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좋은 글은 세계를 보는 관점을 다르게 해주는 것” (G. 위근우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76회)
“어떤 글도 그 자체로 완결될 수 없다는 것, 글의 가치는 더 나은 논의를 위한 기여에 있다는 믿음은 내 글쓰기의 가장 큰 전제다”라고 말씀하시는, 책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를 쓰신 위근우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4.01.18)
글쓰기란 완성된 생각을 꺼내 쓰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생각을 언어로 더 구체화하고 세밀화 하며 완성하는 과정이다. 글쓰기가 자아실현의 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글을 쓰는 과정이 내 생각과 감정이 무엇인지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는 건 그래서다. 언어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나의 문제의식이 정리된 생각인지 그저 정념의 덩어리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 말이 되게 고치고 막연했던 직관을 옮길 단어와 개념을 고르다 보면, 근거 없는 정념은 후퇴하고 내가 책임 있게 주장할 수 있는 관점의 범위가 구체화된다. 글쓰기란 본질적으로 반복적인 작은 퇴고를 누적하는 작업이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위근우 작가님의 책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글을 쓰는 작업은 그 자체로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한 피드백이기도 하다’고 말씀하시는 위근우 작가님은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에서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마음과, 그럼에도 글을 쓰는 데 매혹되었던 마음, 그리고 비평가로서 어떻게 책임감 있는 글쓰기를 지향하게 되었는지까지 재능, 트레이닝, 실전, 논쟁, SNS, 멘탈이라는 여섯 개의 키워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를 쓰신 위근우 작가님을 모시고, ‘그럼에도 글을 쓰는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오은: 최근에는 KBS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에 대해 쓰신 글이 올라왔더라고요. 어떤 드라마나 영화가 화제가 되면 그것들을 살펴보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하셔야 할 것 같아요. 어떠세요?
위근우: 의무로 보는 부분이 많아진 것 같아요. 일단 매체가 너무 많아졌고요. 매체가 많아지다 보니까 어느 곳에서 화제가 되는 것들이 잘 얘기가 안 되고 있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럴 때 그것이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갈 일인가, 아니면 비판적인 맥락이든 혹은 칭찬의 맥락이든 지금 얘기할 가치가 있는가를 결국 찾아봐야 하죠. 때문에 그것들을 찾는 게 사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오은: 위근우 작가님 소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08년 대중문화 비평 웹진 <매거진t>에 입사해 대중문화 전문 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웹매거진 <아이즈> 팀으로 재직하다 현재는 비정규 마감노동자로 활동 중이다. 쓴 책으로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뾰족한 마음』 『프로불편러 일기』 『젊은 만화가에게 묻다』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가 있다.”
그간 쓰신 책의 제목을 보면, 다른 게 아니라 틀렸다고 하고(웃음), 마음이 뾰족하다고 하고, 프로불편러라고 해요. 저도 다 읽어봤지만 공통된 느낌이 있는데요. 오늘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다정한 사람이었구나, 싶어요.
위근우: 오늘 녹음이 끝날 때쯤 되면 그 말들을 받아들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오은: 이제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가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 책 어떤 책이죠?
위근우: 글쓰기 책이 참 많은데요. 많은 글쓰기 책들이 ‘쓸 이유’에 대한 이야기들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그것들에 다 동의를 하지만, 동시에 사실 제가 일을 하면서 갖는 느낌은 귀찮음일 때가 제일 많거든요. 다른 분들이 말씀하시는 글쓰기의 의미라는 것들이 다 중요하긴 하지만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런 좋은 이유가 있어서 쓴다는 내용 보다는 이러한 귀찮음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다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 저에게 글을 쓰는 동기도 ‘그래서’라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지점들이거든요. 그것이 저에게 중요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 이야기들을 제 경험이나 제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어떤 방법론을 같이 모아서 이야기했습니다.
오은: 이 책은 작가님의 첫 에세이이기도 하죠. 그간 칼럼집이나 대중문화 비평서가 있긴 했지만 에세이는 처음이에요. 한편 에세이는 어찌 됐든 나 자신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글 같아요. 물론 다양한 글이 그런 것들을 포괄하긴 하지만 나로부터 출발하는 글, 나로 도착하는 글이야말로 에세이 같은데요. 그래서 이런 글은 아무리 애써도 내가 감추려고 했던 부분이 드러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위근우: 그 부분이 되게 어려웠어요. 말씀해 주셨지만 제 대부분의 글도 그렇고요. 사실 저는 SNS에서도 제가 무엇을 바라보는 관점의 형태로 저를 드러내는 것에 훨씬 익숙한 사람이거든요.
