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우리가 단지 구경하는 눈이 되지 않으려면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77회)
"보고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대규모 구경이 되어버릴 뿐이다." 이 말은 책 속에도, 표지에도 등장을 하죠. 이 책에 실린 첫 번째 글은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를 가늠하면서, 그럼에도 고통을 봐야 하는 이유를 생각합니다. (한자) (2024.01.25)
김인정 저 | 웨일북
한자(황정은): 오늘은 제가 추천한 책을 읽고 왔죠. 일단은 제가 김인정 저자의 소개를 해야 될 것 같아요. 책에서 발췌를 해서 소개를 해보자면 광주MBC 보도국에서 주로 사회부 기자로 일을 했고 10년 동안 사건 사고, 범죄, 재해 등을 취재했다고 합니다. 법조 비리와 기업 부패를 고발한 기사 등으로 방송기자상을 네 차례 수상했고요.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그리고 5.18 언론상 등을 받았습니다. UC버클리 탐사보도센터에서 사회 양극화와 인종 차별 문제를 취재하고, 소셜미디어와 마약 문제, 시민 운동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요. The Nation, CNN 등 외신을 통해 한국의 참사와 학살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 5월에 5.18 37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그의 이름은>을 취재하고 연출했고요. 이 다큐멘터리에서 5.18의 발포명령자를 추적하며, 도청 앞 집단발포 직후 미국의 백악관 정책결정회의 발언 내용이 담긴 수기 메모를 발굴했습니다. 이 보도로 광주전남민주언론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프리랜서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광주문화방송에 들어가서 김인정 기자의 이름으로 검색을 하면 그간의 기사들이 쫙 올라와 있어요. 주로 5.18 관련 기사들이 업로드 되어 있고요. 저희가 흔히 TV로 보는 뉴스들은 수도권 중심의 뉴스들이잖아요. 수도권 중심으로 만들고 보도되는 뉴스들인데, 이런 중앙 언론에서는 좀 만나보기 어려웠던 기사들을 확인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번쯤 들어가 보셔서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고통 구경하는 사회』는 일단은 목차를 보면 어떤 내용인지를 좀 개괄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네 개의 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고 열일곱 개의 꼭지 글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요. 제목을 좀 읽어볼게요. 1장의 제목이 ‘새롭고 특별한 고통이 여기 있습니다’이고 2장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3장은 ‘나와 닮지 않은 이들의 아픔’ 4장은 ‘세계의 뒷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라는 제목입니다.
책에 실린 글들이 워낙 저자가 고심을 해서 선택한 언어들이라서 사실은 저는 이 책을 소개하기가 좀 막막해요. 제 언어로 번역을 해서 소개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공감한 몇몇 챕터의 본문을 낭독을 해서 같이 읽고 싶은 책입니다.
제가 오늘 아침까지도 ‘대체 이 책을 어떻게 간추려서 소개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면서 왔습니다. 일단은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아요. 뉴스를 만드는 기자의 마음에 남은 수많은 질문과 고민을 담은 글, 그리고 동시에 뉴스를 소비하는 대중의 마음을 생각하는 글. 그렇지만 뉴스라는 것은 항상 우리 사회를 말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이 책에 실린 질문들은 사실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우리를 향한 질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책의 시작 부분부터 이야기를 해보자면, 10.29 참사의 소식이 막 알려진 2022년 10월 29일 밤 소셜미디어의 상황부터 시작을 하는데요. 당시 현장 상황이 엄청난 양으로 소셜미디어에 공유가 되었잖아요. 현장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영상이 수많은 계정에 업로드 되고 확산이 되는 그런 문제적 상황이 벌어졌고, 그러다가 현장 영상을 유포하지 말아달라는 호소가 늘면서 자정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저는 알고 있거든요. 김인정 기자는 이 상황으로 글을 시작을 합니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여는 이 첫 글에서 당시 현장에 존재했던 수많은 시선들의 의미를 돌아보는데요. 사건이나 재난 현장을 취재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로 우리가 레거시 미디어라고 부르는 전통 언론들 주류 언론들, 신문이라든지 방송국이었단 말이죠. 저널리즘이 해온 일이었는데, 이런 뉴스들은 어떤 정보를 뉴스로 만들 것인가 판단을 하고 선택을 하고 편집을 해서 보도를 합니다. 그렇게 전달된 뉴스에는 파급력도 있고 영향력도 분명히 있죠. 저널리즘이 가지는 큰 힘이 분명히 있었던 거죠.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좀 많이 달라졌어요. 웬만해서는 누구나 카메라 한 대씩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핸드폰에 카메라가 다들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시선을 기록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있고, 자신이 본 것을 찍어서 그 영상이나 사진을 인터넷에 업로드를 해서 그것을 다수에게 공개를 할 수가 있는 그런 세계가 이미 되어버린 거잖아요. 내가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미처 그 사건이나 어떤 사고를 인지를 하지 않아도, 소셜미디어 접속이 되어 있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그것을 알게 돼요.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내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 어떤 현장 영상을 보게 되는 경우도 생긴단 말이죠.
