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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랑 칼럼] 샘플링을 뒤집어‘듣기’ - 비틀스의 ‘Now And Then’

윤아랑의 써야지 뭐 어떡해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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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단조와 장조의 대조를 십분 활용하려 애쓴 멜로디와 화성 구조에도 불구하고, 내게 있어 ‘Now And Then’은 곡 자체보다는 금방 짚고 넘어간 제작 과정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2024.01.15)


음악을 듣는다는 게 문득 기묘한 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롤랑 바르트가 사진을 바라보며 놀라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르)게, 하나의 매체 속에서 수많은 시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을 우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 문득 기묘한 일로 느껴지는 것이다. 가령 1970년대 뉴욕 펑크 씬의 대표주자였던 밴드 텔레비전(Television)의 대표곡 ‘Marquee Moon’을 들어보자. 헤드폰을 귀에 낀 채 노래를 재생하면, 왼쪽에서 먼저 (작년 1월에 작고한) 톰 벌레인의 기타가 Bm과 D5를 반복적으로 오가는 미니멀한 리듬으로 등장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에선 리처드 로이드의 기타가 어딘가 냉소적인 더블 스탑과 트릴로 등장한다. 곧 이어지는 리처드 헬의 베이스와 빌리 피카의 드럼은 두 기타의 소리를 단단하게 메어주고, 너드 티가 팍팍 나는 벌레인의 신경질적인 보컬이 노래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노래의 첫 30초는 대강 이렇게 진행된다.

노래의 녹음에 관한 인터뷰들을 살펴보니, 라이브의 질감을 살리고자 기타 트랙을 제외한 모든 소리를 원 테이크로 녹음했으며 스튜디오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이펙트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그렇겠지. 한데 녹음 과정에서 그랬다고 한들 청취자로서 나에게도 아무런 이펙트가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한 번 더 ‘Marquee Moon’을 들어보자. 왼쪽의 기타 소리는 오른쪽 스피커에서도 에코가 선명히 들리는 울림의 질감으로 녹음되어 있다. 한데 오른쪽의 기타 소리는 정반대로 에코 없이 아주 스트레이트한 질감으로 녹음되어 있어서, 이런 두 기타가 만드는 화음은 현실적인 공간에서라면 불가능할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두 기타가 멀티트랙으로 따로따로 녹음 및 믹싱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긴 하나, 그걸 알고 있다고 해도 이 화음이 주는 기이한 느낌은 해소될 리 없다.

여기서 나는 바르트가 경험한 낯섦, 뒤틀린 시공간적 감각으로서 낯섦과 유사한 것을 느낀다. 음악에 있어선 서로 다른 음색과 질감의 소리를 함께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인 감각이 뒤틀릴 수 있는 것이다. 혹은 우리의 감각이 지금껏 그렇게 뒤틀려왔(지만 의식하진 못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마이클 스피처의 말을 맘대로 바꾸자면) 주어진 공간이 음색과 질감의 차이를 만드는 게 아니라, 반대로 음색과 질감의 차이가 공간을 새로이 만들며 나아가 시간의 빗장을 푸는 것일 테다. 루이 추데-소케이가 말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소리로 들리는) 비전”.

같은 말이지만 구체 음악 이후의 (아주 광범위한 의미에서) ‘전자음악’은 그러한 미학적 실천을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간에 우리를 그런 뒤틀림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인도하는 역사적 역할을 맡았다 해도 좋을 것이다. 모더니즘의 교훈을 철저히 보편성 속에서 가늠하고 수행해 보았달까? 사실 나로선 이런 생각 자체는 꽤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것이고, 한 번은 구체적인 글로 풀어보려다 스스로의 과문함과 부족함을 깨달아 중단한 적도 있었다. 새삼스레 지금 이런 생각을 여기 풀어 본 건, 전적으로 비틀스의 ‘Now And Then’이 지난 2023년 11월에 발매됐기 때문이다.



비틀스의 남아있는 멤버들인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가 비틀스의 “마지막 신곡”으로 내놓은 이 싱글의 제작 과정에 대해선 이미 다른 기사나 칼럼에서 많이 다뤄졌으니 당장 더 말을 보탤 필요는 없을 성싶다. 다만 존 레논이 생전에 남긴 미완성곡의 데모 테이프를 남은 3명의 비틀스 멤버들이 (‘비틀스 앤솔로지 시리즈’ 제작의 연장선에서) 1990년대 중반 즈음에 완성하려 했으나 존의 목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지나치게 뭉개졌다는 난점 등으로 인해 작업을 중단했던 것, 그 이후 얼마 안 가 조지 해리슨도 명을 달리 했으나 폴은 계속 이 곡을 완성시키고자 했다는 것, 세월이 흘러 2022년 피터 잭슨과 에밀 드 라 레이가 다큐멘터리 <비틀스: 겟 백>을 제작하면서 썼던 AI 음성 보정 기술을 이 데모 테이프에 다시 활용해 결국 존의 목소리를 독립된 트랙으로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 그리고 보다 ‘노래다운’ 완성을 위해 비틀스 후기에 발표했던 세 곡에서 보컬 소스 일부를 추출해 활용했다는 것 등 중요한 몇 가지 지점만 짚고 넘어가겠다.

