 키워놓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좋은 점이 현장에서 효과를 거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소개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아까 제가 선생님들이 교실에서 경계선 지능이라든지 낮은 인지 기능을 갖고 있는 학생들을 대면했을 때 실제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트레이닝 방법이 있거든요. 하루에 5분씩만 해서 인지 기능을 훈련시키고 단련시킬 수 있는 방법까지도 소개를 하고 있어요. 해결 방법이 허황되지 않아서 저는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단호박: 아까 문제 아이들의 특징을 이야기했는데, 그 특징들로 인해서 다섯 번째 특징이 생긴다고 합니다. 다섯 번째 특징은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이 약하다는 점인데요. 융통성이 없고 자기 평가가 없고 감정 제어 능력이 약하니까 그 결과로 인해서 사람들이 점점 더 이 사람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걸 힘들어하고, 그러다 보니까 점점 더 고립되고 계속 악화되는 지점을 짚고 있습니다.
플러스 원( 1)으로 설명해 놓은 부분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신체 운동 기능이 떨어진다는 부분이 있었잖아요. 이게 왜 플러스 원이냐 하면, 어렸을 때 운동을 시켰거나 아니면 운동부에 들어가서 신체 능력을 발달시킨 친구들이 있는 거예요. 그런 경우에는 신체 운동 기능은 매우 뛰어나지만 다른 부분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이 신체적 능력을 가지고 더 사고를 치게 되는 경우도 있는 거죠. 신체 운동 기능이 떨어진다는 표현은 뭐였냐면, 자신의 몸을 다루는 것이 서투르다는 거였거든요. 세밀한 손동작을 하지 못하거나 ‘내가 이렇게 걸었을 때 어느 쪽으로 갈 것이다’라는 인지 기능이 제대로 정립이 안 되기 때문에 자주 넘어진다거나 일을 할 때 잦은 실수가 생긴다거나, 그래서 이 특성으로 인해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래서 경제적으로 나빠지고 또 악순환이 반복되는 경우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자(황정은): 저는 이 책에서 많이 생각한 말이 있었어요. 대부분 많이 생각을 하게 했지만 그중에 가장 저를 생각하게 만든 말이 이거였는데요. ‘미성년 범죄가 일어나면 사회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몰두할 뿐 어떻게 하면 막을 것인가를 덜 고민한다. 혹은 거의 고민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가 이 책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말을 많이 생각했는데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되짚어보고 탐구하는 일도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문제를 개선한다거나 해결하는 일의 초석에 그 단계가 있지 않습니까? 예전에 저희가 이야기했듯이, 영국 사회에서 아동학대나 아동 살해를 막기 위해서 하는 일 중에 사건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오답 노트를 작성한다는 거잖아요.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에 나온 내용이기도 한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은 사실은 어떻게 하면 막을 것인가를 묻는 과정의 첫 번째 질문인 것 같아요. 꼭 필요한 질문이고.
이런 걸 생각하다 보면 한국 사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우리 사회에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라는 질문이 있어요. 대단히 격렬하게 있는데, 그런데 이 질문이 매우 도착적이고 유희적인 관점에서 잠깐 발생했다가 그냥 사라지고는 해요. 어떤 끔찍한 개별적인 괴물의 소행인 것처럼, 그런 식으로 그냥 소비되고 말 뿐이죠. 사건 자체가 그렇다 보니까 질문의 토대 자체가 매우 약합니다. ‘어떻게 하면 막을 것인가’ 이 고민도 한국 사회에 있어요. 그런데 애초에 이 질문이 토대가 약하고 약간 엉뚱한 방향으로 쌓이다 보니까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을 막을 것인가’라는 고민이 한국에서는 예컨대 촉법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지기도 한단 말이죠.
촉법 연령을 낮추자는 요구에 따르는 이야기들은 사실 매우 고통스럽고 또 조심스럽습니다. 특히 피해자라든지 가족 입장을 생각하면 그냥 쉽게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반대로 촉법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말은 대단히 쉽게 나옵니다. 저는 촉법 연령이라는 것은 ‘어떤 미성년 개인이 미성숙하거나 혹은 반사회적인 행동을 했을 때 그 사람이 속한 사회가 그 행동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을 하고 그 책임을 나눠지겠다는 일종의 마지노선 성격을 가지는 선언’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제가 느끼기에는 촉법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 증가하는 것 같은데, 이런 요구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이유는 그쪽이 아무래도 쉽기 때문인 것 같아요. 미성숙한 혹은 내면에 어떤 문제가 있을지 모를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꾸준히 노력해서 문제의 원인을 없애는 데 얼마나 큰 노력이 들어가겠습니까? 그보다는 처벌 연령을 대폭 낮추는 게 쉽겠죠. 그렇지만, 예전에 문유석 전 판사님이 오셨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형법은 모든 갈등과 사건의 최종 지점이에요. 왜 최종 지점에서 원인을 찾습니까?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우리 사회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단호박: 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촉법 연령에 관한 문제는 저는 가두리 양식 같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문제가 보이는 것을 일단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 시설에 넣거나 교도소에 넣거나 교화 시설에 넣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하자라는 식으로만 지금 반영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됐고요.
2010년 한국 연구에 따르면 82명의 성폭력 가해 청소년의 지능을 검사했을 때 26.5%에 해당하는 19명이 지적장애 혹은 지적 경계선 지능에 해당하는 지적 수준을 보였다는 연구가 있었고요. 그리고 2016년 기준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연구를 했을 때 전국의 소년원에 있는 118명의 보호소년 중에 정신질환이나 품행장애로 정신건강 치료가 필요한 보호 소년이 230명 전체 인원 대비 26.6%였고요. 이 중에 37%가 지적장애 및 경계선 지능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교화시설에서 정신건강 치료가 필요한 보호소년이 적어도 23% 라는 점은 어쨌든 이 친구들이 범죄를 저질렀고 교화 대상이긴 하지만 반면에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기도 하다는 뜻이 될 거고요. 37%의 치료가 필요한 친구들 중에 1/3 정도가 경계선 장애 내지는 지적 장애 문제를 가졌다는 것은 이 친구들에게 낮은 인지 과정을 치료할 혹은 좀 더 나아지게 할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겠죠. 여태 부재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그런 지점을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단호박: 오늘 저희가 같이 읽은 책은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이었고요. 미야구치 코지 저자, 부유나 역자, 그리고 박찬선 교수의 감수로 만든 책입니다. 인플루엔셜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다음에 저희가 읽을 책 무엇이죠?
그냥: 다음에 같이 읽을 책은 제가 골라봤는데요. 방구석 저자가 쓰고 김영사에서 만든 『취미가 우리를 구해줄 거야』를 같이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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