단호박: 요즘에는 회사에서 컴퓨터를 켜놓고 있으면 알림이 그냥 뜰 때가 있습니다. ‘브레이크 뉴스’ 하면서 속보가 알럿창으로 떠요.
한자(황정은): 어떻게 그렇게 되죠?
단호박: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놓으면 그 포털에서 알림을 보내더라고요. 그래서 약간 얻어맞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내가 원할 때 뉴스를 보고 싶은데, 뉴스를 그냥 얻어맞게 되는 거예요. 대부분 속보라고 보여주는 것들이 그렇게 행복한 뉴스들은 아니잖아요. 그럴 때가 좀 많습니다.
한자(황정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김인정 기자는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더욱 많은 사람이 더욱 많은 사람을 향하여 고통의 중개인이 되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이렇게 타인의 고통을 재현하거나 전달하는 일은 대단히 무거운 책임과 고민이 따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유명한 일화를 예로 들어서 말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사진을 많이들 아실 텐데, 1994년에 퓰리처상을 받은 보도 사진이 있어요. 수단에서 배급을 기다리던 굶주린 아이가 바닥에 웅크려 있고 근처에 독수리가 내려앉아서 그 아이를 바라보는 사진이거든요. 보신 적 있죠?
단호박: 그냥 님이 책 소개 한 번 해 주셨었죠?
그냥: 제가 예전에 보도 사진 관련해서 책 소개할 때 얘기했던 것 같아요.
한자(황정은): 혹시 그 사진 관련해서 책에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기억을 하십니까?
그냥: 그 촬영 기자는 지금 사망한 상태인 걸로 알고 있는데, 생전에 굉장히 많은 비난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고요. 진실이 뭐였는지 지금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요. 그 사진을 찍은 자체를 두고 사람들이 비난을 한 것은 ‘지금 사진 찍고 있을 때냐, 아이를 구했어야지’라는 거였는데, 촬영 뒤에 아이를 구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급박한 상황이 아니어서 개입을 안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랬던 것 같아요.
한자(황정은): 맞아요. 그 논란으로 대단히 유명해진 사진이기도 하죠. 케빈 카터라는 사진가인데요. 그 사진으로 비인도적인 사진가라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는데요. 그냥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가 죽어가는 동안 뷰파인더 너머에서 구경을 했다’ 그리고 ‘위험한 순간에 사진을 찍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물론 당시 상황은 사람들의 이해하고는 조금 달랐는데요. 아이가 부모 곁에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케빈 카터는 사진을 찍자마자 독수리를 쫓아버린 뒤에 이 말도 안 되는, 아이의 그 아사 직전의 그 상태랑 이 모든 상황 때문에 현장에서 울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그리고 그 사진이 화제가 된 덕분에 수단 상황이 전 세계에 많이 알려졌다고 해요. 그래서 케빈 카터는 어딘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목격자로서 그리고 전달자로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는 인터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널리스트 모두가 자신의 카메라 너머에서 자신 있게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지는 않을 것 같아요. 내가 현장을 카메라로 찍는 동안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는 자각이 분명히 있을 테고, 그리고 고통 받는 일을 카메라로 찍으면서 혹은 눈물 흘리는 어떤 사람을 인터뷰를 하면서 혹은 자신의 궁핍한 사정을 이야기해야 하는 입장의 어떤 일을 인터뷰를 하면서, 이것이 뉴스로 나가도 변화가 있을지 없을지를 알 수 없고 그리고 경험상 변화가 미미할 거라는 것을 아는 상태로는 ‘내가 목격자인가 아니면 구경꾼인가’라는 질문을 자신의 내면에서 계속 만날 수밖에 없는 거죠.