처음에는 좀 더 작법서 느낌으로 쓸 생각이 있었고요. 몇 편을 썼는데 쓰면서 각각의 글들이 약간 다른 얘기이기는 하지만 어느 면에서는 동어반복인 느낌이 좀 있는 거예요. 왜 그럴까 생각했더니 제 경험이라는 맥락을 제거하고 얘기하려다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러면서 지금의 방향으로 쓰게 됐어요.
오은: 책의 첫 문장이 이렇습니다. “글을 쓰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도 귀찮은 일이다.” 귀찮음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게임을 해야 하는데 글을 써야 하니까(웃음) 짜증나고 귀찮고 싫을 수도 있고요. 그밖에 다양한 방식의 귀찮음이 있을 텐데요. 작가님께서 말씀하시는 귀찮음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포함하는 것인지 들려주세요.
위근우: 세상에 있는 많은 일들이 해야 할 이유가 있지만 그걸 미루고 싶은 귀찮음을 동반하죠. 그런데 글쓰기라는 건 쓰기 전부터 쓰는 내내 ‘이걸 해야 할 이유가 뭐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따라다니는 일인 것 같아요. 다른 일은 해야 할 이유가 명확한 상태에서 이걸 어떻게 미룰지를 고민하잖아요. 반면 글쓰기는 해야 할 이유라는 것까지도 사실은 제 스스로 찾아야 되는 거예요. 남이 준 게 아니니까요. 누가 글 쓰라고 협박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내가 계속 그 이유를 찾아야 돼요.
또 꽤 적지 않은 경우 다 쓰고 난 다음에도 쓸 이유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작업인 같거든요. 그렇다고 그 질문을 놓을 수는 없고요. 결국 계속해서 그 질문을 안은 동시에 쓰는 것도 귀찮은데 그러면서도 내가 쓸모 있는 일을 하는 건가, 라는 질문을 놓지 않으면서 해야 되기 때문에 더 귀찮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은: 작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글의 기준이라는 게 있을 것 같습니다.
위근우: 제가 좋아하는 필자 분들을 생각해 보면요. 어쨌든 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글들을 쓰는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사실 저는 우리가 세상을 투명하게 인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관점이라는 게 있죠. 살아오면서 내가 형성한 관점이라는 게 있고, 내가 서 있는 위치라는 것이 있어요. 거기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관점을 가지고 해석하게 되는 것뿐이지 세상을 투명하게 인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 여러 관점들이 통합되고, 그것들이 논의를 거치면서 좀 더 세계를 실제 그대로에 가깝게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좋은 글들은 그런 지점을 우리한테 주는 것 같아요.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입니다.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주세요.
위근우: 최애 철학자로 ‘위르겐 하버마스’를 꼽고요. 차애로 꼽는 사람이 ‘낸시 프레이저’라는 학자예요. 그분의 책 중 2023년에 번역돼 나왔던 『좌파의 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원제는 ‘CANNIBAL CAPITALISM’이라고, 식인 자본주의라는 의미인데요. 저한테는 진짜 2023년의 책이었어요.
말씀드렸지만 민주주의 위기라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은데요. 이 책에서 프레이저는 지금 세계의 중요한 화두들을 다루고 있어요. 젠더 정치의 문제, 민주주의의 위기, 기후 위기, 인종 차별의 문제 등이 어떻게 각각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과 착종되어 있는가를 굉장히 명료하게 쓰시거든요. 물론 번역을 잘하셔서 그런 거겠지만요. 굉장히 논리적으로 잘 설명을 해서 추천하고 싶었어요.
결국 결론은 그거죠. 자본주의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도 있지만요. 결국에는 페미니즘 진영이라거나 또는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생태주의자들이라거나 혹은 인종의 문제에 대해서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정치적 세력들이 결국에는 자본주의라고 하는 공통의 적 앞에서 정치적 연대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누군가는 “지금 기후 위기가 문제지 젠더 이슈는 나한테 중요하지 않습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혹 누군가는 “나는 여성 인권이 제일 중요한데 신자유주의 문제를 왜 따지고 있느냐”고 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따지는 게 문제라는 건 아닌데요. 결국 각각의 정치적 입장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진보 정치 내에서 연맹이 필요하고, 그것이 자본주의라고 하는 공통의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굉장히 명료하게 논증해 주는 그런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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