한데 단조와 장조의 대조를 십분 활용하려 애쓴 멜로디와 화성 구조에도 불구하고, 내게 있어 ‘Now And Then’은 곡 자체보다는 금방 짚고 넘어간 제작 과정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비틀스가 아니었다면 이런 노래는 금방 묻혔을 것’ 같은 류의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된 곡’이라는 타이틀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려는 것도 아니다. 다름 아닌 비틀스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었기에 이 노래가 갖게 된 시대착오성이 있다는 게다. 아마도 누군가는 ‘Now And Then’에 대해 ‘거의 샘플링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라고 거칠게 정리할 수도 있을 터이다. 기존의 소리에서 특정한 소리를 추출하고 변형시켜 새로 합성하는 방법으로서 샘플링을 정의 내린다면 말이다. (완성된 노래에는 데모 테이프의 애절한 브릿지 파트가 전부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는 사실 1960년대 당시의 비틀스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Happiness Is A Warm Gun’이 제작 과정에서 95 테이크나 녹음됐고 그 중 53 테이크의 앞부분과 65 테이크의 뒷부분을 편집한 판본이 발표된 거라는 비화가 이쯤에서 절로 떠오른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비틀스에만 해당되는 얘기도 아니다. 테어도어 그래칙은 스튜디오 작업에 열중한 후기 비틀스 덕분에 “레코딩의 미학”이 정립되었다는 표준적 역사 서술에 반하여, (아마도 발터 벤야민을 참고해) 소리에 대한 편집과 수정을 당연시했다는 점에서 로큰롤 장르의 형성 자체가 이미 그러한 미학과 불분했음을 증명한다. 심지어 ‘일렉트릭’ 시기의 마일스 데이비스(와 프로듀서인 테오 마세로)는 기존의 연주 소리를 왜곡하거나 곡의 구조까지 바꿔버리는, 현대에도 몹시 과격한 샘플링 모델을 재즈 안에서 시도하기도 한 것이다. 마이클 채넌에 따르면 영미권 대중음악의 1960년대는 “완전히 새로운 음향 풍경의 창조”가 일어난 시대로서, 녹음 및 음향 기술의 비약적인 진보 덕분에 소리들이 서로 시간적/공간적으로 한참 떨어져 있어도 하나의 음악을 이룰 수 있게 되면서 “음악가가 해야 할 필수적인 활동, 즉 음악 연주”는 “점점 더 파편으로 분해”되었으며 한편으론 믹싱이 음악 창작 행위의 하나로 격상되었다고 한다(『음악녹음의 역사 - 에디슨에서 월드 뮤직까지』). 앞서 말한 “뒤틀린 시공간적 감각”의 가능성은 바로 여기서 일어난 것일 테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Now And Then’의 제작 방식 자체는 (그 어마어마한 시공간적 간격에도 불구하고) 비틀스에 있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 더 나아가서는, 폴이 ‘Now And Then’에 그토록 매달린 이유란 존이 폴을 위해 이 노래를 썼기 때문만은 아니지 않을까? 어쩌면 ‘Now And Then’에 대한 폴의 진짜 의중은, 자신(들)이 1960년대에 구현했던 “뒤틀린 시공간적 감각”이 동시대에 샘플링이라는 동종의 제작 방식 속에서 여전히 반복될 수 있는가를 시험하려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가령 스스로 말했듯 “존이 바로 옆에 있는 것만 같은” 경험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2020년대를 살고 있다. 폴과 링고 스타와 비슷한 트라우마가 없는 우리, 음악에 대한 접근에의 급진적 민주화로 인해 리믹스나 AI 커버곡 같은 것에 완전히 익숙해진 우리에겐 그런 경험은 (적어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Now And Then’이 아쉽게도 그저 괜찮은 노래 정도로 남는 건 이 때문이다. 다만 이 노래의 시대착오성은 우리에게 다른 교훈이 될 수 있을 게다. 어떤 교훈? 샘플링을 테크닉이 아닌 방법론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 최근의 형식을 넘어 보편적이고 기원적인 것으로 사유하는 것. ‘우리’는 아닐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이는 다음을 위한 큰 교훈이다.



음악녹음의 역사
음악녹음의 역사
마이클 채넌 저 | 박기호 역
동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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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아랑(평론가)

비평가.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을 주로 다루며, 주체성과 현실 감각을 문제 삼는 문화비평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2022),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공저, 2023), 『악인의 서사』(공저, 202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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