김인정 기자 역시 타인의 삶 타인의 고통을 취재를 하면서 내내 이 윤리적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점을 이 책에서 여러 번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런 딜레마를 과거에는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만이 감당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누구나 이런 윤리적 딜레마를 만나게 되거나 자각을 하게 된다거나 아니면 별 생각 없이 소셜미디어에 올랐다가 엄청난 윤리적 비난을 받게 되는 거죠.
10.29 참사가 벌어진 당시에 실시간으로 현장 영상이나 사진을 올린 사람들도 대중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상황은 다른 측면에서도 생각거리를 주는데요. 김인정 저자는 당시 현장 영상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이유를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현장에서 핸드폰을 꺼내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촬영한 이들이 있었고,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현장이 아니라 그들의 시선을 목격한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이 지점에서 ‘목격과 구경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보고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대규모 구경이 되어버릴 뿐이다.” 이 말은 책 속에도, 표지에도 등장을 하죠. 이 책에 실린 첫 번째 글은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를 가늠하면서, 그럼에도 고통을 봐야 하는 이유를 생각합니다. 세상에 정말 많은 고통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단지 구경하는 눈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고민을 하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풀어서 쓴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이 책에서 첫 번째 글을 많이 좋아하거든요. 두 분은 어떠셨습니까? 어떤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단호박: 저는 ‘트리거 워닝’을 다루는 부분을 잘 읽었던 것 같습니다. 저한테도 고민이 되는 부분이어서요. 3장에 나와 있는 내용이었죠. ‘트리거 워닝 : 눈길을 사로잡거나 돌리게 하거나’라는 소제목으로 나와 있는 챕터였고요. 잡지나 웹진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요새 고민이 되는 부분이긴 하거든요. 트리거 워닝이라는 게 약간 유행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다들 뭔가를 쓰고 있기는 한데 이 트리거 워닝을 씀으로 인해서 과연 독자들한테 도움이 되긴 하나? 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 때가 많거든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트리거인가. 그리고 ‘트리거 워닝’이라고 적어놓으면 끝인가. 사실 그렇게 적어놓고 ‘우린 할 일 다 했어’ 하고 발 빼는 느낌이 들 때도 많고요.
한자(황정은): 창작자나 보도하는 입장에서 트리거 워닝이라는 말이 저는 일종의 방어막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이 좀 있어요. ‘난 경고했어’ 이런 거 말이죠. 요즘은 트리거 워닝이라는 말도 사실 남발되고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본인이 어떤 충격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을 접하면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할 뿐만이 아니라 항의를 합니다. 왜 나한테 이런 걸 보여줘 라면서 항의를 해요. 그러다 보니까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트리거 워닝이라는 방패막을 세우는 거죠. 저는 이건 대단히 좋지 않은 흐름이라는 생각을 좀 막연하게나마 하고 있는데, 이거 관련해서는 이 글의 마지막 부분이 좋아서 태그를 붙여놨거든요. 이런 질문이 등장을 하잖아요. “고통을 언제 보여줘야 하고 언제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가?” “어떤 고통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하고 응시를 참아내야 하는가?” “얼마나 보여주고, 또 가려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이 있는데 김인정 저자가 이런 질문들을 포함해서 이 책에 수많은 무수한 질문들을 던지지 않습니까? 근데 사실은 본인도 답을 찾지를 못했어요. 저는 그게 정답인 것 같습니다. 답을 찾으려는 그 마음과 이런 고민 사이에서 끝없이 진동하는 것이 저는 맞는 답인 것 같아요.
이 글의 마지막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김인정 저자가 어떤 고통을 보여주기로 결심했을 때 그 결심의 배면에는 이런 생각이 있다는 거잖아요. “고통을 보는 사람들의 고통보다도, 그 영상 안에 담긴 선연한 고통을 외면하는 일이 더 어려워서였다. 한 영상을 보여주지 않는 일, 고통을 겪는 사람보다 보는 사람의 불편감부터 배려하는 일이 윤리적으로 반드시 게으른 결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영상을 보여주지 않기로 결정하는 이유가 향하는 주어가 마음에 걸려서” 그런 영상을 결국은 넣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단호박: 제가 고민이 들었던 지점은 자살 시도에 대한 언급이었거든요. 요즘은 사망 사건을 보도하면서 자살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 항상 마지막에 생명의 전화 전화번호를 붙여놓고 뭔가 생각이 드신다면 바로 상담을 하십시오 이런 문구를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모르겠어요. 폭력을 전시하는 행위에 있어서는 트리거 워닝이 약간 면피용으로 작용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 자살에 대한 언급에 있어서는 트리거 워닝을 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생각을 그때 좀 많이 했었습니다.
한자(황정은): 자살 보도의 마지막에 상담할 수 있는 번호라든지 연락처라든지 어떤 라인을 알려주는 거잖아요. 저는 그거는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냥: 단호박 님도 같은 얘기를 하신 것 같아요.
단호박: 네. 어려운 일입니다. 그냥 님은 어떤 부분을 잘 읽으셨나요?
그냥: 저는 이 책의 1장이 굉장히 좋았는데, 1장에서 근간이 되는 이야기를 다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뒤로 갈수록 세부적인 주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는 1장부터 되게 개운한 느낌을 받아서 참 좋았어요. 사실 저는 이 책을 처음에 읽기 전에 겁이 나기도 했거든요. 진열된 고통을 보는 것이 힘이 들까 봐. 그런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아요. 저자가 관련된 사진들, 현장에서 자기가 만난 사람들이라든지 아니면 자기가 취재했던 사건과 관련된 현장 사진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넣지 않았다는 게 정말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선택한 걸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너무 고마웠고요. 저는 지금 고통이 전시되고 있는 것을 보는 걸 피하고 싶은 단계예요. 앞으로 더 어떤 단계로 나아갈지 모르겠지만, 이런 단계에 있는 사람이 저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을 해요. 저보다 더 나아간 사람도 있고 저와 비슷한 단계로 오고 있는 사람도 있을 텐데, 이런 시기에 우리가 각자 선 자리에서 단계 단계마다 고민하고 딜레마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1장에서 너무나 명쾌하게 이야기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너무 개운하고 좋았어요.
단호박: 그냥 님이 개운하다고 표현한 지점을 신형철 평론가가 표현한 부분이 되게 재밌다고 생각을 했는데, 평론가님 추천사 중에 “대중을 위한 일종의 대속代贖 작업을 했다”라는 표현이 있거든요. 그런 지점이 약간 개운함을 주는 것도 있죠.
한자(황정은): 저는 1장과 2장에 실린 글들이 대단히 인상적이었고, 1장에 대한 이야기는 좀 나와서 2장에 대한 이야기를 약간만 해보자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이라는 대제목 아래 다섯 개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매 챕터가 시작될 때마다 책 안에서 인상적인 구절들이 발췌돼서 기록이 되어 있는데, 이 문장들이 너무 좋아요. 2장을 시작하면서 붙은 글에 제가 이 책 전체 내용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들이 나와요. 이런 글입니다. “흔한 고통은 문제가 아닌 문화가 된다. 흔한 사고일수록, 어디서나 보이는 사고일수록 우리는 그 고통을 보는 일에 능숙해지고, 거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등장을 하고요. 산업재해를 다룬 글 「재해는 어떻게 문화가 되었는가」에 실린 문구입니다. 말 그대로 우리 사회의 산업재해가 너무도 흔해서 우리가 그 고통을 보는 일에 능숙해졌다는 말이잖아요. 그리고 주기적으로 비슷한 소식을 들으니까 어느 순간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고 지적을 합니다.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고통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우리 사회에서 그러면 어떤 산업재해가 주로 뉴스로 옮겨지는가를 이 글에서 김인정 저자가 돌아보고 있는데요. 이른바 뉴스가 되는 산업재해는 어떤 사건들인가? 첫 번째, 크고 이름 있는 기업에서 일어난 산업재해가 뉴스로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훼손된 신체가 있는 산업재해 현장에 대한 기사가 뉴스로 보도가 되죠. 보여주기 용이하다는 이유로 이런 사건들 이런 현장들이 뉴스로 더 쉽게 선택이 되고 더 잘 알려지는 현실을 짚고 있습니다. 반면에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재해를 짚는데요. 예컨대 발병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 산업재해들이 있어요. 뉴스는 항상 오늘 당장의 소식들을 전하기 때문에 그런 뉴스에 등장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우리가 잘 접하지 못하는 산업재해들, 예로 고압 전류를 다루는 전기원들이 백혈병에 걸리는 사례를 다룹니다. 발병까지 십 수 년에서 수십 년이 걸리기 때문에 뉴스에 등장하기가 어렵다는 거죠.
또 인상적이었던 글이 같은 챕터에 실린 「아픔이 혐오가 될 때」였어요. 5월 어머니들의 울음으로 시작이 되는 글인데요. 5.18 민주화운동과 희생자 그리고 유가족들이 혐오 대상이 되어버린 현재를 고찰하는 글입니다. 최근에 이 5.18 민주화운동을 향한 새로운 혐오에 대응하는 어머니들의 울음이 비명에 가까웠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어머니들이 40년째 울어주고 보여준다’라는 표현이 나와요. 이것은 현장에서 그 울음을 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그 말이 정말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냥: 아까 잠깐 얘기했는데, 저는 지금 고통을 전시하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하는 단계예요. ‘단계’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이슈 별로 사람 별로 각각의 단계에 머무르고 다들 그 단계를 관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서 내가 A이슈에 있어서는 1단계인데 B이슈에 있어서는 3단계일 수도 있고, 타인은 나와 반대일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저는 김인정 저자가 ‘왜 어떤 이슈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1단계에 머무를까’를 굉장히 잘 포착하고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에는 되게 다양한 이유들이 있는데, 자기 검열도 있고 도덕적 무력감도 있고 거기에서 오는 자기 환멸 같은 것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작용한다는 것을 짚잖아요. 그러면서 결국 사회라는 게 다양한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해 나가는 거라는 사실을 짚어줘서 되게 좋았어요.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이 있거든요. “나의 것이 아닌 고통을 보는 일에는 완벽함이 있을 수 없으므로.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미욱한 애씀의 흔적을 조금씩 용인하면서라도 움직이기를” 바란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런 부분들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한자(황정은): 저도 그 문장 인용해뒀습니다. 1장 첫 번째 글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글이죠. 존 버거를 인용하면서 쓴 글이에요.
그냥: 다른 장에서도 같은 메시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런 문장이에요. “세상의 변화라는 건, 개인들의 자유로운 반응 속에서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화학작용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발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시선이 저는 참 좋았어요.
한자(황정은): 맞아요. 두루두루 시선이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시선이 어떤 명확한 시선이라서 매력이 있다기보다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고민하는, 자신들의 위치를 인식하려고 노력하는 시선이기 때문에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요. 일단은 『고통 구경하는 사회』라는 제목이 대단히 와 닿았어요. 지난 10년 동안의 사회적 참사와 더불어 살아가면서 내내 해왔던 질문,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 그리고 그 고통에 대응하는 우리 사회를 함께 생각하는 이야기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인데요. 제가 10.29 참사 1주기 추모 현장에 갔다가 지난 10년 동안의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을 호명하는 말을 듣고 받은 충격에 대해서 참사 생존자인 김초롱 저자와 만났을 때 이야기한 적도 있지 않습니까? 10.29 참사 이후로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좀 힘을 내기가 어려운 시기가 저한테도 있었거든요. 올해 4월 16일이 세월호 참사 10주기입니다. 저는 세월호 참사 이후로 우리가 다 목격자로서 살고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10.29 참사 1주기 추모 현장에서 하나씩 하나씩 호명되는 사회적 참사의 이름을 들었을 때, 이 사건들이 징검다리처럼 이어져서 10.29 참사에 이를 때까지 내가 그리고 우리가 구경만 했다는 자각이 매우 충격적으로 있었어요. 그때는 이 책을 알기도 전이었는데 정확히 그 말이 떠올랐어요. 우리 구경만 했구나, 라는 자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 책이 나왔을 때 읽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일에는 항상 대상화 위험이 따라요. 그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경계하다가 고통을 아예 보지 않으려는 태도로 이어질 수도 있는 점을 김인정 저자가 경계하면서 쓰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 책에 실린 내용 중에서 그 문장이 정말 반가웠어요. “나의 시선이 구경이 될 수 있다는 걱정에 빠져서 고통을 보는 일 자체를 멈춘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인간성 실패의 시작일 것이다.”라는 문장이 나와요. 그리고 아까 그냥 님이 낭독해 주신 문장 말입니다. 존 버거를 인용한 그 문장이요. 그 말을 확인하려고 이 책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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